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이 간다!

평균연령 예순 이상의 '달보드레(달달하고 보드랍다)' 단원들. 이들은 목소리를 바꿔가며 지루할 틈 없이 그림책을 읽어주고, 함께 놀잇감을 가지고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것이 달보드레가 문화 혜택을 받기 힘든 지역아동센터, 노인기관, 장애인기관에 찾아가 재능기부 형식으로 펼치는 '문화봉사활동'이다.

마산YMCA에서 출범한 문화봉사단 달보드레의 단원들은 지난 4월부터 활동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있다. 꾸준히 수업을 들으며 6월 23일에 정식으로 발대식을 했고, 10월 말까지 두 명이 한 팀으로 짝을 이뤄 기관을 방문해 활동한다.

은퇴자, 전업주부로 살던 이들이 달보드레로 활동하는 현장에 따라가 보았다.

웃음소리 끊이지 않는 수업 시간

수업 시작은 9시 30분인데 9시가 되자 달보드레 단원들이 모여든다. 이번이 열 번째 수업이다. 단원들은 나들이를 나온 듯한 표정으로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20여 명이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소리가 강의실을 채운다.

마산YMCA 직원들이 그림책과 작은 솜볼(솜으로 만든 공)을 한가득 가져다 놓자 달보드레 단원들이 하나씩 챙겨들고 책상 앞에 앉는다. 다음 회차 활동에 필요한 교구다. 오늘 수업 시간에 이 그림책들을 활용한 동화구연과 솜볼로 할 수 있는 놀이를 배울 예정이다.

수업 시작 전 남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질의응답 시간이 된다. 단원들은 기관을 방문해 프로그램을 하면서 막히는 부분들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가 가장 궁금하다. 주관처인 YMCA에서는 달보드레 단원들이 활동을 하면서 필요한 것은 없었는지, 기관에서 오는 피드백이 어떤지 서로 묻고 의견을 나눈다.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달보드레 단원들의 신임과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송미영 소장을 잠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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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보드레 단원들이 수업 시작 전 필요한 교구를 챙기고 있다. /서정인 기자

송미영(49) 소장: 오늘이 벌써 막바지 열 번째 수업이에요. 그림책으로 동화구연을 먼저 해보고, 그 내용을 가지고 역할극 놀이도 해봐요. 각자 한 인물씩 맡아서요. 단원들 중에 동화구연을 배우셨던 분들도 꽤 있어요. 손유희는 간단한 문장에 손동작을 붙여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집중시키기도 하고, 노래와 손동작을 함께 하는 것이에요. 중간중간 그런 것들도 배우죠. 저희 단원 분들은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니까 수업 시간에 늘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와요. 비슷한 연배끼리 어울려서 하는 활동이니까 서로 응원해주면서 어울리는 것도 재미있어 하시고요. 너무 보기 좋습니다.

단원들 앞에 선 송미영 소장이 이런저런 얘기로 분위기를 돋운 후 수업을 시작한다. 그림책을 펼쳐 읽어나가기 시작하는데 남자아이 목소리가 나왔다가 할머니 목소리가 나왔다가, 자유자재로 목소리와 이야기를 가지고 논다. 동화구연은 단순히 책을 따라 읽는 것이 아니다. 듣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더욱 풍부하게 전달하기 위해 구연 중간중간 즉흥적으로 부족한 대사나 설명, 웃음 포인트를 보충한다. 단원들은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방문하는 기관 특성에 맞게 자기 식으로 소화해야 한다. 그 노하우를 당장에 다 따라잡을 수는 없지만 교육을 받고 활동도 하면서 단원들의 실력도 쑥쑥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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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봉사단 달보드레 수업을 맡고 있는 송미영 소장. /서정인 기자

"가슴은 쿵쾅쿵쾅, 얼굴은 화끈화끈. 일어선 순간 다 잊어버렸어. 뭐라고 말하긴 했는데, 뭐라고 말했는지 나도 몰라, 슬그머니 앉아버렸지."

수업 분위기는 발랄하다. 단원들은 연신 깔깔깔 소리를 내며 웃는다. 송미영 소장은 모자와 솜볼을 꺼냈다.

"어느 팀이 먼저 모자에 공을 더 많이 넣는지 겨루는 게임을 해도 좋고요. 아이들에게는 경쟁하게 하는 놀이가 아니라 협동하면서 하는 놀이를 만들어서 하게 해도 좋아요."

마산시니어카운티를 방문해 활동을 하는 안경숙 단원에게는 달보드레가 주는 행복과 의미가 남다르다.

