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 진해구 성내동 325-9번지 일대의 웅천읍성입니다.
웅천읍성은 세종 16년(1434년) 남해안 지역에 출몰하던 왜구와 제포왜관의 왜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건설됐습니다.
조선 전기 왜구들의 약탈이 심해지자 일본인들의 왕래와 거주를 허용하는 삼포를 개항합니다.
그중의 한 곳이 진해 웅천의 제포입니다. 제포는 삼포 중에 가장 큰 왜인 거류지였으며 웅천읍성과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삼포 개항 당시엔 소수에 불과했던 일본인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불법 이주와 장기 거주하는 사람도 늘어나게 됩니다.
거주지 내에서만 어업과 농업을 위주로 생활하던 왜인들은 점차 거주지역을 이탈해 세력을 확장하면서 사회문제가 됩니다.
이에 조선 정부는 주민들을 보호하고 왜인들에게 엄격한 통제를 가하기 위해 쌓은 성이 웅천읍성입니다.
그 후 엄격한 통제에 불만을 품은 왜인들은 1510년 중종 5년에는 삼포왜란을 일으킵니다.
이 삼포왜란으로 웅천읍성이 함락 당하기도 했으며 동문 등 일부 시설이 불타기도 합니다.
임진왜란 때는 고시니 유끼나가(小西行長)가 이곳에 머물기도 했고 일본왜성의 부속성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조선군의 대일본 방어의 최일선 기지 역할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성벽 주변에는 해자가 설치되어 있고 해자를 건너다닐 수 있는 나무다리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해자 바닥에는 적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나무말뚝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웅천읍성은 현재 경상남도 기념물 제15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습니다.
김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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