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선(51)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지난 2012~2013년 치열하게 전개됐던 밀양 송전탑 투쟁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당시 마을주민과 함께 온몸을 던져 송전탑 건설을 강행하는 공권력에 맞섰다. 민주당 소속 밀양시의원 등으로 활동하다 국민의당·민주평화당 당원 및 당직자로 정치인생이 바뀌게 된 배경에도 밀양 송전탑 투쟁이 있었다.

중학교 윤리 선생님을 도운 인연으로 시작한 정치

Q. 부산 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밀양으로 온 것은 언제, 어떤 계기고,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1968년 부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전근하면서 밀양으로 왔습니다. 돌아보니 초등학교만 총 6곳을 다녔어요. 부산에서 공단이 커지고 인구가 많아지면서 여러 곳을 옮겨 다녀야 했거든요. 밀양에서는 사포초와 밀주초를 나왔고 밀양여중, 밀성여상을 졸업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공부는 꿈도 못 꿨습니다. 대학은 아예 지원도 못했구요. 사춘기 때 많이 힘들었죠. 밀성여상 3학년 때는 신발, 고무 만드는 국제그룹 공장에서 실습을 했는데 노동자들이 한창 농성하고 그러던 때였습니다. 거기서 퇴직금 받아 동생 학교 등록금을 내주기도 했구요. 지난 2009년에 방송통신대에 지원해 뒤늦게 대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아직 졸업은 못했네요."

Q. 과거 인터뷰를 보니 어릴 때부터 정치와 인연을 맺었던데요. 

"중학교 국민윤리 선생님이 평화민주당 밀양지역위원장 활동을 했어요. 1987년 대통령선거 때였는데, 제가 중학교 때 방송반, 웅변 활동을 해서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마침 아버지와도 알고 지내는 분이었어요. 아버지도 진보 성향이었는데 도와주라고 하시더군요. 그 인연으로 대선도 함께 치르고 이후 지구당 상근자로 일했습니다. 지금 일하는 곳도 민주평화당인데 그때 그 정신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셈이죠. 그때 또 신문사 기자를 하던 지금의 남편(박종범 씨)도 만났습니다. 기자를 그만두고 같은 지구당에서 함께 일했죠."

경제적 어려움에 쉽지 않았던 정치

Q. 당시 남편께서 선거 출마도 한 것으로 압니다. 보수 일색의 지역에서 야당 정치 활동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남편이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할 때 경남도의원에 출마했죠. 내조를 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렇게 4남매 맏며느리에 1년에 7번 제사를 하는 집에 들어가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정치가 쉽지 않았죠. 여당은 합동유세를 하면 차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데 우리는 꿈도 못 꿨죠. 정치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1997년에 지금의 빨래방 같은 프랜차이즈 세탁사업을 시작했고 나름 잘됐어요. 그런데 IMF 위기가 오고 보증을 잘못 서 채무를 떠안게 되면서 정말 어려워졌습니다. 가진 게 14만 원밖에 없었는데 친구한테 200만 원 빌려서 대구로 넘어와 온갖 일을 했습니다. 마트 점원, 청소, 식당, 생선 노점 안한 게 없습니다. 그러다 부산으로 와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조금 형편이 나아졌습니다."

Q. 정치는 아예 생각도 못했겠습니다.

"멀어졌죠. 1997년 김대중, 2002년 노무현 정권이 탄생하면서 뭔가 역할을 할 수 있었는데 형편이 안되니 꿈도 못 꿨죠. 선거 때 조금씩 돕기는 했지만 별 기여를 못했거든요. 마음만 조급해졌습니다. 정치를 해야 하는데, 국회의원도 도전해야 하는데 안 좋은 일이 계속 겹쳤어요. 어머니와 시어른도 돌아가시고 동생도 아프고. 그런 상황이 2008년, 2009년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더 늦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2010년 다시 도전을 하죠. 남편은 경남도의원에, 저는 밀양시의원(비례)에. 남편은 떨어질 줄 알았지만 2012년 대선을 위해 미리 준비를 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정권교체에 실패했지만요."

Q. 문대변인은 민주당 소속으로 밀양시의원(2010~2014년) 등을 지내며 밀양 송전탑 투쟁에 적극 나섰던 정치인으로 많은 사람이 기억합니다. 당시 싸우다 다치기도 한 것으로 아는데 왜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나요?

