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경찰관에게 듣는 경찰 내부개혁 방안

"반성하고 연구하고 토론해야 한다."

국정농단 사태를 보면서 공직자들이 느끼는 자괴감은 크다. 실시간 생중계되는 혼란스런 정국을 보노라면 그러고 남을 일이다.

경찰 또한 마찬가지다. 권력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내부개혁을 위해 철저하게 반성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고민하는 경찰관들도 있다.

'폴네띠앙'이라는 전국 경찰관 커뮤니티가 있다. 경찰 조직에서 개혁론자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공론장이다. 류근창(48·경위) 폴네띠앙 회장을 만나 경찰 내부개혁에 대한 고민을 들어봤다. 그는 21년째 경찰직을 수행 중이다. 서울에서 시작해 고성경찰서, 마산중부경찰서, 경남경찰청에서 근무하며 파출소, 수사, 소년범죄, 112지령실, 정보 분야를 거쳤다. 현재는 경남경경찰청 정보과 정보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찰 개혁을 위한 인터넷 커뮤니티, 폴네띠앙

Q. 먼저 '폴네띠앙' 소개를 해주세요.

"2000년도에 만들어졌습니다. 폴리스와 네티즌 합성어인데 경찰 조직에서 개혁론자, 불합리한 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토론하는 모임입니다. 회원은 전국 곳곳에서 활동하는 300명 정도 돼요. 저는 2005년부터 활동을 시작하면서 부산경남 총무, 전국 부회장을 하다 지난해 6월부터 회장을 맡았습니다. 오프라인 모임도 하고 있습니다."

조직 내에서 모난 소리를 하는 이들은 흔히 돈키호테나 꼴통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불순분자'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발끈했다. 어느 조직이든 순기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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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근창 경찰 개혁 커뮤니티 폴네띠앙 회장. / 박일호 기자

Q. 21년 경찰 생활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경찰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지나친 관료주의라 볼 수 있습니다. 계급 지상 우선주의, 계급과 보직에 의해 평가되는 것인데,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지만 이제는 국민도 그 구조에 따라가는 것 같아요."

Q. 결과만 중시하고 승진에만 목을 매는 구조가 됐다? 관리자 처지에서는 서로 경쟁을 붙여 성과를 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경쟁이라는 것은 CEO적 입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과주의를 봅시다. 그야말로 성과에 의해 사람과 조직을 평가하는 것인데. 경찰에게 성과가 뭐가 있을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 국민이 좋아하는 성과, 약자를 보호하는 것, 그런데 눈에 띄는 숫자로 평가하니까 범인 검거 지수, 구속영장 발부율 등입니다. 어느새 성과를 위한 성과가 돼 버렸습니다. 경찰청이 관심을 두고 많이 완화하려고 하지만… 보완을 해야 합니다."

Q. 폴네띠앙이 탄압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활동하면서 불이익은 없나요?

"딱히 불이익은 없습니다. 조직을 위해서 잘하자는 것이니까요."

Q. 이렇게 드러내놓고 말하기 부담스럽지는 않습니까?

"솔직히 부담스러운데 그렇다고 언제까지. 할 거는 해야죠."

Q. 폴네띠앙에서 어떤 논의를 많이 하나요?

"경찰관 순직. 또 제도에 대해서 미비한 것 바꾸자는 토론을 많이 합니다. 수사하면서 부당한 사례도 이야기도 하고요."

Q. 경찰도 직장협의회,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도 있는데요.

"직장협의회법에 가입할 수 있는 직종에 경찰을 넣으면 됩니다. 지금 공안직군 공무원 외에는 노조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교원은 더 말할 나위 없고. 경찰도 열악한 근무환경인데 그런 문제에 대해서 소통할 수 있는 직협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견제와 균형 위해 수사권 조정돼야

Q. 회원들이 수사권 조정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처음에 모인 건 내부개혁인데 그러다 수사권에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검찰과 경찰 수사권 조정 문제인데 경찰은 수사를 98%를 하고 있습니다. 2011년 국회 사법개혁특위 수사권 조정 논의했을 때 행사소송법 시행령을 법무부 장관령으로 하는 방향이었습니다. 장관도 검사인데. 그때 반발해서 수갑 반납운동도 하고 해서 대통령령으로 바꿨어요."

Q. 수사권 문제는 여러 정권 거치면서 흐지부지되기도 했습니다.

"안 해준다 아입니까.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공약했습니다. 수사권 조정 논의만 해왔어요. 경찰과 검찰 간 갈등 생기면 언론은 갈등 좋아하니까 그렇게 씁니다. 국민은 불안해하고 흐지부지됩니다. 그렇게 벌써 20년이에요. 이번에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Q. 검찰은 기소권도 독점하고 있고, 경찰은 검찰 지휘를 받아야 합니다. 문제점은 뭔가요?

