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지빠귀가 돌아왔다. 이제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중이다. 호랑지빠귀는 마치 귀신 소리처럼 흐느껴 우는 새로 알려져 있다.

옛날 어떤 ‘초등학교’에 밤마다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난 적이 있다. 소문은 크게 부풀려진 후에 급속도로 확산되는 특성을 지녔다. ‘원래는 공동묘지였는데 학교를 세우느라 무덤을 다 파헤쳤다더라’, ‘억울하게 죽은 처녀 귀신이 한을 품고 밤마다 나타난다더라’. 영문도 모른 채 일어난 귀신 소동 때문에 급기야 아이들이 등교를 꺼려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귀신이 나타난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호랑지빠귀가 즐겨 찾는 먹이. 학교 뒤 대나무 숲에 있는 지렁이 때문이었다. 여름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여름 철새 호랑지빠귀가 먹이 찾아, 짝을 찾아 노래 부르는 소리가 귀신 울음소리처럼 들렸던 것이다.

호랑지빠귀는 지렁이를 무척 좋아하는 새다. 새끼를 키울 때는 수십 마리나 되는 지렁이를 입에 물고 둥지로 돌아오기도 한다. 지렁이를 잡는 곳은 주로 대나무 숲이나 낙엽과 습기가 많은 둥지 근처 숲이다. 학교나 집 뒤에 대나무 숲이 있으면 호랑지빠귀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눈에 잘 띄진 않고 소리는 들을 수 있다. 특히 비 오는 날은 멀리까지 잘 들린다. 호랑지빠귀 소리는 그래서 더욱 을씨년스럽게 들린다. 비 오는 날은 지렁이도 많이 보인다. 흙에서 올라와 죽어 있는 지렁이도 종종 보인다. 지렁이는 왜 비 오는 날에 흙 밖으로 나오는 걸까? 왜 지렁이라 부를까? 지렁이는 종류가 얼마나 될까? 지렁이를 먹는 사람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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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지렁이. /윤병렬

지렁이는 보기에 징그럽게 보여 징그럽다는 말이 변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한자 이름 지룡(地龍)이 변해서 지렁이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땅속의 용으로 불리는 지룡이라는 이름이 지룡이로 되었다가 지렁이로 변환된 것이라는 얘기다. 지렁이는 한자로 지룡, 토룡, 구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부분 이름 안에 이미 생태적 의미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기어 다닐 때 길게 뻗었다가 오므라드는 모양을 표현하는 말도 있고, 눈이 없어 보지 못하는 특성을 표현한 이름도 있다. 땅속을 기어 다니는 벌레, 비가 오면 말없이 기어 다니는 벌레라는 의미가 포함된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이름이 가진 의미의 공통점은 ‘땅속에 산다’, ‘용처럼 보이기도 한다’, ‘징그럽다’, ‘습한 곳을 좋아한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렁이는 5억 년에서 6억 년 전쯤 지구상에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 4억 년 전 화석에서 지렁이 알이 발견되기도 했다. 지구상에는 약 9000여 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땅속에 사는 동물이라 더 많은 종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9000여 종 중에서 갯벌이나 깊은 바다 근처에서 사는 종은 약 6000여 종 이상, 민물이나 토양에 사는 종은 약 3000여 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에는 약 60여 종이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렁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늘어나면 앞으로도 더욱더 많은 종류의 지렁이가 발견될 것으로 보인다.

지렁이는 주로 낙엽 밑이나 거름 더미, 쓰레기 더미 같은 곳에서 산다. 건조한 사막이나 빙하 아래를 제외하고 습기와 흙이 있는 곳이면 지구상 어디에서나 산다. 땅속에 살고 있는 생물체 전체 무게의 약 80%에 이를 정도라고 하는데 모두 어디 있을까? 지렁이는 빛을 싫어한다. 눈도 없고, 코도 없고 귀도 없다. 빛이 오는 쪽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지렁이 몸은 땅속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고안되어 있다. 땅속에서는 눈과 코가 필요 없었던 모양이다. 자기 서식지에서 멀리 벗어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매우 좁은 땅속 공간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지렁이에게 필요한 것은 빛에 대한 민감성이다.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진화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지렁이의 존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은 지렁이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찰스 다윈은 <지렁이의 작용에 의한 부식토의 형성>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이 세상의 역사에서 이토록 낮은 수준의 유기체가 하는 것처럼 중요한 역할을 해온 동물들이 달리 있는지 의심스럽다.” 다윈 논문의 핵심 내용이다. 지렁이에 관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가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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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렁이 분변토. /윤병렬

지렁이는 어떻게 살아가며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학교 교실 앞 화단에 살고 있는 지렁이를 여러 날 동안 관찰해 보았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징그럽게 보이긴 마찬가지다. 낮에는 땅을 파지 않으면 볼 수 없다. 지렁이는 주로 밤에 활동한다. 그렇다고 땅속에서만 사는 건 아니다. 밤에는 간혹 땅 위로 입 부분이 올라오기도 한다. 아침에는 지렁이가 배설한 똥 무더기를 볼 수 있다. 낙엽이 쌓인 곳 근처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아침 일찍 잔디밭에 나가면 보이는 탑같이 모여 있는 흙들이 지렁이가 뱉어낸 분변토들이다. 일반적으로 지렁이는 먹이를 먹은 후 약 12시간에서 길게는 20시간 동안의 소화 기간을 거쳐 분변토를 배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흩어져 있는 분변토 양으로 볼 때 학교 화단에도 꽤 많은 수의 지렁이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지렁이는 기어갈 때 약간 이상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지렁이는 땅 위에 떨어진 썩은 낙엽을 무척 좋아한다. 음식 찌꺼기도 좋아하고, 썩어가는 유기물을 삼키거나 구멍 속으로 끌어들여 먹기도 한다.

