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이사를 온 아키라. 엄마는 이웃들에게 인사를 하며 남편은 해외에 나가 있고 아들인 아키라와 둘이서 생활할 거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 어린아이가 넷이나 있다고 하면 이사를 하지 못할까 봐 엄마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사 온 첫날, 장남 아키라와 아이들은 엄마와 약속을 한다. '큰소리로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이 규칙을 지키며 아이들은 생활한다. 엄마 혼자 버는 형편이라 학교엔 가지 못하지만. 어느 날 엄마는 장남 아키라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이야기한다. 그 사람이랑 결혼한다면 모두 함께 큰 집에 살 수 있을 거라고도. 엄마는 한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들은 큰 동요 없이, 엄마가 두고 간 돈으로 생활해나간다. 다시 돌아온 엄마. 하지만 이내 또 짐을 챙겨 어딘가로 떠나버린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영화〈아무도 모른다(2004)〉는 1988년 일본 도쿄에서 일어난 '스가모 어린이 방치 사건'을 모티프로 만들어졌다. 사 남매의 나이나 성별이 다르긴 하지만 사건의 결은 같다. 실제 엄마는 차남이 병으로 죽자 장례를 치르지 못해 시신을 옷장 속에 방치했다. 그리고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장남의 친구들이 여동생을 죽이는 일이 일어났고 장남은 엄마가 했던 대로 시체를 처리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자 시체를 여행용 가방에 넣어 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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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아키라는 엄마가 자신들을 버렸다는 걸 알지만 단 한 번도 울지 않는다. 보호시설을 알아보는 게 어떠냐는 편의점 직원의 질문에 시설에 들어가면 동생들과 함께 있지 못 할 거라고, 그래서 싫다고 말한다. 그리고 버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아키라는 공원 수돗가에서 물을 떠 오고 동생들을 데리고 공중 화장실에 가고 편의점에서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받아온다. 고작 열두 살일 뿐인데. 친구들과 노는 것이 좋고 그저 학교에 가고 싶은, 겨우 열두 살일 뿐인데.

아키라와 동생들이 남루한 옷을 입고 길을 걸어가지만 아무도 아이들을 쳐다보지 않는다. 집세가 들어오지 않아 아이들만 사는 집을 찾은 주인집 딸도 그저 한 번 둘러보고 갈 뿐이다. 사람들 눈에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실제 '스가모 어린이 방치 사건'의 이웃들은 집에 아이들만 사는 줄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들을 때려 사망하게 한 뒤 그 시신을 토막 내 3년 넘게 냉동 보관한 아버지, 중학생 딸을 폭행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1년 이상 방 안에 방치한 부부, 2년간 이어진 아버지의 감금과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집에서 탈출한 11세 딸. 또 2월 14일 현재 창원지역 장기결석 초등학생 1명은 아직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학생은 학교에 있다 어머니와 함께 나간 후 소식이 끊겼는데 어머니는 현재 사기 혐의로 지명수배 중이다. 최근 아동학대, 비속 살해(부모가 자식을 살해한 범죄)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하지만 드러난 사건만 이 정도일 뿐, 맞고 굶고 방치되는 아동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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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아무도 모른다〉를 소개하고 싶었다. 한데 오랫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슬퍼서 다시 보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가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불편하고 두렵고 힘들어도 고개를 꼿꼿이 들고 마주해야 한다, 가족이란 울타리가 사라진 이 사회 이면을. 더 관심을 갖고 더 손을 내밀어야 한다. 우리는 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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