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부스키시 호텔 하쿠수이칸(白水館)
“저희는 유명인사를 마케팅에 이용하지 않습니다”

한일 레이더 갈등으로 양국의 분위기가 껄끄러운 와중에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가는 온천 관광에 더해 아내의 일본인 지인 야마나카(山中) 부부에게 매년 보내던 김치를 직접 전달해 드리고 안부 인사를 드릴 겸 해서였다. 목적지는 규슈 남단 가고시마현(鹿兒島縣)의 이부스키시(指宿市).

2005년 결혼을 하고 그해 가을, 아내 덕에 야마나카 씨 댁에서 며칠 머물게 되었다. 이부스키 토박이인 야마나카 씨는 ‘2004년 이곳 이부스키에서 너희 노무현 대통령과 우리 고이즈미 총리가 정상회담을 한 것을 알고 있느냐?’라면서 자랑스레 이야기하셨다. 그리고는 정상회담의 장소였던 이부스키의 호텔 ‘하쿠수이칸(白水館)’을 차로 한 바퀴 돌며 구경을 시켜 주었다. 기와로 된 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공존하며 일본 사극에서 봤던 아름다운 조경이 펼쳐져 인상 깊었다.

십여 년이 지나서야 하쿠수이칸으로 온천 여행할 기회가 몇 번 생겼다. 그때마다 지난 한일정상회담 당시 고 노무현 대통령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호텔을 두리번거렸지만 벽에 흔한 사진 한 장 걸려있지 않아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마침 올해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10주기이기도 해서, 이번 이부스키의 여행에 예전에 가졌던 서운함과 호기심을 풀고 싶었다. 기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하쿠수이칸 측에 2004년 한일정상회담에 관한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영업부 지배인 ‘후쿠모토 히데카츠(福元 秀一)’ 씨가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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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쿠수이칸 영업본부 IT과 카미조노 요시노 씨(좌측)와 지배인 후쿠모토 히데카츠 씨. /손유진 기자

천연 모래 온천으로 유명한 이부스키 하쿠수이칸

Q.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개를 부탁합니다.

“네. 후쿠모토 히데카츠이고 제 나이는 59세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료칸 관련 일을 시작한 지 40년 됐습니다. 여기로 옮겨서 지금까지 25년째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직책은 영업부 지배인을 맡고 있습니다.”

Q. 이부스키와 하쿠수이칸에 대한 소개를 해 주신다면?

“이부스키는 많이 알려진 일반 온천과 달리 천연 모래 온천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지표면 가까이에 용암이 흐르고 있어 바닷가의 모래가 아주 뜨겁습니다. 혈액 순환에도 좋아 모래찜질이 인기인 곳이지요. 한국 분들 정서에는 무덤의 이미지가 강해 꺼리시는 분들도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일반 온천과는 다르게 모래 온천만의 특유의 기분 좋음이 있습니다. 저희 하쿠수이칸은 그냥 머무르는 일반 호텔과는 다르게 호텔 내 정원과 객실에서 일본의 문화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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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쿠수이칸의 정원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손유진 기자

Q. 하쿠수이칸은 지난 2004년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과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정상회담을 한 곳입니다. 당시에 지배인님은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그리고 정상회담 기간에 노무현 대통령을 얼마나 가까이서 보셨나요? 옆에서 보시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노무현 대통령에게 상냥함이 느껴졌었고요. 일본어도 꽤 능숙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때 저는 지배인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프런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경호원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5m 정도? 그 정도 가까이에서 봤네요. 저희 사장님은 1m 정도 가까이 가 보셨을 겁니다. 하하하.”

Q. 이부스키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모래 온천이라고 하셨는데요. 노무현 대통령도 모래 온천을 하셨나요?

“고이즈미 총리 부부와 권양숙 여사는 모래 온천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인 문제로 주위 측근들이 말려서 하시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Q. 사실 이부스키는 작은 마을입니다. 정상회담이 이부스키 그리고 하쿠수이칸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처음 전해 들었을 때 여기 직원분들의 반응은 어떠했었나요? 그리고 왜 이부스키에서 열렸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본 정부로부터 하쿠수이칸에서 정상회담을 한다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영광스러운 일이었지요! 두 나라의 정상이 방문한다고 하니 다들 많이 긴장을 했었습니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할아버지가 여기서 1시간 반 거리의 카세다(加世田)라는 곳에 사셨어요. 그래서 고이즈미 전 총리가 이부스키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하쿠수이칸이 온천도 있고 일본 전통문화가 많이 담긴 곳이다 보니 주요 손님을 모시기에 적당한 곳이라고 추천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Q. 가고시마시에서 여기 이부스키시까지 거리는 멀지 않은 것 같은데 도로가 왕복 2차선으로 길이 좁은 데다 길이 하나뿐이라 두 정상이 이동하려면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마을 사람들도 많이 불편해했을 것 같고요.

“아 그때 헬리콥터를 타고 오셨습니다. 하쿠수이칸 옥상에 헬리콥터 착륙장이 있어 공항에서 헬기로 이동하셨습니다. 아무래도 경찰들이 마을에 많이 나와 있어서 조금은 불편했을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정상회담

Q. 정상회담 당시 기억하는 일화가 있다면?

“두 정상이 하쿠수이칸 정원을 산책하고 야외 수영장에서 회담을 진행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전날 밤사이에 비가 많이 내린 거예요. 수영장 바닥이 젖어있으면 미끄러우니까 정상들이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하면 큰일이잖아요. 그래서 아침부터 전 직원들이 동원되어 수영장 바닥의 마루를 닦았어요. 하하하. 다행히 아침에 더는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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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새 야외 수영장에 비가 많이 내려 다음날 아침 직원들이 총 동원되어 걸레로 물기를 닦고 있는 모습(위)과 수영장 일화가 있는 수영장 모습. /손유진 기자

Q.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정상회담이 끝난 후에도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소식을 들으신 게 있나요?

