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사업 접고 시작한 농업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한 때 귀농귀촌을 떠올리면 머리 희끗희끗한 사람들이 산업현장에서 퇴직하고 바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시골에서 여유를 가지며 사는 것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요즘 귀농 관련 단체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귀농귀촌센터 등에는 새로운 직업으로 농사를 짓고자 귀농귀촌하려는 젊은 사람들의 문의가 많다. 경남 김해시 생림면에서 김해베리팜을 운영하는 신현식(46)·안성희(43) 부부도 그런 경우다.

학원 운영하며 투잡으로 시작한 블루베리

부부는 김해 시내에서 학원을 운영했다. 아내 성희 씨는 학원 일을 한 지 20년이 됐다고 했다. 부부가 열성으로 가르치고 아이들을 보살피니 나름 학부모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학원이었다. 하지만 현식 씨는 평생 직업으로 삼기엔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여겼다.

"학원을 운영했던 곳이 구도심이었습니다. 인근 신도시로 젊은 층이 대거 빠져나가고 나이 많은 어른만 사는 그런 도시가 됐습니다. 당연히 학생 수도 줄 수밖에 없었죠. 학생이 많은 신도시로 학원을 옮겨갈까 생각도 했지만 다시 투자하고 학생들을 모집해야 하는 일이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학원사업은 내리막길일 수밖에 없어 평생직장으로 할 그런 일이 아니었죠. 새로운 일을 찾아야 했는데 농사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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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베리팜 신현식·안상희 부부./김구연 기자

함안 칠원이 고향인 현식 씨는 시골에서 자란 덕에 직접 농사일을 하진 않았지만 농사 중에서도 과수농사가 좀 더 편하다는 것을 보고 들었다. 게다가 농사는 정년도 없다. 블루베리가 뜨는 작물이란 것을 익히 알았고, 병충해도 크게 없다는 것도 들었다. 또 과수는 수확 시기가 정해져 있어 한철만 바쁘게 보내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 좋게도 블루베리를 재배하는 지인이 있어 농장을 방문해 알아보고 아내와 의논했다. 또 수확 철엔 농장에서 직접 열매를 따보니 할만한 사업이라고 여겨졌다. 마음을 굳히고 2012년 6월 하우스 비가림시설을 지었다.

"남편이 블루베리 농사를 지어보면 어떨까 하는데 그땐 제가 농사일을 모르니 하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해보자고 했죠. 더구나 처음엔 부업쯤으로 생각했으니까요. 한 번은 교육을 받을 때였어요. 강사로 오신 분이 제게 무슨 농사를 짓는지 묻더라고요. 그래서 블루베리라고 했더니 '드레스 입고 농사짓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시골 정서를 전혀 몰랐던 제겐 사실 이 농사도 버거웠습니다.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라니 다른 밭작물은 어떨지 지금도 상상이 안 갑니다."

부산이 고향이어서 더더욱 농사를 몰랐던 성희 씨가 남편의 꾐(?)에 넘어가는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내 농장에서 까맣게 익은 블루베리를 수확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학원 일에 지친 심신을 돌보는 계기도 되고 삶의 활력소가 되리라 느꼈을 만 했다.

바쁜 농장일로 학생들에겐 소홀… '전업 결심'

부부는 농사를 시작했지만 처음엔 엄연히 학원을 운영하면서 짬짬이 블루베리를 가꾸는 투잡이었다. 그러면서도 점차 재배면적을 늘렸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투잡을 하다 보니 한쪽 일이 소홀해지는 것이었다.

