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처럼 소박하고 흙 내 나는 평범한 보통 사람의 정서를 수필에 담아낼 것"

<아름다운 배경> 등… 40여 권의 책 집필

조용한 전통찻집에서 정목일(72) 수필가를 만났다. 올해로 등단 43년. 지난 1975년 <월간문학>에서 '방'이라는 작품으로 수필 부문 첫 당선자가 됐고, 이듬해 <현대문학>에 작품 '호박꽃', '어둠을 바라보며'라는 작품을 내면서 수필 부문 첫 당선자가 됐다. 수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던 시절 문단을 통해 배출된 첫 신인 수필가가 됐다. 1979년 신문사 기자로 입사하면서, 글 쓸 시간이 더 많이 줄어들면서 소설가를 꿈꾸던 청년은 새롭게 수필가로 방향을 바꾸게 됐다. 20여 년간 문화부 기자 등으로 활동했던 그는 퇴사 후 문학에 더 매진했다.

문단 추천 1호 수필가였던 만큼 등단 후 원고 청탁도 집중됐고, 문인들의 관심도 받았다. <현대문학> 출신자들끼리 만든 현대수필작가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월간문학> 수필 등단자들도 수필동인회를 꾸렸고 여기서도 회장으로 활동했다. 고향인 진주에서도 경남수필문학회를 만들어서 어느덧 40여 년간 단체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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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목일 수필가. / 박일호 기자

지금까지 낸 책만 40여 권. 지난해 11월에 낸 <아름다운 배경>이 가장 최근 책이다. 범우사 문고판인 이 책에는 그동안 쓴 수필 중 30여 편을 가려 뽑았다. 독자들에게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 위주로 골랐다. '차 한 잔', '풀꽃 이름', '저물녘의 플루트', '풍경소리', '섬진강의 봄', '논개의 가락지', '사투리' 등의 수필이 실렸다. '논개의 가락지'는 2003년 제7차 교육과정 고교 '독서' 교과서(주 금성사)에 수록됐고, '사투리'는 2012년 중학교 3-1학기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정목일 수필가는 특히 자신이 존경하는 피천득 수필가가 1호로 책을 낸 범우사 문고판 책에 이름을 올리게 돼서 더 기쁘다고 말했다.

작가는 피천득 수필가와 인연이 있다. 피천득 수필가의 대표 작품인 '수필', '인연', '오월' 등의 작품을 외우다시피 한다. 수필을 교과서 '수필'이라는 작품으로 접했던 그는 한 수필 행사에 피천득 수필가를 초청했고, 이때 만남을 계기로 인연을 맺었다. 정목일 수필가는 피 수필가의 행사 참석에 크게 감동을 했고, 이후 유명을 달리하기 전까지 10여 년간 만남을 이어갔다고 한다.

피천득 선생의 집을 방문하고 받은 느낌을 '수정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1990년대 <현대문학>에 싣기도 했다. 가장 존경하는 수필가를 물으면, 주저 없이 피천득 수필가를 꼽는다.

수필가가 낸 책을 보면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강 부근의 겨울 나무>(1980년), <한국의 영혼>(1980년), <별이 되어 풀꽃이 되어>(1983년), <만나면서 떠나면서>(1986년), <달빛고요>(1986년), <별 보며 쓰는 편지>(1988년), <모래알 이야기>(1988년), <한국의 영혼>(1988년), <깨어있는 자만이 숲을 볼 수 있다>(1990년), <인민광장의 왈츠>(1992년), <나의 해외문화기행>(1994년), <대금산조>(1994년), <심금>(1998년), <가을금관>(1999년), <행복이 넘치나이다>(1999년), <목향>(2000년), <마음꽃 피우기>(2002년), <달이 있는 바다>(2004년), <침향>(2005년), <우리가 알아야 할 한국의 아름다움 77가지>(2005년), <마음 고요>(2007년), <실크로드>(2007년), <내가 갖고 싶은 것들>(2008년), <모래밭에 쓴 수필>(2008년), <햇살 한 줌 향기 한 줌>(2009년), <티베트, 터키, 그리스, 이집트를 가다>(2010년), <찬 한 잔 하세>(2010년), <지금 이 순간>(2012년), <나의 한국미 산책>(2014년), <맛 멋 흥 한국에 취하다>(2014년), <한국 서정공간의 미>(2015년), <나무>(2015년), <아름다운 배경>(2016년) 등이다.

