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부는 기업의 회생을 도와주는 곳

부산항을 모항으로 두고 있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섰다. 관련 업계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향후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창원에 기반을 두고 있는 STX조선해양도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다. 그런 와중에 '법원의 파산부가 재계 서열 12위에 달하는 자산 규모를 가졌다'는 말도 나온다. 개인과 기업의 회생·파산을 맡고 있는 '파산부'는 국민들에게 낯설다. 파산부는 어떤 곳인지 알아보기 위해 창원지방법원을 찾았다.

먹구름이 살짝 낀 하늘을 뒤로하고 창원지방법원 파산부에 방문해 오상진(47) 부장판사를 만났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가 법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특별한 목적의식이 있어서는 아니라고 한다. 진학할 시기에 '사' 자가 들어가는 직업이 좋다는 대중 인식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법조계 종사자는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직종이기에 법학 전공 결정에 망설임은 없었다고 하는 오 판사. 올해 2월에 창원지방법원에 부임한 그는 서울에서 판사 업무의 첫발을 내디딘 후 여러 지역, 여러 업무를 맡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처음 업무를 시작한 것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이었습니다. 서울가정법원과 인천, 의정부, 대법원 등을 거쳤고, 외국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2005년에는 이곳 창원지방법원에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파산 업무과 공보 업무를 맡았었죠. 지금에야 공보판사가 따로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공보판사'라는 게 따로 구분되지 않았기에 파산업무와 공보업무를 함께 처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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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상진 창원지방법원 파산부 부장판사. / 이종현 기자

판사의 임용 절차에 대해서도 물었다.

"과거에는 사법연수원을 통해서 곧바로 판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2017년에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로스쿨 체재가 되면서 일정 경력을 가진 상태에서 지원하도록 법조일원화를 시행하면서 법관 임용 절차가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는 법조경력 3년, 2018년부터 2021년까지는 법조경력 5년 이상, 2022년부터 2025년까지는 법조경력 7년 이상, 2026년 이후에는 법조경력 10년 이상이 법관 지원 요건입니다."

개인회생과 개인파산

파산부는 지방법원 단위에 있는 부서다. 창원지방법원 파산부는 경남 도내 모든 지역을 총괄하고 있다. 그렇다면 파산부가 맡는 업무는 무엇일까.

"파산부의 업무는 크게 4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개인을 상대로 하는 개인회생과 개인파산, 법인을 상대로 하는 기업회생과 기업파산 정도. 회생의 경우는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법률관계를 조율해 채무를 조정하는 업무입니다. 쉽게 말하면 채무를 갚을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해서 조정한 내용을 갚는다면 나머지 채무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이죠. 파산은 채무자가 채무를 변제할 능력이 없을 때, 가지고 있는 재산을 채권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 채무는 면책시켜주는 겁니다."

회생이나 파산을 한다고 하더라도 절차나 자격 등이 있을 것이다. 먼저 개인회생과 파산에 대해 물었다.

"개인회생의 경우 자격 요건이 있습니다. 총 채무액이 무담보채무로 5억 원, 담보부채무의 경우 10억 원 이하의 개인 채무자가 신청할 수 있는 절차입니다. 당연히 회생을 신청한다고 해서 모두가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회생 신청을 하면 정해진 기간 내에 변제계획서를 제출하고, 이를 검토해 회생 개시 결정이 난 뒤 채권자와의 조율을 진행합니다. 채권자와의 조율이 이뤄진 후에 변제계획 인가가 나고, 최장 5년 동안 채무를 잘 갚으면 나머지는 면책시켜 주는 제도입니다. 채무 규모가 10억 원 이상일 경우는 '일반회생'으로 처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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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산부 주최 직무교육. / 이종현 기자

개인회생과 함께 맡고 있는 업무인 개인파산의 절차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개인파산은 도저히 채무를 갚을 수 없는 상태일 경우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회생과 마찬가지로 개인파산 신청을 한다고 해서 모두 허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첫 번째로 낭비, 도박 등 기타 사행 행위로 재산을 감소시키거나 과대한 채무를 부담한 경우, 두 번째로 재산의 은닉, 손괴 또는 불이익한 처분(헐값 매매) 행위, 세 번째 채무를 허위로 증가시키는 행위 등. 이런 면책불허가 사유가 있을 경우 파산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개인파산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채무자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채권자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금액은 면책시켜 줍니다."

