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시인의 집에 내일의 꿈을 열었던

외로운 고니 한 마리 지금은 지금은 어디로 갔나

속울음을 삼키면서 지친 몸을 창에 기대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미워졌다고

날아도 날개가 없고 울어도 눈물이 없어 없어라

이젠 다시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아아 우리의 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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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만의 큰고니.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가수 이태원이 부른 <고니>라는 노래다. 1970년대 포크 듀오 쉐그린을 거쳐 솔로로 독립한 이태원은 1983년에 <솔개>를, 1984년에 <고니>, 그리고 1985년에 <타조>를 이어서 발표했다. 솔개와 고니, 타조의 생태적인 특성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보다는 젊은이들의 자유에 대한 희구를 이들 새에 비유해 상징적인 메시지로 전달하고 있다. 이처럼 고니는 음악, 발레, 영화, 별자리, 동화에 등장하는 꽤 특별한 새다.

고니는 기러기목 오리과의 겨울 철새다. 키가 1m 50cm에 이르는 대형 조류다. 멀리서 봐도 눈 안에 확 들어올 정도로 하얀 털과 긴 목을 가지고 있다. 겨울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우리나라를 찾아온다. 아침 일찍 호수나 강가에 나가면 하얗게 피어오르는 물안개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며 다니는 고니 무리를 만날 수 있다. 언제 보아도 기품이 묻어나는 고귀하고 우아한 새다.

전 세계에는 아종을 포함해 일곱 종 정도가 분포한다. 큰고니는 유럽, 시베리아에서 번식하며 한국에는 낙동강 하구와 주남저수지, 우포늪 등에서 많은 무리를 볼 수 있다. 울음고니는 큰고니의 아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예전에는 북아메리카에 분포하였으나 점점 개체 수가 줄어들어 지금은 옐로스톤국립공원, 캐나다, 알래스카 일부에 소규모 개체만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니는 큰고니와 거의 닮은 모습인데 크기가 조금 작다. 큰고니보다 북쪽에서 번식하고 우리나라에는 큰고니 무리에 섞여 찾아온다. 큰고니에 비해 부리의 노란색 부분이 적다.

고니의 아종으로는 미국고니가 있다. 혹고니는 코에 둥근 혹이 있고 부리는 연한 붉은색이다. 유럽에서 몽골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에 분포하고, 공원에서 사육되는 종이 많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도심 공원에서 제법 흔하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주로 동해안 석호에서 겨울을 난다. 검은목고니는 남아메리카에서 번식하며 목이 검고 붉은 코 혹이 있다. 흑고니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만 서식하는 특산종으로 온몸이 검고 날개의 날개깃만 희고 부리는 붉다. 혹고니와 마찬가지로 사육되는 종으로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야생에서 관찰할 수 있는 고니류는 큰고니, 고니, 혹고니가 있는데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고니는 백조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유명 발레 작품인 <백조의 호수> 때문에 더욱 강하게 굳혀진 이름이 되었다.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홋호, 홋호'하고 운다고 '혹', 그리고 '하늘의 거위'란 뜻으로 '텬아(天鵝)'라고도 불렀다.

오늘날 쓰이는 고니의 옛날 표기는 '곤이'다. 경남 고성군 마암면에 가면 곤리 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 주민들 말로는 옛날에 갈대밭이었던 곳에 고니가 많이 찾아왔다고 한다. 고니가 많이 찾아오는 마을이라 곤리 마을이 된 것이다. 지금도 인근 마동호에는 종종 고니가 찾아온다. 고니가 노닐던 갯벌과 갈대밭은 현재 간척지로 변했다.

남해 동대만 부근에도 곤유 마을이 있다. 고니가 노닐던 마을이란 뜻이 담긴듯하다. 옛날 사람들은 고니를 잡아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했다고 한다. 고니는 날기 위해 도움닫기를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필요한 새다. 갑자기 다가가 목을 움켜쥐면 꼼짝 못한 채 잡히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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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고니와 오리들.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사천 광포만에도 고니가 찾아오는데 동네 사람들 말로는 활을 쏴 잡은 적이 있다고 한다. 모두 먹을거리가 부족해 눈에 보이는 모든 동물을 무조건 사냥감으로 여겼던 옛날이야기들이다. 남해 동대만과 강진만에도 매년 20마리 정도의 큰고니가 찾아와 겨울을 난다. 최근 몇 년 동안 진주 남강에도 해마다 20마리 내외의 고니를 볼 수 있다. 남강댐 아래 습지원 주변에서부터 진양교 아래 그리고 금산교까지 이동하면서 먹이를 찾아 먹는다. 사람들이 가까이 있어도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많은 개체가 찾아오는 곳은 창원 주남저수지와 합천 정양늪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 후빙기 이후 해수면의 상승과 낙동강 본류의 퇴적으로 생겨난 정양늪은 합천군 대양면 정양리에 있다. 황강의 지류인 아천천의 배후습지다.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로 생물학적, 생태학적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 습지로 보고되어 왔다.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정양늪 생태공원 조성사업'을 3단계로 나누어 추진하였으며 그 결과 정양늪은 생물 다양성의 보고이자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이어주는 생명의 터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500여 마리의 고니들이 겨울 나는 모습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다.

