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쥐 부부가 만든 간장·된장 맛 보실래요?

이름이 참 예쁘다. 콩으로 만든 식품이라면 된장 등이 떠오른다. '된장'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도 한눈에 무얼 생산하는 곳인지 알 수 있게 이름 지은 주인장이 센스가 있다. 사천시 정동면 화암리에서 '콩지은식품'을 운영하는 이지은(47)·이정수(46) 부부다. 그러고 보니 대표 이름도 '지은'이다.

"이름 짓는 데만 6개월이 걸렸어요. '콩지은'이라고 했다가 '지은콩'으로도 해 보고, 상품까지 걸고 아는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도 했습니다. 다들 '콩지은'을 꼽더군요. 많은 사람이 이름을 보고 성이 콩 씨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콩쥐 후손이라고 말합니다. 체험학습 온 아이들도 '콩 선생님'하고 부른답니다." 이름이 예쁘다는 덕담에 이 대표가 이름을 지은 과정을 먼저 설명한다.

누군가 해야 할 것 같았던 가업, 큰딸이 맡아

결혼해 남편 정수 씨와 진주에서 살던 지은 씨는 귀농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바쁜 도시 생활에 심신이 지쳤고, 스스로 되돌아보게 됐다. 그러다가 마음의 위안도 받고 여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스레 부모님이 운영하던 메주공장 화암부업단지를 부부가 하면 어떨까 싶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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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씨./김구연 기자

"어릴 때부터 봐 온 일입니다. 우리 형제가 셋인데 제가 큰딸이자 맏이입니다. 셋 다 이 일을 누군가가 해야 한다고는 생각 안 했습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셨고요. 제가 부모님과 제일 가까이 살았습니다. 게다가 엄마(정윤식·68)가 연세가 있고 해서 가공 교육이나 우체국 메주 판매 업무 등을 남편과 함께 도와드렸죠. 그러다 점점 생각이 바뀌어 누군가 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내가 이 일을 맡을 줄은 몰랐습니다."

정수 씨가 당시 사정을 곁들인다.

"장인·장모님이 하시는 사업이라 처음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할머니 때부터 메주를 만들어 판매했다는데 40년 된 메주공장이 그냥 없어진다는 게 아쉬웠습니다. 옛날에는 전국에서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잘 되는 곳이었다는데 이젠 부모님도 힘에 부치니 사업은 점점 쪼그라들었죠. 그동안 두 분이 닦은 것이 있는데 그냥 묻어버리기엔 아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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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씨./김구연 기자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메주 사업

2014년 10월 결국 지은 씨 부부는 이 일을 맡았다. 하지만 막상 일을 맡고 나니 밖에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전국에서 동네 부업 등으로 장류 만드는 일을 많이 하는데다 귀농인 상당수가 우선순위로 꼽는 것이 메주, 된장 만드는 것이어서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사업이었다.

"힘든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나 고민도 많이 했고, 부부싸움도 잦았습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 전국의 이름난 곳을 견학하고 벤치마킹하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모두 메주 만드는 수준이 굉장히 앞서 있더군요. 우리 부부가 상상했던 그 이상이었죠. 장독이 천 개가 넘는 곳도 있었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수요가 중요한데 우리가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싶어 주눅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보다 환경이 더 열악한데도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곳을 보게 되면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마음을 다잡았다. 너무 높은 곳만 보지 말고 낮은 곳도 보기로 했다. 좋은 된장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많이 아는 것도 사업을 일으키는데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농업기술센터 등지로 교육이 있다면 밤낮으로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기술을 익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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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정윤식-이정수 씨./김구연 기자

