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인간 존엄성 기반 '신체 억제 폐지' 선언 실천
일본보다 앞서는 노인의료 서비스·시스템 구축 위해 헌신
병원시스템 모두 '환자 중심'…노인의료 새로운 지평 열어

"희연(喜緣)의 철학을 공유하며 힘들어도 지치지 않고 묵묵하게 함께 걸어온 의사, 간호사, 치료사 등 모든 의료진과 함께 이 영광을 나누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의료계 사상 처음으로 '국가품질명예명장'을 획득, 명장(名匠) 반열에 오른 한국만성기의료협회 김덕진(68·창원 희연병원 이사장) 회장의 소감이다. 국가품질명예명장은 산업통상자원부 소관 사단법인 한국품질명장협회가 10년 이상 산업 현장에서 근무하고 품질분임조 활동경력 5년 이상인 장인(匠人) 가운데 엄격한 심사를 거쳐 증서를 수여 한다. 정부로부터 '노인의료 명장'임을 인증받은 김 회장의 남다른 철학은 그의 집무실에서 엿볼 수 있다. 집무실 벽에 걸린 액자를 가리키며 "액자의 글씨가 혼(魂)입니다. 혼을 다 바쳐 노인의료에 정성을 다하고 있는지 매일 자문자답(自問自答) 합니다. 아직 진행형입니다. 노인의료 분야에서 희연병원 시스템이 일본보다 앞서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김 회장의 순탄치 않았던 삶의 발자취와 집념에서 오늘의 희연을 들여다 보았다.

김덕진 창원 희연병원 이사장.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김덕진 창원 희연병원 이사장.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희연정신은 '환자 중심·환자 우선'

의료법인 희연의료재단이 운영하는 창원시 반지동 소재 희연병원은 노인의료와 재활치료 분야에 특화된 병원으로 국내 요양병원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희연병원의 의료 시스템을 배우고자 국내·외 학계와 의료계, 공공기관, 시민단체 관계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연간 희연병원 견학 프로그램에 다녀간 인원수만 1400여 명에 달한다. 지난 2011년 국내 병원 중 최초로 환자의 손과 발을 묶지 않는 '신체구속 폐지' 선언, 단 한 건의 욕창 발생도 허용하지 않는 간호, 365일 단 하루도 쉬지 않는 재활 프로그램 운영은 희연병원만의 특화된 의료서비스다.

'환자의 자유로운 행동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모든 행위'를 신체구속으로 정의한 김 회장은 의료진의 편의를 위해 환자를 억제하는 행위를 철저히 차단했다. 손과 발을 끈으로 묶거나, 벙어리 장갑 착용, 휠체어 낙상 예방 명분 안전띠 착용, 우주복 착용 등의 행위는 '인간 존엄성'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으며 치료 효과 반감, 심폐기능 저하 등의 원인이 된다고 판단했다.

또 입원환자 욕창 발생은 의료사고 수준이라는 심각성을 의료진에게 강조했다. '욕창 발생은 간호사의 수치'라는 다소 과감한 구호 아래 의사를 비롯한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영양사, 치위생사, 사회복지사가 팀을 이뤄 환자의 상태를 빠짐없이 공유하도록 했다. 환자 상태에 따라 제공되는 끼니마다 32가지 식단을 통해 영양상태를 개선하고, 원내 전체 방송을 통한 정확한 시간, 정확한 체위 변경, 잦은 라운딩으로 욕창 발생 가능성을 초기에 차단하고 있다.

재활 프로그램도 희연병원만의 특화된 서비스로 완성해가고 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 4명을 비롯해 물리·작업치료사 160여 명이 상근하며 6대의 재활로봇과 함께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지원하며 일상으로 조기 복귀를 지원하고자 휴일 없는 365일 재활치료를 해오고 있다. 이 같은 전문 재활치료를 받은 환자의 자택 복귀율은 84.7%, 평균 재원일수는 57일로 획기적인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에는 근골격계 질환자를 위한 의료형 피트니스센터인 '파워 리허빌리테이션 센터'까지 운영 중이다.

