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주부전 고향을 아시나요?

봄이었지만 아파트에서 내다본 바깥 날씨는 영락없는 겨울이었다. 장갑과 헬멧, 버프를 챙겨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모터사이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모터사이클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건축물이든 기계든 사람이든 자주 만나고 부대껴야 더욱 친밀해진다. 모터사이클 한 대를 오래 탄 사람은 시동만 걸어 봐도 자신의 모터사이클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쉽게 알아차린다.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터사이클이라는 기계와 그 주인이 서로 소통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해 바래길

오늘은 남해로 가기로 했다. 첫 번째 목적지가 남해군 남면 가천 다랭이마을 근처다. 회사 선·후배님들이 오늘 남해 바래길을 걷기로 했고, 중간 지점에서 만나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바래길은 제주 올레길처럼 남해군에서 자연을 즐기며 걷기 좋은 곳만을 골라 개발한 길이다. 제주 올레길 못지않은 멋진 풍광을 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바래길에도 제주 올레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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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 남면 홍현마을 인근 바래길을 걷는 회사 선후배들. 바래길을 걸으면 남해의 뛰어난 풍광을 즐길 수 있다./조재영 기자

 

약속한 시간은 11시쯤이었다. 가천마을~앵강마을 바래길안내센터 구간의 중간쯤에 있는 홍현마을 해변이다. 약속 시간에 도착하려면 집에서 9시에 나서야 하지만 미적 거리다가 10시쯤에야 출발했다. 남해까지 1시간 만에 도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모터사이클이라 하더라도 창원에서 출발해 진주를 거쳐 사천을 지나서 남해군 깊숙한 곳에 있는 홍현마을까지 가는 데는 최소한 2시간 정도는 걸린다.

지하주차장에서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모터사이클이 휘청거렸다. 바람이 세게 불고 있었다. 출발부터 오늘 여행은 쉽지 않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날씨는 금방 비나 눈이 쏟아질 것처럼 흐렸다.

일단 약속 시간에 늦었기 때문에 2번국도를 타고 진주로 달렸다. 진주 경상대 정문 앞까지 도착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달려 사천읍을 지나 3번국도로 갈아타고 남쪽으로 달렸다. 이 구간은 과거 진주와 삼천포를 잇는 진삼선 철로가 철거되고 왕복 2차선 도로가 놓였다가 다시 4차선으로 확장된 구간이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곧장 뻗어있는 길이다. 4차선 대로가 뻥 뚫려있다.

달리는 내내 손끝이 아주 시려웠다. 지난 1월 투어 때에도 오늘처럼 춥지는 않았는데 마지막 꽃샘추위가 상당했다.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바람을 막아주는 스크린이 앞쪽 찬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에 몸 앞쪽은 그리 춥지 않았지만 바람의 와류작용 때문에 등 뒤쪽이 시려웠다. 그리고 손가락과 발가락의 감각도 점점 없어져 갔다.

전복죽

삼천포-창선대교를 지났다. 여기서부터는 왕복 2차로 도로라 속력을 낼 수 없다. 앞차를 따라 천천히 달릴 수밖에 없다. 차들을 추월하면서 달릴 수도 있지만 위험하기 때문에 앞차를 조용히 따라갔다. 미조면을 지나고 상주해수욕장 부근에서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걷는 팀들도 출발지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바래길 걷기 시작이 늦어졌다고 했다. 걷는 팀은 가천 다랭이마을에 차를 세워두고 앵강마을 방향으로 출발한 지 20분 남짓 됐다고 했다. 그래서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을 1시간 정도 미뤘다. 약속 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많이 미안했는데 미안함을 덜게 됐다. 그래도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은 잘못이다.

잘 됐다. 급하게 서둘러 달리다 보면 풍광을 제대로 감상할 수도 없고 위험하기도 하다. 시간 여유가 생겼으니 천천히 달린다. 바다가 잘 보이는 산기슭에 난 길을 달리고 파릇한 기운이 느껴지는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기도 한다. 어느샌가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가천 다랭이마을이 가까워지자 눈발이 한층 굵어졌다. 가천 다랭이마을까지 가는 사이에 해안을 따라 바래길을 걷고 있는 선배들이 보일까 싶어 천천히 달린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도로는 산기슭을 따라 나 있고 바래길은 해변 구간이 많기 때문이다. 가천 다랭이마을 공용 주차장에서 모터사이클을 돌려서 홍현마을까지 되돌아간다. 홍현마을까지 가는 중에도 선배들은 보이지 않는다. 홍현마을을 지나 월포 쪽으로 달리는 중에 해안을 따라 걷고 있는 선배들이 보인다. 마침 약속한 장소 부근이다. 그쪽으로 내려간다.