계속되는 투자, 365일 쉰 적 없어

남들처럼 모든 것을 스스로 일군 것이 아니라 부모님 집으로 들어와 가업을 이어받았으니 조건이 좋은 게 아니었을까? 지은 씨는 일부분 인정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들어올 때 부모님이 이뤄놓은 걸 공짜로 받은 게 아니에요. 부모님의 노후문제도 있잖아요. 절대 무임승차가 아닙니다. 가치를 지불하고 인수했습니다. 이곳에서 메주를 만든 지 1년이 훨씬 지났지만 여태껏 동네 뒷산도 한 번 못 가봤습니다. 지금까지 하루도 쉰 적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만들어 둔 메주며 된장 등을 모두 넘겨받아 판매를 이어갔지만 돈은 계속 들어갔다. 가공공장 시설 개선도 해야 했다. 그런데 된장 만드는 일은 돈을 투자하더라도 제품으로 투자비를 바로 회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된장, 간장은 오랫동안 숙성과정을 거쳐야 하니까 제품 생산에 시일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 우리 규모로는 엄마가 벌었던 수익의 네댓 배는 올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경제적으로 쪼들리면 마음이 궁핍해진다고 수익이 생각만큼 안 나오니까 부부싸움을 많이 했죠. 처음부터 무리한 욕심이었습니다. 너무 쉽게 생각하고 부모님 동네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탓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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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이지은 씨./김구연 기자

부부는 가업을 이어받기 전 진주에서 온갖 일을 했다. 지은 씨는 교사 생활도 했고, 정수 씨와 프랜차이즈 식당에다 가게 등 다양한 일을 부부가 경험했다. 하지만 초창기엔 잘 되던 사업들이 막판엔 어려워졌다고 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있었지만 둘 다 자존심이 강해 힘든 내색하지 않고 서로 다독여 왔단다.

"우린 위기에 강합니다. 한 달에 100만 원만 벌면 뭐든 못하겠나 싶어 다른 방향으로 머리를 틀고 공부도 하며 장류 자격증을 땄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니 눈물이 나네요."

메주 돌보고자 아예 부모님 집으로 '완전 귀농'

부부는 진주지역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때문에 아들이 고교를 졸업하면 사천 부모님 집으로 '완전 귀농'하려 했다. 하지만 메주를 삶고 건조과정을 돌보려면 일터와 쉼터가 가까이 있어야 하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보통 12월이 되면 메주를 만듭니다. 저녁에 콩을 안쳐 불린 다음 새벽에 남편이 장작불을 때 가마솥에서 콩을 삶죠. 그런데 새벽에 진주에서 사천으로 오는 것도 문제고, 일을 마치면 피곤해 빨리 쉬어야 하는데 집이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일이 안 됐습니다. 아들에겐 미안했지만 작년 10월 진주에 있는 집은 세를 주고 2층 친정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부부는 만든 메주를 띄우고 말리고 하는데 한 달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사실상 그때부터 한 해 사업이 시작되는 셈이다. 메주를 우체국 특산물로 판매하고 부모님 때부터 거래하던 분들에게 개인 판매도 한단다.

"장은 정월장을 담습니다. 그로부터 5∼6개월 뒤부터 장 가르기를 하죠. 장 가르기 한 시점부터 1년 정도 지나면 깊은 맛이 들어 된장과 간장을 판매합니다. 우리는 주로 메주 위주로 판매합니다. 된장, 간장을 구매하는 추세이지만 우린 주로 판매하는 것이 메주입니다."

작년엔 1억 원정도 매출을 올렸다고 했다. 이전에는 홍보를 안 해 얼마 안 됐으나 1년 새 매출이 늘었다는 것. 1년 넘게 노력한 결과 학교급식 납품에다 학교 교육프로그램과 연계해 애들이 많이 찾는단다.

"지금은 순수익이 얼마인지 계산할 시점은 아닙니다.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 마이너스 2배는 될 겁니다. 초기 자금만 1억 원 넘게 들었고, 작년과 올해 콩 사들이는 비용이 몇천만 원씩 됩니다. 지금까지는 돈을 버는 대로 재투자를 했습니다. 콩은 연간 10t 정도 쓰는데 우리가 조금 농사를 짓고, 정동면 주민들로부터 사들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모자라는 것은 농협을 통해 수매하죠. 생산품은 메주, 된장, 간장, 고추장이 있고 청국장도 출시할 예정입니다."

성격 탓에 엄마 서운하게 해 마음 아파

얼마 되지 않은 귀농생활이지만 지은 씨는 엄마와 자주 다퉈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 메주가 익는 과정을 잘 모르고 과학적인 자료만 뽑으려다 생긴 일이라고 했다.

"저는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는 성격입니다. 특히 메주와 된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엄마 마음을 많이 상하게 했죠. 메주나 된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수치로 정확하게 나와야 하는데, 이게 궁금한데 엄마에게서 답이 곧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엄마에게서 '나는 모른다'는 말을 100번은 더 들었을 겁니다. 근데 저는 '모른다'라는 대답이 아니라 '며칠은 될 거다'라는 답을 원하는 데 모른다고 하니 충돌할 수밖에 없었죠."

