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 공간' 지키는 사이버 전사

'딸기'라는 여성이 한때 성인인터넷방송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오프라인 팬 미팅까지 열릴 정도였다. 물론 팬층은 99.9% 남성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딸기'가 경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팬들은 경찰을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담당 경찰관들 이메일 주소를 찾아 협박성 내용을 담아 보냈다. 그들의 원망 대상 가운데 한 명이 경남경찰청 사이버수사대 테러수사팀장 송재용(48) 경감이다.

포르노 여배우 검거 '협박 쇄도'

경남경찰청 사이버수사대 내 테러수사팀은 올해 2월 신설됐다. 침해형 범죄, 즉 해킹·바이러스 등과 같은 전문적인 영역을 다룬다.

최근 10대 등 3명이 피시방 디도스(DDos·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을 하는 일이 있었다. 해킹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일어난 범죄였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면서 각종 해킹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사이버 전쟁'이라 할 정도로 충격과 파급력이 커졌죠. 얼핏 보면 비슷한 정보유출, 디도스 공격 같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미세한 수법 차이가 있습니다. 나날이 진화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들 생각을 한 번 더 뒤집는 역발상을 끊임없이 합니다. 한 발 더 앞서나가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거죠. 엄청난 머리싸움이 필요합니다. 첩보가 들어오면 팀원들이 모여 '너 같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으냐'는 회의를 반복합니다."

송 경감은 '사이버수사 1세대'로 이쪽 분야 산증인이기도 하다. 그동안 해결했던 굵직한 사건들은 나열하기 벅찰 정도다.

경찰청.jpg
▲ 송재용 사이버수사대 테러수사팀장 경감. / 김구연 기자

'전국 최초 인터넷성인방송국 운영자 검거 등 음란물 배포 피의자 74명 무더기 검거', '제16대 대통령선거 사이버 선거사범 4명 구속', '인터넷 700서비스 이용 음란정보 제공 벤처기업 대표 등 22명 검거', '인터넷 이용 50억 원 상당 불법 신용카드대출 피의자 4명 검거', '인터넷 국제마약밀매조직 20명 구속', 'P2P 사이트 음란물 유포자 34명 검거'….

2004년 '국제 인터넷포르노방송국 운영자 등 72명 검거' 때 유명인사(?) '딸기'가 포함됐다.

"2000년 초 인터넷 활성화로 성인비디오 업계가 포르노방송국 쪽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애초 국내에 세트장을 만들어 놓고 찍는 식이었는데, 단속이 시작되자 외국으로 옮겨갑니다. 잘 나가던 여배우는 한 달 수입만 3000만 원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딸기'를 검거했을 때는 테러성 메일을 엄청나게 받았죠. 이후 사이트 운영자들에게 '딸기를 구속한 경찰관'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이러한 성과 때문에 지금도 경남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뜨면 관련 업계가 바짝 긴장한다고 한다.

'승진 명당' 부서로 이끌다

테러수사팀은 송재용 경감을 비롯해 5명으로 구성해 있다. IT 기업체에서 일하다 특채로 들어온 수사관도 2명이나 된다.

이들은 지난 5월 이른바 '몸캠피싱' 사건을 해결했다. 스마트폰으로 음란행위를 유도한 후 해킹프로그램으로 개인 정보를 확보,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하는 수법이었다. 20여 명이 저마다 역할 분담을 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우리가 애초 파악한 인원은 3명이었습니다. 근거지가 서울 오피스텔이었습니다. 승합차 두 대를 몰고 갔습니다. 오후 6시 조금 지나 급습했는데 20명 가까이 안에 있는 겁니다. 알고 보니 24시간 2교대로 운영하는 식이었는데, 마침 교대 시간이라 모두 모여 있었던 겁니다. 예상외로 사람도 많고 압수물도 엄청났습니다. 차 2대에 꽉꽉 채워 겨우 경남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수사 영역은 전국 혹은 국외 할 것 없다. 결국에는 검거가 목적이기에 전국 곳곳을 다녀야 한다. 며칠 씩 외박은 기본이다. '몸캠피싱' 사건만 하더라도 서울을 대여섯 차례 오갔다. 근거지를 확보했다고 해도 무턱대고 문을 따고 들어갈 수 없다. 증거물 확보 가능한 최적의 타이밍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수사관 스스로들 '사이버 전사'라 부르는데, 그 앞에 '인내가 필요한'이라는 말 또한 빼놓지 않는다.

경찰청.jpg
▲ 송재용 사이버수사대 테러수사팀장 경감. / 김구연 기자

이처럼 몸과 머리가 함께 고된 일이다. 대부분 사건은 고소인도 없어 백지상태에서 범죄 단서를 찾아가야 한다. 통신 허가, 계좌 압수수색 영장을 받는 것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이 때문에 조직 내에서 기피 부서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그만큼의 결과물도 뒤따랐다.

