오랜만에 '불타는 금요일' 밤을 보냈다. 토요일 아침엔 한없이 느긋하게 일어나도 된다는 생각에서다. 직장인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단잠 깨우는 훼방꾼이 나타났다. 방안을 기웃거리며 다가와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은 커텐으로 막을 수 있는데 이 방해꾼은 도저히 막기가 어렵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익!' 요란하게, 날카롭게 들려오는 새 소리다. '찌이이이이이이익!' 어떨 때는 흉내 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한다.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직박구리다. 먹이 찾아 돌아다니면서 내는 소리는 대단히 시끄럽지만 짝 찾을 때 내는 소리는 감미롭게 들리기도 한다. 아주 예쁜 새소리 주인공이 누군가 싶어 귀를 기울이면 의외로 예쁜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직박구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텃새 중 하나다.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산 중턱에서도 볼 수 있고, 바닷가 갈대밭에서도, 남해안 섬 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우스개 소리지만 뭐니 뭐니해도 직박구리를 가장 많이 볼 수 있고,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곳은 컴퓨터 화면이다. 컴퓨터 화면에서 '직박구리'는 간혹 소중한 자료를 보관하는 폴더로 쓰이기도 한다. 

나무 색깔과 닮은 직박구리.
나무 색깔과 닮은 직박구리.

직박구리 울음소리는 멀리서도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다. 그래서 매우 시끄러운 새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근처에 있던 다른 직박구리들도 덩달아 시끄럽게 울어댄다. 다른 새들 울음소리는 감히 따라오기 어려울 정도다. 반면에 생김새로는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나뭇가지 사이에 앉아있을 때는 얼핏 보아선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만큼 평범하단 얘기다. 깃털은 전체적으로 회백색이다. 부리 옆에 연지 곤지 찍은 것 같은 귀깃 색이 보이는데 약간 붉은 색을 띤다. 밤색에 가깝게 보일 때도 있다. 날아가는 모양은 마치 파도 타는 것처럼 솟아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는데, 솟아오를 때는 날개를 몸쪽에 붙인다.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약간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직박구리는 '조류 먹방'계의 달인이다. 거의 못 먹는 음식이 없을 정도다. 별의별 걸 다 먹는다. 봄에는 진달래 꽃잎, 벚꽃잎, 매실나무 꽃잎을 좋아한다. 파릇파릇 솟아나는 채소를 뜯어 먹기도 해서 농민들에게 미움받는 새이기도 하다. 비닐하우스에 있는 딸기를 훔쳐먹다 주인한테 들켜 죽임을 당하는 직박구리들도 있다. 꽃잎도 먹고 꿀도 따먹는 모양이다. 연초록으로 돋아나는 새싹도 좋아한다. 꽃잎이나 나뭇잎을 따서 휙 돌려먹는 모습도 보인다. 목련 꽃잎처럼 큰 꽃잎은 여러 조각으로 쪼개서 먹기도 한다. 동백꽃을 좋아하는 직박구리도 종종 관찰할 수 있다.

입술과 얼굴에 꽃술 가루를 잔뜩 묻혀 '섹시'하기까지 하다. 꽃잎을 빼앗기는 식물 입장에서는 별로 좋지 않겠지만 암술과 수술을 수정시켜주는 역할로는 참 고마운 새가 되기도 한다. 직박구리가 좋아하는 나무 종류와 열매는 무려 53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꽃도 좋아하지만 주로 열매를 따 먹는다. 여름에는 주로 벌레를 잡아먹는다. 이때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뭇잎 사이로 부지런히 오가는 직박구리를 볼 수 있다. 말매미, 산왕거미, 장수말벌까지 잡아먹는다. 곤충들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처지에서 보면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존재다. 가을이 되면 들로, 산으로 온갖 열매를 찾아다닌다. 제일 좋아하는 열매는 감인듯하다. 빨갛게 감이 익어가는 감나무에는 반드시 직박구리가 찾아온다. 사람 손이 모자라 따지 않고 감나무에 그대로 매달려 있는 감은 직박구리에게 가을에서 겨울까지 훌륭한 간식거리가 된다. 잘 익은 감은 까치도 좋아하지만 직박구리는 더 좋아한다. 

벚꽃잎을 따먹는 직박구리.
벚꽃잎을 따먹는 직박구리.