이처럼 △신체구속 폐지 △욕창 발생 제로 △365일 재활치료는 모두 환자의 조기 퇴원을 목표한 희연병원만의 가치에서 비롯됐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환자의 퇴원 관리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의사, 간호사, 치료사, 영양사 등 담당 스태프 전원과 환자, 보호자가 참여해 입원 때부터 퇴원 계획을 세우는 '패밀리 콘퍼런스'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환자가 퇴원 이후에도 필요한 각종 복지서비스를 지역사회와 연계해 제공하는 의료·복지 복합체인 지역연계실, 커뮤니티 케어, 재활환자 주택 개·보수 사업 등 정부정책을 5~10년 앞서 실행하고 있다. 또 요양원, 주간보호, 방문간호, 요양, 목욕 서비스 등 장기요양보험으로 연계하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이 같은 희연만의 차별화된 의료서비스는 '환자 중심'이라는 희연정신에서 비롯됐다. 환자 신체구속 폐지 선언이 나올 때까지 내부적 반발이 적지 않았다. 한 병동에 근무하는 간호사가 모두 그만두겠다는 무언의 압력이 계속됐다. 실제로 병실 운영에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많은 숫자의 의료진 집단퇴사로 위기를 맞은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김 회장은 '환자 중심'이라는 자신의 원칙에서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았다. 대신 동종 병원보다 많은 급여와 복지 혜택으로 의료진의 수고를 보상했다. 실제로 희연병원 간호사의 급여는 동종업계 최고 수준을 넘어서 종합병원보다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김 회장의 노력에서 탄생한 것이 '욕창 발생은 간호사의 수치이며, 환자의 손과 발을 묶는 것은 그의 인생을 묶는 것입니다. 기억은 잃어버려도 인생을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다'는 희연 간호철학이다.

 

실패는 있었지만 포기는 없었다

'노인의료 명장(名匠)'이라는 훈장은 좌절하지 않고 실패를 딛고 일어선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회장은 병원계 입문 11년 만인 1992년 대한민국 1호 노인병원인 '부곡노인전문병원'을 고향 남지와 가까운 창녕 부곡에 개원했다. 개원 초기만 해도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듯했다. 일본을 오가며 배운 지식과 노인의료에 대한 성공 자신감도 넘쳤다. 그러나 노인병원에 대한 나쁜 인식, 현대판 고려장처럼 여겼던 당시 사회 분위기에 병원을 찾는 이가 없어 결국 부도로 문을 닫았다. 거침없이 앞만 보고 내달리던 김 회장은 난생처음 실패라는 쓰라림을 몸소 경험하게 된다. 세상과 단절하며 삶의 끈을 놓으려는 어리석은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부인과 가족이 없었다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60억 원에 달하는 빚이 있었지만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반드시 재기하겠다는 굳은 마음과 노인의료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으로 1996년 창원 반지동 주택가 2층에 월세를 얻어 직원 5명과 함께 '노인의원'을 열었다.

김 회장은 실패의 경험을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여겼다. 재기의 나날은 생각만큼 순탄치 않았다. 환자보다 많은 채권자의 방문에 노인의원의 문턱이 닳았지만 그는 피하지 않았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어머니는 그를 위해 토지 보상금을 선뜻 내주셨고 이것이 본격적인 재기의 발판이 되었다. 29개 병상으로 규모를 늘린 후 5년 만에 사옥을 마련했고 이듬해 '희연병원'으로 병원 이름도 바꾸었다. 60억 원의 빚을 갚고자 다시 시작한 노인의원은 희연병원을 중심으로 창녕군노인전문요양원, 커뮤니티 케어센터, 방문 요양, 직장 어린이집 등 모두 10개 기관으로 10년 전 연매출 100억 원가량에서 약 350억을 기록하고, 2018년 현재 희연병원은 7개 진료과목에 전문의 9명을 포함 의사 14명 전 직원 380명에 498개 병상을 갖춘 희연병원으로 성장했고, 전체 종사자는 650여 명이 상근하고 있다.

