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하고 나서 건강을 되찾았어요"

산청군이 발간한 귀농귀촌 수기집을 보다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다. '인생 첫 출발! 시련과 아픔을 견디며'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귀농을 '인생 첫 출발'이라고 표현한 글쓴이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몇 번 시도한 끝에 겨우 연락이 닿아 산청군 시천면으로 향했다. 지리산담쟁이농원을 운영하며 곶감을 생산해 판매한다는 이재순(57) 씨와 남편 손영욱(57) 씨 부부다.

"오늘부터 감나무 가지치기를 시작했습니다. 임대료를 주고 빌린 전동가위라 내일까지 이곳 감나무밭은 작업을 끝내야 합니다. 어제 왔더라면 마음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그렇네요."

약속 시간을 정하고 집으로 찾아갔는데 집 뒤편 감나무 밭에서 바쁜 일손을 움직이던 부부가 우리를 맞는다. 한창 바쁜 시기에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자 자리를 옮겨 인터뷰하기가 여간 미안한 게 아니다. 이런 미안한 마음을 한 번 더 각인시키듯 이 씨가 한마디 더 건넨다.

"바쁜 데 약속을 잡았다며 우리 아저씨한테 핀잔을 들었습니다."

부산서 동네 슈퍼마켓 운영하던 부부

"시부모님 모시고 부산에서 동네 슈퍼마켓을 했습니다. 시아버지께서 꾸려가던 것을 우리가 이어받아 열심히 키웠습니다. 워낙 남편이 부지런한 덕에 동네에서 인심도 얻고 슈퍼마켓은 잘 됐죠. 우리는 30대 때부터 나이가 들면 두 사람의 고향인 산청으로 귀농할 것이라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부모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우리 부부마저 몸에 이상이 와 예정보다 일찍 이곳으로 오게 됐습니다. 그게 6년 전입니다."

빌린 기계 두 대를 다 놀릴 순 없어 손 씨가 혼자 밭에 남아 일을 하고, 집으로 내려온 이 씨가 지난 기억을 더듬는다. 고로쇠 수액과 함께 내놓은 곶감이 빛깔이 참 곱다. 아마도 직접 농사지은 것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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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순·손영욱 부부./김구연 기자

"시고모님 소개로 스물다섯 동갑내기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어머니께서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가 되셨습니다. 4남 2녀 중 셋째인 남편은 이후 18년 동안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어머님 대소변을 받아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강하던 시아버지마저 파킨슨병이 와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됐습니다."

부모님 병시중에 슈퍼마켓 운영까지, 부부의 도시 생활은 여간 고단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의식 없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자니 그것은 자식의 도리로써 부부가 용납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나마 시아버지께서 건강하셨을 때에는 비록 쉴 틈은 없었더라도 집안일과 가게일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아버지에게 파킨슨병이 오고 난 뒤로는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부부에게도 몸에 탈이 생겼다. 손 씨는 스트레스로 만성 두통에 시달리게 됐으며, 이 씨는 갑상선기능항진증이 왔다. 부산에서 계속 생활하기엔 무리였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시아버지께 고향으로 가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산청으로 들어가면 병원에 다니는 것은 불편하겠지만 공기 좋고 물 맑은 지리산 아래에서 살면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말씀드렸습니다."

며느리 요구에 아픈 시아버지 "그렇게 하자"

이 씨에게 시아버지는 인생의 조언자이자 든든한 후원자였다고 했다. 옛날 산청에서 민선 면장을 지냈던 시아버지는 엄했으나 며느리에겐 한없이 너그러워 이 씨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줬단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 이야기입니다. 남편 믿고 시작한 시집살이였지만 집안일 돌보랴, 가게일 도우랴 철없던 신부에겐 많이 힘들었습니다. 견디다 못해 하루는 보따리를 싸서 집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을 나오니 갈 곳이 없더라고요. 곰곰 생각하니 남편이 싫어 집 나온 것이 아니라 힘에 부쳐 뛰쳐나온 것인데 이렇게 내 결혼생활을 끝낼 순 없더라고요. 시아버님께 혼날 각오하고 다시 들어갔죠. 그런데 아버님은 고된 며느리의 시집살이를 이해해 줬습니다. 아무런 말씀 없이 묵묵히 다독여줬던 아버님이셨습니다."

'지금보다 더 잘 모시겠다'며 고향으로 가기를 바라는 며느리에게 시아버지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생각지도 않은 며느리 제안에도 '애미가 시골 가겠다면 그렇게 하자' 그 말 한마디가 끝이었다. 그리고는 불과 1주일 만에 이사를 했다. 정말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은' 귀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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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순·손영욱 부부./김구연 기자

"문제는 슈퍼마켓 처분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가 슈퍼를 운영하면서 귀농 계획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주위 분 중에서 인수하려는 사람이 몇 명 있었습니다. 그중 한 분께 연락하니 바로 인수하겠다더군요. 동네에서 오랫동안 운영하던 슈퍼마켓이다 보니 더러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간 사람도 있었는데 외상값도 다 받지 못하고 장부만 챙겨 산청으로 왔습니다. 우리의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무슨 일이 생겨 야반도주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2010년이었다.

