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전문성’ 강조…농약시험 도입 직접 문제 출제하는 농민 조합장

CEO는 재능보다 '뚝심'이 강조되기도 한다. 철학을 가지고 끝까지 해내려는 노력과 인내, 때론 비난도 굳세게 버티거나 감당해 내는 힘이 요구된다. 새고성농협 곽근영(63) 조합장은 '뚝심 리더십'으로 고성 농민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있다. 스스로 "농협 직원들이 안 좋아할 조합장 타입"이라는 곽 조합장은 전 고성군의원 이력을 지녔다. 1·3대 군의원 출신인 곽 조합장은 지금까지 특정 정당에 소속된 적이 없다. 뚝심 리더십으로 평가받는 첫 번째 이유다. 조합장이 농약 관련 문제를 내고 전 직원이 시험을 보는 것은 전국에서도 유일무이한 듯하다. 돈으로 지급해오던 직원 피복비 지원을 끊고 작업복을 맞춰서 일괄 지급하고 있다. 엄부출효자(嚴父出孝子)라 했던가, 새고성농협은 엄한 조합장이 3선 연임하면서 직원을 농민들의 효자로 성장시키고 있다.

농민으로서 농민 마음을 읽다

곽 조합장은 40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지금도 쌀과 고추 재배로 출근 전 하루 두 시간은 부인과 함께 손과 발을 걷어붙이고 있다. 농민 입장 대변하고자 군의원에 나서기도 했다.

"경상도는 여당세가 세다 보니 군의원 시절에도 정당 가입 권유가 많았습니다. 여당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저는 농사꾼이니깐 농민 대변에 앞장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적을 가지는 게 이중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부(여당) 농업 정책은 A인데, 농민들이 진정 바라는 건 그 반대인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군의원 시절,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반대하면서 의회에서 머리띠 두르고 항의했습니다. 오히려 농민들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눈이 어둡고 글 모르는 연로한 조합원을 위한 마음은 농협 직원 농약 시험으로 이어졌다. 새고성농협은 최대한 다양한 농약을 갖춰 농민들이 선택하게 하고 전 상품을 5~10% 할인 판매하고 있다. 휴일 당직을 서는 직원이 농약 종류나 효능을 몰라 '농협 전문성'이 언급되자 3년 전부터 전 직원이 1년에 2번, 농약 시험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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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영 새고성농협 조합장. / 김구연 기자

"모든 약이 그렇듯, 치료약은 비싸도 예방약은 쌉니다. 처음부터 다양한 작물 병을 예방할 수 있도록 농약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어르신들은 눈도 어둡고 귀도 어두워 직원들이 권하는 농약을 선택하는 때가 왕왕 있습니다. 이럴 때 농협 직원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농약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농민들은 각종 병해충에 선호하는 농약이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작물 병을 이해하고 관련된 농약 2~3개만 달달 외우면 됩니다. 3년 전부터 필기시험을 치고 있는데 성적은 80점 이상자가 많습니다. 작년에는 만점자도 3명 나왔습니다. 농협 직원들도 각자 일에 바빠 억지로 시험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직접 농사를 짓기에 개선돼야 할 부분이 보이고, 조금만 신경을 쓰고 마음 쓰면 되는 일들입니다."

농약 병에는 손 글씨로 20리터 등 큰 숫자도 쓰여 있다. 곽 조합장은 농약을 판매하면서 사용법도 꼭 설명할 것을 직원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곽 조합장은 스스로 엄한 조합장이라고 칭하며 직원들로부터 인기가 없다고 말했다.

"2년 전부터 변동상여금 중 200%는 일률적으로 지급하고, 100%는 차등지급했습니다. 등수는 없고 개인별 목표를 각자 정하고 이를 달성하면 지급됩니다. 각자 개인 목표를 정했음에도 따라오지 못하는 직원이 있습니다. 농협 전체가 일하는 분위기, 의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시행했지만 상여금을 받지 못한 일부 직원은 자존심이 상했을 겁니다. 뒷말이 들리지만 조합장이 대신 받아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도 변함없는 운영방침입니다."

생명환경쌀 새고성농협 새 먹거리로

경남 고성 서남쪽 산간과 해안지역에 있는 농촌형 농협인 새고성농협은 1998년 5개 농협(구 상리·삼산·하일·하이·영현)을 합병해 5개 면을 관할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총인구 9101명(총 3495가구) 중 조합원 수는 2477명이다. 특색사업으로는 고성군과 연계한 친환경 쌀과 찹쌀을 판매하는 생명환경농업이다. 고성 생명환경쌀은 친환경 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생명환경쌀은 명칭 자체가 브랜드입니다. 이학렬 전 군수가 '농업 신바람'을 일으키고자 생명환경농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농약·화학 비료·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우렁이 농법을 활용해 한약재로 재배한 쌀입니다. 행정에서 지원은 하되 직접적으로 판매를 못 하니 농협에서 고성 전 지역에서 생산하는 생명환경쌀을 판매해야 한다고 했지만 나서는 곳이 없었습니다. 단가가 높아 판매 어려움과 손해가 눈에 보였던 거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뜻 나서지 못하다 1년 고민 끝에 농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생명환경농업 판매 사업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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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영 새고성농협 조합장. / 김구연 기자

농협 매입가가 일반 벼보다 2만 원(한 포대 기준·40kg) 높아 판매가격 역시 올라간다. 명품 쌀로 서울 강남 대형마트에 입점해 판매도 곧잘 됐지만 40% 수수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이내 철수했다. 생명환경농업에 대한 인식이 낮아 농협이 사업 관련 적자를 볼 만큼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고성군 내 생명환경쌀 재배면적은 420㏊(고성군 전체 쌀 재배면적 9%)로 2011년 600㏊보다 30%가량 줄었다. 곽 조합장은 지금은 운영에 어려움이 있지만 생명환경농업에 확신을 하고 있다.

