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에서 천재 감독으로

1980년대 축구 좀 관심 있게 봤던 사람은 누구나 '김종부' 이름 석 자를 기억할 것이다. '축구천재'로 불렸지만 쓸쓸히 프로축구 무대에서 퇴장하면서 '비운의 축구천재'가 됐던 그가 2018년 현재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프로축구 1·2부 22명 감독 중 가장 서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1부리그서도 돌풍 이어가는 경남FC

김 감독이 이끄는 경남FC는 지난해 2부리그 우승을 통해 올해 KEB하나은행 K리그1(클래식) 2018로 승격했다. 리그 개막 당시만 해도 강등권으로 분류됐고 김 감독도 리그 미디어데이에서 "현실적으로 1부에 잔류하는 게 목표"라고 할 만큼 우려가 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고 개막 4연승을 달리며 리그 역사를 새로 썼고 5주 연속 리그 1위를 지키며 돌풍을 일으켰다. 비록 4월 들어 1승 1무 2패로 리그 3위까지 쳐졌지만 경남발 돌풍으로 K리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공중파 9시 뉴스에서 경기 결과가 아닌 감독과 선수가 소개될 정도로 축구 인기가 높아졌다.

하지만 인터뷰를 할 시점 김 감독은 이런 지나친 관심에 부담감을 표시했다. 4연승 이후 1무 2패를 겪으면서 3위로 팀이 미끄럼을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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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부 경남FC 감독. / 정성인 기자

경남이 겪고 있는 위기 상황에 대해서는 '기본'을 강조했다.

"축구도 기본입니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뛰어난 선수들로 팀을 꾸려도 성적을 낼 수 없습니다."

공수 양면에서 팀이 크게 흔들리고 있지만 선수들이 잇따른 승리에 취해 정신적으로 나태해진 부분도 있고, 일부 선수들이 자기관리에 소홀해져 경기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봤다.

공격을 중시하는 '닥공' 전술

그의 축구 스타일은 이른바 '닥공'(닥치고 공격)이다.

"수비 위주로 경기를 해서는 아무리 잘해도 비기기밖에 더합니까? 세 번을 비겨야 한 번 이긴 것과 같은 승점 3점인데 이기려면 공격을 해야죠."

그는 지난해 2부 리그에서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이기는 축구'를 추구한다. 그러니 경남이 벌이는 경기는 재미가 있다. 지난 15일 포항 원정전에서 경남은 후반 중반 무렵 거의 1분에 한 번 정도로 슈팅을 쏟아내며 포항 문전을 공략했다. 행운이 따라주지 않아 득점과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포항도 만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고 재빠른 역습으로 경남 문전을 두드렸다. 어느 팀 팬이라도 손에 땀을 쥐고 '축구 보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이런 축구를 위해 김 감독은 지난 1월 태국 전지훈련 때부터 '시야 축구'를 강조하고 '순간적으로 5m를 치고 나갈 수 있는 체력'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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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겨울 남해 전지훈련 중 선수를 지도하는 김종부 감독. / 정성인 기자

전방에서부터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고 한발 빠른 움직임으로 공간을 파고들면서 득점 기회를 만들어내려면 넓은 시야는 필수이고 그에 걸맞은 체력이 필요하다.

"축구 경기 중 달리는 것은 마라톤이나 100m하고는 완전히 다르다"는 그는 "넓은 시야로 공간과 움직임을 파악하고 한 템포 빠르게 달려 들어가는 데서 기회가 생긴다"고 지속적으로 선수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

그가 이렇게 '닥공 축구'를 강조하는 것은 그 자신이 공격수 출신인 데다 프로 선수에서 은퇴하고는 학원축구부터 K3리그, K리그2 감독을 하면서 얻은 혜안이다.

비운의 천재, 축구선수 김종부

그는 한때 창창한 미래가 보장되는 한국 축구의 희망이었다. 1983년 FIFA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4강 멤버로, 1990년까지 국가대표로 25경기에서 8골을 기록했다. 특히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불가리아를 상대로 0-1로 뒤지던 상황에서 가슴으로 트래핑 후 절묘한 발리슛을 성공시키며 한국에 월드컵 본선 첫 승점을 안겨 준 그 순간을 잊지 못하는 축구팬도 많다.

이 골은 지난해 김 감독을 '신으로 떠받드는' 말컹에 의해 그대로 재현됐다. 9월 23일 부천과 경기에서 말컹은 후반 시작하자마자 브루노의 센터링을 가슴으로 트래핑한 뒤 바운드된 공을 그대로 차 넣었다. 말컹은 이 기술을 불과 1주일 전에 익힌 것으로 알려져 놀라움을 자아냈다.

김 감독은 이처럼 촉망받는 선수였지만, 현대호랑이와 대우로얄즈 사이에서 스카우트 파동에 휩싸이며 제대로 꽃피워 보지도 못하고 쓸쓸히 은퇴해야 했다. 현대와 먼저 프로 입단 계약을 했지만 대우에서 뒤늦게 가족을 동원해 사인을 받아내면서 이중계약 문제로 비화했고 양 구단은 김종부를 보내주지 않으면 팀을 해체하겠다는 강수를 들고나왔다. 결국 중재 끝에 그는 포항으로 임대 이적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이미 몸도 마음도 상한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제대로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쓸쓸히 은퇴의 길로 내몰렸던 것.