"저는 수사권 독립이라는 말은 안 좋아합니다. 남들이 보면 경찰은 수사할 수 없는 바보로 볼 수 있으니까요. 제일 중요한 것은 검사가 경찰 수사 지휘하는 것을 없애야 한다는 겁니다.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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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근창 경찰 개혁 커뮤니티 폴네띠앙 회장. / 박일호 기자

Q. 검찰이 특권을 휘두르면서 지금 국정농단 사태로 벌어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국민은 검사제도의 역기능을 많이 봤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번에 최순실 존재를 처음 밝힌 것은 최경락 씨라고, 서울경찰청 정보관이었습니다. 이미 우리 쪽에서는 어떠한 예고 경보를 울린 건데 제대로 수사가 안 됐어요. 지금 나온 거 보면 엄청난데."

지난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이 터졌다. '비선실세', '십상시', '문고리 3인방' 같은 말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청와대는 '문건 유출'로 규정해 파장을 막으려 했다. 당시 문건 유출자로 지목돼 수사를 받던 서울경찰청 최경락 정보관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때 문건은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게이트 서막이었다.

Q. 검찰이 다 알고 있으면 안 했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견제와 균형이 필요한데 검찰은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고 대한민국 모든 수사에 대해 좌지우지하는 지휘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찰도 이제 수사능력이 충분하니까 미국이나 일본처럼 협력관계가 돼야 한다는 겁니다."

Q. 그런데 수사권이 독립된다면 경찰이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눈치 안 보고 법과 원칙에서 따라 수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부개혁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리셋팅' 수준의 내부 개혁 필요

Q. 국민은 경찰을 '권력의 주구'라고 비판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아들 서울경찰청 차장 운전병 특혜를 보면 허탈합니다. 운전병 뽑은 이유가 '코너링이 좋아서', '이름이 좋아서' 이런 게 말이 됩니까. 동료지만 털 건 털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합니다. 잘못했다, 어떻게 잘하겠다는 대책을 제시해야죠. 코너링, 이름이 뭡니까."

Q. 경찰이 권력 바뀔 때마다 휘둘리고, 집회·시위 때 강경진압하고 인권탄압에 행동대원 노릇도 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일부 정치경찰만 그렇습니다. 지금도 일선 지구대, 파출소 형사계 가면 정말 고생 많이 합니다. 그 사람들 없으면 나라가 마비될 겁니다. 현장 대민접점 부서에서 근무하는 경찰이 대우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좀 더 일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주도록 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경찰은 국민 눈높이보다 권력 눈높이에 맞춰왔다. '엄정한 법집행', '법질서 확립'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집회·시위에 대해 강경진압해왔다. 시민 편에서 경찰 명예를 지킨 이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안병하 경무관이다. 1980년 5·18민주항쟁 당시 전남경찰국장이던 그는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시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거부했다. 직무유기로 구금, 고문당했는데 고문 후유증으로 1988년 순직했다. 2003년 광주민주화유공자, 2006년 순직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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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근창 경찰 개혁 커뮤니티 폴네띠앙 회장. / 박일호 기자

Q. 경찰개혁이라면 권력으로부터 독립과 정치 중립, 검찰로부터 독립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국민으로부터 존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내부개혁입니다.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해요. 심하게 이야기하면 '리셋팅'이 필요합니다."

Q. '리셋팅'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핵심 내용은 어떤 건가요?

"권력에 휘둘리지 말고 유권자로서 권리와 의무, 역할 잘하자는 겁니다. 우리는 제복을 입은 시민입니다. 정치인도 합당한 대우를 해달라는 거예요. 경찰 직급구조 개편도 필요합니다. 11단계 계급구조를 줄여야 하고요. 경찰청장도 장관급으로 격상해서 외부 개방해야 합니다."

Q.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고발한 청와대 파견 경찰 고위간부 인사 수첩이 문제가 됐습니다. 공영방송도 낙하산 인사로 무너졌듯이 정권이 꽂는 낙하산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검찰총장도 국민이 뽑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경찰청장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장기적으로 봐야 합니다. 한 세력이 다 차지해버리면 그 방향으로 갈 수 있으니까요. 외부개방해서 누구든지 전문가가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Q. 계급 단계를 줄이면 어떤 효과가 있나요?

"상대적으로 부담이 줄어듭니다. 승진에 목매지 않고 수직적 구조가 수평적 구조로 바뀔 거라 기대합니다."