"처음엔 하루 한 시간 정도 짬을 내 물 주는 것만 하면 됐습니다. 수확 철에도 100여 그루에서 200~300㎏ 정도 딸 때는 괜찮았죠. 몸은 고됐지만 오전엔 수확하고 오후엔 수업을 했습니다. 시험 기간이면 보충도 했죠. 하지만 재배면적을 늘린 이후 재작년 본격적인 수확이 시작되니 한 달 내내 바빴습니다. 학원은 선생님께 맡기고 수확에만 매달렸는데 학원이 정상대로 돌아가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그해 9월 결국 학원을 다른 선생님에게 넘기고 전업으로 뛰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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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식 씨./김구연 기자

부부는 말이 쉬워 전업이지 지금 농장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고생을 많이 했단다. 자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탓에 일손을 구하는 대신 가족의 힘을 많이 빌렸다고 했다. 하지만 부부를 지켜보는 가족들은 얼마나 걱정스러웠겠는지 충분히 공감이 갔다. 학원사업을 잘하던 부부가 갑자기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다고 학원을 접어버렸으니 가족들의 걱정은 당연했을 듯싶었다.

"가족들이 불안한 마음에 농장을 찾아왔다가 한 사람의 손이 아쉬운 현장을 보고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줬죠."

이제 전문 농사꾼으로 돌아선 부부는 시설과 노지 3300여 평에서 2300그루의 블루베리를 재배해 올해 1억 5000만 원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 비용으로 연간 9000만 원 정도 들어가 부부 각각 인건비로 3000만 원 정도씩 순수익을 올릴 것으로 계산했다.

블루베리 수확 시기 짧아 가공품 생산 계획

"우리는 정말 운이 좋아 납품처가 다양한 편입니다. 김해지역 학교 급식으로 많이 납품하고 있으며 올해엔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지 작년보다 줄었지만 개인 주문도 있습니다. 5월 초까지만 해도 현대백화점 납품도 했고요. 그래도 남는 것은 공판장에 보내곤 했는데 올해는 공판장까지 낼 물건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현식 씨는 지금의 규모나 판로, 수익으로는 여전히 블루베리를 전업으로 하기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수확 시기가 3월 중하순부터 7월 상순까지여서 수익 발생 기간을 길게 가져가는 사업이 반드시 필요하단다. 수확 철뿐만 아니라 다른 시기에도 수익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장 한편에 어린 열매가 달려 있는데 7월 말, 8월 초까지 수확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물론 생과를 판매하는 목적도 있지만 가공해서 즙이나 잼을 팔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우리가 시내에서 했던 게 교육사업이니 아이들이 생태체험을 하거나 교육농장으로 발전시켜 나가면 좀 더 장기간 수익이 발생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금은 둘 다 기회만 있으면 교육을 받으려고 합니다."

농촌으로 출근하는 부부, 마음의 여유 만끽

부부는 학원을 접고 나서 생활 리듬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학원 일을 할 때는 밤에 활동하는 올빼미 생활이었다면 지금은 새벽부터 일하는 농부가 다 됐다는 것이다.

현식 씨는 "학원을 운영할 때는 새벽 2~3시가 되어서야 잠을 잤습니다. 일이 늦게 끝나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저녁에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야 합니다. 하루는 아침 7시쯤 일어나 집안일 정리하고 농장에 왔더니만 옆에서 충고를 하더라고요. 농사일은 새벽에 시작되는데 그렇게 늦게 일어나면 한낮엔 일을 못 한다는 것이었죠. 아차 싶었습니다."

성희 씨는 "학원을 오갈 때는 뭔가에 쫓기듯 조바심을 냈는데 여기서는 식물과 대화하는 것이 일이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관심을 둘수록 식물은 정직하게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이 가장 보람이 있죠. 우리가 이렇게 정성 들여 나무를 돌보면 이렇게 예쁜 열매로 보답합니다. 식물은 주인의 정성만큼 자랍니다. 절대 거짓말을 안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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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상희 씨./김구연 기자

현식 씨가 관리 실수로 강한 햇볕에 하우스 안 블루베리를 태워버린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루는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오후 4시쯤 농장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블루베리 잎이 타버렸더라고요. 서울 가면서 하우스 옆면 창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삶는 냄새가 날 정도였습니다. 탄 부분을 다 잘라내려니 얼마나 가슴이 쓰라렸던지…."

물론 가슴 아픈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블루베리를 재배하면서 느끼는 행복은 도심에서 학원을 운영할 때와 비교할 일이 아니란다.