송 경감은 '2004년 총선 인터넷 비방 사범 검거' 유공으로 경사로 특진했고, 2005년 '기업형 음란화상채팅 운영단 86명 검거'로 다시 1년 만에 경위로 특진했다. 2011년에는 '대한민국 사이버치안 대상'으로 경감으로 역시 특진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던 수사관들이 1년 사이 모두 특진하는 불멸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사이버수사 부서는 곧 승진 명당'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장본인이다.

독학으로 컴퓨터 전문가 우뚝

송재용 경감은 의경 복무를 계기로 1991년 경찰관이 되었다. 타자로 조서를 꾸미던 시절이었다. 경찰서 내 컴퓨터는 수사과 1대, 경무과 1대 정도였다. 송 경감은 수사지원팀 업무를 하면서 컴퓨터 편리함을 잘 알았다. 컴퓨터 대리점 하는 지인을 통해 '한글 문서프로그램'을 익혔다. 그리고 조립식 컴퓨터를 사비로 사서 업무용으로 활용했다.

"저를 보고 주변 선배들도 컴퓨터를 하나씩 사기 시작하더라고요. 하지만 관련 문서 서식이 없다 보니 컴퓨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관련 서식 500여 개를 한글 파일로 만들어 나눠줬죠. 그런데 이제는 한글 문서작성 방법이 서툴다 보니까, 문제 있을 때마다 저를 찾는 겁니다. 불려 다니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저를 필요로 하는 이가 많으니 보람이야 말할 수 없었죠."

경찰청.jpg
▲ 송재용 사이버수사대 테러수사팀장 경감. / 김구연 기자

송 경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컴퓨터를 좀 더 전문적으로 익혀야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정보통신 기능사 자격증, 인터넷검색사, 각종 프로그램 자격증을 땄다. 독학으로 컴퓨터 전문가 길에 접어든 것이다.

2000년 경남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반이 신설되면서 지금의 업무에 본격적으로 발 들였다. 중간에 형사과 업무 등을 제외하면 어느덧 12년 넘게 사이버수사 업무를 이어오고 있다. 평소 '아픔 없이 얻는 것도 없다'는 좌우명을 바탕으로 미개척 분야에 도전, 사이버 전문 수사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주변으로부터 '한 분야 전문가' 이야길 듣지만, 스스로는 '팔방미인' 소릴 듣고 싶어 한다. 이래저래 욕심 많은 송 경감이다.

사이버범죄 법률자문 봉사 꿈

진주가 고향인 송재용 경감은 은행에서 근무하던 아내를 만나 1996년 결혼했다. 당시 서무 업무 때문에 은행갈 일이 잦았던 것이 인연이 되었다. 2000년 진주 근무 때 내 집 마련에 성공했는데, 한 달 만에 창원으로 발령 났다. 이후 6년간 진주 집에서 창원으로 출퇴근하기도 했다. 지금은 창원에 별도 주거지를 마련해 주말 부부로 지내고 있다.

1남 1녀 가운데 고3 딸은 어릴 때부터 경찰 제복·용품에 반하면서 아빠 뒤를 잇겠다고 벼르고 있다. 고교 졸업 후 바로 시험 보겠다는 딸과, 그래도 대학에 적을 두면서 준비하라는 아빠 간 알콩달콩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사이버수사 업무는 아무래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특히 불법 사이트는 야간에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집에서도 인터넷을 헤집고 다녀야 한다. 송 경감은 한때 살이 엄청나게 불었는데, 테니스를 10년 가까이 치면서 그 고민에서 벗어났다. 특히 아내와 함께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라 일석이조다.

송 경감은 컴퓨터를 붙들고 있었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며 감회에 젖는다.

"1990년대에 PC통신 속 파란 화면에 빠져 하얗게 밤을 지새우던 기억이 납니다. MS-DOS, 286컴퓨터에서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변천사를 모두 경험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퇴직까지는 아직 10년 넘게 남았다. 남은 시간, 그리고 이후 할 일에 대해서도 머릿속에 그려놓은 게 많다.

"백지상태에서 밤새워 가며 추적합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피라는 숫자가 나오고, 결국에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매력에 빠져 지금껏 이어오고 있습니다. 사이버 공간 내 어둠의 세력들을 찾아내 밝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죠. 그러기 위해 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겁니다. 사이버수사는 전문가가 아니어도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컴퓨터 지식만 있다면 끊임없이 연구해 가면 됩니다. 제가 습득한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보급·전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 이후에는 사이버범죄 법률 자문 봉사단체에서 활동해 보고픈 꿈이 있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