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도시가 대도시 쫓아가선 안 된다

9월 5일, 경남 진주에서 '서부경남 지역발전포럼'이 개최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경상대학교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 포럼에는 지역 국회의원 및 지자체 공무원, 지역발전 전문가 등이 참여했다. 여러 분야에서의 서부경남 지역개발방안이 쏟아져 나왔다. LH는 서부경남 발전을 위해 1조 원 규모의 사업비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LH공사 등 11개의 공공기관이 진주시로 자릴 옮겼다. 진주혁신도시를 통해 진주, 나아가 서부경남에는 어떤 기대효과가 있을지, 도시계획의 전문가 안정근 경상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구와 실무를 거친 도시계획의 전문가

도시공학이라는 학문이 자리를 잡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도시공학을 가르치는 대학은 몇 없었다. 안 교수는 "제가 대학 갈 때는 부산에 하나, 서울에 두어 곳 정도 있었던 거 같다. 당시엔 도시공학이라는 학문이 생소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그가 도시공학을 공부한 것은 석사, 박사과정에서다. 도시가 급격하게 발전하던 시기에 '도시'에 대해 공부를 시작한 안 교수는 미국 텍사스주 광역도시계획위원회에서 도시계획관으로, 대한주택공사(LH공사의 전신)에서 연구위원으로 도시계획 연구와 실무를 수행했다.

"경상대학교에 부임한 것은 2004년입니다. 올해로 12년째인가요? 그전에는 1년간 미국 텍사스주의 도시계획관으로 일했습니다. LH공사에서 10여 년 연구위원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주로 맡았던 건 신도시 개발이나 단지 개발 등, 도시 개발과 관련된 분야입니다. 도시의 미래에 대해 연구하면서 실무도 처리했었죠."

쭉 도시계획을 연구해온 그는 5일 개최된 서부경남 지역개발방안에서 발표를 맡기도 했다.

01.jpg
▲ 안정근 교수./이종현 기자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도시공학

도시공학이라는 학문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지는 모호했다. 막연히 떠오르는 것은 건축공학과 토목공학과 유사점을 지녔다는 것.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어떤 학문인지 물어봤다.

"비전문가가 보기에는 도시공학이나 건축공학, 토목공학 모두 비슷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건축공학은 단일 건축에 관련된 여러 사항들은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공항이나 도로, 댐, 하천 같은 기반시설들을 연구 분야로 삼는 게 토목공학이고요. 도시공학은 도시에 거주하는 주민이 필요로 하는 요소를 공급하고, 도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학문입니다. 주거생활이나 경제생활까지 고려해, 주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게 도시공학의 역할이죠. 그러다 보니 건축, 토목, 조경 등 여러 학문이 부분부분 녹아 있기도 합니다."

도시공학이 건축공학과 토목공학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분야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 안 교수는 도시공학이 적용되는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 신도시 개발이나 산업단지 개발, 관광단지 개발, 도시재생 등을 꼽았다.

"좁게 본다면 신도시 개발 같은 것이 도시공학의 영역입니다. 도시의 방향점을 제시하는 산업이나 관광단지 개발, 도시재생도 그 일부이고요."

도시재생이라는 명칭은 친숙하다. 가까이 있는 마산의 창동 예술촌이나 유명 관광지인 통영 동피랑마을도 도시재생의 결과물이다.

"도시재생은 낙후된 기존 도시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함으로써 도시를 쇄신하는 것입니다. 도시재생의 성공적인 사례로는 서울의 청계천 복원사업이 있겠네요. 기존의 노후화된 구조물을 철거하고 청계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복구했습니다. 하천 주변에도 여러 문화공간을 설치해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 요소도 갖추었죠."

02.jpg
▲ 안정근 교수./이종현 기자

국내 도시들은 독일이나 유럽의 도시들을 벤치마킹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의 도시공학은 유럽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도시계획 트렌드는 유럽형의 도시개발과 미국형의 도시개발로 구분하곤 합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도시 형태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요. 일본의 스타일이 유럽의 영향을 받은 거라, 결국 유럽형 도시개발이 많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물론 부분적으로 미국형 도시개발의 스타일을 쓰기도 합니다. 어느 한 쪽이 무조건 좋다고 할 수는 없고, 상황이나 환경 등을 고려해서 선택합니다."

중소도시 발전을 위해선 '차별화' 필요

서부경남, 특히 진주의 변화가 눈에 띈다. LH를 비롯해 11개의 공공기관이 진주로 이전했다. 공공기관의 이전으로 진주혁신도시에 유입된 인구만 2000명 안팎이라고 한다. 앞으로 진주는 어떻게 나아갈까.

"여러 가능성을 두고 움직이는 단계죠. 진주의 강점인 역사·문화를 살리는 방안은 꾸준히 시도하고 있는 방향입니다. 진주는 남강과 진주성을 기반으로 역사·문화적 자산들이 많은 도시이니까요. 그리고 진주혁신도시를 기반으로 새로운 인력과 기업을 유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진주와 사천이 항공산업 국가산단으로 지정됐는데요. 이를 특화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최근 교통편이 많이 좋아진 것도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타 지역과의 소통, 교류도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게 됐죠."

03.jpg
진주혁신도시 내 LH공사 청사./이종현 기자

즉 도시가 성장할 수 있는 재료는 숱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를 잘 살릴 수 있을지 걱정된다. 대부분의 도시가 저마다의 강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강점을 잘 살리지 못하고 대도시에 주민들을 빼앗기고 있지 않은가.

