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무 시장과 '환상의 콤비' 더 행복한 창원을 꿈꾸다

마산 출신의 김성진(55) 신임 창원시 서울사업소장은 지역에서 '정치인'으로 더 유명한 사람이다. 한때 민주당을 탈당하는 등 곡절을 겪다 어느 날 공직자로 돌아온 그에게 '정치는 그만둔 거냐'고 물으니 "선출직 출마는 더 안 할 생각"이라면서도 "또 모르죠. 과거 노무현 대통령처럼 누군가 결정적 필요성 때문에 권유하면…"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마산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토박이

Q. 창원(마산) 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출생지 등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마산합포구 진동면입니다. 1963년 제가 태어났을 때 마산과 진해는 '시'였고 창원은 '군'이었죠. 족보를 보면 조상이 임진왜란 후 경북 상주에서 와 마산에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증조부 묘가 진동에 있는데 의아하게도 고조부 묘는 고성 동해면에 있습니다. 고성에 산 기록은 없는데 말이죠. 어쨌든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는 마산중앙고, 경남대 등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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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창원시 서울사업소장. / 고동우 기자

Q. 원래 지역에서는 정치인으로 더 유명합니다. 정치에 뛰어든 계기 또는 동기는 무엇인가요.

"대학 때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졸업 후 경남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경남 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등 재야단체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중간에 두 차례 감옥에 갔다 오고 잠시 운동을 떠나기도 했지만 2000년경까지 재야운동·시민운동에 몸담았죠. 그러던 중 김대중 정권 시절인 2001년 즈음해 소위 '이회창 대세론'이 부상했습니다. 민주당 쪽은 이인제가 있었지만 이래서는 운동이고 뭐고 전두환 때보다 심하겠다는 걱정이 컸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죠. 그렇게 고민하던 차에 허성무 현 창원시장 등과 뜻을 모아 당시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을 돕기로 하고 직접 노무현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민주당 대선후보 되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후보만 되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죠."

2002년 국회의원 선거 출마로 정치 입문

Q. 대선 전인 2002년 8월 국회의원 선거(마산 갑 재선거)에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는데 결국 그것도 노무현 지원과 관련 있겠군요.

"처음에는 순수하게 도우려고만 했는데 현실 정치를 하려면 지구당을 맡아야 하고 선거도 출마해야 한다는 주변 의견을 뿌리칠 수 없었죠. 이회창 집권을 막기 위해서는 노무현밖에 없었습니다. 귀족 대 서민 프레임으로 붙으면 이길 수 있다 생각했죠. 노무현이란 개인도 그러했습니다. 당시는 거의 볼 수 없던 서민적 언행과 풍모뿐 아니라 한반도 미래에 대한 비전·통찰, 추진력과 카리스마를 갖춘 분이었습니다.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사람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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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2년 12월 19일 대선 투표 당일 김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현 대통령과 함께.

Q. 노무현 집권 후에는 청와대 행정관, 행정자치부 장관 보좌관 등 공직 생활을 주로 하셨죠.

"우여곡절 끝에 대선에서 이기고 노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청와대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죠. 대선 1주일 후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듬해 2월부터 청와대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를 나와 당시 마산 갑 선거구에 도전했는데 경선을 넘지 못했습니다. 영남 쪽 분위기가 좋았는데 '노인 폄훼' 발언 터지고 보수진영 결집하고 암튼 힘든 선거였습니다. 돌아보면 2002년 재선거는 그보다 더했죠. 시민들한테 명함을 건네면 침을 뱉어 돌려주고 그랬습니다. 엄청난 구박, 멸시를 받았죠. 그만큼 김대중 정권과 민주당에 대한 마산 여론이 안 좋았습니다."

Q. 그 후 2006년 마산 갑 재선거에 또 출마하셨는데.

"총선 끝나고 행자부 장관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또 재선거 요인이 생겼죠. 솔직히 당선 가능성도 높지 않았고 스스로 나가고 싶어 나간 선거는 아니었죠. 돌아보면 2004년을 제외하면 2002년·2006년·2012년 모두 딱히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 밀려 나간 측면이 컸습니다. 2012년도 목표가 35% 득표였으니까요. 청와대, 행자부 등에서 일한 경험도 있고 하니 안 나갈 수가 없는 분위기였죠."

Q. 2012년 대선 후에는 민주당을 탈당하는 등 곡절이 많았습니다. 혹 정치인으로서 꿈은 완전히 접은 겁니까?

"2012년 대선 패배하고 이 당에 무슨 미래가 있나 회의가 컸습니다. 자기반성도 없고 비주류는 계속 당을 흔들고 정책적 고민도 없고 엉망이었죠. 2016년 8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에 복당을 해서 다시 정권교체를 위해 뛰어야지 결심했습니다. 탈당할 때 제 페이스북에 썼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하지 마라'고 한 말씀이 이해가 됐습니다. 전 권력의지가 좀 없었어요. 운동권 출신이라 그런지 선악 구분이 뚜렷했고 사기꾼 같은 행동을 잘 못 참았습니다. 젊을 때는 정의감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분노조절장애'에 가까웠죠. 개인적 한계가 컸습니다. 정치를 하려면 권력의지가 있고 통찰력이 있고, 또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했습니다. 한 달에 200~300만 원 정도 자기 정치를 위해 쓸 수 없으면 정치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그래야 꿇릴 게 없고 큰소리칠 수 있어요. 출마는 이제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선출직 출마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탈당할 때 이미 밝혔습니다. 과거 노무현이 그러했듯 누군가 결정적 필요성 때문에 권유하면 또 모르겠지만 이제 저도 50대 중반이고 경거망동하면 안될 것 같아요."

