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량마을에서 동대만휴게소까지 14㎞, 4시간 30분

<코스 훑어보기>

7월 창선면 고사리밭 풍경이 제대로라고 들었다. 7코스 고사리밭길은 독특한 풍경이 볼만하다고 익히 들어둔 터다. 남해군은 크게 남해섬과 창선도로 이뤄졌다. 창선도는 그대로 행정구역상 남해군 창선면이다. 요즈음 창선면은 가인리를 중심으로 고사리 농사를 지어 나름 큰 소득을 내고 있다. 가인리 주변 온 산이 고사리로 뒤덮인 것 같다. 7코스 고사리밭길은 가인리 고사리밭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길이다. 다르게는 창선 일주도로 격인 1024번 지방도를 따라 거꾸로 된 U자 모양으로 가인리 해안을 도는 길이기도 하다.

미리 알려두면 7코스는 군데군데 갈림길이 많고 이정표가 넘어져 있는 곳도 있어 길을 잃기 쉽다. 현재로써는 바닥에 있는 노란 화살표 그림과 나무에 달린 노란 리본을 잘 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가게나 식당이 거의 없고 버스도 드물게 다니니 미리 시간과 거리 계획을 잘 짜서 가야 한다.

창선면 국사봉 중턱을 에둘러

7코스 고사리밭길은 창선면 적량마을 해안에서 시작한다. 7코스 시작점 안내판 앞에 서면, 길은 적량보건진료소가 있는 골목으로 향한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왼편으로 고사리밭길이라고 적힌 벽화가 보인다. 벽화는 산길이 시작될 때까지 이어진다. 조금 가다 보면 오른편으로 공동 우물이 나온다. 우물가에 오래된 작두펌프가 있다. 녹은 좀 슬었지만 지금도 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동네 어르신들이 못 쓰는 거라 일러준다. 곧 오른편으로 적량보건진료소가 나온다. 그리고는 돌담길이다. 담은 바다에서 가져온 몽돌로 쌓았다. 담 위로 텃밭이 소담하다. 길은 그대로 산으로 향한다. 산길은 창선면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봉우리, 국사봉에서 뻗어 내려온 줄기를 따라 이어진다.

산 중턱까지는 오르막이 이어진다. 아직은 바다가 코앞이다. 산 중턱에 이르니 길이 평평해진다. 커다란 밤나무를 지난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주위가 온통 고사리밭이다. 바래길은 이 고사리밭 사이로 난 농로로 이어진다. 곳곳에 농작물 채취금지 경고문이 붙어 있다. 아마도 수확이 한창일 때 많은 이들이 길을 걸으며 고사리를 꺾어 가는 모양이다. 하지만, 수확철이 지난 지금은 고사리밭에 인적이라고는 없다. 그래서 혼자 걷기에는 좀 으슥하다. 한여름이라 풀도 제법 길게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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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량마을에는 임진왜란 때 쓰던 적량성의 흔적이 200m 가량 남아있다. / 이서후 기자

천포마을까지 1.7㎞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타나면 임도와 만난다. 이제부터는 길이 제법 넓다. 임도에 문득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한 대가 나타난다. 차창을 내린 운전자와 정겨운 인사를 나눈다. "트레킹하십니까?", "네. 바래길 걷고 있습니다." "허허허. 고생하십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국사봉 중턱을 어느 정도 돌았다 싶으면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인다. 전망대 노릇을 하는 곳인지 벤치 두 개가 놓여 있다. 발아래 고사리밭 등성이들이 눈에 꽉 찬다. 그 너머로 바다 가운데 보이는 섬이 사천시 '심수도'다. 그 너머로 삼천포 시내가 펼쳐져 있다. 계속 걸으니 임도가 넓어진다. 중간에 시멘트로 포장된 부분도 있다. 큰길을 걸은 지 어느 정도 됐다 싶으니 다시 고사리밭으로 길이 이어진다. 산등성이마다 가득한 고사리는 봐도 봐도 독특한 풍경이다. 녹차 밭과 비슷하기도 하나 또 다른 느낌의 녹색이랄까.