안경숙(59) 단원: 슈퍼마켓을 운영하다가 남편이 아파서 25년 정도 병수발을 했어요. 4년 전에 돌아가시고 이리저리 마음도 힘들었죠. 그러다 시낭송을 배웠고, 동화구연은 생각도 못했는데 송미영 선생님이 이런 봉사단이 있다고 해주셔서 등록했어요. 정말 재밌어요. 저는 노인요양병원에 활동을 하러 가는데 책 읽어드리고 손유희 하고 그래요. 치매 환자분들이 많이 계셔서 어려운 건 못 따라 하시니까 가위바위보로 하는 간단한 놀이하고, 호랑이에 관한 그림책 읽어드리고 그림 색칠하실 수 있게 준비해 갔죠. 기관에 계신 봉사자분들도 많이 도와주시고 적극적이세요. 어르신 분들도 무척 좋아하시고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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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문화봉사단 달보드레 단원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서정인 기자

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난 달보드레

창원시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달보드레 정말숙(61)·정희란(56) 단원은 분주히 아이들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의자에 앉자 두 '선생님'은 밝은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인사한다. 2명씩 팀을 이룬 달보드레는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주 강사, 보조강사를 맡는다. 그리고 누구의 개입도 없이 두 사람의 힘으로 아이들과의 시간을 채워나간다.

"저번에 배운 '삐에로' 알아요? 복습 한 번 해볼까요. 밝게!"

정말숙 단원이 노래와 율동을 시작하자 아이들이 따라 한다. 이어서 정희란 단원이 아이들에게 시를 읊어준다.

"오늘 비도 오니까 좋은 시 하나 들려줄게요. 친구야/나는 너에게 별이다/하늘 마을 산자락에/망추꽃처럼 흐드러지게 핀 별들/그사이의 한 송이 별이다//눈을 감으면/어둠의 둘레에서 돋아나는/별자리 되어/내 마음 환히 밝히는/넌/기쁠 때도 별이다/슬플 때도 별이다…."

40분가량 쉴 틈 없이 준비해 온 수업을 진행한다. 아이들이 산만해지면 중간중간 박수와 손유희로 관심을 집중시키는 모습이 능숙하다. 정말숙 단원이 <호랑이 형님>이라는 동화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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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문화봉사단 달보드레 정말숙 단원이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해 아이들 앞에서 준비해 온 여러 가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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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책 읽어 주는 문화봉사단 달보드레 단체사진. /서정인 기자

"선생님 저 이거 알아요!", "이거 읽었어요!"

동화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이내 집중한다.

"선비는 울지 않고 더 능청을 떨었어요. (굵은 목소리로)어머니께서는 형님이 돌아가시고 밤낮으로 슬퍼하시다 병이 들고 말았어요."

책을 읽고 나서 아이들에게 감상을 묻자 "호랑이가 아들보다 효자인 것 같아요", "호랑이가 착해요"라며 앞다투어 얘기한다.

그다음에는 다양한 음식 그림을 꺼냈다. 비빔밥, 삼계탕, 미역국, 김치 등 음식을 소재로 한 놀잇감을 보자 아이들 반응이 가장 활기차다. 좋아하는 음식으로 밥상을 한 상 차려보라고 하자 서로 먼저 하겠다고 손을 든다.

"참 잘했네요. 이 친구 밥상 한번 보세요. 미역국도 있고 비빔밥도 있네요. 다 잘했는데 밥 오른쪽에 국, 그 옆에 수저를 놓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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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문화봉사단 달보드레 정말숙 정희란 단원이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해 아이들 앞에서 준비해 온 여러 가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정인 기자

놀이지만 바른 식사예절을 가르치는 교육이기도 하다.

오늘은 정말숙 단원이 주 강사를 하는 날이지만 정희란 단원도 바쁘다. 아이들이 수업에 잘 참여할 수 있게 챙기고 수업 진행 중 손이 모자라면 나와서 돕는다.

왁자지껄한 40분이 지나갔다. 또 만나기를 약속하고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선생님이 행운의 별을 줄게요. 슬프거나 화날 때는 이 별을 보며 소원을 빌어 봐요.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다. 내가 최고야'라고 말해 봐요. 별을 들고 노래해 볼까요.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동쪽 하늘에서도 서쪽 하늘에서도…."

달보드레 2기, 3기… 계속 이어졌으면 해

아이들과의 만남이 끝나고 마산YMCA 김서현(42) 사회교육부장, 박미선(30) 사회교육부 간사 그리고 정말숙·정희란 단원을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문화봉사단 달보드레는 문화체육관광부 후원,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주관, 마산YMCA가 경남지역 주관처를 맡아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봉사단은 은퇴를 앞두거나 은퇴를 한 이들, 또 전업주부로 살아온 평균 나이 60대 여성들로 꾸려졌다. 단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이 54세이다. 동화구연이나 시낭송 등 관련 분야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처음인 단원도 있다. 공개모집을 통해 신청한 이들 중 면접까지 거쳐 뽑은 20여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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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문화봉사단 달보드레 정말숙·정희란 단원 /서정인 기자

김서현 부장: 20명 정도를 모집하려 했는데 60명이 지원하셨어요. 심사위원회를 꾸려서 1차 심사를 한 후 만나서 대화도 나눠보고… 그렇게 뽑은 분들이에요. 그리고 봉사단의 방문을 원하는 기관을 모집해서 20개 기관을 선정했고요.