더 나은 창원시, 더 나은 대한민국 위해 노력

Q. 지난 7월 임명된 창원시 서울사업소장 이야기를 이제야 합니다. 발탁 배경이 궁금한데요. 본인 의지도 있었나요?

"허성무 시장 선거 캠프 대변인으로서 핵심적 역할을 한 만큼 제가 무슨 일을 할지 논의가 있었습니다. 허 시장과 친분이나 정치 이력을 볼 때 제가 허 시장 가까이에서, 지역에서 보좌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봤어요. 허 시장한테 피해가 갈 수도 있으니까요. 마침 서울에 청와대나 국회 인맥 등 아는 사람이 많으니 시장과 서울사업소장이 손잡고 창원 예산 확보 등 정무적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서로 의견일치가 됐습니다. 창원시 발전을 위해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뛰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습니다. 이심전심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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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과 함께. 왼쪽부터 아들 김현민, 부인 이정원, 김성진 소장, 딸 김경채. / 김성진 제공

Q. 요즘 많이 바쁘실 것 같습니다. 서울사업소가 주력하고 있는 현안과 관련 활동을 소개해주십시오.

"내년 창원시 국비 확보가 서울소장으로서는 가장 큰 일이죠. 단기적으로는 그렇지만 중장기적으로도 할 일이 많습니다. 투융자 심사 등 예산 확정에 최소 1~3년 정도 걸리는 사업도 있으니 미리미리 움직여야 하죠. 주요 현안으로는 공공기관 이전과 100만 이상 대도시 특례 법제화, 방위산업진흥원 유치, 마산해양신도시 국비 지원, 수소산업 전주기 실증센터 구축 등이 있습니다. 얼마 전 허성무 시장과 함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도 만났고 청와대 및 각 부처 담당자를 찾아 수시로 예산 배정 필요성과 창원의 강점, 준비 정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Q. 힘든 점은 없습니까?

"창원지역을 비롯해 경남 국회의원 모두가 여야를 떠나 다 잘 도와주시고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습니다. 모두 이전과 다르다, 분위기가 좋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만큼 사람의 정성, 노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함께하겠다 솔직한 자세와 모습 보여주니까 많이 인정해주십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저녁에 술자리가 많으니 몸이 좀 부담스럽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뿐 아니라 물밑 작업 등도 해야 하니 술이 빠지기 어렵죠. 이제 건강을 신경 써야 할 나이니까요."

Q. 창원은 매주 오갑니까? 피곤할 것 같은데요.

"특별한 일 없으면 금요일 저녁에 가서 월요일 아침 간부회의 하고 서울로 오죠. 허 시장이 공무원과 공유해라, 함께 뛰어라, 너 혼자 하려고 하지 마라 해서 오히려 피로가 덜어지는 게 있습니다. KTX 안에서는 기차 앞뒤로 오가면서 피로와 지루함을 풉니다. 그래서 고속버스는 못 타죠. 왔다 갔다 하면 3시간이 금방 가요. 서울에서 지내는 곳도 과거 청와대 등에서 일할 때 비하면 상전벽해 수준이죠. 쾌적하고 넓고 좋습니다."

Q. 앞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만, 공직자로서 혹은 정치인으로서 원칙, 철학 같은 게 있다면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세 분 대통령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단 실력과 능력을 갖춰야 해요. 늘 실사구시 자세로,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책을 가까이하는 분들이었죠. 주변 사람과 토론하고 논의하고 듣고 배우는 자세는 기본이고요. 역사의 진보와 사회 발전에 대한 믿음, 한 단계 한 단계씩 세상을 바꾸려는 태도 이런 것도 있어야겠습니다. 도덕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남들보다 뛰어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욕 들을 만한 짓은 해서는 안 되죠. 겸손하고 함부로 화내지 않고 이분법적 사고 하지 않고 그런 것들이 정치에 희망을 심어주는 태도고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자 수단이라고 봅니다."

Q. 특별한 취미나 공부하는 분야 등이 있습니까.

"이전에 무릎 수술하고 나서 자전거를 많이 타고 또 많이 걷고 그랬는데 요즘은 못 하고 있네요. 건강에 좀 소홀한 편 같아요. 저는 그냥 사람이 좋습니다. 소주 한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 편하고 즐거워요. 예전에 또 좋아했던 게 뮤지컬·오페라 관람이었습니다. 2005년 미국 연수 때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나서 빠져들었는데 아무래도 지방은 인프라 등 한계가 있다 보니 멀어졌죠. 서울 생활할 때는 비행기 타고 공연 보러 가고 그랬는데 말이죠. 이제 다시 해볼 생각이 있습니다. 숙소 근처에 극장도 있으니 영화도 자주 보고요."

Q. 앞으로 삶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일단 창원시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1차 목표죠. 앞서 말씀드린 현안뿐 아니라 투자 유치, 향우들을 하나로 묶어내기 등 할 일이 많습니다. 허성무 창원시정 이후에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다음에도 민주정부가 들어서는 데,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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