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봄밤에 검은등뻐꾸기가 웁니다.

그 놈은 어쩌자고 울음소리가

홀딱벗고, 홀딱벗고 그렇습니다.

다투고는 며칠 말도 않고 지내다가

반쯤은 미안하기도 하고 반쯤은 의무감에서

남편의 위상이나 찾겠다고

쳐지기 시작하는 아내의 가슴께는 건드려보지도 않고

윗도리는 벗지도 않은 채 마악 아내에게 다가가려니

집 뒤 대숲에서 검은등뻐꾸기가 웁니다.

나무라듯 웁니다.

하려거든 하는 것처럼 하라는 듯

온몸으로 맨몸으로 첫날밤 그러했듯이

처음처럼, 마지막일 것처럼 그렇게 하라는 듯

홀딱 벗고 홀딱 벗고

막 여물기 시작하는 초록빛깔로 울어댑니다.

복효근 시인의 ‘검은등뻐꾸기의 전언’이란 시다. 검은등뻐꾸기는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초록빛깔이 온 세상 뒤덮을 즈음. 5월쯤에 본격적으로 울어댄다. 딱 네 음절로 운다. 낮에도 울고 밤에도 운다. 그런데 검은등뻐꾸기 울음소리는 사람들 기분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모양이다. 옛날에 신작로길 따라 차 타고 먼 학교 다니던 학생에게는 ‘첫차 타고 막차 타고’로, 배고픈 아이들한테는 ‘너도 먹고 나도 먹고, 작작 먹어 그만 먹어’로 들리기도 했다. 산속에 사는 스님들에게는 ‘머리 깍고 머리 깍고’로 들렸다고도 하는데 어느 시인에게는 ‘홀딱 벗고 홀딱 벗고’로 들렸던 모양이다. 아주 먼 옛날 보릿고개 시절에는 봄보리가 익는 시기에 검은등뻐꾸기가 울어 ‘보리새’로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예부터 전해오는 전설에는 죽도록 공부하기 싫은 어떤 스님이 진짜 죽어서 새로 환생했는데 모든 상념과 잡념을 홀딱 벗고 공부해서 해탈하라고 그리 운다는 얘기도 있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르게 들리는 검은등뻐꾸기 소리는 조금만 귀 기울이면 주변에서 제법 흔하게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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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뻐꾸기가 돌아오는 시기의 여름 풍경. /윤병렬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뻐꾸기류는 여름 철새다. 검은등뻐꾸기, 벙어리뻐꾸기, 뻐꾸기, 매사촌, 두견이까지 다섯 종이 있다. 우는 소리는 각각 다른데 생김새와 다른 새에게 제 새끼 맡기는 탁란 습성은 거의 비슷하다. 벙어리뻐꾸기는 정말 이름 그대로 소리가 나오다 마는 듯 ‘듬듬듬듬’ 벙어리처럼 운다. 약간 높고 깊은 산에서 들을 수 있다. 두견이는 주로 해안가에서 볼 수 있거나 울음소리 들을 수 있는데 상당히 처절하게 또는 시끄럽게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뻐꾸기들에 비해 크기가 유난히 작다. 뻐꾸기는 낮에 울고 벙어리뻐꾸기와 검은등뻐꾸기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운다. 두견이는 밤낮 가리지 않고 시끄러울 정도로 울어댄다.

뻐꾸기들이 공통으로 보이는 행동 특성은 탁란이다. 그래서 ‘뻐꾸기 자식’이란 말이 생겨났다.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라는 소설과 1977년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는 제목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아주 강한 ‘뻐꾸기’ 인상을 남겼다. 뻐꾸기처럼 탁란하는 새들은 전 세계적으로 약 100여 종이 있다고 하는데 탁란한 새끼를 키우는 숙주 새도 약 100여 종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탁란하는 새로는 앞서 언급한 뻐꾸기, 검은등뻐꾸기, 두견이, 매사촌, 벙어리뻐꾸기가 있고, 숙주가 되는 새로는 붉은머리오목눈이, 개개비, 휘파람새, 산솔새 등이 있다.