메주나 된장 등 우리 전통식품을 잘 모르고 한 투정의 결과였다. 부모님 수십 년 노하우는 '메주는 지켜보면서 쉴 새 없이 손으로 만져보고 눌러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하는 것'인데 정확한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기온이나 햇빛, 곰팡이균 조건 등 여러 가지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제 부모님 연세도 있고 하니 빨리 당신들의 노하우를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몇 번 싸우고 '보따리' 쌀 생각마저 했었습니다. 이왕 투자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둘이서 다시 도시로 나가 식당이든 뭐든 다른 일 하자고 남편에게 얘기했죠. 엄마에게 버릇없이 굴어 미안하고 가슴 아팠던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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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은-이정수 부부./김구연 기자

지은 씨는 비록 시설은 다른 메주 업체나 장류학교 등과 비교해 보잘 것 없지만 메주 만드는 엄마의 노하우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요즘도 전국에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배우러 온단다. 지은 씨는 엄마와 다툰 원인이었던 제조과정의 수치화를 위해 매일 일지를 적고 있다. 엄마 노하우도 익혀야 하지만 나름대로 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장류학교를 다녀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장류학교서 느낀 것인데 다른 데 가서 노하우를 찾을 게 아니라 엄마 기술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배우다 보니 집집마다 사는 곰팡이균이 다르다고 하더군요. 메주 거미줄에도 좋은 성분이 붙어 있을 수도 있고, 사용했던 짚을 몇 년 동안 안 버리는 곳, 깔았던 천도 몇 년째 계속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속에 좋은 곰팡이가 있기 때문이죠. 장류학교를 수료하면서 그곳에서 배운 것과 엄마의 노하우를 조합하는 실력이 조금 생긴 것 같지만 아직 엄마 수준까지 가려면 멀었습니다."

교육농장 겸한 전통 장류학교 만드는 게 꿈

부부는 최근 교육농장 신청을 했다. 학교 자유학기제가 시행됨에 따라 당장 전국적으로 교육농장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교육농장 인증을 받으면 교육농장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도 점차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지은 씨가 깨알 같은 자랑을 한다.

"체험농장은 신고만 하면 되지만 품질인증은 교육농장을 하시는 분들이 신청합니다. 보통 정부 보조금을 받아 시설을 하고서 신청하는데 우리는 보조금 한 푼 받지 않고 현재 있는 그대로 인증 신청을 했습니다. 품질인증 신청을 하면 농업진흥청에서 교육프로그램이나 시설, 교사의 자질 등을 현지 실사하게 되죠. 작년 11월 품질인증을 받았습니다. 사실 경기도 등 서울권은 국가나 자치단체 도움을 받지 않고도 자금력을 갖춘 대규모 농장에서 자력으로 품질인증 통과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경남에는 시설투자금 안 받고 통과한 사람은 우리밖에 없죠. 농진청장이 자력으로 교육농장 품질인증 받은 농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해 뿌듯했습니다."

부부는 앞으로 메주나 된장, 간장 생산을 늘리기보다 교육농장을 겸한 전통 장류학교를 만드는 것이 목표란다.

"그런데 장류학교를 목표로 하면서 메주나 된장 판매에도 집중한다는 것은 현재 우리 시스템으론 둘 다 잘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생산량을 줄이더라도 양질의 교육을 할 수 있는 장류학교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데 당장엔 규모를 늘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수 씨도 한마디 거든다.

"지금 집 앞으로 자전거 도로 공사가 한창입니다. 사람들이 의외로 이 길을 많이 다닙니다. 봄이 되면 공장 입구에 가판대를 설치해 동네 할머니들이 등산객 등을 상대로 직접 가꾼 채소나 산나물 등도 팔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해가 저물면 아쉽고 후회를 많이 했다는 지은·정수 씨. 그런 부부가 지난 2015년을 보내면서 뿌듯함에 가슴이 벅찼단다. 지금까지 이렇게 만족감이 충만했던 적은 없었다는 그들. 비록 돈은 좀 안되더라도 마음으로 느끼는 만족감이 더 큰 덕분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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