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현장 숨은 퍼즐을 맞춘다

국외연수·교재발간·수상·강의·연구실적·자격증…. 주요 경력이 A4 용지 한 장에 다 담지 못할 정도로 화려하다. 18년 동안 과학수사 외길을 걷고 있고, 국내 몇 안 되는 '화재감식 전문수사관'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경남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 김정학(47) 경위 이야기다.

김해 고물상 살인사건

과거에는 일선 경찰서에 과학수사팀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지방경찰청 소속으로 바뀌어 경남에서는 서부권·중부권·동부권·남부권 4개 권역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경남지방경찰청 형사과에 과학수사계가 별도로 있어 대형 살인·화재사건을 지원하고 있다. 10명이 화재·거짓말탐지기·범죄분석·CCTV·유전자·검시관 등 전문 영역을 맡고 있다. 김정학 경위는 '화재폭발 감식' 전문 수사관이다.

"화재·가스폭발·생활안전 관련 사고가 터지면 현장감식 지원을 나갑니다. 얼마 전 진주 건물 붕괴사고 현장에도 나갔고요. 사건에 따라 국과수, 전기·가스 안전공사와 합동 감식을 하기도 합니다. 이론적인 지식보다는 폭넓은 지혜가 필요한 일이죠."

화재폭발 감식 업무를 본격적으로 한지는 10년이 훌쩍 넘었다. 굵직한 사건 여럿이 머릿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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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학 형사과 과학수사계 경위.

"2014년 김해 고물상에서 불이 나면서 여주인이 사망했습니다. 화재사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발화 지점이 큰방·작은방 두 곳이었습니다. 인위적인 방화라는 의미죠. 아니나 다를까 발화 지점 내 침대에서 회칼이 발견됐습니다. 시신에서도 뭔가에 찔린 흔적이 있었는데 회칼 폭과 맞더군요. 그리고 계단에서 회칼 케이스, 특정 생활용품 상호가 적힌 비닐종이가 발견됐습니다. 경남·부산·울산에 있는 해당 매장을 모두 탐문한 끝에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교도소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30대였습니다. 생활비 마련을 위해 여주인 혼자 있는 곳을 노렸는데, 반항하자 살해한 후 불을 지른 거죠."

2002년 '김해 중국 민항기 추락사건',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 때도 지원을 나갔다. 2004년 '마산산호공원 토막살인 사건' 현장은 특히 처참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공원에 운동하러 온 주민이 마네킹 손인 줄 알고 자세히 봤는데 사람 손이었던 거죠. 현장에 나가보니 토막 난 시신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한참 더울 7월 말이었습니다. 부패가 심해 구더기가 들끓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손가락 지문이 도려져 있었습니다. 그 조각들을 짜 맞춰 사망자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고요. 가족을 추궁하니 가정폭력에 시달린 모녀가 저지른 일로 드러났습니다…."

2010년 '마산 남성동 호프집 방화 사건'도 잊을 수 없다. 현장을 살펴보니 전기적 요인은 아니었다. 바닥에서는 시너 성분이 검출됐다. 방화 가능성이 컸다. CCTV를 분석한 끝에 주인 자작극으로 밝혀졌다.

2008년 '마산 두척동 택시강도 살인 사건'은 고도 과학수사 기법으로 해결한 사례다. 마산 두척동에서 택시기사가 숨진 채 발견된 시간이 새벽이었다. 일대는 수풀 우거진 지역이라 특히 이슬이 많았다. 그 상태에서 감식했다가는 현장이 변질될 가능성이 컸다. 날 밝을 때까지 기다려 건조한 상태가 되자 지문을 채취했고, 범인을 곧바로 붙잡을 수 있었다.

김 경위는 이 사건으로 '제8회 살인사건 현장감식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현장 초동 조치, 지문·유전자 시료 채취, 검거기법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2011년에는 과학수사 실적 전국 1위로 특별승급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이 길이 내길' 직감

김정학 경위가 과학수사 업무를 맡은 것은 1999년 경장 승진 직후다. '이 길이 내 길'이라 직감했다고 한다.

"화재사건은 전기·화학 등 복합적인 요인이 많습니다. 또한 불에 타면서 현장 상황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원인 규명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죠. 구조물 붕괴, 감전, 뜨거운 열기와 먼지 등 위험 요소도 많고요. 그런 애로 때문에 예전에는 꺼리는 부서였습니다. 감식반 발령으로 2주간 관련 교육을 들었습니다. 3시간짜리 감식 교육을 듣는데 느낌이 딱 오더군요. 그런데 그 방대한 내용을 몇 시간 안에 모두 듣고 이해한다는 건 무리였습니다. 우선 전기 분야를 알아야 해서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2년간 주경야독 끝에 전기기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저녁에 사람들 만나고 술도 한잔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곤욕이었죠. 중간에 관둘까도 생각했는데요, 그동안 공부한 게 아까워서 끝까지 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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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학 형사과 과학수사계 경위.

