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에서 예술을 만나다

숲에 가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있더군

제가끔 서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 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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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걸음 구성원들. / 초록걸음단

정희성 시인의 시 '숲'과 함께 한 해가 저물어 가는 마지막 길목에 초록걸음은 지리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하동 서당마을로 향했다. 둘레길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하동 이정마을을 출발해서 버드나무가 많다고 해서 고개 이름이 붙여진 버드재를 넘어 낙엽 수북한 숲길 지나면 지리산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지리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서당마을에 도착한다.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던 서당마을 마을회관을 주막갤러리로 탈바꿈시킨 지리산 프로젝트 참여 작가인 강영민 작가로부터 지리산 프로젝트와 전시되고 있는 작품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강영민 작가는 우리나라 팝아티스트 1세대라 할 수 있는데 현재 하동에 상주하면서 지리산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지리산 프로젝트는 2014년부터 지리산 둘레길 일원에서 펼쳐지는 예술과 학술 프로젝트로서 지리산이라는 장소적 특정성과 생명 평화를 관점으로 하는 의제적 특정성을 추구하는데, 지리산 프로젝트는 특정성에 기반을 두어 보편성을 추구하면서, 예술과 학문의 소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나가려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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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걸음 구성원들. / 초록걸음단

주막갤러리에는 강영민 작가로부터 그림 배운 마을 어르신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을 뿐 아니라 막걸리 무인 판매대와 함께 둘레길을 걷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조리기구까지 설치되어 있어 둘레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주막갤러리에서 점심을 먹고는 우리 길동무들은 강영민 작가와 함께 마을 도로변 시멘트벽에 리버스 벽화 작업에 참여했다. 리버스 벽화란 일반 벽화 작업과는 달리 화학 물감을 사용하지 않고 와이어브러시를 이용해 벽면의 이끼나 먼지를 벗겨내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친환경 미술 작업이라 둘레길의 의미와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당마을 리버스 벽화 작업을 마친 길동무들은 서당마을 들녘을 300년 넘게 지키고 있는 이팝나무를 만났다. 예로부터 쌀밥처럼 보이는 이팝나무의 하얀 꽃의 상태를 보고 그해 농사를 예측했다는 영목(靈木)으로 마을 주민들이 정성을 다해 보호하고 있다. 이 이팝나무 아래에는 나무 벤치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이팝나무 꽃잎 그림까지 그려져 있다. 강영민 자각의 '이팝나무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퍼포먼스로 만들어진 설치 미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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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둘레길에 있는 주막갤러리. / 초록걸음단

이팝나무를 지나 마을길을 따라가다 보면 관동마을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에서도 리버스 벽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곳 벽화에는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의 주 능선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그려져 있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기도 하다.

이렇듯 서당마을에서 관동마을 지나 율곡마을까지 이르는 길가엔 지리산 프로젝트에 의한 다양한 미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힘든 줄 모르고 발걸음을 이어 갈 수가 있다. 그리고 의미를 더하는 것은 마을 어르신들이 이 지리산 프로젝트에 참여하셔서 여러 작품들을 남기셨다는 점을 들 수가 있다. 그렇게 지리산을 품고 사는 마을과 그 속의 주민들에게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일이 지리산 프로젝트의 또 하나의 성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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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당마을 리버스 벽화 작업. / 초록걸음단

한 해의 끝자락, 지리산 둘레길 그 길 위에서 저물어 가는 2016년 한 해를 되돌아보고 희망으로 다가올 새해를 맞이할 다짐을 초록걸음 길동무들과 함께하면서 봄이 오면 다시 지리산 둘레길에서 만날 기약으로 긴 겨울을 견디어 내자고 서로에게 위로한다.

2016년 한 해 동안 지리산 초록걸음을 응원해주신 피플파워 독자 여러분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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