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결번 남기고 싶어요"

지난 5월 중순 1위 두산을 추격하는 NC에 비상등이 켜졌다.

외국인 에이스 해커가 팔꿈치 통증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탓이다. 5월 17일 1군 명단에서 말소되기 전까지 해커는 8경기에 선발 등판해 51과 3분의 2이닝을 소화하면서 6승 1패 평균자책점 2.61을 기록하며 지난 시즌 다승왕(19승 5패)의 위력을 뽐내고 있었기에 그의 공백은 NC에 치명적이었다.

해커의 빈자리를 메우고자 C팀에서 소방수로 긴급 호출된 이가 바로 신인 정수민(26)이다.

지난해 2016 신인 2차 지명 1라운드 전체 8순위로 NC의 부름을 받은 정수민은 이날 콜업되기 전까지 퓨처스리그 4경기에 등판해 2패만 떠안았을 뿐, 14이닝 동안 13실점(12자책)을 해 평균자책점도 7.71로 좋지 못했다.

하지만 김경문 NC 감독은 해커의 대체 선발로 정수민을 낙점했다. 지난 스프링캠프 때 우완 정통파 투수의 성장을 언급했던 김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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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민 NC다이노스 투수./박일호 기자

정수민은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데뷔 첫 선발 등판이었던 지난 5월 19일 넥센전에서 정수민은 넥센의 끈끈한 타선을 상대로 5와 3분의 1이닝 1실점으로 막아내고 팀의 4연패를 끊어내는 귀중한 승리를 이끌었다. 26일 SK전에서는 4와 3분의 1이닝 3실점을 하며 주춤했지만 6월 1일 두산전에서 5와 3분의 1이닝 무실점 호투로 팀 11연승(6월 15일 현재)의 스타트를 끊었다. 이어 7일 넥센전에서는 개인 최다 투구 이닝인 7이닝 동안 무실점 완벽투를 선보이며 데뷔 후 최고의 활약을 했다. 지난 12일 SK전에서는 집중타를 얻어맞고 2이닝만 채운 후 강판당하며 아쉬움을 남겼지만 정수민은 15일 현재 1군 7경기에 나서 3승 무패 평균자책점 2.97을 기록하며 기대 이상으로 해커의 빈자리를 잘 메워주고 있다.

6월 9일 창원 마산구장에서 정수민과 이야기를 나눴다.

메이저리그 도전 좌절 후 NC 입단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정수민은 친한 형을 따라 초등학교 3학년 겨울 김해엔젤스리틀야구단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이후 김해내동중을 거쳐 중학교 3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 갔고 부산고에 입학했다. 정수민은 고교 시절만 해도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 부산고 한 해 선배 김태군(NC 포수)은 팀 내 세 번째 투수 정도였다고 하던데, 고교 시절 주위 평가는 어땠나.

"맞다. 안태경(롯데), 오수호(SK)에 이어 팀 내 세 번째 투수 정도였다. 발전 가능성은 인정받았던 것 같다."

그 발전 가능성 덕분에 정수민은 2008년 미국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고 2009년부터 미국에서 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2009년 루키리그에서 시작해 하위 싱글A, 싱글A 리그를 전전하며 71경기에 나와 210과 3분의 2이닝을 던져 10승 8패 평균자책점 4.14 평범한 성적을 거둔 정수민은 어깨 부상과 병역 문제 탓에 2013년 3월 팀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아메리칸드림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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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민 NC다이노스 투수./박일호 기자

- 미국 생활이 후회스럽지 않았나.

"원정 거리가 멀고 혼자 있는 시간 많다 보니 향수병으로 힘들었지만 후회는 전혀 없다. 그것도 모두 내 경험이고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경험이 지금 많이 도움되고 있다. 마운드에 섰을 때 조금 더 버티는 힘이 되지 않나 싶다."

정수민은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군대에 현역으로 입대했다.

- 강원도 고성 최전방 부대에서 군 복무를 했는데.

"('1999년 이후 해외 진출 선수는 복귀 시 2년간 국내 프로야구에서 뛸 수 없다'는 KBO 조항)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국방의 의무를 해야 하니까. 체격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좋아서 운동했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사정을 알게 된 후에는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틈틈이 시간도 내주고… 부대에서 배려를 많이 해줬다. NC로부터 신인 지명을 받았을 때도 간부들이 연락해 와 축하해주기도 했다."