집에서 출발한 지 꼬박 2시간 만에 모터사이클에서 내렸다. BMW R1200RT는 참 편한 모터사이클이다. 그래서 이 모터사이클에 '궁극의 투어러'라는 별명이 붙은 모양이다.

선·후배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식당으로 올라간다. 전복을 양식하는 어민 조합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다. 주메뉴는 전복죽이다. 2층에 있는 식당 안에는 이미 많은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 일행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눈발 날리는 추위에 떨다가 실내로 들어와서 바닥이 따뜻한 곳에 앉았는데도 좀처럼 손과 발의 냉기가 가시지 않는다.

우리도 전복죽을 주문했다. 전복죽이 나오기 전에 싱싱한 생굴과 멍게, 오징어무침 같은 해산물 요리가 밑반찬과 함께 나온다. 추운 길을 걸어왔고 또 걸어가야 할 분들에게는 싱싱한 해산물을 안주로 해서 술 한잔 하면 힘이 마구 솟구칠 것 같다. 밑반찬도 깔끔했다. 전복죽은 아주 따뜻했다. 바깥 날씨가 추웠기 때문에 따뜻한 전복죽을 먹었더니 몸속에 금방 온기가 돌았다. 배속도 따뜻하고 바닥도 따뜻하니 금세 몸이 풀려서 밖으로 나가기가 싫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선배들과 헤어졌다. 선배들은 계속 앵강마을 방향으로 가고, 나는 사천시 삼천포 방향으로 달렸다. 그분들은 계속 걷고, 나는 달렸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다른 방식으로 가는 것이다.

사천 대방진굴항

헤어질 때까지는 날씨가 좋았다. 남해읍 방향으로 달리다가 삼동면 방향으로 가로질러 가는 길로 들어섰다. 그때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금세 펑펑 퍼붓는 함박눈이 되어 내렸다. 모터사이클이 달리는 속도 때문에 눈송이가 옆으로 날리면서 마치 눈폭풍 속을 달리는 듯했다. 모터사이클 계기판에 경고 표시가 떴다. 연료통 바닥이 드러나고 있다는 신호였다. 마침 주유소가 하나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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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시 대방동 대방진굴항. 조선시대까지는 전함이나 병선을 숨겨두는 해군기지였고, 지금은 주민들의 고기잡이배를 대는 곳으로 쓰인다. /조재영 기자

 

유류 제조 업체마다 생산하는 휘발유의 옥탄가가 다르다. 좋은 휘발유일수록 옥탄가가 높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세계일주 여행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후진국에서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잘못 넣었다가 달리는 중간에 모터사이클이 멈춰 서버리거나 시동이 걸리지 않아 낭패를 당했다는 경우가 가끔 있다. 옥탄가가 현저히 낮은 저질 휘발유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판매되는 휘발유는 고급유가 아니더라도 품질이 좋은 편이다. 그럼에도 모터사이클 라이더들 사이에서는 특정 업체 휘발유가 선호되고 있다. 해당 업체의 휘발유 옥탄가가 다른 회사 휘발유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골 도로를 달리다가 연료가 떨어지면 아무데서나 주유하지 않고 가급적 그 특정 브랜드 주유소를 찾아가서 기름을 넣는 라이더들이 적지 않다. 나도 그런 부류 중에 한 사람이기도 하다. 거의 기름이 떨어져 멈춰 서버릴 지경이 아니라면 그 특정 브랜드 주유소가 보일 때까지 기름을 넣지 않고 있다가 그 주유소가 보이면 기름을 가득 채워 넣는다.

BMW R1200RT는 연료통 용량이 24리터다. 연료탱크에 휘발유를 가득 채우면 최소한 400km 정도는 달릴 수 있다. 경제 속도를 유지한다면 주유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이보다 훨씬 늘어난다.

주유를 하는 사이 눈발이 더욱 굵어졌다. 그렇지만 거기서 멈춰 있을 수 없다. 계속 달려야 한다. 마주 오는 차량의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나도 천천히 달린다. 급할 것이 없다. 곧 왼쪽으로 죽방렴이 군데군데 길목을 차지하고 있는 지족해협이 나타난다. 창선대교를 건넌다.

다시 오른쪽에 해안을 옆에 끼고 달린다. 오래 걸리지 않아 삼천포-창선대교가 나타난다. 어느새 날은 거짓말처럼 화창하게 개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 삼천포 시내로 꺾어 들어간다. 대교 지척에 대방진굴항이 있다. 오래전에 와봤던 기억을 더듬어 방향만 정해서 찾아간다. 해안 주택가가 그리 복잡하지 않아서 어렵게 찾을 수 있다.