고사리밭 사이로 난 길을 걷다가 바닥에 노란 화살표가 보이고 오른편으로 바래길 7-13 지점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이면 그걸 따라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그러면 바로 언덕을 내려가는데 바다 건너 삼천포 시내가 정면으로 보인다. 그렇게 고사리 사이로 한참을 내려가니 사거리를 만난다. 그곳에서 왼쪽 길을 택해 걷는다. 천포마을로 향하는 내리막이다. 노란 리본을 잘 확인하자. 곧 아스팔트 도로를 만나는데 그대로 내리막을 따라간다. 정면으로 아담하고 예쁜 단층주택이 보인다. 주택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공덕비가 있고, 그 공덕비를 지나면 곧 천포마을 입구다. 하지만, 바래길은 마을로 가지 않고 도로를 따른다.

◇가인마을 공룡발자국화석 해안을 끼고

왼쪽으로 천포마을 버스정류장을 끼고 그대로 직진이다. 길이 잠시 해안에 이른다. 커다란 실내 양식장을 지나면 2차선 도로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지도를 보니 1024번 지방도다. 아스팔트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에 바래길 이정표가 나온다. 한동안 지방도를 따라 걷는다. 곧 가인마을이다. 길은 다시 마을 입구를 스쳐 지난다. 그러면 도로 오른편으로 새로 지은 화장실이 나온다. 바닷가에 자리 잡은 사찰 세심사와 가인리 공룡발자국화석이 있는 해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화장실은 외딴곳에 있지만 시설이 아주 깨끗하고 물도 잘 나온다. 들어가면 자동으로 음악도 나온다.

화장실에서 나와 1024번 지방도를 계속 따라 걷는다. 정면으로 보이는 산등성이들이 온통 고사리밭이다. 그러다 만나는 이정표는 그대로 지방도를 따라 고두마을로 향하라고 가리킨다. 하지만, 원래 바래길은 고사리 가득한 그 산등성이 사이로 나 있다. 지금은 옛 바래길 입구에 고사리 재배지에 외부인 출입을 통제한다는 문구가 적힌 안내판이 있다. 그 아래 문구를 보면 이유가 나온다. 다른 구간 내에서도 고사리를 꺾거나 밭에 들어가지 말라는 내용이다. 그동안 많이 이들이 고사리 밭에서 고사리를 꺾어 문제가 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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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 넉넉한 이들이 산다는 식포마을 안 논과 건너편 정자. / 이서후 기자

지금은 수확철이 지났기에 지방도를 버리고 원래 바래길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길을 잃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다. 산등성이를 어느 정도 올라 뒤를 돌아보니 눈이 시원하게 푸릇한 장관이 펼쳐진다. 주변 산등성이가 모두 고사리밭이다. 고사리밭의 초록색 바다의 파란색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웃자란 고사리는 허리 정도, 더 큰 것은 가슴까지 컸다. 옛길에서 바래길 이정표를 만난다. 아주 반갑다. 가지 말라는 길에 굳이 들어섰기에 죄스런 마음이 들었었는데, 이정표를 보니 무언가 용서받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정표를 오른편으로 끼고 오르막을 오른다. 삼거리에서 다시 이정표를 만나는데 그래도 계속 오르막으로 직진이다.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래길은 잠시 산길이 되었다가 다시 고사리밭으로 이어진다.

