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소나무의 고향에서 김삿갓을 만나다

모터사이클을 타는 지인들과 경북 북부지역으로 1박 2일 모토캠핑을 다녀왔다.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의 한 주 휴일은 금요일과 토요일이지만 여행을 함께 할 사람들이 쉬는 날은 토요일과 일요일이기에 일요일 하루 휴가를 냈다.

우리는 경북 북부와 강원도 남부, 충북 동부지역이 만나는 곳, 즉 삼도 접경지역을 목적지로 정했다.

미리 사놓은 케냐AA 원두를 전날 밤에 수동 그라인드로 갈아 병에 담았다. 드리퍼와 거름종이, 주전자까지 함께 챙겼다. 캠핑을 해보면 늘 아쉬운 것이 맛있는 커피다. 고기와 술은 얼마든지 현지에서 구해 구워 먹고 마실 수 있지만 커피는 기껏해야 봉지 커피로 텁텁한 입을 달랠 수밖에 없다. 구운 고기와 소시지로 느끼해진 입을 깔끔한 드립 커피로 씻어주면 정말 행복할 텐데 숲속에서는 그럴 수 없으니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여행을 함께 하는 지인들도 여기에 동의한다. 그래서 외딴 숲속에서도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내는 것이 내 임무가 되었다. 다른 분들께 고기를 얻어먹고, 나는 맛있는 커피를 대접하면 상부상조 아닌가. 효율적인 분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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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안동시 부용대. 부용대에 오르면 하회마을과 마을 휘감아 흐르는 낙동강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 조재영 기자

 

다부동전적기념관

오전 7시, 창녕 5번 국도 화왕산휴게소에서 세 사람이 만나 북쪽으로 향했다. 현풍, 고령, 성주를 거쳐 칠곡을 지난다. 첫 번째 목적지가 안동 하회마을 건너편 부용대였는데 칠곡에서 안동으로 가려면 군위, 의성을 거쳐 가야 한다. 칠곡에서 의성으로 가는 길에 큰 고개를 하나 넘자마자 다부동전적기념관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다부동전투는 1950년 8월과 9월,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방어선을 지키던 국군 제1사단이 이곳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서 미군과 함께 북한군 3개 사단을 격멸한 전투다. 당시 북한국 2만 4000명, 한미연합군 1만 명이 사상했다. 북한군은 이곳 다부고개를 점령하게 되면 대포로 대구까지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을 차지하고자 2만여 명의 병력과 T-34 전차 34대 등 병력과 화기를 이곳 전투에 집중 투입했다. 국군은 학도병 500명을 포함해 7600여 명의 병력과 보잘것없는 화기로 북한군에 맞서 이곳을 지켜냈다. 이후 국군은 미군 제1 기병사단과 임무 교대했는데, 미군은 이곳을 북한군에게 뺏겼다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반격해 이곳을 탈환했다.

전적기념관에는 한국전쟁 당시 활약했던 전차와 대포, 항공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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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에 있는 다부동전적기념관. 한국전쟁 당시 사용되던 전차 등을 배경으로 여행을 함께 한 지인들을 담았다.
모터사이클 왼쪽은 혼다 ST1300, 오른쪽은 BMW F800GS 모델이다. / 조재영 기자

 

안동 부용대와 경암정사

우리나라에서 모터사이클 여행을 할 때는 길잡이가 아주 중요하다. 자동차로 다니면 고속도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내비게이션을 쓰기도 쉽고, 고속도로 체계가 워낙 잘 되어 있어서 처음 가는 곳이라도 목적지 지역까지는 수월하게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모터사이클은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지리와 일반국도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앞장서 달려야 한다. 이번 여행 길잡이는 화물운송업을 하는 지인이 맡았다. 전국에 화물을 실어나르는 일이 생업이니 전국 도로가 그의 머릿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 든든하고 고맙다.