Q.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신입 경찰들을 보면 앞으로 조직의 희망이 보이나요?

"처음에 들어오면 어깨 위에 달린 계급장만 눈에 보이고, 계급 올라가면 편해지고 멋있어지는 거 같으니 승진에 무게를 두는 것 같습니다. 대신에 경찰이라는 자부심이 아주 강해요.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친구들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눈에 힘이 있습니다. 선배들이 승진 걱정 없이 내외부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법집행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주면 엄청난 변화가 있을 거라 봅니다."

Q. 회원이 300명이라고 했는데 회원 배가 운동 이런 계획은 없나요?

"온라인 커뮤니티니까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회장 인터뷰도 처음이고요. 회원 배가도 생각해봤는데 홍보할 방법도 없고, 조직 내에 은근히 얘들은 반골 집단이라는 오해하는 부담도 있고, 스스로 느끼고 찾아오는 게 제일 좋을 듯합니다."

Q. 자치경찰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주민자치가 좀 성숙하면 당연히 따라가게 되리라 봅니다. 경찰청도 오래전부터 연구를 많이 하고 있는데 범위가 문제입니다. 교통·생활안전·생활질서 부문은 자치경찰이 하고, 수사·보안·정보는 국가가 하는 것으로 보통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반성하고 연구하고 토론할 것

Q. 국민이 바라보는 경찰에 대한 따가운 시선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국민은 경찰을 믿어야 합니다. 기댈 데가 없잖아요."

Q. 밀양송전탑 사태, 경찰 3000명 투입돼 강행됐습니다. 송전탑 반대하는 사람들은 경찰 쳐다보기도 싫을 겁니다. 경찰은 안전을 위해서 그랬다고 하지만 주민들을 막고 끌어내고, 행정대집행 직접 하지 않았습니까?

"아쉬운 것은 있습니다. 한국전력과 주민이 충분한 대화를 한 다음에 해야 했는데 뭐가 급했는지."

Q. 한전 공사 재개하고, 행정대집행했던 당시 경남경찰청장이 경찰청장 됐고, 경찰청장이 한국전력 감사로 가지 않았습니까?

"경찰청장이 감사로 간 건 창피합니다. 사장이면 몰라도."

Q. 경민협(경찰의 정치적 중립과 민주적 개혁을 위한 전·현직 경찰 및 가족협의회)을 만들었는데요.

"머리 싸매고 고민하다 지난 1월 폴네띠앙이 주축이 돼 만들었습니다. 전·현직, 주무관, 행정공무원도 모두 포괄합니다."

Q. '반성하고 연구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해서 경찰도 유권자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수만 명이 가입한 어떤 단체가 선거 때 총회를 하면 대선주자들이 와서 뭐 해주겠다고 합니다. 경찰 조직 인원이 군, 교원 빼고 가장 많습니다. 사실 정치인들이 경찰을 위한 공약은 발표하지만 우리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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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근창 경찰 개혁 커뮤니티 폴네띠앙 회장. / 박일호 기자

Q. 대선정국에서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Q. 페이스북 페이지도 개설했는데 경민협을 만든 근본적인 이유는 뭔가요?

"첫째는 우리가 반성할 게 있습니다. 우리도 국가공무원이에요. 이번에 최순실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이 권력 비난을 많이 합니다. 우리도 한 축이죠. 이런 시점에서 우병우 아들이나 인사 수첩은 팩트이고, 그 외 잘못한 거 반성할 거 없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조직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개선할 방향 연구해야 해요. 그걸 정치인들이 들어달라는 겁니다. 우리도 유권자니까요. 예를 들어 경찰조직에 일반 행정공무원도 있고 주무관도 있는데, 주무관은 어린 나이에 들어와서 고생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정원 반영도 안 되고 있어요. 비정규직이어서 많은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Q. 내부적으로 논의 큰 흐름은요?

"정치적 중립, 민주화, 수사권 조정. 그걸 위한 내부개혁입니다."

Q.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요?

"폴네띠앙이 올해 1월 7일 1회 '국민히어로 인권콘서트'를 했는데 박주민 국회의원에게 감사패를 전달했습니다. 경찰 인권 보호와 처우 개선을 위한 활동에 고맙습니다. 공무원이니까 정치인에게 요구는 할 수 없습니다. 오프라인으로 나갈 계획이에요. 경민협 이름으로 내부개혁을 위한 토론회도 할 겁니다. 정치적 중립은 대한민국 공무원 모두가 가져야 할 가치입니다. '너무 나가는 거 아니냐' 할까 걱정이 됩니다. 소중한 민주주의를 지켜나가겠다는 다짐을 한번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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