뻐꾸기들은 세상 온갖 욕 다 들어가며 왜 둥지도 만들지 않고 새끼도 키우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 걸까?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긴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그 구체적인 비밀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지금부터 궁금한 부분들에 대해 몇 가지로 물음 던져가며 하나씩 살펴볼까 한다.

어미 뻐꾸기는 알 맡길 상대를 어디서 어떻게 고를까? 우리 주변에서 뻐꾸기가 가장 흔하게 둥지 고를 수 있는 탁란 상대는 붉은머리오목눈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뱁새라고도 부르는데 정말 작은 새다. ‘비비비비’하며 운다고 비비새로도 불린다. 참새처럼 우리 주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담장 울타리 근처나 개울가 나뭇가지 사이, 갈대나 억새 사이에 둥지를 만든다.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둥지 짓고 알 낳는 곳을 뻐꾸기는 유심히 살펴보고 거의 정확하게 알고 있다. 알 낳는 순간은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을 만큼 정교하다. 가만히 관찰해보면 뻐꾸기는 몇 날 며칠 동안 탁란할 최적의 둥지를 찾아 나섰던 모양이다. 매서운 눈동자, 날카로운 눈초리로 끝까지 자기 새끼 키워줄 숙주를 찾아야 한다.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비밀은 자기가 태어나 자랐던 서식지가 아니라 태어났을 때 각인된 숙주를 찾는다고 한다.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가 처음 본 숙주(붉은머리오목눈이나 개개비) 어미 새와 둥지가 탁란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도 눈 뜨고 가만히 당하지는 않을 터. 두 새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진화의 군비경쟁’이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로 처음 날아온 뻐꾸기는 높은 나뭇가지에서 ‘뻐꾹 뻐꾹’ 하루 종일 울어대며 짝을 찾는다. 자세히 관찰해본 바에 의하면 느티나무 가지 위에서 우는 수컷 뻐꾸기는 여러 마리다. 자기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치열한 것인데 더욱 치열한 경쟁은 숙주와 다투는 경쟁이다. 뻐꾸기는 목표가 된 숙주 새가 알 낳고 먹이 찾아 자리 비운 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둥지에 들이닥친 뻐꾸기는 제일 먼저 숙주가 놓은 알 하나를 부리로 밀어 둥지 밖으로 떨어뜨린다. 그리고 잽싸게 자기 알을 둥지 안에 낳는데, 10초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집도 짓지 않고, 먹이 물어다 새끼도 키우지 않는 뻐꾸기이니 오죽이나 빠르게 처리할까 싶다. 야생 동물 동영상에서 봤듯이 뻐꾸기가 낳은 알은 숙주 알보다 먼저 깨어난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 뻐꾸기는 숙주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는 일을 제일 먼저 감행한다. 마치 뻐꾸기 어미가 시킨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뻐꾸기 알은 숙주의 둥지에 낳기 전부터 이미 어미 뱃속에서부터 부화가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숙주가 되는 붉은머리오목눈이 알은 낳고 나서 36도 체온으로 어미가 정성껏 품어야 부화가 되는데 비해 뻐꾸기 알은 이미 어미 뱃속에서 산란 18~24시간 전부터 발생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계산해보면 붉은머리오목눈이와 동시에 낳은 알도 31시간 일찍 깨어나 끔찍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당하고만 있을까?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알 색깔을 바꾸는 방향으로 대처하면서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머리오목눈이 알은 푸른색인데 흰색 알을 낳기도 한다는 것이다. 자기 둥지에 색깔 다른 알이 발견되면 붉은머리오목눈이도 가만히 있지 않고 보는 즉시 알을 깨버린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약 80% 정도가 푸른 알을 낳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진화의 군비경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왜 바보같이 자기 새끼가 아님을 알면서도 그렇게나 크게 입을 벌리고 덩치도 큰 뻐꾸기 새끼를 끝까지 키우는 걸까? 뻐꾸기 새끼가 먹이를 달라며 집요할 만큼 조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먹이를 먹인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혹시나 ‘내 새끼가 아닐지도 몰라’ 하면서도 자기 새끼를 실수로 잘못 버릴 때의 부담 때문에 끝까지 키우는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지는 모양이다. 진화의 과정이 그저 신비로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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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뻐꾸기. /윤병렬