3대 모터사이클 행렬은 5번 국도를 타고 군위, 의성을 거쳐 안동으로 접어들었다. 안동시가지 외곽을 돌아 하회마을 건너편에 도착했다. 부용대에 오르려면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 겸암정사 앞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올라가거나 하회마을에서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 절벽 아래에서 걸어 올라야 한다. 우리는 겸암정사 앞에 주차하고 천천히 걸어서 부용대에 올랐다. 부용대에 오르면 하회마을과 하회마을 휘감아 도는 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은 얕고 맑으며 천천히 흐른다. 강바닥은 모래다. 그래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바닥의 모래 무늬는 물론이고 큰 물고기가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하회마을이 아니라 부용대를 목적지로 잡은 것은 그동안 하회마을은 이런저런 기회에 몇 번 다녀왔지만 부용대는 한 번도 올라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함께 간 지인들도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맑은 날씨와 옛 마을, 그리고 낙동강이 어우러진 풍경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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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 하회마을 건너편 부용대 아래 겸재정사가 있다. 정자 마루에 앉으면 시원한 강바람을 맞을 수 있다. / 조재영 기자

 

 

부용대에서 내려온 우리는 겸암정사에 들렀다. 겸암정사는 퇴계 이황의 제자인 류운룡(1539~1601)이 학문 정진과 제자 양성을 위해 지은 정사다. 겸암정 마루에서 강과 하회마을, 송림을 볼 수 있고 마당에서 몇발자국만 내려서면 강에 닿는다. '겸암정' 현판은 퇴계가 '군자는 겸손하여 스스로 자기 몸을 낮춘다'는 뜻을 담아 써준 것이라고 한다.

영월 김삿갓 유적지

다음 목적지는 김삿갓 유적지다. 안동에서 영주를 거쳐 강원도 영월로 이동했다. 김삿갓 유적지는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에 있는데 이 일대는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와 경북 영주시 부석면 임곡리 등 강원도와 충청도, 경상도 접경지역이다. 김삿갓면은 원래 하동면이었는데 1982년 김삿갓의 묘가 발견된 이후 2009년 10월 김삿갓면으로 이름을 바꿨다. 행정 지역 명칭을 역사적 인물의 별명을 따서 바꾼 것은 참으로 기발하다 싶다.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알려져 있는 난고 김병연(1807~1863)은 과거시험에서 홍경래의 난(1811년) 때 홍경래에서 항복했던 선천부사를 비판하는 내용을 적어 급제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천부사가 자신의 할아버지였다. 그는 그길로 벼슬을 버리고 세상을 떠돌았다.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하여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서 김삿갓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전국을 방랑하며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즉흥시를 남겼다. 전라도 화순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그 아들이 3년 후에 이곳 태백산자락으로 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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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에 있는 김삿갓 묘. / 조재영 기자

 

 

김삿갓 묘소 주변에 조형물 등이 설치되어 있고, 그곳에서 마대산 정상 쪽으로 약 1.8km 오르면 김삿갓 생가가 있다. 묘소에서 큰길을 건너면 김삿갓문학관이 있다. 묘소 앞에는 묘를 보살피는 관리인이 있는데 마치 조선시대 선비 같은 모습이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김삿갓 묫자리는 태백산맥이 끝나고 소백산맥이 시작되는 곳으로 천하명당이다. 그는 "여기 묘소 빼놓고 딴 데 다 둘러봤자 아무 소용없다. 묘소를 둘러봐야 좋은 기운을 얻는다"고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그 말을 듣고 김삿갓 묘를 한 바퀴 더 돌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랴? 김삿갓의 한평생을 돌아보면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춘양목

1박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 우구치공원 쉼터에서 하기로 했다. 우구리치라는 지명이 독특하지만 왜 우구치인지 설명을 찾을 길이 없다. 검색해 보니 우구치마을이 있고 광산이 많은 지역이라는 설명이 있을 뿐이다.

춘양면은 춘양목의 집산지였다. 흔희 '금강소나무'로 알려져 있는 질 좋은 소나무가 봉화, 울진 일대에 많이 났다.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숲에는 500살이 넘는 소나무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들 소나무는 춘양을 거쳐 외지로 팔려나갔으며 안동을 비롯해 한양의 세도가들은 모두 이 춘양목으로 집을 지었다.

우구치리를 지나는 춘양로를 따라가다 보면 우구치리 휴게소가 있고 그 옆에 야영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만들어져 있다. 내리천 옆 평지에 소나무 수십 그루가 있다. 우리는 그 아래 텐트를 쳤다. 산골짜기 5월 초의 밤은 추웠다. 가지고 간 여분의 옷을 껴입고 모닥불 옆에 둘러앉아 고기와 소시지를 구워 먹었다. 맥주잔도 오갔다. 술을 전혀 못 하는 나는 콜라와 매실 음료수를 술이라 치고 마셨다. 기분 좋은 밤이었다. 하지만 잠들 때는 많이 추웠다. 핫팩이 없었더라면 밤새 떨어야 했을 것이다. 핫팩은 침낭 속의 축복이었다. 핫팩 덕분에 침낭 속에 있는 몸은 견딜 만했지만 얼굴이 시렸다. 지인에게 배운 대로 얼굴에 수건을 덮었다. 수건의 보온성능은 의외로 뛰어났다. 숨쉬기도 불편하지 않았고 얼굴도 시리지 않았다. 물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수건은 머리맡에 흘러내려 있었다.

