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공원 근처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나무가 보인다. 나무 가득 노란 꽃이 피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더욱 장관이다. 벌들의 윙윙거림이 귓전에 맴돈다. 자세히 살펴보니 꽃대가 매우 독특하다. 가지처럼 뻗어있는 꽃대가 하늘을 향해 곧추서있다. 다닥다닥 달려 있는 황금색 꽃잎엔 붉은 빛깔 꽃도 들어있다. 머리카락을 뒤로 한껏 밀어 올린 모양새다. 바닥에 떨어진 꽃도 무척 예쁘다. 서양 사람들이 특히 좋아한다는 모감주나무다.

모감주나무를 서양에서는 ‘황금비 내리는 나무(Golden rain tree)’로 부른다. 나무 아래서 한참을 서성거렸더니 머리 위에 진짜 황금비가 내리는 것 같기도 하다. 모감주나무는 중국과 우리나라가 고향인 나무다. 처음에는 중국에서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모감주나무 열매를 바다에 띄워 어떻게 흘러가나 봤더니 밀물과 썰물 방향에 따라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웬만큼 파도가 쳐도 열매는 떨어지지 않았다. 중국 보하이만 근처에서 해류를 따라 이동해 우리나라 서해안까지 도착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일부 지역, 백령도와 덕적도, 안면도 해안에 서식하는 모감주나무만 보고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륙지방에도 다수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도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정리가 되고 있다. 거제도와 포항을 비롯해 안동까지 내륙 지방으로도 모감주나무가 자라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남해 바닷가의 모감주나무 군락 /윤병렬
남해 바닷가의 모감주나무 군락 /윤병렬

모감주나무 이름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무환자나무와의 혼용에서 유래했다는 것인데 모감주나무와 무환자나무 모두 염주를 만드는 나무라는 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환자(無患子)를 우리말 모관쥬로 부르다 모관쥬나모로 변했고 이어서 모감주나무가 되었다는 설이다. 또 다른 설은 옛날 중국 선종의 중심 사찰인 영은사 주지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주지의 법명은 ‘묘감’이었다. ‘묘각’은 묘할 묘에 깨달을 각자를 쓴다. 글자 그대로 미묘하고 심오한 깨달음. 부처가 되는 층을 열로 쳤을 때 열 번째 층. 곧 보살 수행 최후의 자리로 번뇌를 끊고 지혜가 원만하게 갖추어진 자리를 말한다. 묘각에 구슬 주를 붙여 ‘묘각주나무’로 불리다가 모감주나무가 되었다는 설이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덕망과 학식이 높은 선비가 죽으면 무덤가에 모감주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모감주나무 꽃은 6월 말쯤부터 7월 중순쯤에 핀다. 그래서 자귀나무처럼 장마를 예보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꽃이 피는 시기와 장마가 드는 시기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모감주나무 꽃잎은 4개로 피어나는데 긴 타원형이다. 네 개가 모여 있다 뒤로 젖혀진다. 젖혀진 부분 안쪽이 붉은색으로 변한다. 꽃을 자세히 관찰해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일 중 하나다.

꽃이 지고 난 후 열매가 익어가는 과정은 더 재미있다. 꽃이 피는가 싶더니 어느새 열매가 달린다. 한 꽃대에 꽃과 열매가 같이 달려 있을 때도 있다. 열매는 고깔 모양 같기도 하고, 청사초롱이 연상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초록색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갈색으로 변한다. 얇은 종이 같은 껍질이 셋으로 길게 갈라지는데 안쪽에는 공기가 들어있어 빵빵하게 느껴진다. 껍질 안쪽을 들여다보면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까만 씨앗이 세 개씩 들어있다. 손으로 만지면 더욱 반질반질해진다. 옻칠한 구슬 같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모감주나무 씨앗을 금강자라고 부르는데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특징을 가진 나무 열매라는 뜻이 들어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일컬어 도를 깨우치고 지와 덕이 굳고 단단하여 모든 번뇌를 깨뜨릴 수 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모감주나무 열매로 만든 염주는 아무나 지닐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큰 스님들이나 지닐 수 있는 귀한 염주가 되었다. 모감주나무를 다르게 부르는 이름들도 대부분 불교와 연관되어 있다. 염주나무, 란수, 보제수, 보리수, 황금비나무, 금우수 등으로 불린다.

모감주나무 꽃과 자귀나무 꽃 /윤병렬

금강석같이 단단한 모감주나무 열매는 구멍 뚫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어떤 방법으로 실을 꿰어 염주를 만들었을까? 지인에게 물어보니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어리고 무른 상태의 열매에 먼저 실을 꿰어 놓는 방법이 있다고 일러준다. 직접 실험을 해보진 않아서 정확한 방법이 되는 건지는 모감주나무로 직접 염주를 만든 스님들께 물어봐야 할 일이다. 모감주나무가 주로 자라는 곳은 바닷가 바위틈이나 강이 휘감아 도는 곳 부근이다. 두 곳 다 척박하고 건조한 곳이라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모감주나무는 아주 천천히 성장하면서 더욱더 예쁘고 아름다운 노란 꽃을 나무 가득 피우는가 보다. 