 

'옛 마을을 지나며' / 김남주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김남주 시인의 시에 나오는 주인공 까치를 직박구리로 살짝 바꿔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직박구리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종종 출연하는 새다. 아파트 정원에서 발견된 새끼를 주워와 돌봐주고 있는데 어미 새가 나타나 먹이를 물어다 주는 사연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새장 안에 갇혀있는 새끼 새를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는 어미 새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실제로 직박구리는 다른 새들에 비해 이소가 빠른 편이다. 그래서 더욱 길바닥이나 나뭇가지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새끼 새가 많다고 한다. 그런 새끼 새를 발견했을 때는 다른 장소로 옮기지 말고 그대로 놔두는 것이 부모 새나 새끼 새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어미 새와 아기 새는 끊임없이 소리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인데 자칫 잘못 판단하면 졸지에 이산가족 만들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몇 년 전 학교 화단에 있는 스트로브잣나무 가지 사이에 직박구리가 둥지를 튼 적이 있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그냥 무심하게 지나쳤는데 그 틈에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라 드디어 이소하는 날이 다가왔다. 우리가 학교 화단에 있는 직박구리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부모 새는 근처 숲으로 새끼들을 유인하며 쉴새 없이 먹이를 물어오고 있었다. 새끼 새는 모두 다섯 마리. 과연 무사히 숲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첫 비행에 나선 직박구리 새끼는 정신없이 교실 유리창에 부딪히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난 후 몇 번이나 눈을 꿈벅거리던 첫째는 나뭇잎 사이로 황급히 몸을 숨겼다. 하늘에는 황조롱이가, 땅에는 고양이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화단과 숲 사이에 있는 학교 건물 모퉁이까지 나가는 데만 한나절이 걸렸다. 어쨌든 한나절 동안은 엄마와 아빠 도움으로 무사히 이소가 잘 진행되고 있었다.

엄마를 기다리는 직박구리.
엄마를 기다리는 직박구리.

문제는 오후쯤에 발생했다. 발육이 다소 더딘듯한 막내는 여러 번에 걸친 부모 새의 재촉에도 미쳐 모퉁이를 돌아서지 못하고 있었다. 모퉁이 아래에는 오전 나절부터 배고픈 고양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목이 터질 듯이 아기 새를 부르지만 고양이에게는 오히려 잡아먹을 새가 있다는 신호처럼 들린다. 이날 결국 고양이는 '특식' 먹는 기회를 잡고 말았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미처 대처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새끼 직박구리 깃털은 나중에 근처에 주차해 있던 트럭 밑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직박구리 죽음은 고양이 같은 천적 입안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 곳곳에 있는 유리창 아래서 더 많이 목격할 수 있다. 학교 유리창, 아파트 유리창 체육관 유리창, 각종 공공기관 유리창 그리고 도로에 있는 방음벽에서다. 유리창이나 방음벽에 부딪혀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는 직박구리들 죽음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의 배려뿐이다.

 

'직박구리의 죽음' /류시화

 

오늘 나는 인간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가령 옆집에 사는 다운증후군 아이는 인간으로서

어떤 결격사유가 있는가

그날은 그해의 가장 추운 날이었다

겨울이었고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밖으로 나가 보니

그 아이가 서 있었다

죽은 새 한마리를 손에 들고

 

늘 집에 갇혀 지내는 아이가 어디서

직박구리를 발견했는지는 모른다

새는 이미 굳어 있었고 얼어 있었다

아이는 어눌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뜰에다 새를 묻어 달라고

자기 집에는 그럴 만한 장소가 없다고

그리고 아이는 떠났다 경직된

새와 나를 남겨두고 독백처럼

눈발이 날리고

아무리 작은 새라도 언 땅을

파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흰 서리가

땅속까지 파고들어 가 있었다

호미가 돌을 쳐도 불꽃이 일지 않았다

 

아이가 돌아온 것은 그때였다

다시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아이는 신발 한 짝을 내밀며 말했다

새가 춥지 않도록 그 안에 넣어서 묻어달라고

한쪽 신발만 신은 채로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을 하고서

새를 묻기도 전에 눈이 쌓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인가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인가

무표정에 갇힌 격렬함

불완전함 속의 완전함

너무 오래 쓰고 있어서 진짜 얼굴이 되어 버린 가면

혹은 날개가 아닌 팔이라서 날 수 없으나

껴안을 수 있음

 

류시화 시인의 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에 나오는 '직박구리의 죽음'이란 시다. 아마도 시에 나오는 직박구리는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듯 보인다. 새를 위한 조그만 배려가 필요한 까닭을 시로 옮겨 놓은 듯하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본다.

목욕하는 직박구리.
목욕하는 직박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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