2005년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화재감식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화재감식 전문수사관(Master)' 인증을 받았다. 관련 분야 최고 전문가가 된 것이다.

미국 마이애미 CSI 경찰국에서 국외 연수 경험을 쌓고, 아랍에미리트 화재폭발 감식 교관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미국은 시스템이 무척 잘 되어 있었습니다. 한 경찰서로 따지면 과학수사 요원이 우리는 4명 정도인데, 미국은 50명이 넘더군요. 전부 특채 전문가들이었고요. 미국 드라마 보면 과학수사 요원들이 아주 멋있게 그려지잖아요, 실제로는 자기들도 사건 해결 못 하는 게 많아 죽을 지경이라고 하더군요. 장비는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기법·기술은 우리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범죄·화재 현장에서는 아주 미세한 걸 다뤄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손재주가 좋잖아요."

김 경위는 미국 연수 보고서를 작성할 때 전문가 특채를 강조했다고 한다. 이후부터 국내에서도 과학수사 요원 특채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그는 화재폭발 감식 전문교재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책 제목이 '무궁화', 즉 '무지하게 궁금한 화재사건'이다. '참수리'도 준비하고 있다. '참 진실을 밝히는 수사 이야기' 줄인 말이다.

현재는 경남대학교 경찰학과에서 '과학수사론'을 3년째 강의하고 있다. 제자 중에 경찰 시험에 합격해 후배로 들어오는 이들도 제법 된다.

'무궁화 태몽' 현실로

김정학 경위는 마산에서 태어났다. 특이하게도 '무궁화 태몽'을 안고 있다. 집안 어른들은 계급장에 무궁화가 들어가는 군인 혹은 경찰 의미로 받아들였다.

"어릴 때부터 가전제품을 분해해 조립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새로운 무언가가 있으면 뜯어봐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공계 쪽으로 진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소방방재학을 공부했습니다. 군 제대 후 친구 권유로 경찰시험을 쳤다가 덜컥 합격하게 된 거죠. 아버지도 마산시청에서 공직생활을 오래 하셨기에 좋아하셨죠. 특히 태몽대로 되었으니까요."

1994년 경찰관이 되고 1년간 파출소 근무 후 수사·형사 업무를 맡았다. 평소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이라 적성에 잘 맞았다고 한다. 그러다 전문적인 분야를 고민하던 터에 '화재폭발 감식'이라는 영역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로 알려져 관련 업계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고 한다.

"보험회사나 법률회사 같은 곳에서 억대 연봉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마음이 전혀 안 흔들렸던 건 아닙니다. 그런데 동료 중에 그리 나갔다가 잘 안 된 경우도 종종 있었어요. 회사는 무조건 실적이니까요. 저는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 이것저것 해야 할 것도 많고요."

그는 경찰관 생활 초기에 만난 아내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대학생 딸은 경찰학을 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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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학 형사과 과학수사계 경위.

"여자로서 힘들지 않을까 걱정도 많죠. 야간 근무 등 경찰 이면의 어려운 점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줬습니다. 그럼에도 본인 스스로 의지가 강해요. 제가 가끔 신문에 소개되고, 또 화재 감식하는 모습이 방송뉴스에 나오는 걸 보고 경찰관 꿈을 키웠나 봐요.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니, 그래도 내가 잘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힘이 나더군요."

김 경위는 강원도 산골에서 군 생활을 해 산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일을 하고 나서 달라졌다고 한다. 사건 현장의 처참한 잔상은 오랫동안 몸과 마음을 무겁게 한다. 산에 오르면 그 트라우마가 씻겨진다고 한다.

먹는 것에서도 특히 입에 대지 않는 게 있다. 늘 잿더미 현장에 있다 보니 탄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경남대학교 행정대학원 봉사단도 주도적으로 이끄는 등 일 벌이는 것을 마다치 않는다. 복지시설에서 재능기부도 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할 일이 많다.

"후배들이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매뉴얼 교재를 만들 생각입니다. 퇴직은 아직 10년 넘게 남았는데요, 그때도 기회가 된다면 대학 강의를 더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관련 분야 자문·감정 역할을 하고픈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달려왔기에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제가 배 자격증이 있습니다. 어부가 되는 게 꿈이기도 하거든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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