- 지난해 신인 2차 지명회의에서 NC의 선택을 받았는데 상위 순번에 지명받을 거로 생각했나.

"전혀 생각하지 못 했다. 2년을 쉬고 온 상황이어서 어느 팀이든지 선택을 받기만 해도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뜻밖에 1라운드에 지명을 받아 매우 기뻤다. 특히 고향 팀이어서 더욱 기분이 좋았다."

정수민은 지명 소식을 할머니에게 가장 먼저 전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해 어린 시절 할머니 밑에서 자랐기에 정수민은 할머니와 사이가 각별하다.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아이고 잘됐네"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해커 '대체 선발'로 1군행

- 지난 5월 17일 팔꿈치 통증으로 빠진 해커 대신 1군에 올랐다. 그전 퓨처스 성적이 좋지는 않았는데.

"컨디션 난조도 있었다. 그리고 성적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더 잘 던질 수 있을지 로케이션을 시험해보기도 했다."

- 1군에 올랐을 때 김경문 감독이나 최일언 코치가 어떤 말을 해줬나.

"최대한 네 공을 자신 있게 던져라. 신나게 던져보라고 말씀해주셨다."

- 대체 선발이지만 매우 잘 던져주고 있다.

"해커 빈자리를 메우려고 1군에 올랐으니 해커만큼은 아니더라도 최대한 그만큼 던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해커가 복귀하면 다시 퓨처스팀 고양다이노스로 갈까.) 감독님이 결정하시는 거니 일단 내 역할을 다해놓고 결과를 기다리겠다."

- 김태군의 말에 따르면 '투 피치 투수'(던질 수 있는 구종이 2가지인 투수)라던데.

"아니다. 포크볼 외에도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투심을 던진다. 가장 자신 있는 구종은 투심이다."

김태군은 정수민의 호투에 대해 "투 피치 투수이지만 팔 각도가 좋다. 직구와 포크볼을 던질 때 일정한 각도를 유지한다"며 "신인 투수니 상대 팀들이 정수민에 대한 데이터가 적은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주무기인 포크볼은 원래 던지던 구종인가.

"아니다. 아예 던져보지 않았던 구종인데 NC에 와서 배웠다. 스프링캠프 때 최일언 코치님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쉽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일찍 익혔다. 보통 8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던데 4~5개월 만에 손에 익었다. 학습능력이 좋다기보다 내 손에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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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민 NC다이노스 투수./박일호 기자

- 어린 시절 좋아했던 선수는.

"손민한 선배님을 좋아했다. (입단하자 은퇴해 아쉬웠겠다.) 하지만 지난겨울 마무리 훈련 때 좋은 말씀해주셨다. 빈자리는 누구나 채워야 한다. 밸런스가 무너졌을 때나 물어볼 거 있으면 많이 물어보라고 하셨다. 정신적으로 의지가 됐다."

- 구단에 친한 선수 많나.

"이재학, 임정호, 손정욱, 군대 간 유강민 등 동기들이 많다. 부산고 직속 선배인 태군이 형과 성범이 형과 친하다. 그들에게 도움도 받고 잘 어울린다."

- 야구선수로서 장단점이 있다면.

"어떤 상황이든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게 장점인 것 같다. 단점이라면, 상황에 몰리면 오히려 너무 적극적으로 대시한다는 것."

- 롤모델이 있나

"따로 없다. 대신 한 시즌 10승 이상을 기록한 투수들의 경기는 모두 챙겨보고 있다. 아직 배울 게 많다."

- 야구 선수로서 목표는.

"내 등번호를 가지는 게 목표다. 영구결번을 남길 수 있도록 한 팀에서 오랫동안 꾸준히 잘 던지고 싶다."

키 188㎝ 몸무게 92㎏의 건장한 체격과는 달리 귀공자 이미지를 풍기는 외모를 가진 정수민은 인터뷰하는 내내 수줍은 미소를 띠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조곤조곤한 말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비록 대체 선발로 시작했지만, 정수민은 머지않아 NC 선발진에서 빠질 수 없는 한 축을 맡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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