오 판사는 개인회생과 개인파산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재기·갱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제도이며, 채무자뿐만 아니라 채권자들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회생·파산 제도를 잘 이해하고, 어려움이 있을 경우 상담받기를 권했다.

기업회생과 기업파산

기업회생과 파산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법정관리'에 대해서 알아둘 필요가 있을 듯하다. 경기가 나빠짐에 따라 언론을 통해 법정관리라는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됐다. 법정관리란 무엇일까.

"법정관리는 결국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기업의 부채가 영업이익으로 감당할 수 없을 경우에 기업회생을 신청합니다."

기업의 경우 개인보다 큰 액수가 걸려있을 테고, 자연히 절차나 과정도 까다로울 것 같다. 는 오 판사는 "그렇다"고 답했다.

"큰 틀에서는 개인회생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기업의 경우 개인보다 이해관계자가 많기 때문에 절차가 더 복잡합니다. 기업 운영이 어려워 회생 신청을 할 경우 법원에서는 기업이 계속해서 영업을 하는 게 나을지, 아니면 청산하는 게 나을지를 판단합니다. 기업의 경쟁력이 있어서 영업을 계속하는 게 나을 경우 채무를 조정하고, 경영을 통해 얻는 수익으로 채무를 갚는 방식입니다.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부채 규모가 수익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될 경우에는 인수·합병(M&A)으로 기업을 유지시키기도 합니다. 만약 기업을 계속해서 운영해도 장래성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는 파산절차를 진행합니다. 기업이 가지고 있는 공장, 부지 등의 모든 재산을 채권자들에게 나눠주고 기업을 없애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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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상진 창원지방법원 파산부 부장판사. / 이종현 기자

법정관리를 곧 파산이라고 보는 인식이 많은 데 비해 파산부의 역할은 파산보다 회생에 중점을 둔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기업회생신청이 들어왔을 때부터 파산을 가정하고 업무를 진행하지 않습니다. 최대한 손해가 적은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하고, 회생 가능성이 있는지를 철저히 따집니다. 파산부의 업무도 기업파산보다는 기업회생 업무가 훨씬 많은데요. 작년 같은 경우에는 파산보다 회생이 6배 정도 많았습니다. 올해는 파산 사건이 평소에 비해 많이 늘어서 회생의 1/3 정도까지 늘었지만, 그래도 회생이 한참 더 많습니다."

파산부, 재계서열 12위?

현재 법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기업이 1000여 개에 이르렀고, 그 자산 규모가 26조 원이라고 한다. 재계서열 12위의 어마어마한 규모다.

"파산부의 업무가 바빠진다는 건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그만큼 경제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니까요. 경제가 활성화되고 개인이나 기업에 어려움이 없다면 회생·파산도 줄어듭니다. 최악의 경제 위기였다고 하는 IMF 때는 법정관리에 들어서는 기업이 늘어 파산부가 재계 서열 5위 수준까지 올랐었습니다."

개인파산이든 기업파산이든, 그 영향은 파산신청을 하는 당사자에게만 미치는 게 아니다. 특히 기업의 경우 많은 이해관계자가 엮여있기 때문에 파산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골프장 같은 곳이 파산 신청을 하면 복잡합니다. 워낙 회원권자들이 많다 보니까 회생이든 파산이든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창원은 기업이 많은 산업도시다. 다른 지역에 비교했을 때 업무가 많은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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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상진 창원지방법원 파산부 부장판사. / 이종현 기자

"지난해 통계에서 창원지방법원의 기업회생 사건은 서울중앙지방법원 다음이었습니다. 수원이나 부산보다도 많았으니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닙니다."