"도시는 변화된 환경, 주민의 수요에 맞춰 변화합니다. 주민들의 요구와 수요를 충족시키는 도시는 계속해서 성장하지만 그렇지 못한 도시는 주민들이 떠나게 됩니다. 도시의 변화는 떠나는 주민들을 잡기 위해, 새로운 주민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노력이죠. 창원이나 동부경남권은 주민들을 잡기 위한 노력이 대단합니다. 서부경남은 비교적 이런 변화가 적었죠. 이제는 진주의 혁신도시, 진주·사천의 항공산업 국가산단 등을 통해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지역이 발전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도시 발전을 위해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진주를 포함해 서부경남의 도시들은 대부분 중소도시 형태인데요. 저는 이런 중소도시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차별화라 생각합니다. 중소도시가 가지고 있는 강점을 특화해야 한다는 거죠. 지난 포럼에서도 비슷한 내용으로 발표했었는데, 대도시가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이 있고 중소도시가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이 있습니다. 각각의 차이점이 있어요. 그런데 그간 진주를 비롯해 많은 중소도시가 대도시를 쫓아가는, 대도시와 경쟁 관계를 가지는 것을 도시발전의 방향으로 설정했습니다. 저는 이런 게 중소도시가 발전하는 데 역효과를 줬다고 생각해요. 대도시는 기반시설이 많고 기업하기도 좋습니다. 이런 대도시에 중소도시가 같은 방법으로 맞서는, 정공법을 택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죠. 대도시에는 없는, 비교 우위가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발전시키는 차별화가 중소도시의 지향점이어야 합니다."

대도시와는 다른, 중소도시의 차별화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안 교수는 '젊은 인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지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제도적, 경제적인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게 젊은 인력들이 지역에 와서 활동하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죠. 젊은 인력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서 젊은 도시가 된다면, 기업들은 그 인력들을 쫓아서 오게 됩니다."

젊은 인력을 강조하는데, 도시의 평균 연령이 낮아야 한다는 것일까.

"여기서 말하는 젊은 인력이라는 건 '나이가 어린 모든 젊은 인력'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특화된 직업군, 업종이어야죠. 지역의 특화 산업을 만들고, 거기에 맞춘 인재들이 유입되도록 해야 해요. 여기서는 대학이라는 기관이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대학에서 지역에 맞는, 특화된 분야를 연구하고 거기에 맞추어 학생들을 양성합니다. 그리고 산학연 등을 통해 기업과 연계하면 지역, 학교, 학생 모두 상생하며 발전해나갈 수 있습니다."

연구가이자 교육자

안 교수는 도시계획의 전문가이자 연구자이지만, 동시에 교육자이기도 하다. 그는 학생들에게 도시공학의 학문적 깊이를 일깨움과 동시에 앞으로의 삶에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교수로 지내면서 학생을 빼놓고 얘기할 순 없죠. 대학생들 상담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이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취업에 대한 관심, 걱정이죠. 졸업을 하고 취업해야 하는지, 졸업 전에 취업부터 해야 하는지…. 저는 이런 학생들에게 대학원이라는 시스템을 잘 활용하라고 조언합니다. 대학원을 통해 전문지식의 깊이를 더하고, 정부의 지원이나 연구실의 연구 참여를 통해 관심 가지고 있는 분야를 파고들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 보이곤 하거든요. 물론 연구를 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습니다."

경상대학교 도시공학과는 2013년부터 'BK21 플러스 사업(Brain Korea 21 Program for Leading Universities & Students)'에 선정돼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창조형 중소도시재생 전문인력 양성사업'이라는 주제로, 전국 도시공학과 중 유일하게 선정됐다.

"BK21 플러스 사업은 대학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해 학생들이 석사, 박사 과정을 안정적으로 이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국가가 모든 대학에 지원할 수는 없다 보니 일부 대학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는데, 도시공학과가 있는 전국 30여 개의 대학 중 경상대학교가 유일하게 BK21 플러스 사업에 선정됐습니다. 2019년까지 저희 학과 대학원생들은 정부 지원을 받는 셈이죠. 대학원 과정에서는 국내, 국제 학술대회에 참가하거나 연구논문을 쓰는 등 실적을 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BK21 플러스 사업 같은 지원이 지속돼서 학생들이 학문적으로, 자기 분야에서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안 교수는 연구 분야에 대한 열정 이상으로 학생들의 지도에 열정을 쏟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교육자로서의 그가 학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는 학생들에게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한 목표를 가지라고 말합니다. 당장에 구체적인 목표를 잡지 못하더라도 괜찮습니다. 목표를 가지려 하는, 그런 방향성을 생각하는 게 중요하죠. 방향성을 찾고자 노력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은 차이가 있는 거 같습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장점이 있어요.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누가 더 잘났냐, 못났냐가 아니라, 자신의 장점을 찾은 사람과 찾지 못한 사람의 차이라 생각합니다. 강의 한 과목을 못 한다고 실패한 게 아니에요. 그것 외에 자신의 장점을 찾고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애정어린 '잔소리'도 덧붙였다.

"사람의 삶을 크게 분류했을 때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가 있다고 보는 데요. 이 네 개의 사이클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온다는 것을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다들 청년기에 젊음을 만끽하지만, 그 젊음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음 사이클로 넘어가게 됩니다. 장년기를 대비하지 못한 채 사이클이 넘어가면 앞으로의 사이클 모두가 엉클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그때 그 시절에 충실히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이클은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그 시기에 맞는 자신을 찾고, 앞으로 찾아올 미래를 그리며 대비하는 자세를 길러야 합니다."

안정근 교수의 연구실에서 진행한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 인터뷰를 진행하는 와중에 네다섯 명의 사람들이 그를 찾았다. 추석 전에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무엇이 그리 고마운지 안 교수에게 "감사합니다, 교수님 덕분입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도시공학의 전문가로서, 교육자로서 지역과 학생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안 교수. 그와 지역, 학생들이 나아가는 길이 탄탄대로이길 빌어본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