"당시 12명의 밀양시의원 중에 11명이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소속이었고 저 혼자만 민주당이었습니다. 그래서 송전탑 관련 민원인들이 저를 찾아왔고 자연히 주민과 연대를 통해 싸움에 함께하게 됐죠. 모든 게 불합리했습니다. 예비전력이 30~40%나 있으면서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게 그랬고 부산 기장군(고리원전)에서 수도권으로 직진해 가면 굳이 밀양을 거칠 이유가 없는데 대구를 피하려고 밀양을 통과하는 데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송전탑 하나에 20~30억 원이 든다는데 밀양 통과로 10개가 추가되며 그 수백억 원이 누군가 입에 들어가는 불합리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송전탑을 저지하려고 새벽에도 현장을 지키며 헬기에 몸을 묶고 산위에서 구르고 쓰러지고 극한 상황이 계속됐습니다. 저 역시 어깨 힘줄이 찢어지면서 지금까지도 고생을 하고 있죠. 그래도 그때 민주당 최고위원이었던 조배숙 현 민주평화당 의원과 인연이 돼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Q. 민주평화당에 몸담게 된 계기가 송전탑 투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군요. 

"정치권 도움이 필요하니까 조배숙 의원께 연락을 드렸어요. 그래서 산업자원부 장관 등과도 연결됐는데 모두 전혀 모르고 있던 거예요. 결국 조 의원 통해서 국회 제도개선위원회도 만들어지고 상당한 진전이 있었죠. 여러 의원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가장 적극적으로 도와준 분이 조 의원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실망한 것도 그 즈음이었습니다. 2012년 대선에 나온 문 후보에게 '참여정부 시절 왜 송전탑 노선이 밀양을 거치는 것으로 바뀌었냐'고 물어보니 '그게 최선이었다'고 하는 거예요. 불합리하면 수정하겠다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의지를 보였다면 문 후보와 함께 호흡했을 텐데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Q. 2014년 지방선거에서 밀양시의원(라 선거구) 낙선 후 행보가 궁금합니다. 원래 민주당 소속이었는데 어떤 계기와 경로로 민주평화당에 오게 된 건가요?

"지역구 활동을 너무 못했어요. 송전탑 투쟁 지역과는 달랐거든요. 저 혼자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시의원이다 보니 한 지역구가 아니라 밀양 지역 전체를 책임져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2014년 지방선거 때 기대보다 많은 표(13.9%)를 주셨어요. 그해 6월 선거 떨어지고 바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있었는데 그때 손학규 현 바른미래당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후보로 수원지역 선거에 나왔어요. 손 대표는 밀양 송전탑 투쟁 현장에 온 유일한 민주당 대선 후보였습니다. 이런 지도자라면 제 모든 걸 다 바쳐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치란 아픈 곳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에 가장 부합하는 정치인이었어요. 자연히 손 대표, 그리고 조배숙 의원 등을 따라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후 국민의당으로 가게 됐습니다. 손 대표가 지금은 바른미래당에 있는데 당시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바른정당 세력과 국민의당이 함께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손 대표는 당시 아무런 입장이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어쨌든 저는 합당에 반대했고 민주평화당과 함께하게 됐습니다."

▲ 지난 8월 19일 국회에서 당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비판 논평을 발표하고 있는 문정선 대변인.
▲ 지난 8월 19일 국회에서 당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비판 논평을 발표하고 있는 문정선 대변인.

낮은 당 지지율, 올라갈 희망이 있다고 생각

Q. 얼마 전 10명의 의원이 집단 탈당하는 등 민주평화당 상황이 대단히 안 좋은데요. 앞으로 어떤 길을 모색하게 되나요?

"양쪽 다 명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당 지지율이 낮고 하니까 호남에만 매이지 않고 더 넓게 가야 한다는 분들, 그래도 우리는 호남정신을 기본으로 가야 한다는 분들. 아무리 부모가 못나고 가난해도 현실을 인정하고 집안 식구들 챙기는 자세가 맞다고 보는데 그걸 부인하는 모습으로 보여 안타까웠어요. 더 노력해봤으면 좋겠는데. 이게 단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솥밥 먹던 식구들인데 함께 잘되길, 함께 살아남길 바라고 있어요. 다음 대선에서 진보진영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또 만나야 하니까요. 이미 두 갈래로 나뉘었지만 서로 애쓴다 격려하고 최선을 다해 인재 영입하고 그러는 게 맞다고 봐요. 지금 지지율이 바닥인데 올라갈 일만 남지 않았을까요. 희망이 있습니다. 원래 제가 낙천적이기도 합니다. 포기할 건 빨리 포기하고 기회가 있으면 죽기 살기로 해보고." 

