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당연히 태극마크죠"

<청소년 드림스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는 유망주를 발굴해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도내 각지에서 받은 추천서를 읽다 문득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시골에 사는 한 초등학생이 또래 나이에서는 힘든 종목인 레슬링을 선택해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아직 레슬링은 전국소년체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은 데다, 초등학생은 재능을 확인하기에는 섣부르다는 판단에서 채택 여부를 두고 망설였다. 하지만 담당 교사의 적극적인 구애(?) 덕에 <청소년 드림스타> 가운데 유일하게 이 학생은 초등학생으로 선정됐다. 지난주 산청 단성초를 찾아가 대한민국 레슬링을 이끌 기대주로 성장 중인 이성재(6년) 학생을 만났다.

살 빼고자 지난해 레슬링 입문…출전 3개 대회에서 모두 금메달 획득

1908년 개교한 산청 단성초는 학교 역사만 100년이 넘어 지역에서는 전통의 명문 초등학교로 불린다.

전교생이 채 80명도 되지 않은 시골의 작은 학교지만, 최근 이 학교는 '레슬링 사관학교'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정식 운동부가 없는 단성초는 인근의 단성중과 연계해 레슬링 꿈나무를 육성하고 있다.

두 학교가 5분 거리가 있어 초등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중학교 체육관에 들어 운동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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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재 산청 단성초등학교 학생. / 박일호 기자

지난해 체육 담당인 단성초 김진호 교사의 제안을 받고 레슬링에 입문한 성재는 지금까지 출전한 3개 대회에서 모두 금메달을 차지하며 기량을 인정받고 있다. 드림스타에 이끈 것고 김 교사다.

"처음에는 살도 뺄 겸 운동을 한 번 해보자고 제안을 했는데, 레슬링이 적성에 맞았는지 출전하는 대회마다 우승해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주위에서 관심을 기울여준다면 대성할 수 있을 것 같아 <드림스타>의 문을 두드리게 됐습니다."

성재가 레슬링에 입문한 건 5학년이던 지난해 3월이었다. 방과 후 재미 삼아 단성중 레슬링부를 찾았고, 한 달도 되지 않은 3월 26일 처음 출전한 제34회 회장기 전국레슬링대회에서 기적처럼 우승을 차지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어 4월에 열린 경남초중학생종합체육대회와 11월 제10회 전국레슬링대회에서도 금메달은 성재의 몫이었다.

지금껏 성재는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는 전승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살을 빼려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솔직히 지금 더 쪘어요. 학교를 대표해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내니 주위에서도 좋아해 운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키가 167㎝로 또래보다 큰 편이고 무제한급에 출전할 만큼 체격조건도 좋지만, 여학생들이 장난을 쳐도 웃어넘길 정도로 성격도 좋다.

성재의 담임인 김미연 교사도 적극 응원하고 있다.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레슬링' 이야기를 하던 성재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던 걸 기억합니다. 학교 소모임의 장을 맡을 만큼 책임감도 강한 학생이에요."

농기계 고치는 아버지, 조부모와 함께 생활

성재는 아직 정식 선수가 아니어서 방과 후에 단성중 레슬링장을 찾는다.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장난도 치고, 쉬는 시간이면 제일 먼저 운동으로 달려나가는 영락없는 초등학생이지만, 레슬링복만 입으면 진지하게 바뀐다.

이를 지켜보던 교사들도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 묵묵히 레슬링장으로 향하는 성재를 보며 놀랄 때가 잦았다고 귀띔했다.

운동선수는 잘 먹어야 하고, 주위의 뒷바라지도 필요하지만 성재네 집안 형편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다.

성재가 어릴 적에 당한 교통사고로 몸이 불편한 아버지는 동네에서 농기계를 고쳐주는 일을 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함께 살다 보니 주위의 도움 없이는 생활이 어려울 때가 잦다.

그렇지만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각별하다. 넉넉잖은 형편에도 아버지는 성재가 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오면 동네 사람들을 불러 고기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그동안 돈 번다고 바빠 제대로 신경도 못 써줬는데 그늘 없이 커 준것에 만족합니다. 운동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몸만 다치지 말라고 했는데, 나가는 대회마다 금메달을 따와 요즘 자식 키우는 보람을 한껏 느끼고 있습니다."

승부 근성, 유연성 뛰어나 기대주로 우뚝

그렇다면, 전문 지도자가 바라본 성재의 재능은 어떨까?

단성중 레슬링부 권경우 코치는 성재가 '레슬링에 재능이 있는 선수'라고 인정했다.

권 코치는 기술을 가르쳐주면 응용력이 좋고, 승부 근성이 있어 훈련보다 시합에 강한 선수라고 평가했다.

"성재는 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유연성과 승부 근성이 뛰어납니다. 특히 지난해 겨울 형들의 동계훈련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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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재 산청 단청초등학교 학생. / 박일호 기자

성재는 16일 태릉선수촌에 갔다. 대한레슬링협회가 주최하는 꿈나무선수 선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레슬링 꿈나무에 선발되면 협회 차원의 체계적인 기술과 훈련을 받을 수 있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국가대표가 되는 꿈을 매일 꾸고 있어요. 이번 꿈나무 선발대회가 첫 출발인데,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언젠가 성재를 <드림스타>출신 1호 국가대표로 다시 인터뷰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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