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스스로 나서야 했다" 15세~39세 청년들의 젊은 노동조합

청년의 몸과 마음은 고되다. 누구는 친척 '빽'으로 어디에 취업했다, 누구는 집에서 유학을 보내줬다더라는 소식이 들린다. 비빌 언덕 없는 청년들은 귀를 막고 스펙 쌓기와 아르바이트에 온 힘을 쏟는다. 대학은 마쳤지만 만진 적도 없는 학자금 빚은 마음을 누른다. 급한 마음에 취직을 하긴 했는데 2년만 다니다가 나가야 한단다. 접이식 침대 하나로 가득 차는 방이지만 월세는 월급 1/3을 깎아간다. 청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N포세대'로 불리고 있다.

'청년유니온'이라는 노동조합이 있다. 2010년 3월, 청년들이 권리 향상을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노동조합이다. 어떤 일을 하는지, 어디 소속인지 따져 묻는 노조가 아니다. 15~39세 '청년'이라면 비정규직, 정규직, 취업준비생 구분 없이 가입할 수 있다. 이 젊은 노동조합의 관심사는 청년들의 '고민거리'다. 창립 이후 꾸준히 청년들의 고민에 대해 토론하며 크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반갑게도 곳곳에 있는 지역 본부에서도 청년들과 함께하고 했다. 경남 청년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뛰고 있는 경남청년유니온은 창원대학교 근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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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훈 경남청년유니온 위원장. /서정인 기자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창원대학교 근처 주택가. 어두운 골목을 걷다 보니 눈에 띄게 북적이는 반지하 공간이 있었다.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의 경남본부, '경남청년유니온'이 자리 잡은 곳이다. 계단을 내려가 보니 입구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넓다. 이 사무실을 경남청년유니온, 청년희망센터, 경남청년회 세 청년단체가 함께 쓴다.

2013년 발족한 경남청년유니온은 경남지역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현장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경남청년유니온 조직화 때부터 함께한 손정훈(33) 위원장은 작년부터 시작한 위원장 임기를 올해 마친다. 그는 고민을 안고 있는 '88만 원 세대' 청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청년들을 대신해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더욱 단단하다.

사회운동 눈뜬 대학시절 거쳐 청년운동으로

손 위원장은 창원대학교 03학번이다. 입학은 메카트로닉스대학이었는데 졸업은 사회학과로 했다. 사회운동에 대한 인식이 본격적으로 생긴 건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흥사단(1913년 도산 안창호와 8도 대표가 설립한 민족운동단체로 지금까지 다양한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다.) 소속 동아리 '아카데미'에서 선후배들과 활동하며 사회운동, 통일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학생회 활동도 열심히 했다.

"처음에는 공대에 입학했어요. 그러다 들어간 동아리가 사회운동과 관련된 동아리였죠. 선배들과 학생회 활동도 했고 2009년에는 사회학과로 전과했죠."

2010년 경남청년유니온이 없던 때,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은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고용 안정·노동권 보장의 필요성을 느낀 청년들이 '피자 30분 배달제'를 폐지하고, 노동자를 대신해 대기업과 교섭을 하는 등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큰 화제였다. 청년유니온은 노동조합 설립 신고 과정에서 진통을 겪었다. 설립 목적이 정치활동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 구직 중인 사람이 노조원에 포함됐다는 게 이유였다. 법원과의 질긴 대치 끝에 2013년 전국적인 단위의 노동조합으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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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훈(가운데) 위원장 등 경남청년유니온 관계자들이 지난 6월 1일 도의회 브리핑룸에서 '청년발전기본조례' 제정 환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동우 기자

당시 창원에도 청년 모임이 여러 개 있었다. 손 위원장은 졸업 후 경남청년회에서 활동했다. 청년운동을 시작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졸업한 학교 선배들도 경남청년회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들어갔는데 청년회 활동을 하다가 청년유니온이라는 조직을 알게 됐어요. 창원에서 청년유니온이라는 조직의 경남본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분위기가 생겨서 선배들, 주변 친구들과 같이 만들게 됐어요."

그렇게 2013년 경남청년유니온이 창원에 꾸려졌다. 경남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와 고민을 함께 해결해나가자는 것이 경남청년유니온의 조직 목적이다. 현재 전국 청년유니온 본부 외에 서울·경기·광주·인천·충북·대전·대구 청년유니온과 기본 사업을 진행하고 지역의 청년 문제 현안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손 위원장은 경남청년유니온을 조직할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이 청년들을 만나기가 어려웠던 것이라고 했다. 거리에 나가보면 어렵지 않게 10~30대 청년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자기 목소리를 내는 청년들을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청년들에게 사실 '노조'는 좀 낯설고 어려운 말이다.

