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조면 천하마을에서 삼동리 물건방조어부림까지 17㎞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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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4대 서예가로 이름을 날린 자암 김구(1488~1543)는 남해섬을 화전(花田)이라 부르며 다음과 같이 읊었다. "산천은 기이하게도 빼어나서 유생, 호걸, 준사들이 모여들매 인물들이 번성하니/ 아, 하늘 남쪽 경치 좋고 이름난 곳의 광경 그 경치 어떠한가."

그가 1519년 기묘사화를 당해 개령(경북 김천)에 유배당했다 죄목이 추가되어 남해로 옮겨진다. 그가 남해에서 지은 경기체가 <화전별곡> 중 남해 경치를 묘사한 부분이다. 남해바래길 5코스 화전별곡길은 남해섬의 바다, 산, 강, 들을 두루 거치며 자암 김구가 찬미한 남해 경치와 함께하는 구간이다.

◇97번 임도를 걷다 편백 휴양림으로

화전별곡길은 남해군 미조면 송정리 천하마을에서 시작한다. 시작부터 길은 남해섬 내륙으로 향한다. 금산에서 시작해 천하마을을 지나 바다로 흘러드는 하천을 왼쪽으로 끼고 걷는다. 하얀 시멘트 길을 10분 정도 걷다 보면 곧 상수원 보호구역 표지판이 나온다. 둑방 너머가 천하저수지다. 잔잔한 물결에 비친 초록색 산빛을 보며 한숨을 돌리자.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힐 수도 있다. 저수지를 지나면서 점점 숲이 깊어진다.

바래길 이정표를 만나면 발길을 오른쪽으로 90도 꺾는다. 거기서부터 97번 임도가 시작된다. 왼편으로 금산(701m) 자락을 끼고 오른편 가마봉(450m) 능선을 지그재그로 지나는 길이다. 널찍한 길이라 불편은 없으나 산길의 고즈넉함이 부족하다. 홀로 걷자니 발치에 걸리는 자갈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길가로 편백이 소담하다. 굽이굽이 산을 휘돌아다니니 심심하진 않다. 어느 오르막에서 탁 트인 전망을 만난다. 골짜기를 따라 아담하게 자리 잡은 천하저수지를 포함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골짜기 끝에는 천하몽돌해변과 바다 건너 금포마을까지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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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번 임도 중간 천하저수지와 천하마을이 보이는 풍경. / 이서후 기자

임도가 계속 이어진다. 문득 눈을 드니 깊은 골짜기 너머로 길이 보인다. 묵묵히 수천 보를 걸어야 그곳에 닿을 것이다. 차라리 발아래 이어지는 길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 인도를 걸은 지 한 시간. 어느 모퉁이를 돌고 나니 문득 팔각정이 나타난다. 한려정이라 적혀있다. 한려정 입구 한편에 국립남해 편백 자연 휴양림 등산로 안내도가 서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은 편백휴양림 등산로 끝자락에 있는 전망대다.

정자에 오르니 왈칵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올라오면서 한번 뒤돌아봤던 골짜기 풍경과 천하마을이며 바다 건너 금포마을이 더욱 아득해졌다. 이제는 그 너머 아득한 남해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눈 시린 풍경이다. 등산화를 벗어 던지고 한시름 쉬어가기로 한다.

팔각정에서부터는 남해 편백 휴양림 지역이다. 길은 이제 내리막이다. 내리막 끝부분에서 삼거리가 나오면 그대로 직진이다. 조금 더 가면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산악기상 관측 장비가 서 있다. 이렇게 임도를 30분가량 더 걷고 나니 아스팔트 도로와 휴양림 안 숙소들이 나타난다. 여유가 있으면 일부러 편백 숲 안으로 쑥 들어가 보자. 곳곳에 평상이 놓여 있어 쉬기에도 좋다. 하지만, 팔각정에서 충분히 쉬고 난 터라 그냥 스쳐 지난다. 길은 휴양림을 가로질러 매표소로 빠져나온다. 곧 내산저수지다. 1997년 1월에 만들어진 꽤 큰 저수지다. 산과 물이 맞닿은 풍광이 독특하다. 자세히 보면 저수지 수면에 따라 층층이 물빛이 다르다. 수몰 전 다랭이논의 흔적이다. 오른편으로 저수지를 끼고 걷는다. 나비 생태공원 입구에서 다시 바래길 이정표를 만난다. 이제부터는 제법 넒은 아스팔트 도로다. 지나는 차들 속도가 빠르다. 때로 갓길이 좁으니 조심하자.

