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경기서 이길 때 보람 느낍니다"

2013년부터 마산야구장 그라운드를 관리해온 그라운드 키퍼 반장 이영진 씨. 오후 1시에 출근해 새벽 1시쯤 돼서야 퇴근하는 힘든 일정이지만 즐거운 날의 연속이라는 그. 7회말 공연에는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라며 쑥스러웠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한다. NC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실패했지만, 그의 NC사랑은 끊이지 않는다.

"픽미 픽미 픽미업∼♬."

올 시즌 창원 마산구장에서 열리는 NC다이노스의 홈경기 7회말이 끝나면 어김없이 노랫소리와 함께 선글라스를 낀 5명의 남자가 드래그매트(그라운드 정비 도구)를 끌고 그라운드에 등장한다. 3루 내야부터 시작해 1루 쪽으로 이동한 이들은 도구를 손에서 놓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러면 관중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진다.

이들은 마산구장의 '그라운드 키퍼'다. 올 시즌 시범경기부터 시작한 그라운드 키퍼의 공연은 야구장에 한 번 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마산구장의 명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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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NC다이노스 선수들이 한창 훈련 중인 마산구장에서 그라운드 키퍼 이영진 반장을 만났다. /강해중 기자

공연 덕에 유명해졌지만 이들의 주된 업무는 선수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그라운드와 잔디를 관리하는 일이다.

그라운드 키퍼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보고자 지난 10월 13일 그라운드 반장 이영진(49) 씨를 만났다.

이 씨는 정규시즌이 끝났지만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한창 훈련 중인 NC 선수들을 돕기 위해 야구장에 출근해 있었다. 훈련 기간에는 총 6명의 그라운드 키퍼 가운데 2명씩 짝을 지어 출근한다고 한다.

Q. 반갑습니다. 언제부터 그라운드 키퍼를 하게 됐나요?

"2013년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져 퇴직하고 일을 구하고 있었는데 야구장 관리 업체에서 낸 구인광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당시 저를 포함해 그라운드 키퍼는 4명이었는데 저를 뺀 3명이 모두 60대 초반이었어요. 그라운드 관리에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경력이 긴 그분들에게 많이 배웠죠. 지금 함께 일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30대 초반입니다."

Q. 그라운드 키퍼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오후 6시 30분 경기를 기준으로 오후 1시에 출근합니다. 그라운드에 떨어진 이물질을 치우고 청소를 하지요. 청소가 끝나면 선수들 훈련 준비를 합니다. 훈련 장비와 그물망을 세팅해둡니다. 오후 4시 30분쯤 홈팀 선수 훈련이 끝나면 일부 장비를 회수합니다. 이때부터는 원정팀 선수들이 훈련을 하죠. 원정팀 훈련이 끝나면 장비를 모두 회수하고 경기 준비에 들어갑니다. 경기 시작 10분 전까지 파울라인을 긋고 배트박스를 그립니다. 그리고 내야 그라운드에 물을 뿌리고, 흙이 파인 부분이 있으면 새 흙으로 메웁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경기 전에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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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구장에서 열린 NC 경기 7회말이 끝난 후 공연을 하고 있는 그라운드 키퍼들. /NC다이노스

Q. 경기 중에는 어떤 일을 하나요?

"보통 3·5·7회말이 끝나고 그라운드 정비를 합니다. 하지만 1회라도 경기 시간이 길어져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많이 밟아 상태가 나빠지면 그때도 정비합니다. 5회말에는 정비 시간이 4분이지만 나머지 이닝에는 1분 20초 만에 이 일을 모두 끝내야 해요. 촉박합니다. (경기가 끝나면 곧장 퇴근하나요?) 아닙니다. 경기가 끝나면 또 내일 경기를 준비해야 합니다. 마운드와 배트박스에 새 흙을 뿌려 다집니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나면 밤 12시에서 1시쯤 됩니다."

Q. 올 시즌부터 마산구장에 천연잔디를 깔았습니다. 관리하기에 여간 신경이 쓰일 것 같은데요.

"잔디 관리는 김남용(47) 팀장이 맡고 있습니다. 김 팀장은 우리보다 더 일찍 출근해서 잔디를 깎습니다."

김남용: 축구 잔디와 달리 야구장 잔디는 매일 깎아야 합니다. (김 팀장은 축구경기장 잔디 관리 업무를 했었다고 한다) 잔디가 길면 공이 잘 구르지 않고 멈춰버리거든요. 그래서 내야는 2.5㎝, 외야 잔디는 2.8㎝ 정도로 길이를 일정하게 유지해줘야 합니다.

Q. 잔디 관리가 가장 어려울 때는 언제인가요?

김남용: 여름 장마철이 가장 힘들어요. 비가 오면 대형 방수포로 내야를 덮습니다. 잔디는 열기에 취약하거든요. 여름철 방수포 아래 온도는 70도를 훌쩍 넘깁니다. 사람도 그 안에서는 질식할 정도이니 잔디는 금방 짓무릅니다. 열기를 빼주기 위해 일정한 간격으로 블로어로 바람을 넣어 식힙니다. 밤새 두 명씩 당직을 서서 관리하기도 합니다. 특히 올 시즌에는 마산 경기에 우천 취소가 많았잖아요.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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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구장에서 열린 NC 경기에서 그라운드를 정리하는 그라운드 키퍼들. /NC다이노스

Q. 마산구장 잔디 상태가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더군요.

"경기하러 오는 심판들이 NC 그라운드 상태가 가장 좋다고 이야기해줄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자부심도 생깁니다. 이제 잔디가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내년, 그다음 시즌에도 이 상태를 유지하도록 잘 관리해야지요."

Q. 그라운드 키퍼 공연이 야구장 안팎에서 화제입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NC 구단에서 먼저 제안해왔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이벤트를 벤치마킹해 우리도 해보자고 했죠. 처음에는 내가 이런 것까지 하면서 일을 해야 하나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우리 공연을 본 관중들이 매우 즐거워하시고 호응해주셔서 이제는 쑥스러움도 없고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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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NC다이노스 선수들이 한창 훈련 중인 마산구장에서 그라운드 키퍼 이영진 반장을 만났다. /강해중 기자

Q. 춤 연습은 언제 하나요?

"경기 끝나고 그라운드 정비 마친 뒤에 연습합니다. NC 구단 응원단원 중 한 명이 와서 가르쳐 줍니다. 지금까지 '마초맨', '픽미' 마이클 잭슨의 '비트 잇' 등 7곡을 했는데 일주일 전에 새로운 곡을 알려주면 동료들과 짬짬이 호흡을 맞춥니다. 드래그매트를 끌다가 춤을 춰야 하는데 처음에는 타이밍 잡기가 어려웠어요. (본인의 위치는 어디인가요?) 가장 뒷사람이 접니다. 허허."

Q. 마지막으로 NC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있습니다. 응원 메시지 전해주시죠.

"정규시즌에 NC가 홈경기에서 승리하면 그라운드를 잘 닦아놓은 덕에 이긴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질 때는 서운하기도 하죠. NC 선수들이 부상당하지 않고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서 꼭 우승하면 좋겠습니다. 그게 한 시즌 고생한 것에 보상받는 것 아니겠어요. 반드시 한국시리즈 우승하세요. 파이팅!"

아쉽게도 이 반장의 염원은 한국시리즈에서 멈췄다. 플레이오프에서 LG트윈스를 3승 1패로 꺾고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은 NC다이노스는 두산에 4경기를 내리 패하며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이 반장의 바람이 내년에는 꼭 이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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