"생명환경쌀은 대부분 학교 급식소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5년 경남도와 경남도교육청 감사 갈등으로 무상급식 중단 사태가 왔고 우리도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입찰로 식자재 업체를 선정하다 보니 감사 표적이 될까 봐 쌀만 따로 수의계약 하려는 학교장이 없는 실정입니다. 경남 내에서 재배하는 벼는 지역에서 소비할 수 있도록 오히려 행정 지원으로 독려해야 하지만 감사 때문에 학교에서 친환경 쌀을 꺼려 판로가 막힌 셈입니다. 인구가 적고 농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자체에서 생산하는 쌀을 판매하는 길은 친환경 고품질이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지역민 인식과 행정 마인드는 아쉬움이 큽니다."

곽 조합장은 자구책을 마련했다. 현재 새고성농협은 일반 쌀로 만든 떡국 떡을 판매하고 있다. 고성농업기술센터와 친환경 쌀로 즉석 떡국 떡과 쌀 빵을 연구 중이다. 정부 향토사업을 활용해 9월이 되면 생명환경쌀로 즉석 떡국, 떡볶이, 쌀 빵을 판매할 예정이다.

새고성농협하면 자동 연상되는 것이 '취나물'이다. 해풍을 맞는 고성 취나물은 특유 향이 진해 인기다. 곽 조합장은 선거 공약으로 취나물 산지공판장 개설을 채택했고 2011년 하일지점 취나물 공판장을 개장했다. 농민들은 취나물을 10㎏ 봉지에 담아두기만 하면 농협 직원이 거둬들여 경매 후 입금까지 마무리한다. 농사 피로감을 던 조합원들은 고맙다는 표현으로 곽 조합장에게 '3대 조합장' 타이틀을 선물했다.

생명환경쌀 판매 확대와 함께 곽 조합장이 꾀하는 것이 문화사업이다.

"이곳은 65세 이상 농민들이 문화를 누릴 곳이 없습니다. 학교를 빌려서 박사, 학자를 초빙해 세상 돌아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조합원들과 나누고 싶어요. 글도 모르는 조합원이 많아 처음은 어렵겠지만 자꾸 접해야 조합원이 변하고 고성도 변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새고성농협은 왜 '새'고성 일까

스스로 "직원한테는 인기가 없다"는 곽 조합장이지만 어르신들에게는 꽤 인기다. 셋째 아들인 곽 조합장은 제대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부모님을 모시면서 경험도 없이 농사를 시작했다. 

"젊을 때부터 사회 활동을 많이 해서 술자리가 잦았지만, 부모님은 제가 취한 모습을 모릅니다. 그게 몸에 배었는지 어르신들 앞에서는 늘 조심하게 됩니다. 어머님이 93살 되던 해 작고하셨는데, 노인정을 찾아 93세 어르신을 만나면 '1년만 더 사세요'라고 말합니다. 제가 어머님을 1년만이라도 더 모시고 살았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간절한 탓인지, 손이라도 한 번 더 맞잡게 됩니다. 연로하신 조합원을 더 깍듯하게 대해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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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근영 새고성농협 조합장. / 김구연 기자

곽 조합장은 '새'고성농협 조합장이다. '새롭다'는 의미가 연상되지만 곽 조합장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5개 면이 합쳐 농협을 만들면서 1개 면 이름으로 대표할 수도 없었을 테고, 고성농협은 이미 있으니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의미가 분명할 겁니다. 이전에 바르게살기운동 고성군협의회회 회장을 한 적이 있는데 이름이라는 것이 족쇄가 돼 스스로 더 바르게 살고, 조심하게 되더라고요. 이와 비슷합니다. 가끔 '새고성이면 새로운 게 뭐냐?', '다른 농협보다 더 새로운 건 뭐냐'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새고성이란 이름에 맞도록 전 직원이 더 노력하게 하는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하."

그래서 새고성농협이 다른 농협보다 새로운 건 뭘까 하는 질문이 이어진다. 곽 조합장은 대답 대신 하나의 사례를 들었다.

"부당하다 싶은 일에는 저는 옹고집을 부립니다. 5개 면을 합치다 보니 초기 농협 대의원이 102명이었습니다. 이사도 1개 면에 2명씩 10명에 대표이사, 여성이사, 상임이사, 사외이사 등 10여 명을 훌쩍 넘겼습니다. 감투 쓴 사람만 이렇게 많아서는 농협이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어 현재 대의원은 70명, 이사는 저를 포함해 9명으로 줄였습니다. 자리를 줄이는 과정이 전혀 쉽지 않았지만 농협 살림살이를 줄여 조합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밀어붙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새고성농협 운영의 발판이 됐다고 봅니다."

곽 조합장이 '뚝심 리더십'으로 평가받는 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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