음악, 의상, 음식, 놀이를 소재로

모든 책이 작가에게 중요하지만, 이 중 <대금산조>, <나의 한국미 산책> 등을 대표 책으로 언급했다. <대금산조>는 대금 명인이 부는 소리를 들으면서 한국적인 음률,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담아냈다. <나의 한국미 산책>은 인간문화재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춤, 노래 등을 듣고서 감명을 받은 내용을 적었다. 음악, 문학, 의상, 음식, 놀이 등을 소재로 삼았다.

"처음 수필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한국 전통미를 지금 현대에 맞춰서 재발견, 재음미할 수 있게 계승할지 고민했습니다. 우리 겨레의 멋, 맛, 흥을 계승, 발전시키는 글을 쓰고자 했습니다."

수필은 논픽션이다. 없던 사실을 있는 것처럼 상상해서 꾸며 쓰는 픽션과 다르기에 자신이 체험한 것, 깨달은 점이 글에 드러난다.

"수필은 인간이 곧 수필입니다. 마음의 경지가 수필의 경지예요. 그러니까 그 사람에서 향기가 나야 수필에서도 향기가 납니다. 그 마음이 맑고 투명하고 아름다워야 글도 그렇게 됩니다. 끊임없는 인생의 연마가 필요해요.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서 감동을 전하지 못하면 수필에서도 그런 향기나 감동이 없습니다. 수필은 글재주가 아니에요. 수필은 끊임없이 마음을 닦고, 그 속에서 인생적 발견을 꽃피워내는 노력의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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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목일 수필가. / 박일호 기자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여실히 남기고자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많은 문학 장르 중 수필가가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수필가협회 명예이사장이면서 연세대 미래교육원,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롯데백화점 본점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을 강의하고 있기에 수필 인구에 대한 설명이 가능했다.

"수필을 쓰는 인구는 시 다음입니다. 한국문인협회 1만 4000명 회원 중 시가 55%, 수필이 30%예요. 운문에는 시고, 산문에는 수필의 시대입니다. 평균 학력이 높아진 사람들이 남의 글을 읽는 것보다 '나의 삶, 나의 인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록을 하고자 수필이라는 장르를 택하고 있어요."

일상의 사소함에서 소재 발견해야

일회성 존재인 삶을 영원한 삶으로 남기고자 수필을 쓰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 과거에는 수필을 40대 문학이라고 했는데, 최근에는 60대 은퇴자들이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수필 강의를 듣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수필을 쓸 때 염두에 둘 부분도 언급했다.

"수필을 쓸 때 자기 일생에서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 찬란한 것 등에서 소재를 삼으려고 합니다. 일생에서 그런 일은 5가지에서 10가지 정도뿐이에요. 일상의 사소함에서 소재를 발견해야 합니다. 18세기 독일 시인 노발리스는 보이는 것에 닿아있는 보이지 않는 것, 들리는 것에 닿아있는 들리지 않는 것, 생각에 닿아있는 생각 나지 않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쓴 수필만 대략 1000여 편에 이르는 수필가의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지금까지 써 온 서정 수필뿐만 아니라 명상적, 테마적 수필을 쓰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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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목일 수필가. / 박일호 기자

"죽을 때까지 글을 쓰겠습니다. '정목일'하면 서정 수필이라고 하는데 새롭게 명상적, 테마적인 수필을 전개하고자 합니다. 시도를 많이 했지만, 사람들이 아직 잘 모릅니다."

또,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소박한 글을 이어갈 것이라고도 했다.

"피천득 선생은 수필을 그릇에 비교하면 청자에 비유했습니다. 저는 보통 사람의 삶 정서를 어떻게 오롯이 수필로 피어 올릴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제 수필은 꽃으로 비유하면, 호박꽃, 박꽃, 민들레다. 소박하고 흙내 나는 서민 정서를 제 방식대로 쓰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쓴 수필 중 좋은 작품을 뽑아서 대표 선집을 낼 계획도 갖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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