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아고라북 "독서토론 이렇게 해보세요"

11월이 되며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평소보다 이른 추위에 가을 없이 겨울이 온 것은 아닌가 싶지만, 11월 초부터 노랗게 물드는 단풍이 가을임을 실감하게 한다. 가을은 흔히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 불리게 된 것은 선선한 날씨 덕분에 책 읽기 좋은 환경이라서, 일제 시절의 독서 캠페인을 계기로, 등의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그리 중요치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독서의 계절이라는 명칭에 비해 가을의 독서량은 그리 높지 않다. 더군다나 해가 지날수록 평균 독서량도 줄어드는 추세다. 이런 와중에 지역에서 7년째 이어지고 있는 독서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교사들을 중심으로 매월 진행되는 독서모임 '아고라북(AGORABOOK)'. 76회째 독서모임을 참관했다.

독서모임 아고라북

독서모임 아고라북의 모임 날짜에 맞춰 취재에 나섰다. 장소는 창원 정우상가의 테마 카페 '모두의 모임공간'(모모). 구성원들 저마다의 일과가 있기 때문에 평일 일과를 마쳤을 초저녁에 모임을 시작한다고 했다. 모임 시간보다 조금 일찍 모임 장소를 찾아 연락이 닿았던 양미현(51)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김해 한림초등학교의 교사인 그는 교직에 있으면서 독서와 토론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고 한다. 교육 현장에 독서와 토론을 접목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독서 토론 관련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독서토론 방식을 경험했고, 이를 교육 현장에 적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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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모임 아고라북 구성원들. / 이종현 기자

"처음부터 독서나 토론에는 관심이 많았습니다. 성인들에게도 독서, 토론이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학생들에게는 더 효과적이거든요. 교육 현장에 독서, 토론을 적용하기 위해 여러 워크숍을 다니기도 했고요. 그러던 중 2010년 서울에서 열린 독서 워크숍에서 지금 하고 있는 방식의 독서토론을 알게 됐습니다. 이론적인 방법이었어요. 이걸 교육 현장에 적용하고자 노력했고, 스스로도 독서, 토론을 계속하기 위해 독서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게 아고라북이고요."

아고라북은 현재 교육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 중심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교육자인 것은 아니다. 활동 초기에는 울산의 일반 회사원, 상담센터 근무자 등도 참여했다고 한다. 활동이 이어오면서 개개인의 사정으로 구성원이 바뀌었고, 지금은 초기부터 활동해온 회원과 신입 회원이 섞여 있는 상태다.

"지금은 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비중이 큽니다. 의도적으로 교사들의 모임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에요. 다만 제가 초등학교 교사로 있다 보니 주변 사람들도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것 같아요. 끼리끼리 모인다고들 하잖아요? 물론 지금도 참여자에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참여하고자 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환영하고 있어요."

6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아고라북 모임

아고라북은 매월 한 차례씩 모임을 가진다. 2010년 4월에 시작한 아고라북은 2016년 10월로 76회째 모임이었다. 모임에서 '토론 리더'를 한 명 정하고, 토론 리더가 '토론 도서'를 선정한다. 토론 일자까지 참여자 모두 책을 읽고 온 뒤 체계화되어 있는 방식을 통해 토론을 진행한다.

"매번 모임 때마다 토론 리더를 새로 정합니다. 그리고 그 리더가 토론 도서를 선정하고요. 보통은 구성원들과 '어떤 책이 좋겠느냐'고 의견을 물은 뒤 정하게 됩니다. 장르는 동화, 인문고전, 소설, 자기계발서 등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토론은 정해져 있는 틀 안에서 자유로운 질문, 답변으로 진행됩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을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기, 책 속의 내용과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얘기하기, 책을 읽으며 재미있었던 부분, 궁금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 본인이 생각하는 책의 중요한 부분, 작가가 전달코자 한 핵심 메시지는 무엇일지, 책의 내용 중 베껴 쓰고 싶은 부분을 베껴 쓰기, 그리고 그 이유 말하기, 독서토론 후 감상 등의 절차대로 진행합니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처음 접했을 때는 깨닫지 못했던 작품의 메시지나 다른 이의 견해를 알 수 있습니다."

