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왕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란 노래는 원곡이 아니라 리메이크된 노래다? 그토록 대중들에게 빅히트를 치고 많이 불려 졌던 유명한 곡이라면 원곡을 부른 가수에 대한 얘깃거리도 있을 법하다. 그런데 오랜 세월 동안 묻혀 있다가 최근에 비로소 알려진 사실은 놀랍기보다는 오히려 아이러니 했다. 그러면 원곡을 부른 가수는 누구일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경남 충무(현 통영)출신의 무명가수가 있었다. 본명은 김성술, 예명은 김해일로서, 고향을 떠날 때 충무항 여객선 선착장에서 부모님과 눈물 흘리며 작별하였던 아픈 기억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를 바탕으로 가사를 썼고, 작곡가 황선우의 곡에 붙여 1970년 '돌아와요 충무항에'라는 노래를 발표한다. 하지만 여러 가수가 참여한 옴니버스형태의 음반이다 보니 대중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음반 취입 후 별다른 활동이 없던 그는 군 입대를 하였는데, 휴가를 나왔다가 1971년 12월 25일 성탄절 오전에 발생한 서울 대연각 호텔 화재로 불행히도 26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게 된다.

이때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또 다른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 1997년 제1회 MBC대학가요제에서 동상을 받은 '젊은 연인들'은 지금까지도 많이 불리어 지고 있는 노래로, 민병호가 결성한 서울대트리오의 곡이 되었지만 원래는 그의 형 민병무와 방희준의 노래였다. 그러나 대연각 호텔 화재로 민병무가 죽으면서 유작이 되었고, 동생 민병호가 이 곡으로 대학가요제에 참가하면서 우리에게 알려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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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명곡의 반열에 오른 두 곡에 이처럼 아픈 사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으리라 본다. 한편 가수 김해일의 죽음으로 그의 부모는 자식을 잃은 큰 슬픔에 빠졌고, 전국에 유통되고 있던 음반을 모두 수거하여 소각해 버렸다. 그러면서 '돌아와요 충무항에'는 차츰차츰 기억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자신의 좋은 곡이 묻히게 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황선우 작곡가는 1972년 원곡의 가사를 일부 수정하여 조용필을 통해 '돌아와요 부산항에' 일명 '돌아와요 해운대'라는 곡명으로 발표하게 되지만 이때에도 그다지 빛을 보지 못한다.

1976년 조용필은 '너무 짧아요'를 타이틀곡으로 하는 두 번째 앨범을 낼 때, 기존의 곡을 다소 빠른 곡조로 편곡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구색으로 실었다. 그런데 이 곡은 기대하지 못했던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다. 이 시점과 때를 같이한 재일동포 모국방문단이 1975년부터 우리나라를 방문하는데 형제자매와 고향의 향수에 사무친 재일동포의 애환이 가사의 내용과 적절히 어우러져 공전의 히트를 친 것이다.

정작 조용필 자신은 그런 사실도 모른 채 밤무대에서 외국노래만 부르고 있었는데 '돌아와요 부산항에' 신청이 들어와도 노래를 기억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일개 무명가수가 갑작스런 유명세를 타면서 방송에 불려나가기 시작했지만, 그 기간은 오래가지 못했고 곧바로 대마초사건에 연루되어 가수생활을 중단하게 된다. 이후 다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 노래의 히트가 오히려 가수생활을 접어야 할 정도로 자신에게 치명타를 안겨주었기에 너무나 정이 떨어졌다고 회고한다. 1979년 말 해금이 된 조용필은 당시 동아방송의 안평선 PD로부터 드라마주제가를 작곡해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때 만들어진 곡이 바로 '창밖의 여자'였다고 한다. 1980년 정규앨범 1집인 '창밖의 여자'를 발표하면서 그 앨범에 다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수록하게 되는데, 지금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버전이다.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멀어져있던 가수 김해일의 노래 '돌아와요 충무항에'가 실린 앨범이 발견되면서, 2004년 그의 어머니는 황선우 작곡가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제기한다. 이는 원곡의 가사를 일부 수정하여 사용했기에 가사를 표절했다는 소송이었다. 재판부는 표절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창작적인 부분을 인정해 3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원고일부승소판결을 내렸고, 황선우 작곡가는 유족에게 합의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최종 마무리 되었다. 또한 조용필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리메이크한 노래로 공식 인정한다.

돌이켜보건데 한 곡의 노래가 전하는 사연은 이토록 애틋하건만, 그동안 나의 귀는 너무 수월히 받아들이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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