"조직할 때 사실 주위에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 위주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가 모르는 대중적인 청년들을 만나기 위해 거리로 나가기도 했지만 대화할 수 있는 통로나 기회가 많이 없었죠. 그런 부분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경남 청년유니온 역시 2013년 8월 법적 노조로 인정받았다. 현재 경남 본부 소속 회원은 100여 명, 후원 회원은 20여 명 정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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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훈 경남청년유니온 위원장. /서정인 기자

청년들 스스로 나서야 했다

15~39세 청년들의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이 등장한 것은 그만큼 청년들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노동·생활환경을 어떤 정부나 정책도 보호해주지 못했다. 청년 유권자들을 잡기 위해 정치권에서는 '청년 공약'을 쏟아내고 있지만 청년들에게 와 닿는 정책은 아직 없다.

"저희들은 '청년팔이' 그만하라고 얘기하거든요. 선거 때만 나와서 청년 일자리, 최저임금 얘기하고 나중에는 입을 다물죠. 아니면 청년 핑계로 노동 개악을 하려고 하고요. 진정으로 청년들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한다면 목소리를 들으러 직접 오고 같이 토론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청년들은 노동법을 공부해 열악한 노동환경과 싸우고 최저임금을 올리자며 거리에서 외치고 있다. 하지만 손 위원장이 활동하면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는 듯했다. 더 많은 동료들과 함께 하고픈 마음이 큰데,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머뭇거리는 청년들이 많은 듯했다.

"사실 나서서 활동하는 건 좀 부담스러워하죠. 특히 대학생들은 빨리 스펙을 더 쌓아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하고…. 졸업하고 나서 부당한 사회를 마주했을 때야 문제를 느끼죠. 노동 상담하고 해결해드리고 나서 저희가 돈을 받는 건 아니니까 우리 조합원이 되는 건 어떠냐고 권유를 해요. 그러면 조합원은 좀 힘들 것 같다고 얘기해요.(웃음) 청년들이 모이는 게 필요하다고 느껴도 막상 가입은 꺼리는 경우가 많죠."

손 위원장은 공동체 문화가 많이 사라진 게 이유일 거라는 생각도 했다. 제 삶 하나 챙기기 힘들다 보니 대학도, 사회도 너무나 개별화됐다. 경남청년유니온의 조합원들은 각자 사정에 따라 회비를 낸다.

"회비는 각자 알아서 내는데 보통 대학생들은 최저시급(6,030원)을 내요. 일하시는 분들은 월급의 10분의 1을 내기도 하는데 보통은 1만 원을 냅니다. 구성원은 취업준비생, 비정규직, 정규직 다양하고요. 비율은 직장인이 40~50%인 것 같고 대학생이 20%, 직업 구하고 있는 사람 20% 정도인 것 같아요. 10대 회원도 2명 있어요. 그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나 사회 경험을 하면서 최저시급도 못 받는 문제를 겪고 고민하게 됐죠. 더 나아가서 자기들이 더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어려운 시대니까 자신의 꿈과 함께 그런 부분도 고민해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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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청년유니온 최저임금인상 캠페인 포스터. /경남청년유니온 제공

경남청년유니온 활용법

'노동 상담 및 문제 해결- 떼인 돈 받아 드립니다', '노동법 강좌 운영- 알면 돈 되는 유익한 강좌', '소모임 운영-주말에 뭐해?', '청년 문화 사업-나오자! 방구석에서!' 손 위원장의 명함 뒷면에 적힌 문구이다.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해결하는 것을 바탕으로 경남청년유니온 5명 집행부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청년유니온의 기본적인 전반기 핵심 사업은 정해져 있어요. 최저임금 인상 운동, 노동 상담, 또 청년들이 어떻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조사를 해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는 청년 실태조사. 이제는 정책적으로도 접근해요. 문제 해결을 위해 청년 기본조례 운동도 같이 하고 있어요."

올해 5월 24일 청년발전기본조례가 도의회를 통과했다. 경남청년유니온과 여영국 도의원, 여러 단체들이 힘을 모은 결과다. '경남도 청년 발전 기본 조례'는 12월부터 서울·대구·광주·경기·전남 등에 이어 전국 6번째로 시행된다. 조례에는 도지사가 5년마다 청년정책 계획을 수립하고, 청년의 사회 참여 보장과 권익을 증진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청년정책위원회 설치로 청년들의 목소리를 좀 더 직접적으로 정책에 반영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환영할 일이지만 실제로 얼마나 효과 있게 추진될지에 대해서는 아직 전망하기 어렵다.