◇농촌 마을을 끼고 걷다 독일마을로

바람흔적미술관 앞 버스정류장을 지나면 곧 저수지 둑이다. 둑에서 바라보면 골짜기를 따라 농지와 마을이 펼쳐져 있다. 여지없는 산골 농촌 마을 풍경이다. 바래길은 아스팔트 도로를 버리고 저수지 바로 아래 동네로 향한다. 20여 가구나 됨직한데 내산마을의 끝자락으로 서당 터라고 불린다. 마을 길은 큰 소나무 두 그루 사이를 지난다. 논 옆 수로의 졸졸졸 물소리가 시원하고 정겹다. 곧 마을 길을 벗어나 농로로 접어든다. 내산저수지에서 시작하는 하천, '화천'을 따르는 길이다. 내산마을은 왼편에 펼쳐져 있다. 들판 너머 풍경은 첩첩산중이다. 섬이 아니라 내륙 산지 어느 시골길을 걷는 듯하다. 한 시간 정도 더 걷다가 길은 다시 아스팔트 도로로 빠진다. 이렇게 내산마을을 빠져나오면서는 도로를 따라 족히 한 시간은 걸어야 하니 마음을 단단히 먹자. 도로 주변 단풍나무 가로수가 꽤 인상적이다. 이곳도 오고 가는 차들이 제법 속력을 내니 조심하자. 봉화마을 초입에서 바래길은 도로를 버리고 오른쪽으로 하천을 향한다. 새로 지은 다리를 건너면 바로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독일마을까지 1.4㎞. 계속해서 하천을 왼편으로 끼고 걷는다. 하천 건너편으로 봉화마을 풍경이 정겹다. 곧 다리가 나온다. 화암교다. 그러면 오른쪽으로 오르막을 오른다. 독일마을로 가는 방향이다. 제법 많이 걸어온 탓인지 오르막이 만만치 않다. 원예예술촌 입구를 지나 독일마을 주차장 건너편으로 화장실과 독일 마을 관광안내소가 있다. 관광안내소에서 잠시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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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인 풍경의 독일마을. / 이서후 기자

독일마을부터는 내리막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주황색 지붕의 아담한 주택들이 보여주는 이국적인 풍경을 감상하자.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됐지만 실제로 산업개발시대 독일로 외화를 벌러 떠나 그곳에 정착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만년을 보내시는 진짜 마을이다. 그러니 도롯가 작은 집들을 너무 기웃거리지는 말자. 열린 현관으로 지팡이가 보인다. 독일마을 입구 주변에는 규모 큰 펜션과 카페 같은 새 건물들이 제법 들어서 있다. 마을을 빠져나오면 도로변에 바래길 이정표가 보인다. 건널목을 건너 바로 마을 길로 들어선다. 여기서부터 물건 방조어부림까지는 1㎞ 남짓. 독일마을과 비교해 지극히 한국적인 돌담과 지붕들을 따라 걷다 보면 곧 물건마을 끝자락이다. 그곳에서 방조어부림을 만난다. 숲은 그늘이 깊다. 그 너머가 곧 바다다. 이 코스만큼 바다가 반가운 때가 있었던가. 방조어부림 앞은 물 맑은 몽돌 해변이다. 아름드리나무들 사이로 덱 길이 만들어져 있다. 숲 속을 걷는 일 자체도 좋지만 푸조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이팝나무 등 나무마다 이름을 표시해 놓아 거니는 재미가 있다. 숲 속에서 피로를 풀며 여정을 마무리한다.