◇잠시 하늘하늘 언덕에 이르다

식포마을까지 1.3㎞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오면 왼쪽 갈림길로 접어든다. 바닥에 희미한 화살표를 잘 살피자. 물론 그대로 가도 상관없다. 결국에는 1024번 지방도를 만나기 때문이다. 아무튼, 왼편으로 꺾으면 언덕 너머 동대만 바다와 그 너머 창선면 당항리가 보인다. 고사리밭 사이를 지그재그로 가파른 내리막을 걷다 끝에서 바래길 안내판을 만나면 1024번 지방도로 내려선다. 지방도를 만나면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오른편으로 동대만을 바라보며 걷다가 오르막 끝부분에서 에스 자 커브가 보이면 오른편으로 하얀 시멘트 샛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잠시 바래길을 벗어난다. 풍경이 남다르다는 바닷가 고사리밭 언덕으로 가기 위해서다. 행정구역으로 식포마을에 속한 이 언덕은 바래길 코스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바래길을 개척한 문찬일 씨가 이곳을 발견하고는 '하늘하늘 언덕'이라 이름 지었다. '한가롭게 멋대로 노니는 곳'이란 뜻이다. 7코스 나머지 구간을 포기해도 될 정도로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하얀 시멘트 길을 따라 쭉 내리막을 걸으면 편백 숲 곁을 지나게 된다. 여름 한낮인데도 숲 속이 어둡다고 생각될 정도로 편백나무가 빽빽하다. 쭉 가다 언덕을 향해 난 왼쪽 길로 들어서면 오르막이 시작되고 그 길을 따라 등성이를 에돌아 가면 하늘하늘 언덕이다.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언덕이 정갈하다. 고사리밭 사이로 한 줄기 길이 언덕을 향해 뻗어 있어 운치를 더한다. 언덕 위에는 단풍나무 서너 그루가 운치 있게 자라 그늘을 만들고 있다. 이 나무는 외국이 원산지인 조경수다. 그러니까 누군가 이 언덕의 운치를 알아채고 심어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도 또 누군가 이 언덕을 알아챈 이가 또 있어, 나무로 된 벤치를 두 개 가져다 놓았다. 벤치는 삼천포 대교 방향을 보고 있다. 벤치에 걸터앉아 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스치고, 잔잔한 물결이 눈을 간지럽게 하니 더없이 평온하다.

◇동대만 갯벌과 갈대밭을 지나

하늘하늘 언덕까지 오는 것만 해도 꽤 먼 길을 걸었다. 이후 길을 걸을 힘이 없으면 이 언덕에서 바래길을 끝내도 되겠다. 언덕에서 길을 내려오면 바로 식포마을이다. 바래길은 지방도를 따라 그대로 식포마을 입구를 지난다. 곧 동대만 갯벌체험장이다. 해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천아도가 보인다. 썰물이 되고 넓은 갯벌이 드러나면 섬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그대로 지방도를 따라 길을 걷다 이정표를 만나면 오른편 갯벌 쪽으로 방향을 잡자. 창선방조제로 가는 길이다. 벼가 자라는 논 옆으로 난간이 설치된 둑을 지나 조그만 언덕을 하나 넘으면 곧 방조제다. 방조제는 자동차가 넉넉히 다닐 정도로 넓다. 오른쪽은 널따란 갯벌, 왼쪽은 널따란 갈대밭이다. 갈대에 이는 바람 소리가 마치 파도 소리 같다.

첫 번째 방조제를 지나고 두 번째 방조제로 가는 길. 해안을 따라 걷는 길을 만들었지만 풀이 무성해 걷기가 불편하다. 풀 아래 붉은색 게가 숨었다가 발소리에 놀라 몸을 움츠린다. 두 번째 방조제 초입에 수문이 있는데, 하천이 바다로 흘러드는 지점이다. 방조제를 지난 민물은 갯벌 위에 강 같은 흔적을 남기면 저 멀리 바닷물이 있는 곳까지 흘러들어 간다. 두 번째 방조제 왼쪽에도 갈대밭이 넓다. 이쪽은 수량이 많아 갈대에 이는 바람 소리보다 갈대에 사는 새나 개구리 같은 것들 소리가 더 크다. 이후 길은 국도 3호선 곁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종착지 동대만 휴게소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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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중순까지 수확철이라지만, 이후에도 고사리밭에는 새순이 돋고 있다. / 이서후 기자

