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그레이스'와 '인디언 보호구역'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대를 전후하여, 연해주, 우수리스크, 수찬 등 러시아 여러 곳에는 '까레이스키'라 불리는 고려인 17만여 명이 살고 있었다. 당시 일본과 적대관계였던 소련의 스탈린은 까레이스키가 일본의 첩자노릇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었기에, '일본 간첩활동 방지'를 이유로 고려인 전원을 민족탄압의 일환으로 강제이주(1937년 9월 21일~11월 15일)시켰다. 강제이주는 단 며칠 전에 이루어진 급작스러운 통보 후에 곧장 진행됐기에 세간을 챙길 틈도 없이, 고려인들은 곡식의 씨앗만을 품고서 맨몸으로 정든 땅을 떠나게 되었다.

화물차와 가축 운반차를 개조한 차량에 짐짝처럼 실린 그들은, 매서운 시베리아의 삭풍 속을 달려 6000km나 떨어진 메마르고 척박한 중앙아시아에 도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하고, 사고와 질병,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으로 아이들과 노인들이 죽어갔으니 그 수가 2만이 넘었다고 한다.

고려인들은 제대로 장례를 치를 여유도,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강제이주 후에도 거주지는 극히 제한되었고, 일정한 거주구역이 명시된 신분증을 만들게 되면서 1953년까지 16년간 집단적인 수용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지배자의 오판과 편견, 이익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 또 다른 민족이 있다. 조상 대대로 북미대륙을 터전으로 살아온 인디언들이 신대륙의 발견으로 밀려온 백인들에 의해 수난을 겪고, 그들이 내어준 보호구역으로 강제이주 당하는 일련의 과정은 거의 고려인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중 체로키(Cherokee) 인디언의 한 맺힌 역사는 지금도 미국을 부끄럽게 만드는 오점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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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린드노 작 '눈물의 길'

미국 오클라호마주 바트즈빌 우레락 박물관 화랑에는 화가 로버트 린드노(Robert Lindneux, 1871~1970)가 그린 '눈물의 길(The Trail Of Tears, 1942)'이라는 제목의 대형유화가 전시되어 있다. 그림을 보면 체로키 인디언들이 담요를 덮고 말과 마차로 편안하게 이동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상황은 달랐다. 그야말로 맨몸으로 나서야만 했다. 참혹했던 모습을 미화해서 그린 작가는 체로키 인디언에 대한 최소한의 가책으로 미안함을 표시하였는지 모른다.

체로키는 북아메리카의 원주민족이며, 16세기 유럽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북미대륙의 동부지역과 남동쪽으로 걸쳐 미시시피강 유역까지 살고 있었다. 18세기 여러 차례의 전쟁과 조약, 특히 미국독립전쟁 때 잇달은 전투와 협정들로 인해 조지아주, 테네시주 동부, 캐롤라이나 서부지역에 살던 체로키의 영토는 상당히 줄어들었다.

미국과 휴전조약을 맺은 후부터 백인문화에 상당히 동화된 체로키족은 문명화의 길을 걸었다. 그들은 치카소족, 무스코지부족연합, 촉토족, 세미노족과 5대 부족연합을 결성하고, 백인의 문명을 받아들이고 백인사회구조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문명화된 다섯 부족'이라 불렀다.

이를 반증하듯 1821년, 크리크전쟁 당시 미군에서 복무한 체로키족 혼혈인 시쿼이아(Sequoyah)가 체로키 문자를 만들었다. 85음절로 구성된 음절 표기법은 사용하기 편하고, 기억하기 쉬워 빨리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널리 보급되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와 오레곤주 등에 자라는 시쿼이아(Sequoia)라는 큰 상록수가 있는데, 이 나무의 이름은 바로 체로키 문자를 만든 'Sequoyah'의 이름을 딴것이라 한다.

한편 1830년대에 조지아주에서 일어난 골드러시로 인해 백인들이 그들의 영토에 난입해왔다. 이로 인해 잦은 충돌이 일어나자 자국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앤드류 잭슨 미국 대통령은 원주민들을 강제이주시키기로 결정하고 무력으로 압박하였다.

체로키족은 이에 대항하여 '세미놀전쟁'이라 불리는 전투를 벌여 저항하지만, 미 육군의 막강한 군사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1838년 미 육군의 강압으로 체로키족을 비롯한 6만여 명의 5대 부족은, 그들의 터전을 내어주고 5000리(2000km)나 떨어진 허허벌판인 오클라호마주를 향해 도보로 이동하였다.