◇편백숲과 나비 그리고 바람

천하마을에서 시작한 5코스 화전별곡길, 초반 산길을 한 시간 걸으면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을 만난다. 지난 1998년 개장한 이 휴양림은 국가 직속으로 국립자연휴양소에서 관리한다. 227㏊ 깊은 편백숲 속에 야영장도 있고, 독채 통나무집도 있고, 건물식 숙소도 있다. 국가가 운영하는 곳이니 숙박비가 아주 싸고 관리도 잘 되고 있다. 특히 성수기에는 예약이 항상 넘친다. 예약은 국립자연휴양소 홈페이지(www.huyang.go.kr)에 회원 가입 후에 하면 된다. 성수기가 아니라면 바래길 5코스 숙소로 추천한다. 한산한 편백숲을 걸으며 항균, 이뇨 효과가 있고 심폐기능을 강화한다는 '피톤치드'를 맘껏 마시게 될 것이다. 사실 휴양림을 포함한 남해 내산 지역이 거대한 편백숲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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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흔적미술관 외부 뜰. / 이서후 기자

휴양림을 빠져나오면 곧 나비생태공원을 만난다. 지난 2006년 남해군이 51억 원을 들여 만든 곳이다. 지난 2014년부터 민간에 위탁운영을 하고 있다. 이후 이름이 나비 & 더 테마파크로 바뀐 듯하다. 개인적으로 가기엔 입장료가 비싼 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있다면 가 볼 만하다. 나비 온실과 공룡모형들이 아이들 눈요기로 딱 좋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바람흔적미술관 입구가 나온다. 도로 아래로 향한 길을 따라가면 문득 멋진 건물이 나온다. 이곳은 1996년 설치 미술가 최영호 씨가 바람을 주제로 만든 곳이다. 입구부터 대형 바람개비들이 내산저수지를 향해 돌고 있어 운치가 색다르다. 건물 자체는 단순한 구조로 별다른 장식 없이도 독특한 느낌이 드는 무료 전시 공간이다. 미술관 안 소품 가게도 구경하고 커피도 한 잔 사서 내산저수지를 바라보며 여유를 부릴 수도 있다. 체력에 여유가 있으면 도로 위쪽에 만들어진 입체 전시관도 가보길 권한다. 오르내리는 길도 좋거니와 전면이 유리로 된 전시관 내부도 둘러볼 만하다.

◇내산마을의 폐교, 봉화마을의 정자나무

바람흔적비술관을 지난 바래길은 내산산촌체험마을과 봉화마을로 이어진다. 길이 마을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치듯 보아도 괜찮은 풍경이 몇몇 있다. 내산마을은 남해 금산에서도 깊은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어 내산(內山)이라고 부른다. 산 중턱에 커다란 두꺼비 모양 바위가 마을을 지킨다고 한다. 매년 11월 단풍이 절정일 때 열리는 '내산단풍축제'가 유명하다. 마을로 가는 도로 주변 가로수가 모두 단풍나무다. 특히 내산저수지와 어우러진 단풍이 일품일 듯하다. 바래길이 지나지는 않지만 내산초등학교 건물이 인상적이다. 교실이 다해야 3개 정도로 보이는 이 작은 학교는 지난 1964년 개교해 420명을 졸업시키고 1994년에 폐교됐다. 세월의 흔적과 추억이 묻어나는 낡은 건물이 자꾸만 발길을 멈추게 한다. 폐교 옆 느티나무도 수령이 300년이 넘은 것으로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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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마을 당산나무 그늘에 있는 봉화 삼층석탑. 30여 년 전 도난당한 것과 똑같은 것을 주민들이 세웠다. / 이서후 기자

내산마을을 지난 바래길은 봉화마을을 바라보며 걷는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마을 입구에 우뚝하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다. 봉화마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그 정성이 깊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나무 그늘에 아담한 삼층석탑이 있다. 애초 이 삼층석탑은 '남해의 고탑(古塔)'으로 불리며 주민들이 애지중지하던 문화재였다. 하지만 지난 1982년 12월 그믐, 이 탑을 누군가 가져가 버렸다. 그래서 지금 있는 것은 마을 주민들이 애타는 마음에 새로 세운 것이다.