<백조의 호수>는 표트르 차이콥스키 작곡의 발레 음악이다. 작품번호 20번. 전 4막 36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1877년 모스크바에서 초연되었으며,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 음악 중 맨 처음 작곡된 작품이다.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지그프리트 왕자가 우연하게 악마 로트바르트의 저주에 걸려 낮에는 백조의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 여인 오데트와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오데트에게 저주까지 걸어가면서 그녀를 탐낸 악마 로트바르트는 자신의 딸 오딜을 보내 왕자를 유혹하게 했고, 왕자는 계략에 걸려 오딜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 직후 로트바르트가 나타나 오딜과의 결혼을 강요하지만 이를 거부하고 오데트와 지그프리트가 함께 춤을 추고 호수에 몸을 던진다. 이 순간 둘은 사랑의 힘으로 저주가 풀리고 로트바르트는 몰락하고 두 사람은 영원한 행복의 나라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백조의 호수>는 다양한 버전으로 안무나 극 내용을 변화시켜 끊임없이 무대에 오르는 유명한 발레 음악 작품이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에 나오는 주인공도 고니다. 어느 날 오리가 낳은 알들이 모두 부화했는데, 그중 다른 새끼들과는 다른 외모의 못생긴 오리 새끼 한 마리가 있었다. 다른 새끼 오리들은 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 미운 오래 새끼를 괴롭힌다. 힘든 상황에 놓인 미운 오리 새끼는 무리를 떠나 혼자 살아간다. 그러나 다음 해 미운 오리 새끼는 알고 보니 고니의 새끼였다는 출생 비밀이 밝혀지게 된다.

실제로 안데르센은 어려서부터 자신의 신분과 주변 환경에서 벗어나 더 나은 세계로 올라가려는 욕구가 강했다고 한다. 반면에 문법학교 교장은 그의 창작 욕구와 작품을 매도하며 무시하고 악담을 퍼부었다고 한다. 안데르센은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인데 20살의 나이에 십 대 학생들과 같이 문법학교에서 공부한 전력이 있었고 그런 영향으로 자신의 상황을 투영시켜 작품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다.

'미운 오리 새끼'는 생태적 관점으로 보면 조류의 각인 행동이 나타난 결과다. 각인은 태어났을 때 제일 처음 본 동물이나 사람을 자기 엄마인 것으로 착각하는 행동이다. <미운 오리 새끼>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방영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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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이 활동 중인 큰고니들.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고니는 갓 태어난 어린 시기에는 회색에 가까운 잿빛을 띤다. 성장해 가면서 하얗게 변하게 되는데 시베리아 번식지에서 월동지인 우리나라를 갓 찾아온 고니 새끼들 모습도 잿빛에 가깝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끼어 먹이 찾는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새끼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고니는 가족 단위로 생활하며 부부는 평생을 함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수생식물을 먹이로 한다. 긴 목을 이용해 거꾸로 자맥질해서 물속 식물을 뜯어 먹는다. 먹이 활동하는 고니 주변을 따라다니며 고니가 헤쳐 놓은 다른 먹이들을 나눠 먹는 오리들도 볼 수 있다. 정겨운 풍경이다. 봄이 다가오면 수컷과 암컷이 서로 마주 보고 날개를 들어 올리며 큰 울음소리 내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서로 짝을 찾기 위한 구애 행동이다. 짝을 이루게 되면 멀리 번식지로 떠나게 된다.

큰고니와 고니는 주로 러시아 캄차카 반도와 몽골, 동북부 시베리아의 광활한 툰드라 지대에서 번식한다. 전 세계적으로 큰고니는 18만 개체, 고니는 30만 개체 미만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는 약 4000개체가 겨울을 난다. 낙동강 하구에는 약 2000개체 이상이 월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대 월동지다. 낙동강 하구둑 완공 이후 산단 조성, 주거단지 건설, 명지대교 건설 등으로 서식지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

영화 <타짜>에도 곤이가 나온다. 혹시 고니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영화에 나오는 곤이의 이름은 김곤이다. 알고 보면 고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름이다. 생선, 특히 명태의 알집 부위를 고니라고 부르는데 알이 차기 전의 암컷 명태에서 볼 수 있다. 표준어는 고니인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새 고니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이름이다.

태풍 이름에도 고니가 있다. 2015년 8월에 발생한 제15호 태풍 이름이 고니다. 경제 용어에 나오는 '검은 백조 이론'은 블랙 스완에서 따온 말이다. 레바논 출신의 경영학자 나심 니컬러스 탈레브가 맨 처음 제시한 단어다. 블랙 스완은 1790년 영국의 박물학자 존 레이섬에 의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검은 백조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학계에 보고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상황이 실제 발생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없는 줄로만 알았던 검은고니 즉 흑고니가 살고 있는 것이 확인되면서 '검은 백조 이론', 영화 <블랙 스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추운 겨울 두툼한 외투로 무장한 후 아침 일찍 고니 울음소리 들으며 갈대밭 주변을 산책해 보면 야생 동물들의 치열한 삶터를 엿볼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생각보다 가까이 만날 수 있으니 겨울 가기 전에 한 번 찾아가 볼 일이다. 늪과 갯벌을 매립하며 사람들 잘사는 데만 몰두해온 우리네 삶도 한 번쯤 반성해 보는 시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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