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생활 20년, 가장 보람된 지금입니다"

경찰 제복을 차려입은 이양훈(45) 경위가 바깥에 있다 약속 시각에 맞춰 헐레벌떡 사무실로 들어왔다.

"오늘도 학교에 나가 아이들 강의를 하고 왔습니다. 특히 신학기인 3월에는 아이들 만날 일이 많습니다."

경찰관이 강의? 학교? 그렇다. 그는 창원중부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팀에서 일하고 있다.

2012년 학교전담경찰관 도입

학교전담경찰관은 'School Police Officer'를 줄여서 'SPO'라고도 한다. 2011년 대구에서 같은 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 끊는 일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 전국 일선 경찰서에 학교전담경찰관 제도가 도입됐다.

그렇다고 단순히 학교폭력 문제만 맡고 있는 게 아니다. 초·중·고생, 혹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 그 또래 아이들 범죄예방에 최우선 목적을 두고 있다. 모두 5명이 활동하는 창원중부서 여성청소년계 학교전담경찰관팀에서 이양훈 경위는 선임반장을 맡고 있다.

"과거에는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처벌만 하고 끝냈죠. 그러다 보니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심리상담가를 붙여서 무엇 때문에 이 학생이 나쁜 짓을 하게 됐는지 살펴봅니다. 이제는 처벌이 아닌 예방이 최우선 목적입니다."

이를 위해 학교전담팀은 매주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 그 속에서 탄생한 것들이 'TV출연', '1년의 편지 100년의 약속' 같은 것들이다.

20160313010067.jpeg
▲ /박일호 기자

"학교전담경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아직은 잘 모르죠. 그래서 효과적인 홍보방안을 고민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TV에 나가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적절한 프로그램이 뭘까 고민 끝에 찾은 것이 KBS 퀴즈프로그램 '1 vs 100'이었습니다. 팀원 전체가 출연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예능적 요소도 있으면서, 저희 업무를 알리는 데 적합하다 싶었던 거죠. 지난 1월에 출연했는데 이 업무와 존재를 홍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방송 후 '요즘 잘나가네'라는 전화도 많이 받았습니다. 팀원 정봉권 순경은 퀴즈에서도 최후 2인까지 오르는 선전을 했습니다. '1년의 편지 100년의 약속'이라는 것도 하고 있습니다. 형사입건되거나 학교폭력 선도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이 '1년 후 받아보게 될 편지'를 쓰는 거죠. 한 장은 자신에게, 한 장은 엄마에게 말입니다. 아이들은 '엄마' 이야기가 나오면 대부분 눈물을 쏟아냅니다."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아동학대 또한 업무 범주에 들어있다. 미취학 아동, 장기결석 학생들에 대한 전수조사에 교육청과 함께 보조를 맞추고 있다. '고성 큰딸 폭행 사망'도 이 과정에서 드러난 사건이다. 창원중부서 관할에서도 1년 가까이 결석한 초등학생의 소재 파악이 되지 않아 한때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다행히 아이 행방을 찾을 수 있었다.

"엄마가 금전적 문제로 수배 상태였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서 나가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거죠. 아이에 대한 신체적·정서적 학대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이 아이 엄마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기 위해 '직장 알선을 해드리겠다'는 제안까지 했습니다. 이제는 사건 관련자에 대한 사후까지 챙기는 것이 경찰 몫이기도 합니다."

여중생과 함께한 잊지 못할 삼겹살 파티

이양훈 경위는 이 일을 하면서 겪었던 아이들 가운데 몇몇을 떠올렸다.

"여중생이 공부는 곧잘 했는데 가정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열등감 같은 게 쌓이다 보니 빗나가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희 직원들이 먼저 다가가서 소통했죠.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30만 원 상당 물품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물었는데요…. '삼겹살을 배불리 먹고 싶어요'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으니 정말 눈물 나더군요. 저희 직원들과 함께 삼겹살 파티를 하면서 마음을 나눴죠. 지금은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듯 끈기, 그리고 진심과 정성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 다른 상처를 받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처음부터 마음을 여는 아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가면 자기네들끼리 '아, 짭새들 정말 귀찮게 한다'고 해요. 결국에는 긴 시간을 두고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꾸 만나고, 손잡고, 또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가 떡볶이·삼각김밥도 함께 먹다 보면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게 보입니다. 고등학교를 관둔 한 청소년은 정말 삐딱한 친구였는데요, 하루는 집에서 치킨을 시켰는데 우연히 이 친구가 배달을 온 겁니다. 이때를 계기로 조금씩 친해졌죠. 이제는 검정고시 준비도 하고, 닭집 사장이 되겠다는 꿈도 키우고 있습니다."

