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리

“나야 뭐 애정 결핍 중년을 배려하는 뜻에서 가까이 다가가려 했을 뿐이야. 그런데 저 손놀림에 조금이라도 걸리면 여지없이 나를 번쩍 들어 책상 아래로 내려놓더라고. 작업에 방해가 된다나? 미숙한 아빠 양반이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각자 자유를 보장한다는 소신을 고양이에게도 적용할 줄 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야. 그렇게 합의한 선이 이 정도지. 모든 관계에서 선을 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감각이 중요하다는 거 정도는 우리 바닥에서 기본이거든. 아빠 양반이 성숙한 고양이를 대할 때와 달리 미성숙한 인간관계에서 그 거리를 잘 잡아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지. 야옹.”

거리 / 이승환 기자
거리 / 이승환 기자

2. 당당하다는 거

“비겁하다는 게 뭘까? 강자 앞에서 움츠러드는 태도? 글쎄, 그런 태도야 본능에 가깝다고 생각해. 비겁하지 않겠다고 강자 앞에서 들이대는 종(種)이 살아남기는 어렵겠지. 그렇기에 강자가 주문하는 부당한 강요에 저항하는 태도 또한 존중받아 마땅하고, 그런 이들을 당당하다고 하잖아. 그런데 아빠 양반, 인간 중에는 자기 안전망을 확신하는 상황에서만 유난히 당당한 부류도 있는 것 같아. 우리 고양이는 쇠사슬로 단단히 묶인 호랑이 앞에서 으르렁거리는 녀석들을 높게 평가하지 않아. 솔직하지도, 당당하지도 않거든. 야옹.”

당당하다는 거 /이승환 기자
당당하다는 거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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