Q. 민주평화당은 경남에도 너무 세가 없습니다.  

"제 DNA가 원래 약한 쪽으로 기우나 봐요. 2017년 대선 때도 그렇고 민주당 경남도당 쪽에서 계속 러브콜이 있었는데 국민의당·민주평화당에 제가 존경하는 분들이 있고 갈 수는 없었어요. 전 원래 가진 게 없어서인지, 그런 삶을 살아서인지 어려워도 어렵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파스칼이 이런 말을 했어요. '힘없는 정의는 도움이 안 된다. 정의 없는 힘은 폭군적이다. 우리는 정의로운 것을 힘세게 만들 수 없어 힘센 것을 정의로운 것으로 삼아왔다'고. 송전탑 투쟁에서도 배웠지만 힘 있는 곳에만 붙어 살 수는 없잖아요. 힘이 없어도 정의로움을 고민하고 그 길로 가자고 다짐해왔죠. 지금은 힘이 약한 정당이긴 하나 정의로운 것이면 지켜야 하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밀양을 문화·역사의 도시로 만들고 싶은 꿈

Q. 내년 총선 출마 계획은 있나요?

"계란으로 바위치기지만 준비해야죠. 제가 민주평화당 경남도당 창당준비위원장도 맡고 있습니다. 지역구뿐 아니라 비례도 고민 중입니다. 중앙정치에 대한 꿈이 있어서 지난 2016년 총선 때 국민의당 비례대표 후보 신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당 지지율로는 비례 1번도 당선이 어려울 거 같은데 비례든 지역구든 다 고민해봐야죠. 사실 제 꿈은 총선보다는 밀양시장입니다. 국회의원 등 중앙에서 활동하다가 밀양시장이 되면 지방정치를 더 잘할 거 같아요. 밀양을 문화·역사 도시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는데 단체장으로서 꼭 실현해 보고 싶습니다."

Q. 민주평화당 대변인으로서 논평을 보면 자유한국당뿐 아니라 민주당에도 쓴소리를 많이 던집니다.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이나 '드루킹 사건'에 연루된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논평이 특히 그랬습니다. 민주평화당 하면 민주당과 왠지 가까울 거 같은데 의외였습니다. 

"잘 되길 바라는 것과 잘못된 길 갈 때 따끔하게 이야기하기는 건 다르죠. 도덕성, 형평성에 안 맞는 일, 그렇게 깨진 그릇은 성한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적폐세력인 박근혜·최순실을 비판하면서 그 못지않은 부도덕함을 옹호하며 임명 강행하는 건 잘못된 것이죠. 다 문재인 정부 잘되라고 하는, 성공하기를 바라는 소리입니다. 한국당도 자유로울 수 없죠. 앞으로 여당 하고 싶으면 지금 여당에 협조해야죠. 여야 힘을 합쳐서 국민 위한 일을 해야지 자기 이익, 당리당략에만 매몰되는 건 잘못된 것입니다."

▲ 지난 7월 대구 수성구 주택조합 민원 현장에 참석한 문정선 대변인. 왼쪽은 민주평화당 갑질근절대책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배숙 의원.
▲ 지난 7월 대구 수성구 주택조합 민원 현장에 참석한 문정선 대변인. 왼쪽은 민주평화당 갑질근절대책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배숙 의원.

Q. 지난 4월경부터 최근까지 대변인님 논평이 거의 나오지 않았는데 무슨 사정이 있었나요?

"남편이 많이 아팠어요. 밀양에 혼자 있다 보니 식사도 부실하고 몸을 잘 못 챙겼어요. 몸무게가 많이 빠지고 독감도 걸리고 그랬는데 병원에 가보니 암일 확률이 높다는 거예요. 다행히 암은 아니었는데 기관지, 폐가 안 좋아서 곁에서 돌봐야 했어요. 지금도 월·화만 서울에 있고 나머진 밀양에 있어요. 서울에선 주로 찜질방에서 잡니다. 대선 때도 1주일 내내 찜질방을 이용했죠. 짐을 국회의원실 등에 갖다 놓고 화장실에서 옷 갈아입고 불편함이 많습니다. 여성 정치인들이 특히 힘든데 지방에서 서울 오면 묵을 수 있는 공동 게스트하우스 같은 게 있으면 좋겠어요."

Q. 앞서 밀양시장 등에 대한 꿈을 말하긴 했습니다만 중장기적으로 하고 싶은 일, 삶의 계획이 있나요?

"기회가 주어지면 중앙정치를 통해 여성의 삶, 취약계층의 삶을 바꾸는 데 힘쓰고 싶어요. 밀양시의원 때도 출산 산부인과 지원조례와 서민층 도시가스 지원조례 등을 발의해 통과시켰는데 국회의원이 되어 하고 싶은 취약계층 관련 제도개선안을 책 한 권 분량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훗날 할아버지, 할머니를 돌볼 수 있는 마을도 만들고 싶습니다. 다문화가정이나 탈북자 등까지 돌봄이 필요한 계층이 다 모여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그런 마을이요. 모든 복지가 따로 놀고 있는데 그렇게 함께하면 모두 덜 외로워지고, 갈수록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도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내 노후는 그런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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