◇21개의 정원 그리고 아픈 역사의 독일마을

독일마을은 이국적인 풍경으로 이름난 곳이다. 예쁜 펜션도 많고, 멋진 카페도 많다. 그래서 남해 여행객들이 다랭이마을과 함께 빼놓지 않고 이곳을 들른다. 매년 10월 독일마을에서 열리는 독일 맥주 축제에는 전국에서 인파가 몰려든다. 독일마을은 애초 1960~70년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고국에서 노년을 보내게 하려고 마련한 곳이다. 당시 독일로 보내진 광부 8000여 명, 간호사 1만 1000여 명은 낯선 땅에서 생활비를 아껴가며 대부분 월급을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냈다. 이 돈이 조국 근대화에 크게 이바지했음을 물론이다. 독일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며 많은 이들이 독일인과 결혼하는 등 현지에 뿌리를 내렸다. 그들 중 일부가 고국에서 노년을 보내겠다고 남해 독일마을로 왔다. 2000년대 초반에 남해로 온 정착 1세대들이다. 더러 독일로 돌아가고, 더러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고 했지만, 지금도 이들 1세대가 독일마을에 살고 있다. 독일마을이 그저 예쁜 관광지만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일마을 주차장 위쪽에 있는 남해파독전시관에서 가면 젊음을 송두리째 독일에서 보낸 광부와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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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마을에 들어선 카페와 식당들. / 이서후 기자

원예예술촌은 독일마을 주차장 건너편에 있다. '21개의 개인정원에 여러분을 초대한다'는 홍보문구가 잘 설명하듯 내부는 원예인들에게 분양된 집과 그 집에 딸린 정원들로 구성됐다. 정원마다 주제가 있어 볼거리가 아기자기하다. 개인정원 외에도 공동 정원, 오솔길, 연못, 전망테크, 온실 등도 갖추고 있어 한번은 둘러볼 만하다.

◇시원하고 깊은 물건방조어부림과 남해요트학교

5코스의 끝에 물건마을이 있다. 마을 이름이 독특한데, 한자로는 물건(勿巾)이라고 쓴다. 마을 뒷산 만물 물(勿)자 모양이고,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한가운데 하천이 흐르는 모양이 수건 건(巾) 자를 닮아 물건이라고 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물건마을은 천연기념물 제150호인 물건방조어부림으로 유명하다. 거센 바닷바람과 해일을 막고자 해안에 심은 나무들을 방조림(防潮林)이라고 하고, 바닷가에 그늘을 만들어 물고기들의 서식환경을 풍부하게 하려고 심은 나무들을 어부림(魚付林)이라고 한다. 물건마을 숲은 무려 '방조어부림'이다.

숲은 1600년경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큰 나무들은 수령이 약 300년이 넘는다. 2000여 그루의 나무들이 몽돌해안을 반달모양으로 감싸고 있다. 내부에 덱 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너비가 1.5㎞ 정도라고 하니 한 번 왕복하는데도 제법 걸어야 한다. 안내판을 보면 숲에서 가장 큰 이팝나무가 당산나무로, 매년 제사를 지낸다고 돼 있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물으니 그 이팝나무는 죽고 지금은 없다고 한다. 어르신들 말로는 숲 규모가 이전보다 많이 줄었다고 한다. 낮에도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우거졌는데, 태풍 사라(1959)와 매미(2003) 때 나무들이 많이 죽어버렸단다.

방조어부림 끝에 물건마을 어항이 있다. 그 어항의 한쪽에 남해군 요트학교가 있다. 남해군이 지난 2008년 전국 요트 동호인 선수권 대회를 계기로 2009년 만든 것이다. 민간 위탁 방식으로 운영하는데, 대한요트협회 인증을 받은 지도자가 가르치는 전문 요트 교육기관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요트를 배우기보다 그저 한 번 타보려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그래서 현재 요트학교에서는 10인승 크루저 요트 체험 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1시간 동- 요트를 타고 주변 바다를 둘러보는 코스다. 실제 요트를 배우려는 이들은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열리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해보는 것도 좋겠다. 자세한 것은 남해군 요트학교 홈페이지(yacht.namhae.go.kr)나 055-867-2977로 전화해 물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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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건마을에 있는 남해군 요트학교 건물. / 이서후 기자

◇서당터 마을 서태세 어르신의 지도

8월 중순. 지독하게 더운 오후 내산저수지 바로 아래 마을로 들어섰다. 아담한 마을은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조용했다. 문득 어느 집 대문간 너머로 의자에 앉아 부채질을 하는 어르신이 보였다. 마을 이름이나 물어보자 싶어 말을 붙였다.

"어르신 안녕하십니꺼, 이 동네 이름이 우찌되능가요?"