'파산'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이어서 일반인들이 파산부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회생 신청은 수입이 적고 정말 갈 곳 없는 벼랑까지 몰린 사람들이 신청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잘못된 생각입니다. 회생이 필요하다면 벼랑 끝에 내몰리기 전에 신청하거나, 회생 신청 가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회생 신청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신청을 안 하다가 때를 놓쳐서, 최후에 회생 신청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조금 더 일찍 들어오면 법원이 효율적인 회생 방안을 모색해서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데, 그 시기를 놓쳐서 회생 신청을 하면 법원이 할 수 있는 역할도 제한돼요. 회사가 어려워진다면 기업 회생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합니다. 회생절차에도 필요한 돈이 있는데, 그것마저도 못 낼 정도로 몰린 기업들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회생이 어렵습니다."

법으로 사람들 돕고파

2016년 창원지방법원 파산부에서 회생 절차를 진행한 기업이 100개가량 된다. 오 판사는 "평소에는 100개가 안 되는데, 올해는 100개 정도 되거나 조금 더 될 거 같다. 파산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토록 많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창원지방법원 파산부는 오상진 부장판사와 파산1부, 파산2부의 판사 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기가 어려워지는 만큼 회생·파산 업무도 늘어나고 있지만 '찾아가는 법률 강좌' 등 일반인을 위한 외부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기업과 시민단체 등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법률 강좌'를 진행했었습니다. 파산부에서만 진행한 것은 아니고, 민사, 형사, 가사, 행정 등의 여러 내용을 담은 법률 강의였습니다. 매월 관리인들을 대상으로 직무교육을 실시하고 있고요."

어떤 외부활동을 했는지, 내용은 무엇이었는지를 묻다가 문득 일반인이나 기업이 회생·파산 신청을 고려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은 없는지가 궁금해졌다.

"우선 서류를 잘 갖춰야겠죠. 그리고 소위 '브로커'라고 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회생·파산 신청을 도와준다고 하고선 업무는 제대로 수행도 하지 않으면서 돈만 챙기고는 하는데요. 서류를 아예 안 내거나, 대충 내서 보완이 필요해 연락해 보면 연락도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 회생·파산을 고려하게 된다면 직접 사무실을 방문해서 상담한 후에 신청을 결정하는 게 좋습니다."

회생·파산은 당사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신청자도, 그리고 법원도 주의해야 한다고도 했다.

"개인도 그렇겠지만, 기업이 회생절차에 들어오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존 경영자도 물론이고 기업에 있는 노동자들, 채권자들 등.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아요. 기업이 제대로 회생해서 영업을 해야만 이해관계에 있는 이들의 손해가 줄어듭니다. 이게 잘 안 되면 많은 이해관계인들이 손해를 입게 되고요. 간혹 파산제도를 악용하려는 분도 있는데, 이해관계인들의 손해를 줄이기 위해서 회생절차가 원활히 진행하는 데 힘 쏟는 게 저와 파산부의 역할입니다."

법원의 사무 분담은 법원장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한 사무를 맡으면 2년 정도는 하는 게 관례라고 하는데, 올해 2월부터 파산부 업무를 맡았기으니 1년은 더 파산부에 있을 것 같다고 하는 오 판사. 그는 파산부에서 근무하는 남은 기간 동안 개인과 기업의 회생·파산에 최선을 다하겠고 밝혔다. 또한 이후 파산 업무가 아닌 업무라 하더라도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겠다고도 했다.

'법으로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오상진 판사. 법조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가 이루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예전에 맡았던 사건에서 10여 년 동안 사건에 얽매여 있던 분을 만났습니다. 몇 시간 동안 말씀을 듣고, 거기에 대해 제가 설명을 하고 하면서, 결국 소송을 잊어버리고 자기 생활로 돌아가셨어요. 이렇게 소송을 진행하다가 일이 잘못 꼬여서 오랜 기간 소송에 얽매여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민사소송을 하다가 형사소송을 하고, 형사소송을 하다가 관련된 검사, 판사를 소송하고. 소송이 소송의 꼬리를 무는 형태가 됩니다. 나중에는 결국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몸과 마음 모두 상해서 소송에만 몰두하는 분들, 이런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분쟁 당사자들을 불러 조율하고, 잘 설명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어요. 이런 게 판사로서의 보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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