“고고학자들은 아마도 많은 고대의 유물이 보존된 것이 얼마나 지렁이 덕분인지 잘 모를 것이다. 동전이든 금으로 만든 장식물이든 돌로 만든 기구든 일단 땅바닥에 떨어지고 나서 몇 년이 지나면 틀림없이 지렁이 똥에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그 땅이 미래 언젠가 들추어질 때까지는 안전하게 보존될 것이다.”

다윈이 쓴 <고대 건물의 매립에 지렁이가 맡았던 역할>이라는 글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지렁이는 땅속 구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주변을 조금씩 돌아다니기도 한다. 구멍을 통해 기어 다닌다. 끊임없이 굴을 파면서 먹이를 먹고 분변토를 배설하는 방법이다. 지렁이가 이른바 ‘자연의 쟁기’로 불리는 이유다. 지렁이는 굴을 파면서 토양층을 섞고 굴속으로 공기와 물이 스며들게 한다. 움직임 자체로 땅을 기름지게 가꾸는 것이다. 지렁이는 2.5m 정도 되는 땅속까지 팔 수 있다고 하는데, 4000제곱 미터 당 5만 마리에서 100만 마리까지 서식할 수 있다고 한다.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잘 발달된 신경계와 소화계, 배설계, 순환계, 근육계 그리고 생식 기관을 가지고 있다. 생김새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몸통의 환절 또는 체절이다. 보통 95개에서 200개의 체절로 나뉘는데 머리 부분인 첫 마디는 입과 입주머니로 구성되어 있다. 입주머니는 입을 보호하고 흙 속의 갈라진 틈을 헤집으며 다니는데 필요한 기관이다. 각 제철마다 짧은 머리카락 모양의 센 털이 나있다. 이 센 털을 강모라고도 부른다. 강모는 지렁이가 이동하는 데 꼭 필요한 신체 부분이다. 지렁이가 이동할 때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은 이 강모 때문이다.

지렁이 몸은 항상 부드럽고 축축한 상태를 유지한다. 구별하기가 쉽지 않지만 앞과 뒤가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다. 머리 부분은 뾰족한 반면 뒤쪽 꼬리 부분은 얇고 편편하다. 먼저 쭉 뻗어 나가는 쪽이 머리 부분이고, 뒤따라 움직이는 쪽이 꼬리 부분이다. 지렁이는 암수 한 몸이다. 숫 생식기와 암 생식기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래도 번식은 다른 개체 정자를 교환하며 짝짓기를 한다. 지렁이 알 한 개에서 부화되는 어린 새끼 지렁이의 개체 수는 평균 7마리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흰색에서 차츰 노란색으로 변하다가 약 두 달 정도 지나면 전체가 붉어진다고 한다.

지렁이는 길이가 20~30mm 정도에서 큰 것은 1.0~1.5m에 이르는 것도 있다. 큰 종류들은 주로 온대와 열대 지역에 서식하는 종들이다. 최대로 큰 지렁이는 무려 6.7m에 이르는 것도 있다고 한다. 기네스북에 오른 지렁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태조 때 약 2.1m에 이르는 지렁이가 있었다는 것이 ‘동국통감’에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지렁이 맛은 짜고 차가우며 독성은 없거나 아주 소량 존재한다’고 소개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 지렁이에 관한 다양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은 후백제 견훤의 이야기다. 전설 내용은 지렁이가 인간으로 변해 자식을 낳았는데 힘이 세고 영특하여 큰일을 했다는 이야기다. 또 지렁이를 먹은 장님이 눈을 뜨게 되었다는 내용도 있다. 토룡인 지렁이와 닭(봉)으로 만든 탕이 용봉탕인데 지렁이의 약효와 영양가를 의미하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모양이다.

서양에서 보이는 기록은 약 4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점토 화석에 보인다고 한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을 따라 떠내려온 온갖 유기물질을 지렁이가 먹어 치우면서 토양을 비옥하게 해 준다는 것인데 농사를 지으면 수확량이 늘어난다는 내용이다. 지렁이가 많은 곳에 농사를 지으면 수확량이 늘어난다는 것을 고대인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 어떤 곳에서는 지렁이를 식용으로 이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뉴질랜드와 중국 그리고 아프리카 일부 지역, 뉴기니에서 지렁이를 진미로 식용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지렁이가 잘 먹는 음식물 쓰레기는 감자와 포도 껍질, 양배추, 상추를 비롯한 야채 쓰레기들이다. 또 커피 찌꺼기와 찻잎, 종이로 만든 차 봉지, 차 여과지도 지렁이는 먹을 수 있다고 하는데, 지렁이 분변토를 통해 흙도 지구상의 물과 공기처럼 끊임없이 순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징그럽지만 무척 궁금한(?) 지렁이. 자세히 알고 보면 정말 소중한 존재이면서 만능 재주꾼이기도 하다. 찰스 다윈은 잉글랜드 지방의 토지 1에이커(약 1220평)에 2만 5000~5만 3000마리의 지렁이가 서식하며 지렁이는 연간 10~19톤의 흙을 섭취하고 배설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한 “농업에서 이용하는 쟁기는 우리 인류의 가장 유용하면서도 가장 오래된 훌륭한 발명품이지만 쟁기가 발명되기 아주 오래전부터 이 지구상의 흙은 지렁이에 의하여 경운되어 왔으며, 인류 역사상 지렁이와 같이 이렇게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는 동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라며 지렁이를 예찬한 바 있다.

그렇다면 장마철에 보이는 ‘알몸’ 지렁이들은 왜 밖으로 나왔을까? 생각해보면 간단하게 답을 맞힐 수 있다. 지렁이가 보이는 생태 특성을 가만 생각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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