이후 고향 거제고에서 지도자로 새 출발 했지만 2016년 경남 감독으로 오기까지는 못다 피운 꿈과 생활고로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이제 선수로서 못 이룬 꿈을 지도자로서 활짝 피우고 있는 김 감독은 그 시절에 아쉬움은 없을까?

"아쉽기야 하죠. 하지만 축구 선수로 출발해 프로구단에서 주전으로 10년 정도 뛸 수 있는 선수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걸 생각하면 지난 시절 돌아보면 뭐하겠습니까. 앞으로 남은 생을 걱정해야죠."

프로에서 은퇴했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팍팍했다.

고향 거제고에서 감독으로 지도자가 됐다. 이후 동의대, 중동고 등에서 학원축구를 지도하고는 K3리그 감독으로 옮겼다. 이 시기 김 감독은 경제적으로 굉장히 쪼들렸다.

그래서 생각한 게 '택시 운전'이었다고.

"K3 감독 대우는 정말 열악합니다. 집에 생활비 주고 나면 한 달 용돈 30만 원으로 살았는데, 차에 기름 넣을 돈이 없을 정도였어요."

K3리그 감독 대우에 대해 김 감독은 "웬만한 중학교 코치보다 못했다"고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밝힌 바도 있다.

김 감독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택시 운전을 할까도 고민했다"며 "하지만 어쨌거나 팀에 매여있는 몸이다 보니 그럴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장어구이집.

"개업할 돈이 어딨어요. 우승 상금으로 받은 300만 원 하고, 주변 지인들이 조금씩 도와줬고, 은행 대출까지 내서 개업했습니다. 그러니 어디 번듯하게 상권이 살아있는 곳에는 엄두도 못 냈고, 허름하게 비어있는 점포 하나를 얻어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은 그의 누나와 매형이 운영하고 있다.

경남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온라인 공간에서는 생계를 위해 화성에 개업했던 '통영장어구이' 식당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장어구이를 먹는 모습을 담은 '성지방문' 인증샷이 올라오고,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 문의하는 글, 꼭 가보고 싶다는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번듯한 프로팀 감독으로서 대우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데도 가게를 접지 않는 까닭을 물었더니 "노후 대책"이라고 말했다. 1965년생인 김 감독은 50대 중반으로 아직은 은퇴를 생각할 나이는 아니지 않을까 싶었지만 "K리그 22개 팀 감독 중 50대는 4명밖에 없다"는 대답을 했다.

K리그 1·2를 통틀어 22명 감독 중 50대는 올해 50이 되는 서울 황선홍 감독을 포함해 실제로는 6명이다. 전북 최강희 감독이 59년생으로 가장 나이가 많지만, 대부분 70년대 초반 출생한 감독들이 K리그를 이끌고 있다. 빠른 세대교체에 김 감독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숨기지 않았다.

김종부 매직 시즌2

선수로서 꿈은 꺾였지만 지도자로서는 일찍부터 부활의 기미를 보였다. 동의대 감독으로 팀을 이끌고 나간 FA컵에서 프로팀인 포항스틸러스를 꺾고 16강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다. K3 리그 화성FC 감독으로 있을 때는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부임한 경남FC 감독. 잇따른 두 전직 대표이사의 구속으로 와해 직전이던 팀을 그는 훌륭히 추슬렀고 2년 차인 지난해 리그 우승이라는 대업을 성취했다.

그의 리더십은 간섭하지 않되 맥은 짚어주는 식으로 구현되고 있다.

경남 선수들은 하나같이 "감독님 말은 곰곰이 되짚어 보면 그 말 속에 답이 있다"고 말한다. 무심한 듯 필요한 지점만 콕콕 집어 말해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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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겨울 남해 전지훈련 중 선수를 지도하는 김종부 감독과 경남FC 선수들. / 정성인 기자

그는 경남에서 말컹이라는 진주를 캐내서 보석으로 잘 가공하고 있다. 지난겨울 이적시장에서도 많은 '원석'을 확보했다. 브라질서 온 네게바, 일본서 온 쿠니모토, 국내 선수로도 하성민 김현훈 김효기 전보훈 김신 이재명 등등. 여기서 또 얼마나 많은 보석이 쏟아질지 김 감독의 조련술과 용병술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여기 온 선수는 전부 프로"라며 "아직 한국 선수는 근력이나 체력이 남미나 유럽 쪽보다 부족한데 이걸 채워주는 정도지 개인 기량은 다 완성돼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학원 축구야 선수들 기량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이므로 가르쳐야 하지만 프로팀에서 감독은 전술을 구상하고 그 전술에 맞는 움직임을 선수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물과 공기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레 맥을 짚어가는 그가 펼쳐낼 '김종부 매직 시즌2'에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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