◇창선 고사리밭의 시작

창선농협에 물어보니 남해군 창선면에서 한 해 생산되는 고사리는 평균 200톤. 삶아서 말린 것이 그렇다는 말이니 실제 수확량은 훨씬 많겠다. 전국 고사리 생산량이 한해 700톤 정도인데, 이 중 30%가 남해 창선에서 나니 전국 최대 산지라고 불릴 만하다. 고사리밭은 창선 임야와 밭 500㏊(5㎢)에 걸쳐 있다. 창선면 전체 면적(54㎢)의 10분의 1이다. 이 고사리밭이 바래길 7코스가 지나는 가인리 마을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이 마을들을 지나다 보면 마치 모든 등성이가 고사리로 덮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여느 시골처럼 창선 주민들도 오래전부터 산에서 저절로 난 고사리를 끊어다 장에 내다 팔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큰 규모로 '재배'를 하기 시작한 것은 3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고두마을 박주용(84) 어르신이 최초다. 어르신은 원래 단감 과수원을 하고 있었는데, 수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러다 과수원에 자라는 고사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감나무에다 병해충을 없애려 약을 쳤는데, 다른 풀을 다 죽고 고사리만 살아남아 감나무에 준 비료를 먹고 쑥쑥 크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끊어다 시장에 내다 파니 꽤 수익이 컸다. 그로부터 어르신은 아예 감나무를 베어버리고 과수원 자리에 고사리를 집중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창선면 1300여 농가에서 고사리를 키운다. 그럼에도 대단위 고사리 재배의 시초인 박주용 어르신과 그 가족들이 경작하는 고사리밭이 지금도 창선면에서 크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창선면 등성이들이 계속해 고사리밭으로 거듭나는 것을 걱정하는 분위기도 있다. 고사리밭을 만들면서 우거진 수풀이 사라지고 민둥산이 되면 산사태 등 자연재해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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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창선면 고사리는 '섬가득 고사리'란 상표로 전국에 판매된다. / 창선농협

'섬가득 고사리'로 판매

고사리 수확 시기는 3월 하순에서 6월 중순까지다. 이 중에 4월 중순까지 수확한 고사리를 최고로 친다. 이른바 '초물 고사리'라 불리는 것이다. 창선 주민들이 키운 고사리는 창선농협이 모두 수매를 한다. 말린 고사리를 기준으로 올해(2016년) 시세는 ㎏당 4만 2000원이었다. 이후로 갈수록 가격은 조금씩 내려간다. 농협 수매가를 기준으로 올해 창선 주민들이 고사리로 올린 수익은 60억 원 정도다. 시세는 그해 생산량과 소비량에 따라 정해지는데, 지난해는 ㎏당 초물이 6만 원 정도로 제법 수익이 많았다. 국산 고사리는 창선 이외에도 합천, 산청, 하동, 구례에서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창선농협은 수매한 고사리를 '(해풍 먹고 자란) 섬가득 고사리'란 상표로 판매한다. 지난 2007년 산림청으로부터 지리적 표시등록 13호로 지정되어 고사리로서는 처음 원산지 인증을 받았다. 창선 고사리는 맛과 영양이 좋아 주로 학교 급식 재료로 인기가 많다. 창선농협 고사리 판매량 50% 정도가 학교 급식으로 쓰인다고 한다. 수확이 끝난 고사리는 계속 웃자라다가 11월 첫서리가 내리면 '와르르 자빠져' 죽어 버린다고 한다. 그리고 이듬해 봄 그 자빠진 고사리 틈에서 앙증맞은 새순이 돋아나고, 다시 한 번 고사리 농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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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량마을에 있는 임진왜란 굴항 터. 지금은 매립되어 논과 집이 들어섰다. / 이서후 기자

유서 깊은 적량마을

바래길 7코스가 시작되는 적량마을은 창선면에서도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다. 원래 '성내' 마을이라고 불렸는데, 마을 앞바다 너머로 보이는 통영 사량도와 수우도 사이에서 떠오른 붉은 일출이 가장 먼저 닿는다고 하여 적량(赤梁)이라 부른다고 한다.

삼국시대 이전에 생긴 마을이라는 말이 있지만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다만 한때 도굴꾼들이 마을 내 유적에서 유물을 훔쳐갔고 주민들이 그걸 알고 남은 유물을 진주박물관과 경희대학교 박물관에 보내 보관되고 있다고 한다.