사천시 대방동에 있는 대방진굴항은 항구 안쪽에서는 바깥이 보이지 않고 항구 바깥에서도 안쪽이 보이지 않도록 작은 선착장이다. 고려시대 때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1983년 12월 20일 경상남도 지정 문화재자료 제53호로 지정됐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거북선을 숨겨 두었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안내판을 찾아보면 고구려 말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자 그들을 막기 위해 지금의 대방진굴항 부근에 군사 병영이 설치되었고 조선조 세종 때 이 병영이 고성 땅으로 옮겨감에 따라 소규모 병선 정박지로 남았다. 그리고 조선시대 말 순조(1801~1834) 때 번듯한 병선 정박지로 만드는 공사가 이뤄졌다. 그때 지금과 같은 굴항이 만들어진 듯했다.

기록에는 굴항 축조공사에 진주관아 73개 면민이 동원되어 1820년에 완공하였으며, 굴항 북편에 수군장이 거처하는 동헌과 수군이 거처하는 관사가 있어 수군촌을 이뤘다. 지금으로 치면 해군촌 쯤 되겠다.

대방진굴항은 눈대중으로 보면 가로, 세로 크기가 각 50m, 30m 정도로 보인다. 아주 작은 어선 십여 척을 댈 수 있는 정도의 크기다. 이순신 장군이 해군기지로 이용할 당시에는 전함 2척과 300여 명의 해군이 있었다고 한다. 오늘은 작은 배 한 척만이 굴항을 지키고 있다

굴항을 둘러싸고 있는 둑 옆에는 나이 많은 팽나무와 소나무가 들어서 있다. 그 속에 키가 작은 매화나무 한 그루. 하얀 매화가 피었다. 굴항의 하늘색 물빛을 배경으로 활짝 핀 매화가 예쁘다. 예전에는 그냥 꽃은 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저 꽃이기 때문에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은 꽃을 보면 저 꽃이 꽃을 피우기 위해 나름 어려운 고비를 넘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그래서 꽃이 예쁘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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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대방진굴항 둑 위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조재영 기자

 

굴항 둑 위에서 몸을 돌리면 삼천포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건너편은 남해군이다. 바다 가운데 등대가 서 있다. 역광 때문에 등대는 검은색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실제 색깔은 빨간색일 것이다. 강렬한 빨간색 등대는 이곳을 지나는 수많은 배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다. 배들에게 든든한 기준점이고 든든한 친구인 셈이다.

하지만 정작 등대 자신은 어느 곳에도 기댈 곳이 없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파도가 치면 치는 대로 고스란히 혼자서 견뎌야 한다. 그것이 등대의 운명인 것이다.

비토섬의 전설

삼천포를 빠져나와 3번국도를 타고 사천읍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오른쪽엔 사천시청사가 보이고 왼쪽에 바다가 보인다. 바다 건너는 사천시 서포면이다. 서포면으로 건너가는 다리는 2006년 무렵에 개통되었다. 사천대교다. 사천대교를 건널 때마다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오른쪽으로는 조선소를 상징하는 골리앗 같은 커다란 크레인이 멀리 보인다. 왼쪽은 노을이 아름다운 실안 해안으로 이어진다.

바람이 지나간다. 모터사이클이 휘청거린다. 바람에 순간적으로 휘청거리지만 너무 핸들을 꽉 잡으면 안 된다. 부드럽게 잡아야 돌발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핸들을 꽉 잡으면 온몸이 경직되고 핸들링에도 방해가 된다.

서포면소재지를 지나 남쪽 해안 끝을 향해 달리면 비토섬이 나타난다. 비토섬에는 이런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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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섬에서 월등도로 건너가려 했지만 밀물 때여서 길이 막혔다. 모터사이클 바로 앞에 보이는 큰섬이 월등도이고 작은 섬이 토끼섬이다. /조재영 기자

 

'서포면 비토섬 끝을 생활 터전으로 삼은 토끼 부부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중, 남편 토끼가 용궁에서 온 별주부의 감언이설에 속아 용궁으로 가게 된다.

용궁에 도착하니 용왕이 병들어 있고, 오직 토끼의 생간이 특효라는 의원의 처방에 따라 자신이 잡혀 왔음을 알게 된 토끼는 꾀를 낸다. 한 달 중달이 커지는 선보름이 되면 간을 꺼내어 말리는데, 지금이 음력 15일이라 월등도 산 중턱 소나무에 간을 걸어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에 용왕은 별주부에게 토끼를 다시 육지로 데려다주라고 명한다. 월등도 앞바다에 도착한 토끼는 달빛에 반사된 육지를 보고 성급히 뛰어내리다 바닷물에 빠져 죽고 만다. 그 자리에 토끼 모양의 섬이 생겨났다. 그것이 현재의 토끼섬이다. 토끼를 놓친 별주부도 용왕에게 벌을 받을 것을 걱정하여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거북 모양의 섬이 되었다. 그것이 현재의 거북섬이다.

