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 대한 해석이 대립적이었으나

함석헌 선생과 같은 해에 나서 일찍 타계한 김교신. 함 선생 등과 같이 만든 동인지<성서조선(聖書朝鮮)> 주필을 지낸 김교신은 호암 문일평의 부음을 접하고는 "커다란 촉망과 적지 않은 사모(思慕)를 품고서 한 도시에 십수 년을 살면서도 진인(眞人)의 성해(聲咳)에 접하지 못하고 영별했으니 원통하기 그지없다"라고 한 것만 봐도 그 위인 됨을 알아볼 수 있는 분이다. 김 선생의 글을 보자.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보려 한 점만은 우리와 대립한다"

내가 만나 보던 가운데 가장 경외(敬畏)함을 마지 못하는 선배(류영모), 이 어른이 가로되 "내가 재주 없어서 재주 부리지 못하는 줄 아오? 실상은 하나님이 두려워서 그렇지" … 하나님을 믿되 이처럼 '믿어 사는 사람'을 우리는 보지 못했다. 일찍이 20대에 요한복음을 강화(講話)했던 것을 3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들은 이의 귀에 뚜렷하리만큼 성경을 깊이 음미한 어른이다. 톨스토이에게 사숙(私淑)함이 컸었던 듯, 그리스도를 단지 사람으로 보려는 것만 우리와 대립하는 점이나 … 류 선생은 특이한 요한복음 해석을 갖고 계시나 남의 신앙을 동요시킬까 염려하여 자기의 성서관(聖書觀)을 공표하시지 않는 터이다.

김교신이 다석을 '믿어 사는 사람'이라 표현한 것은 신앙 그대로를 실천하는 사람이란 뜻일 게다. 또 다석은 그리스도신앙에서 무교회주의자 톨스토이와 의견을 같이 했고, 톨스토이처럼 성서를 해석하는 관점이 정통 기독교와 전혀 달랐다. '그리스도를 단지 사람으로 보려는 것만 우리와 대립한다'고 한 김교신의 표현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를 인간이라고 부른다면 크리스찬에게는 아마 요동칠 말일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죄다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독생자(獨生子)로 여긴다. 곧 예수를 인간과는 다른 지위에 있는 것으로 신앙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다석은 우리말 성경의 '독생자'라는 번역을 보고 '독생자'가 '하느님의 외아들'이라는 뜻이라면 독자(獨子)라고 하면 될 것인데 왜 굳이 독생자라 번역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고, 그 결과 정통교리의 견해와는 상이한 풀이를 하였기에 김교신은 '우리와 대립한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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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사람의 몸으로 나서 하늘나라에 임하다

다석의 예수 해석은 대략 이러하다. 예수의 부활은 죽은 육신이 재림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는 죽기 전 영적으로 거듭난(復活) 것이다. 예수는 사람의 몸으로 나서 영성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임하였다. 40일 광야 기도와 요한의 세례를 받을 때 하늘로부터 흰 비둘기가 머리로 내려앉는 순간 성령이 임하여 영적 부활을 맞았다. '몸나'의 껍질을 벗고, '제나(ego)'의 칠통을 깨고 '얼의 나'(영적인 삶, 하느님을 바로 아는 나)로 거듭나 부활을 이룬 것이다. 예수는 저 홀로(獨) 하나님을 깨우쳐 정신적으로 다시 태어나(生) 하늘나라에 임한 아들(子)이라고 다석은 독생자를 해석했고 줄곧 그렇게 믿었다.

그러면서도 다석은 이 같은 생각이 남의 신앙, 즉 정통교리를 신봉하는 크리스찬을 동요시킬까 염려하였다. 그리고 김교신도 '다석의 염려'를 짐작하여 알았다.

사람들은 조그만 생각에서부터 나아가서 세계관·사상·종교가 다른 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서로 대적하며 산다. 그러나 유영모와 김교신은 이들과 달랐다. 나와 다르다고 미워하고, 나만 옳다고 윽박지르는 분노로 싸움질이 일어나는 것을 염려한 어른들이었다.

다석을 공자 못지않게 어진 분이라 칭한 성천 유달영도 1929년 김교신의 집에서 처음 다석을 만났다. 성천도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부분에 대해 다석의 풀이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다석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정통을 자처하는 교회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고 했다. 다석은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씨를 사람의 마음속에 넣어 주었다는 것이라 했다. 사람은 제 맘속에 있는 하나님의 씨를 키워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 삶의 궁극목적이며 석가는 모든 사람 속에 불성(佛性)이 있다고 했고 공자는 인성(人性)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예수의 영성(靈性)이나 석가의 불성이나 공자의 인성이나 같은 진리라고 말했다. …

다석이 남겨 놓은 난삽한 많은 글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풀이 없이는 그 참뜻을 알 수 없다. 다석은 그런 식의 말이나 글이 아니면 그로서는 자기 생각을 본질에 가깝게 나타낼 수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농학(農學)을 공부하면서 아직껏 농업이란 우리말을 모른다고 했더니 다석의 대답이 "나도 아직 순수한 우리말을 찾아내지 못했는데 '열음질'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라고 했다. 모든 것이 열매를 열게 하는 것이 농업의 본질이라 나는 더 이상 좋은 말을 아직 생각지 못했다.

진리는 하나이며 불성(佛性)이든 인성(仁性)이든 영성(靈性)이든 한 가지

성천도 다석의 세계에 들어간 분이다. 진리는 하나이며 그것이 불성이든 인성이든 영성이든 한 가지로 본 다석을 따른 것이다. 경전의 말씀은 경이로운 말이로되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진리는 현상과 본질로 섞여 있어 인간이 인지하는 여섯 가지 감관인 육식(六識: 眼耳鼻舌身意,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하고 의식하는)으로는 현상만을 볼 줄 알기 때문이다. 빙산의 일각만을 보고 그것이 전부인 줄 착각한다. 그러기에 본질을 보기 어렵다. 다석의 글도 경전과 같아 난삽하고 참뜻은 고원하다고 한 것이다.

사계절 중 여름은 열매가 열리고 맺히는 때이며 '열다'의 이름씨, 즉 명사형인 '열음-여름'에다 '-질('~가지고 하는 일'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를 붙여 농사를 '여름질'이라고 불렀다. 우리 말과 글, 생각에서 깊이 도달하지 않으면 이런 발상은 나올 수 없다. 성천도 '여름질'이란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겠는가?

성천은 언젠가 다석을 배웅하고 오는 길에 느낌을 적었다.

"내가 처음으로 널리 공부하고 깊이 생각하는 철인(哲人)을 가까이 모셔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석은 모임 자리에서 젊은이들이 인사로 절을 하면 아이들에게까지도 일일이 허리를 굽혀 맞절을 했다. 말도 경어를 썼다. 젊은이들을 대견스러운 듯이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자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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