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같기도 한데. 알록달록하기도 하고. 도대체 넌 이름이 뭐니?"

'자세히 알면 머리 아플 건데요' "왜 그렇지? 그래도 알고 싶어. 이름도 궁금해!"

산을 오르다 온몸에 땀이 흐르고 지쳐 쉬고 싶을 때 사람들은 대개 앞이 툭 터인 전망 좋은 곳을 찾는다.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작은 바위라도 있으면 금상첨화다. 조그만 그루터기나 바위에 앉아 가방 뒤져 물이며 과일을 찾는다. 급하게 이것저것 주워 먹으며 배고픔 달래고 나면 그때부터 주변 물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도 보이고 풀도 보인다. 나리꽃이 피어있고 저 멀리 원추리꽃도 보인다. 그런데 바위 주변에도 이상야릇한 꽃이 보인다. 바위벽에 꽃같이 예쁜 생물체가 자라고 있다. 이끼는 아닌 것 같은데. 뭘까?

어찌 보면 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이상한 생명체 같기도 한 식물의 정체는 지의류다. 지의류는 지구 전체에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할 정도라고 할 만큼 많이 분포되어 있다. 연구도 덜 된 식물이다. 그러고 보니 자세히 알려고 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의류는 말 그대로 땅지, 옷의. '땅의 옷'이다. 땅뿐만 아니라 바위나 나무 표면에서 무늬처럼 번지며 자란다. 그래서 이끼와 혼동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지의류는 전 세계에 약 2~3만 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약 800여 종이 알려져 있다. 1982년 국제지의학회에서는 지의류를 '안정된 지의체라는 구체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는 균류와 광합성 공생체의 결합'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꾸 읽어봐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튼 이 식물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생명체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흙의 시작, 식물의 시작과 함께해 온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살고 있다. 남극과 북극, 혹독하게 건조한 열대 사막 어디에서나 지의류는 생존해 간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인하고 적응력 강한 생명체라는 말이다.

기와 위의 지의류.
기와 위의 지의류.

지금부터 이 괴상(?)한 생명체의 비밀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본다. 일단 이끼와는 전혀 다른 생명체라는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지의류와 이끼류는 얼핏 보면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 숲속이나 계곡 주변에서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둘 다 '지표를 덮고 있는 작은 식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의류는 조류와 공생생활을 하는 균류이고, 이끼류는 녹색식물에 속한다. 지의류와 이끼류의 차이점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지의류는 회녹색, 주황색, 황색 등 다양한 색깔로 자란다. 반면에 이끼류는 대체로 녹색이거나 녹갈색이다. 지의류는 보통 다년생인데 이끼류는 1년생이거나 다년생인 경우가 많다. 지의류는 잎이 없는데 비해 이끼류는 잎이 있다. 처음에 언급했듯이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지의류 존재를 처음으로 밝혀낸 사람은 식물학자 시벤테너라고 한다. 1867년의 일이다. 시벤테너는 바위 한쪽에 색깔이 있거나 나무 또는 흙 위에 붙어 있는 작은 식물이 사실은 두 개의 식물, 즉 조류와 균류, 곰팡이 사이의 공생자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의류는 생겨날 때부터 공생하면서 마치 하나의 개체처럼 움직인다는 것이다. 서로 돕는 관계를 지닌 덕분에 조류와 균류가 단독으로 살 수 없는 아주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람쥐 주변의 이끼류와 지의류.
다람쥐 주변의 이끼류와 지의류.

우리가 아는 남극은 꽃 피는 식물이 살기 어려울 만큼 혹독한 추위에 놓여있는 곳이다. 남극 전체에서 얼지 않는 곳은 해안에 해당하는 2% 미만의 면적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남극 대륙 전체에 약 200~300종 정도의 지의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극 툰드라 지역에는 땅, 관목, 바위와 같은 모든 장소에 지의류가 존재한다. 북극 툰드라 지역은 지의류가 지배하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순록과 사슴이 살아갈 수 있는 먹이의 대부분이 지의류인 것이다. 특히 겨울에 먹는 순록 먹이의 60%~70%가 사슴지의류와 뿔사슴지의류라고 한다. 다른 동물과 달리 순록은 지의류를 소화시킬 수 있는 장내 미생물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다. 알프스와 히말라야를 비롯한 고산지대는 극단적인 온도 변화, 강렬한 자외선과 바람,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눈 등으로 식물이 살기 힘든 환경이다. 이런 곳에도 지의류는 살아간다. 열대 사막에서도 어김없이 지의류를 볼 수 있다. 아무리 건조한 사막이라도 지의류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10여 년 동안 한 번도 비가 내리지 않는 지역에서도 지의류는 살 수 있다고 한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남극, 북극, 열대 사막 같은 극단의 토양과 기후 조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의류의 비밀은 앞서 언급한 스위스의 시몬 시벤테너라는 학자의 기록을 보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지의류는 간단한 식물은 아니고 그렇다고 일반적인 뜻의 보통 개체로도 볼 수 없다. 지의류는 어느 면으로는 그들 자신과 그들의 주인을 위한 양분을 준비하기 위하여 수십만의 독립적인 개체들이 영원히 종속되어 군체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균류는 다른 생물이 이루어 놓은 것을 취하여 사는 데 익숙한 자낭균 강에 속한다. 균류의 노예는 조류이며, 균류는 조류를 찾아내 단단히 붙잡고는 조류에게 서비스를 강요하는 것이다. 균류는 조류를 거미줄처럼 촘촘한 망사 형태로 둘러싸면서 점점 뚫기 어려운 막으로 변환한다. 거미는 먹이를 빨아 먹고 죽게 내버려 두지만 균류는 자기가 쳐 놓은 망 안에 들어온 조류의 활동을 활발하게 하여 더 빨리 증식하게 한다.' 1869년에 남긴 기록이다.

