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다. 옛날엔 새가 하늘과 인간을 연결해 준다고 믿었다. 인간이 갈 수 없는 곳에도 간다. 새가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된 이유다. 새는 하루의 시작과 끝,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변화도 알려준다. 새는 우리 조상들 삶 속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그래서 신화와 전설, 민담을 비롯한 많은 이야기 속 주인공이거나 조연이 되기도 했다.

오늘 이야기할 주인공은 파랑새다. '파랑새는 있다.' 1997년에 방영된 드라마 제목이기도 하다. 최근엔 2014년에 한 종편에서 똑같은 제목의 드라마를 방영했다. 파랑새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1997년에 방영된 드라마 '파랑새는 있다'는 사회 밑바닥 인생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실제 사회 모습을 빗댄 해학과 풍자가 녹아 들어갔다는 평이 나왔던 드라마였다. 밤무대 차력사, 전직 창녀, 무명가수, 사기꾼 등 소박한 등장인물들의 삶과 애환을 유쾌하게 그렸던 드라마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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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뭇가지 위에 앉은 파랑새.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실제 파랑새는 봄·여름에 우리나라를 찾는 여름 철새다. 5월쯤에 우리나라를 찾아와 새끼를 키워 가을이 시작되는 9월쯤 다시 남쪽 나라로 날아간다. 이름은 파랑새지만 얼핏 보면 검은 새처럼 보인다. 자칫 까마귀와 혼동할 수도 있는데 까마귀보다는 몸집이 작고 검은빛이 덜하다. 햇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검게 보이기도 하고 파랗게 보이기도 한다. 부리가 유난히 붉고 날아갈 때 날개깃에 흰 반점이 보인다.

파랑새는 희망과 행복을 상징하는 새로 알려져 있다. <파랑새>는 1906년 모리스 메테를링크가 쓴 아동극이다.

'소년 틸틸과 소녀 미틸에게 어느 날 늙은 요정이 찾아온다. 요정은 한 아픈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파랑새가 필요하다며 남매에게 파랑새를 찾아줄 것을 부탁한다. 요정은 틸틸과 미틸에게 다이아몬드가 박힌 모자를 건네고, 모자를 쓴 아이들의 눈앞에 신기한 광경이 펼쳐진다. 늙은 요정이 젊고 아름답게 보였고, 물, 우유, 사탕, 빵, 불, 고양이, 개의 영혼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틸틸과 미틸은 영혼들과 함께 파랑새를 찾아 떠난다. 시간의 안개를 뚫고 추억의 나라에 도착한 틸틸과 미틸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지만, 파랑새는 찾을 수 없었다. 밤의 궁전으로도 가보지만 그곳에도 역시 파랑새는 없었다. 이어 숲과 묘지, 미래의 왕국을 전전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파랑새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빈손으로 집에 돌아온 틸틸과 미틸은 영혼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데,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틸틸과 미틸은 집안의 새장에 있던 새가 바로 파랑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틸틸과 미틸이 반가운 마음에 새장을 여는 순간, 파랑새는 멀리 날아가 버린다.' -두산백과-

이야기 속 파랑새는 '행복'을 의미한다. 우리도 늘 틸틸과 미틸처럼 파랑새 찾아, 행복 찾아 헤매다닌다. 이곳저곳 여기저기 기웃거려 본다. 결국 행복은 가까운 곳.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 알면서도 자꾸만 '까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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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랑새가 찾아오는 시기의 봄 풍경.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찌루찌루의 파랑새를 알아요

난 안델센도 알고요

저 무지개 너머 파란 나라 있나요

저 파란 하늘 끝에 거기 있나요

동화책 속에 있고 텔레비젼에 있고

아빠의 꿈에 엄마의 눈 속에 언제나 있는 나라

아무리 봐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

누구나 한 번 가보고 싶어서 생각만 하는 나라

우리가 한번 해 봐요 온 세상 모두 손잡고

새파란 마음 한 마음 새파란 나라 지어요

가수 혜은이가 부른 어린이 동요 '파란나라'란 노래 가사 중 일부다. 동화 <파랑새>에 나오는 주인공 남매 이름인 '틸틸'과 '미틸'이 일본 번역을 거쳐 한국에 오는 바람에 '치르치르'와 '미치르'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파랑새는 '아빠의 꿈속에 엄마의 눈 속에' 언제나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아이들 마음속에 보이는 행복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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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깃줄 위에 앉은 파랑새.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우리 옛 노래와 시에도 파랑새는 자주 등장한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동학농민운동을 상징하는 녹두장군 전봉준과 청나라와 일본을 상징하는 파랑새의 대조가 눈에 띄는 노래다. 이때 파랑새는 행복의 상징이 아니라 수탈과 억압의 상징이다. 하지만 생태적으로 보면 맞지 않는 내용이다. 파랑새가 주로 먹는 먹이는 잠자리, 나방, 딱정벌레류, 매미류, 풍뎅이 같은 곤충이다. 앉는 곳도 전봇대 위, 전깃줄, 나뭇가지 등이다. 밭에 내려앉는 일은 좀체 볼 수 없다. 먹이를 잡을 때도 날아다니며 사냥한다. 다만 '개개갯- 개개갯- 켁켁' 사납게 우는 소리와 다른 새들 둥지를 빼앗는 특성이 수탈과 억압의 상징으로 여겨졌을 수는 있다.

까치를 이길 수 있는 새 중 하나가 파랑새다. 파랑새는 까치둥지를 빼앗아 그 둥지 속에 알을 낳고 번식을 한다. 주로 하천 주변이나 산간 계곡에서 볼 수 있는데 민가 근처에서 까치둥지를 위협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까치가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으면 파랑새 수컷이 다가와 먼저 싸움을 건다. 그렇게 되면 자기 둥지를 침범하는 파랑새를 쫓아내려고 까치들이 무더기로 덤비게 되고 까치와 파랑새 간에 치열한 공중전이 전개된다. 파랑새 수컷이 까치와 싸우고 있는 사이 암컷이 잽싸게 까치둥지를 차지하고 만다. 파랑새는 공중전의 명수로 불릴 정도로 비행 실력이 뛰어난 데 반해 까치는 떼로 덤빌 때만 싸움을 잘하는 새라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둥지를 차지한 파랑새는 거기서 알을 낳고 부화를 시키는데 파랑새 알이 까치 알보다 먼저 깨어나 까치 알을 쪼아 영양을 섭취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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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치 둥지를 빼앗은 파랑새.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까치둥지 빼앗는 사나운 파랑새 모습이 핍박받는 민중들에겐 외세의 침범처럼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나는/죽어서/파랑새 되어/푸른 하늘/푸른 들/

날아다니며/푸른 노래/푸른 울음/울어 예으리./

나는/나는/죽어서/파랑새 되리. - 한하운 -

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하천과 강 같은 습지가 오염되고 훼손되면서 파랑새 서식지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 여름에 하천 주변을 둘러보면 파랑새가 사람들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죽어서 파랑새가 된 시인 한하운이 돈과 개발, 발전만이 행복인 것처럼 착각하며 사는 사람들 향해 애절하게 충고하는 듯하다. '마이 뭇다 아이가 고마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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