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규제 쓸데없는 짓"
기자 사명감·윤리의식 중요
수용자·매체 지지 뒷받침돼야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받은 세련된 인상은 자동차 때문일 듯합니다. 프랑스·독일·영국은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을 보유한 국가입니다. 하지만, 정작 파리와 베를린, 런던 도로를 메운 대부분 차는 작고 외관이 초라합니다. 반면 브뤼셀 거리에서는 훨씬 크고 깔끔한 유명 고급차와 쉽게 마주칩니다. 유럽연합(EU)·북대서양조약기구(NATO)·서유럽연합(WEU)·세계관세기구(WCO) 등 국제기구가 몰려 있는 이곳은 유럽연합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심장입니다. 높은 소득 수준은 도로에서도 드러납니다. 국제기자연맹(IFJ·International Federation of Journalists)도 이곳에 있습니다.

◇가짜 뉴스 규제? = 가짜 뉴스(fake news)는 거짓으로만 채운 뉴스가 아닙니다. 아주 작은 사실을 걸친 뉴스입니다. 하찮은 사실이 거대한 왜곡으로 이어지면서 가짜 뉴스 부작용은 몸집을 불립니다.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만만찮으며 그 힘은 기술 발전과 비례합니다. 최근 한국에서 가짜 뉴스 규제가 논란이 됐습니다. 이 고민에 안토니(Anthony Bellanger) IFJ 사무총장 대답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는 규제 시도 자체를 '쓸데없는 짓'으로 규정했습니다.

"가짜 뉴스는 세상이 생긴 이래 늘 있었던 것이다. 그 기원은 성경(Bible) 아닌가? 새로운 규제를 만든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고 만들더라도 법망을 빠져나갈 방법이 훨씬 많이 생길 것이다. 뉴스 자체를 없애겠다면 모를까 가짜 뉴스를 막을 길은 없다. 교육을 잘 받은 기자, 더 윤리적인 기자가 가짜 뉴스를 이겨내야 한다."

선언적인 답변 같습니다만 규제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에는 동의합니다. 어설픈 규제는 가짜 뉴스를 견제하기는커녕 권력을 향한 감시와 비판을 틀어막는 수단으로 변질할 수 있습니다. 정작 저널리즘은 규제 안에 갇히고 가짜 뉴스는 규제 밖에서 활보할 것입니다. 가짜 뉴스를 이겨내야 할 더 명민하고 윤리적인 저널리스트가 버틸 기반은 갈수록 비좁고 허약해집니다.

▲ (왼쪽부터) 안토니(Amthony Bellanger) IFJ 사무총장과 제레미(Jeremy Dear) 부사무총장, 오정훈 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이승환 기자
▲ (왼쪽부터) 안토니(Amthony Bellanger) IFJ 사무총장과 제레미(Jeremy Dear) 부사무총장, 오정훈 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이승환 기자

◇인내와 연대 그리고 반격 = 한국 뉴스 수용자는 유럽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이며 능동적입니다. 매체가 정돈된 뉴스를 노출하기 전에 정보를 접하고 판별하며 유포합니다. 뉴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거친 논쟁을 마다치 않습니다.

정보 회전 속도가 빠른 만큼 뉴스 수용과 폐기 주기도 짧습니다. 잘 갖춘 통신 환경은 이런 성향을 더욱 부추깁니다. 뉴스를 비롯해 각종 콘텐츠를 생산하는 주체에게 매력적인 소비 시장입니다. 그 매력은 가짜 뉴스 생산자와 이를 악용하는 세력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널리즘에서 시작한 고민은 가짜 뉴스와 맞서는 현실로 돌아옵니다. 지역신문을 포함해 기존 미디어는 가짜 뉴스와 싸울 자질이나 실력을 갖췄을까? 가짜 뉴스가 쏟아내는 자극적인 수사에 수용자가 현혹되지 않으면서 정돈된 보도를 기다릴 만큼 신뢰를 쌓았을까? 지역신문 생존과 가짜 뉴스를 이겨내는 방법은 저널리즘 성취에서 만납니다.

10월 5일 오후 9시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을 탔습니다. 이튿날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입니다. 4시 30분 부산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면 5시간 뒤 집에 도착합니다. 버스 안에서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옛 복싱 경기 영상을 봤습니다. 24세 무적 챔피언 포먼과 32세 한물간 챔피언 알리가 펼친 1974년 시합입니다. 'The Rumble in the Jungle'이라는 부제로 역사에 남은 명경기입니다. 포먼이 뻗는 살인적인 주먹을 처절하게 온몸으로 받아내던 알리는 8라운드 제 풀에 지친 포먼을 정확히 가격해 시합을 끝냅니다. 많이 봤던 시합인데 그날따라 유난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엄혹한 미디어 시장과 수용자 외면, 포털과 거대 매체 횡포에 넘치는 가짜 뉴스까지. 지역신문 처지에서는 포먼이 휘두르는 주먹만큼 무섭고 아픈 현실입니다. 과연 지역신문은 알리처럼 두려움에 맞설 용기가 있는지, 주먹을 흘리는 유연함과 버티는 맷집을 갖췄는지, 기회가 왔을 때 반격할 실력은 있는지 되돌아봅니다.

저널리즘을 지키는 싸움판에는 당연히 용기 있는 저널리스트가 나서야 합니다. 저널리스트 열정을 사회 발전 동력으로 전환할 줄 아는 사명감 있고 냉정하며 든든한 매체도 절실합니다. 불리한 싸움을 버티게끔 지지하는 뉴스 수용자가 없다면 이 싸움은 결코 길게 갈 수 없습니다. 우리 무기는 쏟아지는 거짓에 현혹되지 않고 진실에 다가서려는 인내입니다. 그 고단한 작업을 기꺼이 함께 버텨내는 저널리스트와 수용자 사이 연대입니다. 부조리를 향한 유쾌하고 통쾌한 반격을 상상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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