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군사요충지였다. 마을 뒷산인 국사봉에서는 왜적이 침입하면 봉화를 올렸다. 임진왜란 때 쓴 적량성의 성곽도 아직 마을 안에 남아 있다. 당시 군함을 숨겼던 굴항도 마을 앞에 있었다. 삼천포 굴항보다 컸다고 하나, 지금은 매립되고 없다.

국사봉 봉우리에는 국사당이란 당집이 있다. 동네 어르신들은 국시당이라고 부른다. 이 당집에 모신 신을 주민들은 국시당 할아버지라고 하며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긴다. 매년 음력 10월 동네 주민들이 모여 제를 지낸다. 예전에는 군대에 갈 때 꼭 국시당 방향을 보고 큰절을 올린 후에 떠났다고 동네 어르신들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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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마을 입구 건너편 해안에 있는 가인리 공룡발자국화석. 날카로운 발모양이 선명하다. / 이서후 기자

1억 년의 흔적, 가인리 공룡 화석지

가인리 공룡발자국 화석은 가인마을 입구 건너편 해안에 있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고 마침 썰물이라면 공룡발자국화석을 구경하고 오자. 세심사 앞을 지나 계단을 통해 낮은 담을 넘어야 한다. 해안에 유독 기이한 무늬 바위가 많으니 그것만으로도 볼거리는 된다. 이 바위들의 근간이 중생대 백악기 퇴적층인 함안층이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1500여 점 정도의 발자국이 발견됐다. 바위 중에서도 바다로 기울어져 있는 넓이 80㎡, 두께 20㎝ 정도의 사암이 두드러진다. 이곳에서 용각류·조각류(초식), 수각류(육식) 공룡 4마리가 남기 발자국 화석 50여 개가 발견됐다. 이처럼 초식과 육식공룡, 대형과 중형 공룡 발자국이 동시에 있는 것은 생태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근처 안내판에 설명을 자세하게 해놓았으니 먼저 살펴보면 좋겠다. 기록을 보면 가인리 공룡발자국 화석은 지난 1998년 가인 마을 출신으로 당시 동명정보대 장우진 학생이 발견해 남해신문에 제보를 했고, 당시 진주교대 서승조 교수팀이 답사를 벌인 결과 1억 1000년 전의 공룡발자국임을 확인했다. 발자국 화석 주변이 지난 2008년 말 천연기념물 제499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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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포마을 동성이에서 바라본 고두마을. 남근바위의 전설이 깃든 곳. / 이서후 기자

바래길 주변 고사리 마을들

바래길 7코스 주변 가인, 고두, 언포, 식포마을은 그야말로 고사리 마을이다. 하루에 버스가 두 번밖에 들어오지 않는 외진 곳이지만, 주민들은 해마다 고사리로 수억 원씩 수익을 올린다.

이 중 언포마을에 내려오는 남근석 이야기가 재밌다. 언포마을에서 바다 건너로 보이는 것이 낙조로 유명한 사천시 실안마을이다. 오래전 봄만 되면 실안마을 처녀들이 바람이 났다. 성적으로 문란해졌다는 말이다. 보다 못한 주민들이 점쟁이에게 물어보니 바다 건너 창선 어느 마을 포구에 남근 바위가 실안마을을 마주 보고 있어 그렇다고 했다. 실안마을 사람들이 바다 건너편을 찾아보니 과연 언포마을 바닷가에 남근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었다. 그래서 달이 없는 어두운 날을 택해 몰래 그 바위 윗부분을 잘라 바다에 빠뜨려버렸다는 이야기다. 또 이 바위 주변에 살면 부자가 된다는 전설도 있다. 바로 옆 고두마을도 이 바위가 고개를 돌리고 보고 있다고 해서 고두(顧頭)라고 불렸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언포와 고두 마을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이 바위를 찾지는 못했다.

7코스가 만나는 마지막 마을이 식포다. 걸인들이 마을에 왔다가 포식을 하고 갔대서 식포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정작 마을 정자에는 맑은 물 식(湜)자에 물가 포(浦)로 마을 이름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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