앞뒤로 산속에 갇힌 우구치리의 아침은 늦게 시작됐다. 8시가 넘어서야 동쪽 산능선 위로 해가 솟았다. 아침 추위에 불을 피우고 절임 불고기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했다. 그리고 준비해간 커피로 입가심을 했다. 행복한 아침이었다. 아침을 해 먹는 동안에 텐트 외피를 뒤집어 말렸다. 습기를 완전히 말리지 않은 채 넣어두면 십중팔구 곰팡이가 피기 때문이다.

닭실마을과 청암정

텐트를 걷고 짐을 챙겨 출발한 것은 9시가 지나서였다. 이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춘양목의 본산에 왔으니 춘양목으로 지은 건축물도 보고 가기로 했다.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 안동권씨 집성촌 닭실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관리였던 충재 권벌(1478~1548)이 이곳에 터 잡고 살면서 후손들이 자리를 잡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닭실마을이라는 이름은 황금 닭이 알을 품고 있는 지형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마을 뒤쪽은 나지막한 산으로 이어지고 마을 앞은 작은 들판이 있는데 그 들판 가장자리를 따라 내성천이 흐른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다. 마을은 길게 이어져 있는데 그 끝에 충재 권벌의 고가가 있고 그 안에 청암정이 있다. 충재 고가는 춘양목으로 지은 대표적인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청암정은 권벌이 이곳에 살 때 시문을 논하던 정자인데 그 모양이 아름답다. 크고 넓적한 바위 위에 정자를 지었고 바위 주변은 물길을 만들어 작은 다리를 건너야만 정자로 건너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작은 연못 가운데 너럭바위가 있고 그 위에 정자를 지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담장을 따라 오래된 소나무와 왕버들, 향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어 그 아름다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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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봉화군 봉화읍 닭실(달실) 마을에 있는 청암정. 넓적한 바위 위에 정자를 짓고 바뒤 둘레에 물길을 내면서 담장을 따라 여러가지 나무를 심어 운치를 더했다. / 조재영 기자

 

청암정 밖에는 유물전시관이 있다. 청암정과 유물전시관에는 후손들이 상주하며 이곳을 찾는 이들을 안내하고 있다. 이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관광객이나 사진가들이 청암정 아무 곳이나 마구잡이로 드나들며 사진을 찍는 것이다. 그냥 내버려 두면 아름다운 청암정이 훼손되는 것은 금방일 터이다. 그래서 정자로 건너가거나 줄을 쳐놓은 곳을 넘어 들어가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었다. 조상이 물려준 소중한 유산을 훼손하지 않고 지켜가려는 그분들의 애씀을 이해한다.

청암정은 앞에서 봐도, 멀리서 봐도 참 멋스러운 건축물이었다. 비록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인공과 자연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이었다. 동행한 이들도 닭실마을에 와서 청암정을 보길 잘했다고 말했다. 이런 여행이 아니면 언제 청암정에 와보겠느냐고….

그길로 우리는 남쪽으로 향했다. 중간에 의성에서 점심을 해 먹고 다시 달렸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도착해서 트립미터를 확인했더니 570km였다. 그동안 약 1만 km를 달린 뒷타이어가 다 닳아서 세로로 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로줄은 당장 새 타이어로 교체해야 한다는 신호다. 대형모터사이클 뒷타이어 하나 값은 중형승용차 고급타이어 2개 값을 훌쩍 넘는다. 그마저도 승용차 타이어는 적어도 5만km를 주행할 수 있지만 대형모터사이클 타이어는 마일리지가 1만km 남짓이어서 가성비로 따지면 형편없다. 월급쟁이 지갑이 더 얇아지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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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봉화군 봉화읍 닭실(달실이라고도 한다) 마을. 마을 왼쪽 끝에 청암정이 있다. / 조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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