"희연병원의 역사에는 결정적인 터닝포인트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 고쿠라리하빌리테이션 하마무라 원장과의 만남입니다. 우리나라보다 30년 앞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노인 의료분야에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죠. 하마무라 원장이 그 노하우에 이념과 철학을 더해서 함께 가자고 했어요. 돈보다는 인간의 존엄성이 먼저라는 희연병원의 정신도 그때 만들어졌습니다." 

일본 출장을 다니며 사귄 하마무라 원장은 김 원장의 노인의료 동반자이자 스승 같은 존재로 국경을 넘어 우정을 쌓고 있다. 하마무라 원장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희연병원 내 다목적 홀 이름을 '하마무라홀'이라고 명명했다. 노인의료 분야에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에서 철학과 실력을 겸비한 그의 의료서비스는 하마무라 원장을 만나 더욱 빛을 발한 것이다.

▲김덕진 창원 희연병원 이사장.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김덕진 창원 희연병원 이사장.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일본을 능가하는 노인의료 실현

UN은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 '고령 사회', 20% 이상 '초고령 사회'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00년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는 2018년 '고령 사회'를 거쳐 2025년이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예정이다. 평균 수명 연장과 의학 발달로 말미암은 노인인구의 급속한 증가는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대책 마련 또한 시급한 실정이다. 누구보다 일찍 이 같은 결과를 예측한 김 회장은 노인의료의 성공 가능성과 그 결과를 도출해낸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늘 '노인의료 선구자', '노인의료 산증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드디어 '노인의료 명장' 인증까지 받았다. 이 같은 성공 신화를 공유하고자 책을 펴냈다. 의료 실무 종사자라면 반드시 체득해야 할 인간 존엄성 존중을 위한 <신체구속 제로를 창조한다>, <인지증 케어 비결>, <욕창 랩 요법> 등 일본 저서를 한역판으로 발간, 보급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또 2010년 대한요양병원협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요양병원 실무 지침서>를 발간해 우리나라 노인의료의 질적 재고를 견인한 바 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보다 30년 먼저 노인의료에 대해 이해와 투자를 아끼지 않은 일본의 사례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데 혼신을 다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의 산물이 희연병원의 성공으로 이어진 것으로 믿고 이를 확산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배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공부만이 살길이다'는 신조로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한국형 노인의료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2002년부터 연인원 1900여 명의 국내 의료 관계자를 인솔해 일본의 선진 의료기관을 방문해 그들의 의료 시스템을 배우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의 하나로 일본, 중국, 한국 3개국이 가맹된 아시아만성기의료협회의 한국 지부인 한국만성기의료협회를 창립, 운영하고 있다.

이미 희연병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욕창발생 제로와 같은 시스템은 일본보다 선진화된 제도라고 밝힌 김 회장은 일본을 능가하는 노인의료 실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도 급성기, 회복기, 만성기라는 시스템이 제도화되고 있다. 양질의 만성기 의료가 조성되지 않으면 한국의 의료가 완성되지 않는 시기에 도달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에 대비, 의료· 복지분야 연계 체계가 매우 중요해지는 만큼 의료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한 노인의료 국가품질명예명장의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덕진 이사장은 누구인가

1952년 창녕 남지 출신으로 경영학을 전공한 후, 1982년 형(창원 한서병원 이사장)의 권유로 의료계에 입문해 연세대 의료복지 고위과정과 부산대 의료 최고위자과정을 수료했다. 경남원우회장,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 회장, 보건복지부 장기요양원회 위원, 대한병원협회 정책이사 등을 역임했다. 1992년 우리나라 노인전문병원 1호를 개설해 실패한 후 재기를 통해 현재는 한국만성기의료협회장과 아시아만성기의료협회 부이사장, 신체억제폐지 한국추진위원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노인의료 분야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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