이 경위는 지난해 7월부터 이 업무를 맡았다. 아직 1년 채 되지 않았지만 경찰생활 가운데 요즘같이 보람 속에서 일한 적이 없다고 한다.

"학교에서 말 못하고 끙끙 앓는 아이들에게 먼저 손 내밀어 이야기 들어주고,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을 때, 정말 벅찬 마음이죠. 형사계 업무도 했었지만 지금은 또 다른 방법으로 사람을 살리고 있는 거죠. 경찰관이 된 지 20년 가까이 됐는데요, 사실 그동안 친구들과 술 한잔 할때는 '힘들어서 때려치워야겠다'는 푸념을 종종했었거든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일이 특히 저한테 잘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저 역시 아들·딸을 키우다 보니 남 일이 아닌 거죠. 내 아이 일이라 생각하니 더 마음을 다해 일하게 됩니다."

20160313010070.jpeg
▲ /박일호 기자

방황하는 아이들 마음 잘 아는 이유

이양훈 경위가 지금 일에 마음을 다할 수 있는 건 어릴 적 기억이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진주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시절 남들 못지않은 혼란의 시간을 겪었다.

"초등학교 때 우리 집은 정말 부자였습니다. 아버지가 가구사업을 하셨는데 엄청나게 잘 됐죠. 그런데 1970년대 말 2차 석유파동 때 부도가 났고, 제가 중학교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식당 일을 하면서 단칸방에서 아들 셋을 키우셨죠. 중학교 때 학교생활도 순탄하지 않았고, 외톨이로 지내면서 방황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고등학교 가니 철이 좀 들더군요."

꿈은 어릴 적부터 군인이었다. 특히 해군이 되어 먼바다를 돌아다니고픈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사관학교 시험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고, 일반대학 사학과에 들어갔다. 경찰관이 된 건 우연히 눈에 들어온 포스터 한 장 때문이었다.

"어머니 권유도 있고 해서 일반공무원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학교 시험 마치고 집으로 가는 중에 파출소 앞을 지났습니다. 거기서 경찰관 시험 안내 포스터를 보게 됐죠. 시험 과목 중에 국사가 있더군요. 제가 사학과라서 '이거다' 싶더군요. 그렇게 준비해 26살 때 경찰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창원으로 발령받아 파출소·지구대, 정보과, 경무과, 형사과, 기동대 등을 두루 거쳤다. 민원 현장 최일선에 있는 파출소 근무 때, 그리고 형사과 서무 업무를 맡았을 때 특히 육체적·정신적 부담이 컸다고 한다.

20160313010121.jpeg
▲ /박일호 기자

"사실 경찰 생활 초기에는 갈등이 많았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위계질서 많이 따지고, 또 화장실 청소에 커피 타고 윗분들 방 청소도 해야 하고…. 그래서 진지하게 그만둘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교육행정직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8살에 결혼하면서 가정이 생겨 쉽지가 않더군요. 그렇게 현실에 안주하면서 하다 보니 20년이 흘렀습니다. 학교전담경찰관을 맡고 나서부터는 군인 아닌 경찰관이 된 것에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이 경위는 현재 중1 딸, 초교 4학년 아들을 두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친구 본인이 싫어하는 별명을 부르면 그 또한 죄가 될 수 있다"와 같은 말들을 강조한다.

그는 아내를 대학 때 만나 2년간 구애 끝에 마음을 얻었다고 한다. 스스로 '순애보 같은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덧붙여 "지금도 변함없이 마누라를 정말 사랑한다"며 빼놓지 말고 기사에 담아달라고 강요(?)했다. 이 대목에서 함께 있던 팀원들은 묘한 웃음을 숨기지 않았고, 이 경위는 그런 팀원들을 장난스럽게 째려봤다.

경직되지 않은 팀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엿보인다. 창원중부서 학교전담팀은 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의 든든한 지원까지 받고 있다.

"저희 팀이 '2015년 하반기 전국 베스트 학교전담경찰팀'에 선정됐는데요, 팀원들만 열심히 한다고 된 게 아닙니다. 아이디어와 고민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데 틀에 갇히면 형식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창원중부경찰서에서는 '이런 게 왜 필요하나'와 같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지지해주고 무한신뢰를 보내주니, 더 열정적으로 할 수밖에 없죠."

어느 조직이나 그렇듯,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서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이 경위는 가능하다면 지금 일에 경찰 인생 승부를 걸어보고픈 마음이 크다.

"정신적·물질적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계속 그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좀 더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제도 같은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생각을 이어가는 지금 하루하루가 참 행복하네요."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