아고라북의 첫 모임으로부터 6년 7개월, 약 7년이나 되는 시간이 지났다. 말이 쉬워 7년이지, 7년간 모임을 이어오는 게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지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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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상통화로 서울에서 진행된 독서모임과 토론 결과를 공유하고 있는 모습. / 이종현 기자

"워낙 많은 책을 읽었으니까요. 무엇 하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기보다는, 여러 책이 떠오르는데. 그래도 한 권을 꼽아보자면 '파우스트'일까요? 워낙 유명한 고전이잖아요. 다들 기대를 하고 읽었었죠. 그런데 책을 접했을 때는 '도대체 이 책이 왜 명작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구성원들도 마찬가지더라고요. 그런데 토론 과정에서 그 시대적 상황, 인물에 대한 이해, 서로 다른 관점에 대해 얘기하면서 작품을 이해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막연했던 책의 내용과 주제, 메시지가 이해되기 시작한 거죠. 음식을 꼭꼭 씹어 먹어야 소화가 잘된다고 하잖아요? 토론으로 책 한 권을 잘 소화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토론으로 서로의 이해를 돕는 효과가 있을겠지만 진행에서 어려운 점도 많이 있을 것이다. 주장에 대한 반박이나 충돌 등. 아고라북에서는 이런 일이 없을까?

"토론에 자주 참석하는 분들이라면 저희 방식에 익숙해져서 걸리는 것 없지 잘 진행돼요. 하지만 신규회원이 토론에 참여하게 됐을 때는 토론의 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어요. 토론에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잘 듣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 의견에 논박하고, 끼어들고 하면서 토론이 지연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럴 때마다 토론의 규칙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었고, 타인을 존중하고 그 말에 경청하는 태도를 지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76회째 토론 도서 '풀꽃도 꽃이다'

기자가 참관했던 날의 토론 도서는 조정래 작가의 '풀꽃도 꽃이다'였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것은 김해 한림초등학교의 양미현 씨와 창원 대방초등학교 수석교사 조미선 씨, 성지여자중학교에서 사회 교과를 담당하고 있는 박정주 씨, 하브루타 창원연구회를 맡고 있는 김혜경 씨, 모임 장소를 위탁 경영하고 계신 황숙희 씨 등 5명이다.

모임은 서로가 책을 읽고 느낀 전체적 인상, 느낌을 공유하면서 시작했다. 그런데 모임의 참여 구성원들의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책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받았다는 것과는 달리 토론은 술술 진행됐다. 책이 가지고 있는 한계, 작가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도 책이 던지고 있는 메시지(현 교육계에 대한 비판)를 수용했다. 작품 바깥으로 시야를 넓혀, 현실의 문제점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조미선: (책이)처음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어쨌든 안 읽을 수는 없으니 억지로 읽고 토론했지요. 소설보다는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읽으면서 작품 바깥의 교육 현실 등과 접목해 생각하니 괜찮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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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모임 아고라북. / 이종현 기자

박정주: '태백산맥'으로 존경하는 조정래 선생님의 책이고, 교육을 주제로 한다고 하니 꼭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읽은 게 다행인 거 같아요. 읽으면서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세계에 가까이 다가간 것 같아 마음이 열렸어요. 물론 당장 아이들이 쓰는 언어에 비해 낡았다는 인상도 있지만요. 책을 읽으면서 교사로서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황숙희: 조미선 선생님이 실망했던 건 태백산맥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태백산맥에 못 미친다는 인상을 받은 건 맞아요.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의 갑갑한 상황을 원로 작가인 조정래 작가가 언급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을 거 같아요.

김혜경: 황숙희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의 갑갑한 상황을 말하면서도 똑 부러진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것은 안타까웠어요. 해결법 없이 문제점만 꼬집은 것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양미현: 저 역시도 여러분과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황숙희 선생님 말씀처럼 누구나 알 법한 유명 작가인 조정래 작가가 이런 사회 문제를 언급한 것은 그 나름대로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이분의 위치를 생각했을 때, 이런 책을 내기가 어려울 수 있거든요. 비판을 감수하고 사회의 문제에 문제 제기를 했다는 것만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토론을 참관하면서 역시나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소통을 통해 사고가 확장하고 처음 가진 생각이나 선입관에 얽매이지 않고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고라북의 76회째 모임이었던 이 날은 '독사론 데이'이기도 했다. 독사론 데이는 독서 및 토론 문화 확산을 위해 10월의 마지막 날에 책을 낭독, 필사, 토론하는 날로 정한 날이다. 2013년 10월 31일부터 4회째 이어져오고 있다. 창원뿐만이 아니라 서울, 경기도, 대구 등에서 동시에 진행된 이날 행사는 '풀꽃도 꽃이다'를 공통 도서로, 화상통화 등을 통해 다른 지역 모임과 토론 결과를 공유하기도 했다.