염주를 만드는 나무에는 모감주나무 말고도 무환자나무가 있다. 무환자나무는 모감주나무 열매보다 꽤 큰 열매가 달린다. 두 나무 모두 까만 열매가 열리고 생긴 모양도 비슷하다. 무환자나무는 한자로 무환자(無患子) 혹은 무환수라고도 한다. 본래 중국에서 도교를 믿는 사람들이 즐겨 심던 나무라고 알려져 있다. 열매가 귀신을 쫓아내는 힘이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옛날 중국에 신통한 무당이 있었다고 한다. 귀신이 붙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무당이었다. 이 무당이 무환자나무로 만든 몽둥이로 귀신들린 사람을 때려서 몸속에 있는 사악한 귀신을 쫓아내 주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집안에 일어나는 우환 중 가장 큰 근심거리는 이유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는 이른바 ‘정신병’이었던 모양이다. 근심과 걱정을 없애주는 나무이니 여러 사람들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집 주위나 사찰 주변에 많이 심어진 이유다. 또 무환자나무 열매를 태우면 사악한 기운이 저 멀리 도망간다는 속설도 전해져 내려온다. 무환자나무를 태우기도 하고, 목침을 만들어 베는 민속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무환자나무는 중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인도에도 널리 분포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따뜻한 남쪽 지방에 주로 자란다. 제주도에서는 제법 많이 볼 수 있고 전라남도, 경상남도에서는 간혹 볼 수 있다.

무환자나무 열매가 얼마나 검은지를 말해주는 옛 격언도 있는데 ‘3년 갈아도 무환자는 검고 10년 삶아도 돌은 굳다’라는 말이다. 무환자나무 열매는 생긴 것도 독특하고 쓰임새도 독특하다. 무환자나무 열매는 둥글게 생겼는데 가을에 갈색으로 익으면 꼭지 부분이 벌어진다. 꼭지 속에 들어 있는 까만 열매는 염주의 재료가 되고, 바깥에 있는 말랑말랑한 껍질 부분은 빨래할 때 비누 대용으로 쓰인다. 그래서 ‘인도의 비누’, ‘비누열매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열매껍질이나 줄기, 가지의 속껍질에 사포닌 성분, 표면활성제 성분이 들어있어 빨래를 할 때 비누처럼 사용했던 것이다. 열매껍질은 머리 감는 데도 쓸 수 있다고 한다.

무환자나무는 전라남도 진도에 있는 수령 약 600년생 노거수가 유명하다. 정월대보름에 이 나무 아래서 달구경 하는 풍습이 전해져 오는데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그해의 풍흉을 점쳤다고 한다. 제주도에 가면 곶자왈에서 자라는 무환자나무를 꽤 많이 볼 수 있다. 제주도에서는 도욱낭 또는 더욱낭으로도 불린다. 경남에는 남해 물건 방조어부림에 가면 무환자나무와 모감주나무를 동시에 볼 수 있다. 진주시 집현면 정평리 웅석사 경내 뒤편에 있는 무환자나무는 신라 말엽에 도선 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다소 과장된 면이 있어 보인다. 경남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모한재에 있는 무환자나무도 수령이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태가 일품인 나무다. 모한재는 조선 후기 하홍도를 기리는 사당이다.

황금비처럼 떨어진 모감주나무 꽃 /윤병렬
황금비처럼 떨어진 모감주나무 꽃 /윤병렬

모감주나무는 무환자나무에 비해 분포 범위가 훨씬 넓다. 세계적으로 보면 희귀식물에 속한다. 우선 천연기념물로는 충남 태안군 안면읍 방포해수욕장 해변과 전남 완도군 군외면 그리고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에 있는 모감주나무 군락이 있다. 가까운 곳으로는 남해군 삼동면에 있는 모감주나무 군락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 모감주나무 군락은 보호 대책이 절실해 보인다. 거제시 연초면 한내리에도 모감주나무 군락이 있다. 요즘에는 정원수와 조경수 또는 가로수로 각광받는 나무이기도 해서 우리 주변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지리산 대원사 가는 길, 사천 곤명 다솔사 들머리에 모감주나무가 심어져 있다. 가을에 눈여겨보면 꽈리 같기도 하고 약간 찌그러진 풍선 같기도 한 열매를 만날 수 있다.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후 평양 백화원 영빈관 앞 정원에 대한민국에서 가져간 모감주나무를 심었다. 기념식수로 모감주나무를 선택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기념식수를 할 나무는 모감주나무다. 꽃은 황금색이며 나무 말은 번영이다. 이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꽃도 풍성하게 피우고 결실을 맺고, 그것이 남북관계 발전에 함께 할 수 있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평양에 심은 모감주나무에 꽃이 만발하면 그토록 바라던 통일이 될 수 있을지··· 나무 말처럼 번영이 이루어질지··· 기대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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