박미선 간사: 처음엔 22명을 뽑았는데 한 분이 개인 사정으로 활동을 못 하게 되셨어요. 또 다른 한 분은 다른 선생님들이 급하게 사정이 생기면 대신 가주시는 역할을 해주시고요. 그래서 총인원은 21명이에요.

10월 말까지 단원 1명당 24번 기관을 방문하고 주 강사로 12번, 보조강사로 12번 참여한다.

김서현 부장: 사실 저희 YMCA도 처음 해보는 사업이라 어떨까 긴가민가하더라고요. 그런데 봉사단원들도, 교육하시는 분들도 다들 너무 좋아하시고 열심히 하세요. 그걸 보면서 저희 직원들도 감동을 받았어요.

정말숙·정희란 단원은 인터뷰 중에도 오늘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나 되새겨 보고 있다. 두 단원에게 달보드레 활동은 어떤 의미일까.

정말숙 단원: 젊었을 때는 여행도 좋아하고 그랬어요. 결혼하고 전업주부로 살다가 동화구연을 배우게 됐어요. 자격증을 따고 나서는 노인회관이나 여러 어린이집, 도서관에서 동화구연 봉사를 했었어요. 거기서는 '이야기 할머니'로 통해요.(웃음) 도서관에서 알려주시더라고요. 마산YMCA에서 이런 봉사단을 모집한다고요. 그래서 지원을 했어요.

정희란 단원: 저는 은행에서 20년 넘게 일하다가 퇴직한 지 10년 정도 됐어요. 직장에 다니면서도 노후에 대해 생각을 했어요. 퇴직하고는 아이들 키우면서 학교도 다니고 독서, 논술, 종이접기 같은 것도 배웠고요. 동화구연 자격증을 따고 시낭송 공부도 하다가 선생님이 이런 봉사단을 모집한다고 말해주셔서 같이 공부하던 두 분과 함께 신청했어요.

정말숙 단원: 옛날 한국전쟁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힘든 시기를 지나왔잖아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환경이 어렵고, 동생들이 있으니까 하지 못 했죠.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어요. 동생이 넷이다 보니까 하고 싶었던 것을 많이 포기했죠. 지금은 가족들이 지지해줘요. 제가 하고 싶은 거 맘껏 하라고요.

정희란 단원: 활동하는 게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놀러 가서 행복한 것보다 봉사하고 나서 느끼는 행복이 더 커요. 다음에 더 잘 해주고 싶고, 아이들한테 마음이 가고… 그래서 아이들 이름도 하나씩 외우고 있고요. 예전부터 하던 시낭송도 아이들 상대로 해야 하니까 동시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더라고요. 저희도 활동하면서 발전을 하는 거죠.

정말숙 단원: 아이들 중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아이도 있고 엄마나 아빠 중 하나 하고만 사는 아이들도 있어요. 수업 중에 가족 얘기가 나오면 '가족사진 없어요', '엄마만 같이 살아요' 이런 말을 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런 걸 들으면 사소한 말에도 아이들이 상처받을 수 있으니 신경을 더 쓰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인기관, 장애인기관도 물론이지만 아이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접하는 게 특히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 더 활동이 확장되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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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문화봉사단 달보드레 단원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서정인 기자

늘 같은 일상을 살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단원들은 활동을 통해 좋은 인연을 만나 함께 할 수 있는 것도 무척 좋은 점이라고 했다.

달보드레 단원으로 처음 만난 사이지만 같은 성(姓)에 사는 동네도 같은 정말숙·정희란 단원. 한 달 넘게 호흡을 맞추며 활동을 해나가고 있는 파트너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정희란 단원: 말숙 언니와 같은 팀이 되고 보니 같은 동네에 사시더라고요. 저를 매일 태우러 오시고 집에도 태워주세요.(웃음) 동화구연이나 이런 쪽으로 활동을 하시던 분이니까 정말 도움이 돼요. 언니 하시는 거 제가 많이 '커닝' 하면서 합니다.(웃음)

정말숙 단원: 저는 동생이 시낭송하는 걸 보니 차분하게 자기 마음을 드러내면서 잘하더라고요. 그리고 매사에 적극적이고요. 저는 좀 소심한 편이거든요.(웃음) 그런 점을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산YMCA와 달보드레 단원들은 올해 달보드레 활동이 좋은 평가를 받아 2기, 3기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며 입을 모아 말했다.

60대, 그 나이를 어떤 이들은 하루 중 해가 져 어둑해지는 '황혼'에 빗대어 얘기한다. 달보드레 단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이들은 저물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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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봉사단 달보드레 안경숙 단원. /서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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