촛농지의, 꼬마지네지의, 매화나무지의, 과립매화나무지의, 메달지의, 유사메달지의, 하얀지네지의, 검은배지네지의, 기와지의, 흰점지의, 산로젯트지의, 유사돌기흰점지의, 돌기돌김지의, 비늘나무지의, 산나무지의, 밤색국화잎지의, 별숲검정혹지의, 분말뿔사슴지의, 작은혹닭살지의. 생긴 모양도 특이하지만 이름은 더 특이하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그래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지의류들이다. 대체로 나무 둥치나 바위 위에 있는 지의류들이다. 오래된 바위 부근, 노거수로 불리는 수령이 오래된 나무, 무덤 주변 석물, 절에 있는 탑이나 석등, 주춧돌 같은 석조 건축물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노거수에 붙어있는 지의류.
노거수에 붙어있는 지의류.

강한 항암 성분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송라와 석이도 지의류에 속하는 식물이다. 지의류는 예로부터 일상생활에 다양한 용도로 쓰였고 지금도 이용되고 있다. 최근 들어 특히 생물자원으로서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지의류가 생산하는 2차 대사 산물들이 항암, 항바이러스, 항균, 면역조절, 미백, 항산화, 식물생장억제와 같은데 쓰일 수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새로운 약품 개발, 천연물을 이용한 화장품, 건강식품, 농약 개발 소재로도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의류는 오염에 약해서 산업단지나 도시의 대기오염 지표 생물로 활용되기도 한다. 지의류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살고, 수명이 길며 환경으로부터 여러 물질을 축적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지표생물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아황산가스, 불소, 암모니아 농도 같은 공기의 질 측정, 중금속 오염 정도, 숲의 보존 상태 등을 모니터링하는데 지의류가 이용되기도 한다. 스모그 현상이 지속 되면 지의류가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연구도 있다. 최근 들어 미세먼지 농도 증가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기도 하는데 이때 지의류 속에 축적된 중금속 농도를 분석하면 그 중금속이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또 얼마나 멀리까지 확산 되는지를 측정해 볼 수도 있으며 숲의 건강 정도를 파악해 볼 수 있는 척도로도 이용되고 있다.

지의류는 대체로 아주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자라는 생명체로 알려져 있지만 도시 지역에서도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숲이 우거진 공원, 벽돌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의 벽, 기와지붕 등에서 자라는 지의류도 있다. 서양의 경우는 교회 묘지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소금기가 있는 바위 해안에서 자라는 지의류도 있고, 해초와 따개비 위에서 자라는 지의류도 있는데 모두 좋지 않은 환경, 극한의 환경을 견딜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수령이 아주 오래된 큰 나무의 경우에는 30종 이상의 지의류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오래된 숲일 경우 지의류의 다양성이 더 높게 나타나게 된다. 식물의 다양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 열대우림과 남반구의 우림에서 더욱 다양한 지의류를 만나 볼 수 있다.

합천 영암사터에 가면 가릉빈가가 새겨진 금당터 돌난간, 쌍사자 석등 그리고 삼층석탑을 만날 수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서도 다양한 지의류를 관찰할 수 있다. 돌 위에 켜켜이 쌓여 있는 세월의 흔적. 다양한 무늬의 지의류가 없었다면 우리가 느끼는 옛 절터의 고즈넉함이 반감될지도 모를 일이다. 수백 년 세월 마을, 동네 지키며 살아온 느티나무와 팽나무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지의류를 만날 수 있다. 지의류는 수명이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수천 년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돌과 나무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이 지의류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뿐만 아니라 지의류들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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