건강 되찾은 부부, 곶감 만들기 정성

갑자기 앞당겨서 결정한 귀농이었지만 부부는 30대 중반부터 차근차근 준비한 게 있었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면서 조금씩 모은 돈이 목돈이 되면 친정어머니께 부탁해 이곳 감나무밭을 꾸준히 매입했었다. 그렇게 준비한 것이 감나무농장이 8000평 정도 됐으며, 24평 정도 되는 집도 리모델링해 둔 게 있었다. 어차피 고향에 가면 곶감 만드는 일을 할 터라 미리 곶감 만드는 법을 꾸준히 공부해 농촌에서의 생활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시부모님은 여기서 얼마 지내지 못하고 몇 년 전 다 돌아가셨습니다. 계속 부산에서 모셨더라면 더 오래 살아계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 편안하자고 부모님께 불효를 저지른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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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욱 씨./김구연 기자

하지만, 부부는 귀농하고서 건강을 되찾았다고 했다. 만성 두통에 시달렸던 손 씨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머리가 맑아졌고, 이 씨도 농촌생활 1년 만에 더는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 진단을 받았다. 농사일을 하느라 사실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그렇게 편할 수 없단다.

"미리 준비하고 공부했지만 몸으로 부딪치는 농사는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감 농사를 잘 지어야 좋은 곶감을 만들 수 있는데 숙달된 농부가 아니다 보니 농장을 부부가 관리하기엔 너무나 벅찹니다. 둘이서 한 차례 풀을 베고 돌아서면 다시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습니다. 일 년에 네다섯 번은 기계로 풀을 베어야 합니다. 오늘 감나무 가지치기 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은 초보여서 서툴기 짝이 없습니다. 산청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진행하는 영농교육과 곶감작목반을 통해 전문가를 소개받아 감나무 관리부터 곶감 만드는 방법까지 배우고 있습니다. 손쉽게 고기를 얻기보다 고기 잡는 방법을 터득하는 게 내 농사를 잘 짓는 것이 아닐까 싶어 더디지만 하나하나 눈으로 보고 몸으로 부대끼며 배우고 있습니다."

부부의 이런 노력 덕분일까 지리산산청곶감축제에 곶감을 출품해 1등의 영광을 두 번이나 누리는 보람도 얻었다.

부부는 곶감 생산이력제에 등록해 매년 약 5동(1만 개)을 생산한다. 이렇게 생산한 곶감은 전량 직거래로 판매해 남들보다 적은 양임에도 괜찮은 수익을 올린다. 주로 기업 등에서 선물용으로 대량 주문하는 게 많단다.

"몇 년 전부터 해마다 우리 곶감을 몇 상자 주문해 거래처에 선물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에게 선물을 받은 경기도 한 기업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매년 똑같은 선물을 받고 있는데 한결같은 품질에 만족한다며 같은 상품으로 몇백 상자를 구입할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화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한결같은 정성의 결과가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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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순 씨./김구연 기자

'곶감 농사 흉작' 언론 과잉보도는 독

지난가을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고 비가 많이 내려 곶감 농사가 흉작이었다는 뉴스가 많았다. 습도가 높아 곰팡이가 피고 홍시가 되면서 물러 떨어진다는 소식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라 이 씨의 곶감 농사는 어땠는지 궁금했다. 뜻밖에 이 씨가 언론의 보도행태에 열변을 토한다.

"물론 지난해 가을 날씨가 좋지 않아 곶감 농사를 망친 곳도 많습니다. 특히 산청 곶감은 자연건조로 만들다 보니 감을 깎아 건조하는 과정에서 3일만 비가 내려도 곰팡이가 생겨 못쓰게 됩니다. 그런데 신문과 방송에서 경쟁적으로 곶감 농사 망쳤다고 보도하니 농민들 도와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죽이게 되더라고요. 아무리 날씨가 좋지 않다고 해도 곶감 농사 전부를 망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방송카메라가 곶감 건조장 밑에 떨어진 홍시만 찍어 농민들 울상이라고 보도하니 오히려 판로를 막는 결과를 가져오죠. 농민들이 오히려 이런 보도로 더 마음에 상처를 입습니다."

따끔한 일침이었다. 참 많이 미안해진다.

귀농 6년 차.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동네 어른들과 이웃들로부터 농사짓는 방법도 배우고 하다 보니 이젠 곶감 농사도 요령이 생긴다는 부부. 현재 부부는 마을 새마을지도자와 새마을부녀회 회장을 맡아 마을 어르신 식사대접과 아동지킴이 등 지역을 위해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이 씨는 동네의 불편사항을 해결하고 정을 나누는 것이 부부를 따뜻하게 품어 준 고향 동네 어른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여긴단다.

손 씨에게 "사모님 한 시간만 모셔가겠습니다"라고 한 인터뷰가 두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고급 일꾼을 놀리게 해 혼자 일하고 있을 손 씨에게 죄송한 마음이 더 든다. 남편에게 꾸지람 듣는 게 아닌지 걱정스러워 괜찮겠냐고 물었다.

이 씨는 "남들은 마누라를 집에 모셔 두고 사모님 소릴 듣게 한다는데 우리 아저씨는 일꾼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진짜 제가 일을 더 많이 합니다. 그렇게 일을 시키면서 저에게 그 흔한 승용차 한 대도 뽑아주지 않습니다."

남편을 타박하는 그였지만 그 말투에는 원망이 들어 있지 않다. 시련과 아픔을 견뎌낸 부부에게서 마냥 행복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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