한편 부인 토끼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다 바위 끝에서 떨어져 죽어 돌 앞에 있는 섬이 되었다. 그것이 현재의 목섬이다. 현재 이곳 주민들은 월등도를 돌당섬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토끼가 용궁에 잡혀간 후 돌아와 처음 당도한 곳이라는 뜻에서 돌아오다 또는 도착하다의 첫머리글자를 따서 돌당섬이라고 부르고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용왕의 오래 살려는 욕심 때문에 토끼 부부와 거북이가 희생된 것이다. 아마도 토끼 간을 구하지 못했으니 용왕도 오래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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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섬 별주부전테마파크. 아이들이 놀고 사진을 찍기에 안성맞춤이다. /조재영 기자

 

비토섬에 들어가면 온통 별주부전과 관련되어 있는 이름이 나타난다. 다리 이름은 비토교, 길 이름은 거북길. 이런 식이다. 비토섬이라는 이름도 섬 모양이 토끼가 날아오르는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토섬은 원래 이름 그대로 섬이었지만 지금은 연륙교로 육지와 이어져 있다. 비토섬으로 건너가는 아치 모양의 작은 다리, 비토교는 봄 가을 썰물 때 이곳을 지나가면 다리 양쪽 넓은 갯벌에 깔려 있는 해초가 드러나 거대한 연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듯 아름답다.

섬 입구에는 먹거리촌과 펜션촌이 만들어져 있다. 섬 안쪽에는 별주부전테마파크가 조성되어 있다. 섬 전체를 별주부전과 관련지어 관광자원화해 놓은 것이다.

월등도 모세의 길

별주부전테마파크는 섬 가운데 야트막한 야산에 조성되어 있다. 산 아래에 주차장이 있고 정상까지 산책로가 나 있다. 주차장 옆에 토끼 모형과 실제로 살아있는 토끼 사육장이 있다. 그곳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제법 큰 토끼 두 마리가 있다. 자세히 보려고 다가갔더니 둘 중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온다. 아마 많은 관광객들이 토끼에게 먹을 것을 주었을 것이다. 토끼는 내가 먹을 것을 던져 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토끼에게 줄 것이 없다.

산 정상에는 팔각정이 하나 있는데 그 모양이 재미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거북이 등에 팔각정을 지은 모양이다. 팔각정에 오르면 전망이 시원하다. 멀리 사천읍도 보이고, 남해군도 보인다. 사천만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따뜻한 날씨라면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느끼며 광합성을 하고 있어도 좋겠다. 팔각정에서 내려와 올라왔던 길 반대편으로 내려간다. 작은 놀이터가 있다. 토끼와 거북이 캐릭터를 주제로 만들어 놓은 작은 공원이다. 어린이들이 즐거워할 만한 장소이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서 남기기에도 좋은 장소다. 평일이라 그런지 구경하는 사람이 없다. 놀이터 아래쪽 바닷가에 공연장이 보인다. 하얀색 지붕을 얹고 관객석까지 만들어놓은 공연장이 멋지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지어진 공연장은 참 생뚱맞아 보인다. 자세히 보니 해변을 따라 나무데크길이 만들어져 있다. 테마공원 주변 해안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든 듯했다. 시간이 많고 날씨가 좋으면 데크로드를 따라 산책을 해도 좋겠다.

모터사이클이 세워져 있는 주차장에 내려와서 한쪽에서 있는 안내도를 본다. 안내도에는 바로 인근에 별주부전 전설에 나오는 월등도와 토끼섬, 거북섬이 있는 것으로 안내되어 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월등도 쪽으로 향한다.

비토섬 끝에 월등도로 건너가는 길이 있는데 이 길은 모세의 기적처럼 썰물 때만 나타나는 모양이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썰물에서 밀물로 전환되는 때쯤인 모양이다. 길이 거의 다 드러나 있지만 가운데 부분에 바닷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서 월등도가 코앞에 보였지만 건너갈 수는 없었다. 모세의 길 중간에 모터사이클을 세우고 월등도를 건너다본다. 월등도 오른쪽에 토끼섬이 보인다. 눈앞에 있지만 닿을 수 없다.

주위를 돌아보니 태양이 낮아지고 있었다. 하늘은 맑았지만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모터사이클을 돌려세우고 육지로 향한다. 사천읍을 지나 진주로 들어가서 2번국도를 타고 창원으로 향한다. 문산읍을 지날 때쯤부터 다시 하늘이 어두워지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진성면을 지날 무렵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발이 세차게 날린다. 그래도 제 갈 길은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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