작은 숙주 새들은 뻐꾸기의 만행을 왜 멀뚱멀뚱 처다 보면서도 가만있는 걸까?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뻐꾸기가 나타나면 몸집이 작은 숙주 새들은 총공격 태세를 갖춘다. 둥지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힘을 합쳐 쫓아낸다.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면 알도 깨버린다. 그런데 뻐꾸기의 반격도 만만찮다. 교묘하다. 뻐꾸기는 우선 외모를 작은 새들의 천적 새매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깃털 무늬가 맹금류와 비슷하다. 울음소리도 비슷하게 ‘킥-킥-킥’ 새매 흉내를 낸다. 남 둥지에 알 낳으러 오면서 알 품고 있는 어미 새를 잡아먹으러 온 것처럼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낳는 알 개수와 알 낳는 둥지가 무려 1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뻐꾸기는 어디에서 겨울을 날까? 지금까지는 한동안 강남으로 알고 있었다. 여름철새이니 당연히 동남아시아에 가서 겨울을 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중국과 영국 탐조가들에 의해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초소형 위성 추적 장치 덕분이었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번식한 뻐꾸기가 인도를 거쳐 대양을 횡단해 아프리카로 날아간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인도양 건너 동아프리카까지 3700km 거리를 논스톱으로 횡단하는 뻐꾸기 이동 경로가 밝혀진 것이다. 이처럼 뻐꾸기의 비밀은 알면 알수록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뻐꾸기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여러 가지 전설을 통해 우리 민족 정서에 강하게 남아있다. 첫째는 ‘떡국새 전설’이다. 못된 시어머니는 여기도 등장한다. 며느리가 떡국 퍼 놓고 잠시 자리 비운 사이 개가 달려들어 떡국을 먹어치웠다. 며느리 소행으로 생각한 시어머니는 세상에나 몹쓸 짓을 하고 말았다. 원통하게 죽은 며느리는 새가 되어 ‘떡국 떡국 개 개’하고 날아가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는 전설이다. 두견이 울음소리 듣고 지어낸 이야기인 듯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풀국새 전설’이다. ‘콩쥐팥쥐’ 이야기에서처럼 계모의 학대에 시달리던 딸이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이불 호청에 먹일 풀을 퍼 먹다가 죽고 말았다. 죽은 딸 영혼이 ‘풀국 풀국’하고 울면서 날아다닌다는 전설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두레박 타고 하늘로 올라갔던 나무꾼이 저지른 일이다. 다시 땅으로 내려온 나무꾼은 노모의 박국 받아먹다 말 등에 엎질렀는데 깜짝 놀란 말이 세 번 울면서 펄쩍 뛰는 바람에 승천에 실패하고 만 것이다. 그 뒤부터 ‘박국 박국’하면서 울고 다녔대나 뭐래나….

모두 뻐꾸기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사람 기준으로 뻐꾸기를 바라보며 해석한 이야기들이다. 어쨌든 초록빛깔로 물든 숲에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리면 아동문학가 윤석중의 동요 <뻐꾸기> 노랫말처럼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된다. 지금부터 들려오는 뻐꾸기, 검은등뻐꾸기, 두견이 소리. 내 마음대로 해석해보면 더욱 재미있게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뻐꾹뻐꾹 봄이가네 뻐꾸기 소리 잘가란 인사 복사꽃이 떨어지네

뻐꾹뻐꾹 여름오네 뻐꾸기 소리 첫여름 인사 잎이 새로 돋아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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