토론이 끝난 뒤에서야 알게 됐지만, 아고라북에서 조정래 작가의 책을 선정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허수아비춤'을 읽을 때는 '풀꽃도 꽃이다' 때보다 더한 비판을 했었다고.

"여러 책을 주제로 독서토론을 진행하다 보면, 세간의 평은 좋은 데 반해 저희들끼리 토론을 할 때는 혹평을 받는 책들이 많습니다. 베스트 셀러라고 해서 다 좋은 책은 아니었어요."

독서토론을 교육 현장에 도입

앞서 언급한 듯이 아고라북의 구성원 대다수가 교육 현장에 종사하는 교사들이다. 구성원들은 모임 자체가 즐거워서, 독서토론이 좋아서 모이기도 하지만, 이 토론 방식을 교육 현장에 도입하기 위해 '배우러' 오기도 한다.

"교육자가 많다 보니까 여기서 배운 것을 각자의 일터에 도입하기도 합니다. 의도적으로 모임을 넓히려 하기도 하고요. 독서토론을 저희끼리만 공유하는 건 목표가 아니거든요. 저를 비롯해 참여하는 선생님들 모두가 독서토론 워크숍 등에서 강사 역할을 맡을 수 있어요.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이런 모임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특정 기관에서 진행하는 공모나 모임, 행사 등에 참여하고, 방학 때 캠프 등에서 저희가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육계에서 책 읽기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에 비해 이를 위한 제도가 부족하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귀결되는 대한민국 교육에서 창의적 학습의 일환인 독서 모임, 토론 등은 이뤄지기 어렵지 않을까.

"교육 현장에서 종사하고 있는 분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도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책 읽기나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책 읽기, 토론을 할 기회는 주지 않고 있거든요. 적게나마 독후 활동으로 독후감, 독후화, 퀴즈 등의 활동이 진행되고 있지만, 오히려 이게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독서에 대한 흥미나 욕구를 잃는 경우도 있고요. 저는 이런 게 '나 혼자'하는 활동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남들과 소통하고 교류하지 않으면 흥미가 생기기 어렵고, 지속하기도 어려워요. 어떤 일이든 '재미'가 있어야죠. 동아리 등을 활용해서 독서 모임을 정기화하고, 토론의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토론의 과정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고,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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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모임 아고라북 구성원들. 왼쪽부터 박정주, 조미선, 양미현, 김혜경, 황숙희 씨. / 이종현 기자

이미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아고라북이 유지되어 왔다. '앞으로 독서토론을 교육 현장에 도입하겠다' 같은 미래의 다짐이 아닌, '독서토론을 교육 현장에 도입하고 있는 중'이다. 교육 현장에서 독서토론 방식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을까?

"첫술에 배부를 순 없듯이, 독서토론을 처음 하는 아이들은 어려워하기도 해요. 독서토론 1회째에는 독후감을 5줄밖에 안 쓰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토론 3회째를 넘어서는 자연스럽게 2장 이상 쓰기도 했어요. 어느 학생은 독후감상문 공모에서 입상하기도 했고요. 교육 현장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것은 동아리 활동 등을 보조해 주는 겁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아이들만의 규칙을 만들도록 도와주는 거죠. 토론을 진행할수록 책 읽기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 생각의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책을 잘 알아서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상태에서 토론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좀 더 알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양 교사. 그는 "'교육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처럼, 아고라북의 독서토론 경험이 학생들에게 보다 나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도 말했다.

획일화된 교육이 아니라 저마다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교육. 그러한 교육 현장에 아고라북에서 열띤 토론을 이어가고 있는 교사들이 활약하는 미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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