미국 역사는 원주민들이 기병대의 감시하에 피눈물을 흘리며 떠난 사연을 '눈물의 길' 또는 '눈물의 행로(The Trail of Tears)'라고 했다. 또 당시의 기록에 "무덤에 들어가기 직전의 노파도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걷고 있었다"라고 기술할 정도였으니, 한마디로 눈물과 죽음의 길이었던 것이다.

결국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약 4000명이 도중에 숨졌다. '눈물의 길'을 떠날 때 1만 5000명이었으니 거의 3분의 1일이 희생되고 만 것이다. 이 죽음의 강제이주는 1839년 봄에 끝났으며, 체로키족뿐 만아니라 다른 부족까지 8000여 명에 이르는 희생자를 내고 말았다.

이때 이동하며 그들이 불렀던 노래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다. 기독교 문명을 받아들였던 체로키족은 선교사 새뮤얼 워시스터(Samuel Worcester)의 도움으로 체로키 말로 번역해 널리 부르고 있었다. 그는 부족과 같이 살면서 강제이주를 끝까지 반대해 법정투쟁을 하며 체로키족을 도운 선교사였다. 죽은 동료, 아이들을 땅에 묻으며 이 노래의 영감을 빌려 명복을 빌었고, 살아남은 자들의 용기와 힘을 북돋우기 위해 눈물로 불렀다고 전한다.

미국찬송가사전(Dictionary of American Hymnology)에 따르면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존 뉴턴의 자전적 삶을 가사화한 것이며, 작곡가는 이 곡을 편곡한 E, Ox, Well이라 한다. 혹은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의 민요에 붙여 불렀다거나, 19세기 미국 남부에서 작곡되었다고 하는 등 여러 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그들은 체로키 네이션(Cherokee Nation)의 애국가로 부르고 있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크게 인기를 얻으며, 소풍이나 야유회에서 사람들이 곡에 맞춰 신나게 흔들었던 노래가 있었다. 미국의 락 그룹 더 레이더스(The Raiders)가 불러 1주일간 빌보드차트 정상에 오르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인디언 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이라는 노래였다. 가사의 의미는 굳이 알 필요 없이 그저 춤추는데 신나는 곡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인디언의 비애와 슬픔을 알았다면 조금은 숙연하게 들었을 것이다. 이 노래는 비극적 삶과 고통받는 현실을 비통하게 나타내고 있지만, 체로키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살아가겠다는 굳은 맹세가 담겨져 있다.

원래 '인디언 보호구역'은 미국 가수이자 작곡가인 존 디 라우더밀크(John D. Lordermilk)가 작곡했으며, 로큰롤과 컨트리음악을 혼합한 미국음악 로커빌리(Rockabilly) 가수 마빈 레인워터(Marvin Rainwater)가 'The Pale Faced Indian'이란 제목으로 1959년에 발표했다. 이어서 1968년에 돈 파든(Don Fardon)이 'Indian Reservation'으로 발표하여 영국차트 3위와 미국차트 20위, 호주차트 4위를 하며 백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1971년, 미국 로큰롤밴드인 폴 리비어 앤 더 레이더스(Paul Revere&The Raiders)가 편곡을 달리하여 '인디언 보호구역(체로키 보호구역 인디언의 비애)'로 발표하였는데, 당시 뚜렷한 히트곡이 없던 그들에게 최고의 노래가 되는 영광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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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로키 인디언들이 겪었던 '눈물의 길'은 미국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건이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 의회는 1987년 '눈물의 길'을 '국립역사의 길'로 지정하였다. 이 길은 9개 주에 걸쳐 있으며 길이는 총 3540km에 달한다. 2004년, 미국 상원의원인 공화당의 샘 브라운은 과거에 "인디언 부족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미국을 위해 원주민에게 사죄한다"라는 공동결의안을 제안하였다. 그로부터 5년이나 끌어오다 2009년 말에 상하원에서 '원주민들에 대한 사과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2월 결의안에 서명하였다. 이로써 미국 정부는 170년 만에 체로키족과 모든 원주민들의 원혼을 위로하였다.

체로키족은 자기들의 말로 '눈물의 길'은 '우리가 울었던 길(Nu No Du Na Tlo Hi Lu)'이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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