"뭐할라고 묻소?"

"아아 바래길 걸으면서 지나가다보이 동네 표시석도 없고 그래서예."

"이리 들어와."

"예?"

"더븐데 그늘에서 얘기해!"

"아 예."

"어디서 왔소?"

"창원에서예."

"우찌 마을을 묻소?"

"제가 천하마을에서 여까지 걸어왔는데예, 이 동네가 내산마을 같긴 한데 생각보다 작아서 긴마민가 하네예."

"여 좀 앉으이소."

"예? 아입니더, 어르신이 계속 앉아계시지예."

"아이고마, 앉으이소. 내 잠깐 드갔가 오게."

어르신은 집안을 한참 뒤적이시더니 오래된 달력과 유성 매직펜을 들고나오신다. 그리고는 달력 뒷면에다 지도를 그리기 시작하신다.

"자~, 그라믄 휴양림까지 왔는데, 휴양림에서 내려오니 이쪽에 큰 저수지가 있고이."

"예, 예."

"자~, 저수지꺼정 왔다잉. 좀 지내서, 여 우게 마을 하나 있다이. 그기 구암촌."

"아, 구암촌."

"그래서 인제 또 이리 내리온다이. 인자 이 마을에 왔다. 여기는 서당터."

"아아, 요 옛날에 서당이 있었습니꺼?"

"하모. 자 여기가 서당터이. 이래가 또 내려간다이. 내려가몬 이 밑에 또 큰 마을이 있어."

"예, 예."

"여게는 본땀. 어, 본담이라케야되나 본땀이라케야되나…. 에이 뭐, 자 이래갖고 또 내려간다이. 이쪽에 또 부락이 있어. 가만있자, 이게 전에는 건넷담이라 캤는데, 요새 뭐라카는지 생각이 안 나네."

그렇게 달력 윗부분에서 시작한 지도는 밑부분까지 이어진다. 더운 여름 낮 땀을 뻘뻘 흘리시며 열심히 그림을 그리며 설명하는 어르신에게 차마 길을 알고 있다는 소리는 하지 못하고 그저 '예, 예' 하고 만다. 그렇게 어르신이 그린 지도가 완성됐다. 내산리 서당터 마을 올해 77세 되셨다는 서태세 어르신이 그린 지도는 그 어느 바래길 지도보다 멋지다.

◇독일마을 김우자 할머니

지난달 남해바래길 5코스 화전별곡길을 걷고 나서 독일마을에 있는 어느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김우자(76) 할머니를 찾아갔다. 파독 간호사였던 할머니는 독일마을 정착 1세대 중 한 분이다. 어쩌다 보니 인연이 닿아 드문드문 안부를 여쭈고 있다. 이번에는 연락도 없이 지나는 길에 집에 문이 열려 있기에 불쑥 찾아간 터라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할머니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예전보다 기력이 좀 떨어지신 것 같았는데, 또랑또랑한 말투와 위트는 여전하셨다. 남해 어느 마을에 금을 캐던 동굴이 있는데, 자신은 힘이 없어 못 가니 데리고 가서 같이 한몫 잡지 않겠느냐고 너스레를 떠셨다. 할머니와 나누는 대화는 꽤 유쾌해서 바래길을 걸은 피로가 다 가시는 듯했다.

다음날 할머니께 여쭌 후에 게스트하우스에 같이 묵었던 대학생 4명을 데려갔다. 전라도, 경기도 등 전국에서 온 남해로 여행을 온 친구들이었다. 이왕 독일마을에 왔으니 예쁜 경치도 좋지만, 실제 파독 간호사를 만나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싶었다.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따라나섰다.

대학생 중에는 실제 간호학과에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파독 간호사와 독일마을 이야기를 수업 때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이렇게 실제로 만나게 될 줄을 몰랐다며 신기해했다. 할머니는 대학생들이 사는 곳이나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지 등을 일일이 물으셨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며 정다운 말들을 주고받으셨다. 그 연세에 기억력이 대단하셨다. 어느새 이름과 사는 곳을 다 외우고 계셨다.

실컷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떠날 적에 대학생들이 '할머니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고 나서자 할머니께서 한 마디 하셨다.

"할머니라고 부르지 마. 여기 누가 할머니야?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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