“당시 저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정상회담이 끝나고 나서도 특별한 소식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서는 들었습니다. 그렇게 온화하신 분이 왜 갑자기 돌아가셨는지 일본 사람들도 많이 궁금해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대통령 중에서 서민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Q. 제가 2005년에 처음 이부스키에 여행을 왔었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는 이부스키를 잘 몰랐습니다. 그리고 여기 사시는 아내의 지인께서 말씀을 해 주셔서 한일정상회담이 여기서 열렸다는 것을 저도 알게 되었습니다. 정상회담 이후 하쿠수이칸에 한국 관광객이 많이 늘어났나요?

“네, 한국에 많이 알려진 듯합니다. 정상회담 후,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한국 국회의원 등 유명인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그중의 한 정치인은 숙소를 노 대통령이 머물렀던 7층에 마련해 드렸는데 노 대통령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6층으로 방을 바꿔 달라고 하셨습니다. 죄송하게도 한국 정치인이라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겠네요.”

Q. 이번이 하쿠수이칸 방문 네 번째입니다. 앞서 세 번의 방문에서 2004년 정상회담의 사진이나 흔적을 호텔 내에서 찾아볼 수 없었는데요. 한국에서는 아직도 이곳이 정상회담 장소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호텔에서는 한일정상회담을 마케팅으로 이용하지 않나요?

“저희 하쿠수이칸에서는 정상회담을 마케팅으로 이용을 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고유 시조 중에 ‘敷島の大和心を人問はば朝日に匂ふ山桜花’라는 글이 있습니다. 뜻을 풀이하자면 ‘일본 민족 고유의 정신(야마토)에 대해 물으니, 아침 해에 아름답게 물든 산 벚꽃이라’라고 하는데요. 바로 이것이 일본의 정신입니다. 우리가 오늘을 잘 지내고 내일 예쁘게 피는 꽃이 되는 것이 일본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마케팅에 이용하지 않습니다. 일본인 중에서도 유명한 분들이 저희 호텔에서 지내고 가셨지만 그분들도 마케팅에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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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에도시대의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가 지은 시조의 한 구절. 일본의 마음을 나타내는 시조로 ‘일본 민족 고유의 정신(야마토)에 대해 물으니, 아침 해에 아름답게 물든 산 벚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의 정신을 담은 시조라 그런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함 이름과 카미카제 부대이름도 이 싯구에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Q. 마케팅이 아니라도 하쿠수이칸의 역사 일부분으로 남길 수 있지 않나요?

“저희 하쿠수이칸이 좋은 점도 많지만 만에 하나 단점을 보이게 되면 머물렀던 그분들에게까지도 폐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희 하쿠수이칸의 원칙입니다. 혹시라도 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실례가 될까 봐 역시 대외적으로 나타내지 않고 있습니다.”

Q. 혹시 ‘변호사’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까? 일본에도 정식 개봉이 되고 DVD가 나왔습니다.

“아니요. 본 적은 없습니다.”

Q. 이 영화는 노무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학을 나오지 않고 사법고시에 통과하여 판사를 거쳐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였습니다. 한국의 유명 배우 송강호 씨가 노무현 대통령의 역할을 맡아 한국에서도 1000만 명 이상이 본 영화입니다. 영화를 정식으로 다운로드를 하여 가지고 왔습니다. 자막이 없지만 괜찮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아 고맙습니다. 챙겨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반기문 씨도 한국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호텔 내에 한일 정상회담의 흔적은 없었지만 후쿠모토 씨는 정상회담을 찍은 사진 앨범을 가지고 나오셨다. 앨범 속의 사진을 보여주며 당시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묶었던 숙소와 정상회담이 열렸던 장소를 직접 안내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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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 권양숙 여사가 머물렀던 706호 내부 모습. /손유진 기자

Q.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묶었던 숙소를 소개받을 수 있을까요?

“이곳 706호가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묶었던 방입니다. 제일 꼭대기 층이죠. 7층의 객실은 각각의 주제가 있는데, 여기 706호의 주제는 벚꽃입니다. 테이블, 바닥, 거울 모든 게 벚꽃이 새겨져 있습니다. 러시아 옐친 대통령도 여기에서 지냈습니다. 바다 전망과 하쿠수이칸의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Q. 정상회담은 어디에서 하셨는지?

“본관 지하에 있는 회담장소입니다. (회담이 열렸던 장소로 안내를 해 주었다) 바깥 창을 보시면 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습니다. 원래 회담은 여기서 하고 식사는 다른 곳에서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께서 정원이 너무 마음에 드신다고 식사도 여기서 하길 바랐습니다. 결국, 회담 후에 만찬을 여기서 했습니다.”

Q. 한국에 있는 저희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부탁합니다.

“한국 국민과 일본 국민은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사람들도 극소수만 한국과 일본이 대립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서로 예민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가 정상회담을 했던 13년 전 그때처럼 한일관계가 회복되어 좀 더 가까운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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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슈 남단에 있는 작은 도시 이부스키시에 있는 하쿠수이칸 전경. /손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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