"청년정책위원회에서 저희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될지는 모르겠어요. 아직은 대화 창구가 열렸다 정도죠. 서울은 시장이 의지가 있는데, 다른 지역은 보여주기 식이라는 인식도 있거든요. 저희도 안상수 시장, 홍준표 도지사가 얼마나 책임감을 가지고 해줄지 의문이라서… 해봐야 알 것 같아요. 조례가 자리 잡도록 감시하는 역할도 해야죠."

경남청년유니온은 청년들을 대변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굴욕적인 위안부 피해자 문제 협상,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여러 현안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을 말하고 다른 단체와 연대해왔다. 지금 집중적으로 외치고 있는 것은 단연 '박근혜 정권 퇴진'이다.

"지금은 '박근혜 하야!'를 외치고 있죠. 새누리당도 이때까지 8년간 정책을 봐왔을 때… 저희 청년들은 새누리당을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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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성산구 사림동에 위치한 경남청년유니온 사무실 모습. /서정인 기자

'N포세대'에게, "그만 포기하자"

'5포세대(연애·결혼·출산·집·인간관계를 포기한 세대)', 7포세대(5포+꿈·희망을 포기한 세대)… 여기에다 'N포세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기성세대는 청년들을 이해하지 못 하겠다고도 한다. '못 먹고, 못 입던 시절 안 겪어봐서 저런다', '젊어 고생을 하는 것도 사회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청년들이 무력감을 느끼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청년들이 만든 게 아니다. 손 위원장은 그래서 청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가 작년에 발언했던 내용인데… 우리는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어요. 예전에 공장에서 일 했어요. 공장에 가면 하루 근무 시간 다 채우고도 잔업, 특근을 해요. 사무직은 밤 10시까지 일을 하는데도 '열정페이'라고 이름 붙여서 150만 원도 못 받는 현실이 존재하죠. 공장에서 잔업을 안 하면 관리자들이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이모들이 뭐라고 해요. '니 그래가지고 돈 벌겠나?'. 노동자들이 잘못하면 중소기업 같은 데서는 다른 벌칙을 주지 않아요. 잔업, 특근을 안 시켜요. 잔업, 특근 수당을 못 받으면 월급이 엄청 많이 적어지니까 노동자들이 그만두거든요. 이게 정상적인 사회인가요? 하루 12시간 일을 해도 월급이 200만 원이 안 되는 상황을 우리 청년들이 만든 건가요? 5포, 7포? 누군가에 의해 포기를 당한 게 맞지 않을까요. 사회가 포기하게 만들었지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기 때문에 포기하지 말고 당당하게 청년들이 함께 모였으면 좋겠어요. 모여서 얘기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목소리를 같이 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손 위원장과 경남청년유니온은 강단 있게 또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 굳이 매일 진지할 필요는 없다. 서로가 조합원이자 친구이기도 하다. 위원장 임기는 올해로 끝이지만 앞으로도 청년유니온 활동을 해나갈 것이다.

"사실 위원장이라는 직책을 맡으면서 좀 어색했어요.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느새 임기가 다 끝나가네요. 부족했을 수 있겠다고 생각은 하는데(웃음) 임기 중 조합원들이 늘었고 열심히 사업했으니까 마무리도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손 위원장은 공장 노동자로 돌아갈 생각이다. 현장 깊숙이서 일하며 노동자들과 지내는 것이 가장 우선으로 세우고 있는 내년 계획이다. 물론 경남청년유니온 활동도 함께 한다.

"내년에도 계속 최저임금 인상 운동을 진행하고, 경남지역 청년들 목소리를 더 알릴 수 있도록 해야죠. 또 경남청년유니온이 더 지역 청년들과 가까워지도록 거리에도 자주 나가고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지금 쉬고 있지만 이제 또 노동을 하러 가야죠.(웃음) 청년들이 있는 사업장에서 함께 일하면 노동 문제를 더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을 거고요. 노동 현장 가서 일하면서 청년유니온 활동하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입니다."

경남청년유니온 사무실에는 맛있는 밥 냄새가 가득했다. 누구는 전을 굽고 누구는 반찬을 담고 있었다. 손 위원장은 이날 청년들이 모여 저녁 식사를 만들고 있는 이유를 '집밥 모임'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가끔 이렇게 모여 식사를 같이 준비하고 아는 이들을 불러 모아 밥을 먹고 갈 수 있게 한다고 했다. 청년들이 모인 북적북적한 분위기는 생기 있고 따뜻했다. 그들이 만들어갈 청년의 시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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