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얼음 절벽에 '아찔', 한 발짝 내딛는 순간 '짜릿'
진주 산악 동호회 '엑셀시오'회원 따라
산청 웅석봉 아래 곰골서 야심찬 도전
등반 앞서 얼음 위 걷는 연습조차 힘겨워
빙벽 오르자마자 헛발질에 미끄러지기 일쑤
두려움·공포감 사이 묘한 쾌감 '매력'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발을 직각으로 해서 얼음을 찍어야지. 뒷발이 들려서 얼음을 찍으니까 계속 미끄러지잖아. 자세도 좋지 않아!"

산악 익스트림 모임인 진주 '엑셀시오' 이덕용 회장의 호통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이달 초 빙벽 등반에 처음으로 도전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진주 출신 산악인 이기근 씨의 갑작스러운 권유 때문이었다.

히말라야 원정에 참여할 정도로 빙벽·암벽 등반 베테랑이 많은 진주 엑셀시오 회원들이 함께했다. 빙벽 등반은 자연 빙벽이 형성된 산청 웅석봉 아래 곰골에서 이뤄졌다. 곰골은 빙벽 등반을 위한 자연조건이 잘 갖춰져 있는 데다 빙벽이 형성된 곳이 여러 군데 있어 해마다 빙벽 등반을 즐기는 산악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방송 매체에서 빙벽 등반을 처음 접했을 때 '겁나겠다'가 아니라 '멋지다'고 생각한 터였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해서 30m 가까운 빙벽을 보자 환상은 두려움과 공포로 돌변했다. 내심 '괜히 왔다'는 생각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그렇다고 대놓고 '못하겠습니다'라고 속내를 드러내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일단 흔들리는 마음을 단단히 고정하고 무조건 해보자는 생각에만 집중했다.

등반을 하자마자 빙벽화로 빙벽을 제대로 찍지 못해 미끄러지면서 바일에 매달려 있는 허귀용(등반 왼쪽) 기자.

빙벽 등반하기 전 진주 엑셀시오 회원이자 빙벽 등반 전문가인 김규철 씨 등으로부터 몇 시간 동안 단단히 기초 교육을 받았다. 빙벽 전용 신발에 착용한 크램폰(빙벽용 아이젠)의 앞부분에 못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얼음에 찍는 방법(키킹)이나 바일(손에 들고 빙벽을 찍는 도구) 사용하는 방법, 등반 자세 등을 설명했다.

그리고 빙벽 전용 신발인 이중화를 신고 평평한 얼음 위에서 걷기 연습에 들어갔다. 히말라야 원정용으로 특수 재질로 제작된 이중화는 표면이 플라스틱처럼 딱딱했고 꽤 무거웠다. 크램폰을 장착한 이중화는 어림잡아 총무게가 5㎏은 넘는 듯했다.

무거운 데다 일반 신발과 달리 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중심 잡기가 어려워 한 걸음 한 걸음 디디기가 쉽지 않았다. 걸음걸이를 갓 뗀 아기가 된 느낌이었다. 여기에다 무릎을 들어서 발바닥 전체를 내려찍듯이 얼음 위를 걷다 보니 금방 체력이 고갈됐다.

키킹이나 걷기 연습이 익숙해질 무렵 이번에는 바일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1㎏이 조금 넘는 두 개의 바일을 들었을 때 묵직한 느낌이 손으로 전해졌다. 2시간 교육 후 착용한 안전모와 안전벨트, 자일과 연결하는 타원형 모양의 고리인 카라비너를 점검했다. 생사와 직결되는 만큼 등반 전 장비 점검은 필수다.

빙벽을 오르기 전 여유롭게 웃는 허귀용 기자.

장비 점검이 끝나자 본격적인 빙벽 등반에 나섰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30m의 긴 빙벽은 눈앞이 아찔할 정도로 무서웠다.

허리에 찬 안전벨트에 자일을 걸고 배운 대로 얼음 위로 바일을 타격했다. 이어 이중화로 키킹을 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아 곧바로 미끄러졌다.

엉성한 발길질에 계속 미끄러지면서 제자리를 맴돌았다. 꽁꽁 언 빙벽만큼이나 온몸은 긴장감으로 더 굳어져 갔다.

첫 시도부터 헛발질이 이어지면서 한동안 1m도 나아가지 못했다. 수차례 미끄러지면서 무릎이 빙벽에 부딪혀 고통도 밀려왔으나 긴장감과 두려움에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가까스로 조금씩 앞으로 발걸음을 뗐으나 10m 지점에서 허벅지 근육이 풀려버렸다.

평소 등산과 실내 클라이밍으로 몸을 다져온 터라 체력 하나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빙벽 등반은 또 다른 영역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힘을 내봐. 할 수 있어!" 엑셀시오 회원들의 힘찬 목소리가 여러 차례 들려 왔으나 심신이 방전돼 버린 내 몸은 거부하고 있었다.

결국 절반도 오르지 못하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떨리는 허벅지를 애써 진정시키며 하강을 외쳤다.

오름만큼이나 하강도 쉽지 않았다. 내려올 방향과 발 디딜 곳을 보면서 하강을 해야 하는데 초보자에게는 밑을 바라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공포였기에 엉성한 발 디딤이 이어지면서 두 번이나 옆으로 쓰러졌다.

생애 첫 빙벽 등반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평지에 발을 딛자마자 떠오른 단 하나의 생각은 다시는 빙벽 등반을 하지 않겠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쓰라린 경험에도 엑셀시오 회원들과 함께 이후 두 차례 더 빙벽 등반에 나섰다. 빙벽 앞에 서면 여전히 두려움과 공포감은 존재한다. 하지만, 짜릿함과 두려움이 서로 교차하는 그 사이의 묘한 매력이 내 몸을 빙벽으로 이끌었다.

수년 전부터 전문 산악인 중심으로 국한됐던 빙벽 등반이 일반인 사이에도 널리 알려지면서 전문 교육기관의 교육을 받고 빙벽 등반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더불어 인공적으로 조성된 빙벽이 전국적으로 는 것도 빙벽 등반 인구가 늘어난 원인이기도 하다.

수도권과 대도시 지역은 대한산악연맹이나 사설 기관에서 운영하는 전문 교육기관이 많아 시간과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쉽게 배울 수 있어 빙벽을 즐기는 인구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경남지역은 지리산등산학교나 극소수 동호회에만 한정돼 빙벽 등반을 배울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어 대도시보다 확산하지 못하고 있다.

빙벽 등반은 안전벨트에 연결된 자일 하나에 생사가 걸린 만큼 위험한 스포츠로 여겨진다. 하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위험한 스포츠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빙벽 등반 인구가 늘면서 안전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하는데 대부분이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발생한다고 한다.

산악인 김규철 진주스카이클라이밍센터장은 "등산이나 암벽, 산악자전거 등 대부분 스포츠가 사고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사고 대부분은 안전을 무시한 채 즐기다가 난다. 빙벽 등반도 똑같다"며 "스포츠를 즐기기에 앞서 안전 규칙을 제대로 지키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빙벽 등반 체험 취재에 도움을 준 진주 엑셀시오 이덕용 회장과 회원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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