"나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참 좋습니다. 계절 따라 바뀌는 모습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죠. 무엇보다 기쁠 때는 우리 블루베리를 먹어 본 분들이 전화로 '맛있다'는 얘길 해 줄 때죠. 너무 맛있어서 다시 주문한다거나, 학교 선생님들이 급식으로 나간 블루베리를 먹어보고 만족해하며 전화를 해 줄 때는 정말 이 농사를 잘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동네 '아재'들 호의, 낯선 땅 정착 큰 도움

어릴 적 농촌에서 자랐다지만 낯선 곳에서 해 보지도 않은 과수농사를 짓는 젊은 부부가 동네 주민들과 지내는데 문제는 없었을까?

현식 씨는 "농장 주변에 '아재'라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 이곳에 오고 나서 그분께 인사를 드리며 이야기했죠. '시골에 처음 와서 모르는 것도 많고, 동네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른다. 잘못한 게 있으면 가르쳐달라'라고. 그런데 젊은 사람이 시골에 와서 농사짓는다는 게 보기에 좋았던 것 같았습니다. 친절하게 하나하나 가르쳐주셔서 적응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한 분은 지지대 세우는 법을 몰라 헤매자 자신의 고추 농장으로 불러 가르쳐주더라고요. 그분이 '만약 젊은 사람이 나처럼 고추농사를 했더라면 안 가르쳐 줬을 것'이라고 해 웃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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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베리팜 신현식·안상희 부부./김구연 기자

작물 선택을 잘했다는 현식 씨. 그러나 워낙 블루베리가 뜬 탓에 너도나도 재배해 과잉생산도 우려된다.

"사실 2년 전까지 블루베리가 블루오션이라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뛰어든다면 막차를 타는 게 아닌가 생각도 합니다. 그렇더라도 목표를 가지고 준비하고 뛰어든다면 다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가온과 무가온, 노지재배까지 하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수확한 과일은 공판장 등으로 보내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면 힘들 것 같아요. 어느 과수인들 그렇지 않을까마는 블루베리 외에 다른 작물을 심어 수익을 고루 올리는 복합영농도 방법이지 싶고요. 그냥 블루베리 하나로 전업한다는 것은 살아남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귀농귀촌이든 농사를 직업으로 택하려는 젊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가족과 충분히 의논을 해야 합니다. 부부 중 한 사람만의 고집으로 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둘째로 여윳자금이든 투자금이든 어느 정도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버틸 자금이죠. 흔히들 '하다가 안 되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농사만 짓는 것이지 돈은 절대 안 됩니다.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곳에서 같이 농사를 지어보는 것이 좋겠죠. 그러다가 2~3년 뒤 전업하게 됐을 때 곧바로 수확해 수익을 남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일만 벌여 미안하다는 남편, 일기예보 관심 높아진 아내

현식 씨는 농사일을 하느라 힘들어하는 성희 씨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곳 어르신들이 얘기하는 게 농사일은 여자들 일이라고 합니다. 밭농사 개념이었겠죠. 실제로 이곳 일을 아내가 도맡아 합니다. 저는 일만 벌이는 셈이죠. 아직 초보라서 잘 모르니까 교육 받으러 간다며 빠지고, 뭐 한다고 빠지면 결국 일은 아내 몫이죠. 내가 일을 안 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대신 일을 해야 하니까요. 아내에게 맡겨 참 미안합니다."

성희 씨는 남편의 그런 마음을 잘 알기에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린다.

"농사를 지으면서 일기예보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학원일을 할 때는 비가 오면 그냥 '비가 내리는 모양이다'라고 넘겼는데 농사를 짓다 보니 일기예보에 관심을 쏟게 되더라고요. 물론 천재지변을 어떻게 막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기예보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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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베리팜 신현식·안상희 부부./김구연 기자

서로를 걱정하는 부부의 사랑이 느껴진다.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럽다. 오늘 블루베리를 수확하던 일꾼들이 일을 마치는 시간인 모양이다. 좀 더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바쁜 부부를 붙들었던 탓에 더는 인터뷰 진행이 될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이제 시작에 불과한, 전업농 2년 차인 부부가 우리 농업의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듯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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