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시간은 시민의 시간과 같이 흐르는가

영화 <국제시장>에서 논란이 된 한 장면이 있다. 해외 파견 문제로 주인공 부부가 언쟁을 벌이고 있는데 마침 애국가가 울려 퍼지며 국기하강식이 시작된다. 남편이 먼저 몸을 돌려 국기에 대한 예를 표하자 부인도 마지못해 일어서는 모습이다. 대통령이 이 장면을 국무회의에서 언급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제4공화국과 제5공화국 때처럼 국기게양식과 하강식을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이 곧이어 나왔고, 이런 분위기를 어이없어 하는 사람들은 영화의 그 장면이 오히려 국가주의를 풍자하는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여기서 영화감독의 의중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국기하강식은 우리 현대사의 한 장면이었다. 국가권력이 정한 의식(Ritual)을 시민의 일상 속에 강제한 사례였다. 매일 오후 6시(동절기엔 5시) 전국 방방곡곡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멈춰 서서 태극기가 내려오는 장면을 가슴에 손을 얹고 지켜봐야 했다. 정통성이 부족했던 권위주의 정권은 그 의식을 통해 정권 친화적인 '애국'을 선전하고 그것을 국민들의 삶 속에 체화시키려고 애썼다.

이 장면을 언급한 대통령은 "그렇게 해야 나라라는 소중한 '공동체'가 건전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런 의식이 나라라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효과적이라고 본 것이다. 물론 그 공동체는 일반적인 개념의 나라 공동체가 아니라 '권위주의 정부가 원하는' 공동체일 것이다. 애국가와 태극기에 예를 표하는 대신 정권에 불평하지 않고 순응하는 공동체일 것이다.

국기하강식이라는 예가 썩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특별한 시간(혹은 성스러운 시간)'을 만들어 일상 속에 개입하는 것은 특정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전략인 것이 사실이다. 특히 매일 반복되는 특별한 시간은 특정한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지렛대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 같은 '시간 전략'은 일반적인 국가보다는 종교성을 강하게 띠는 전체주의적인 국가에서 자주 발견된다. 물론 종교 부문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별한 시간 전략과 공동체의 정체성

현존하는 고등종교 중에 특별한 시간 전략으로 공동체의 정체성을 견고하게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는 종교는 단연 이슬람이다.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의 5대 의무를 '다섯 기둥'이라고 표현하는데, 그중에 두 번째인 기도(쌀라, Salah)는 매일 다섯 번의 기도를 하게 되어 있다. 새벽기도, 낮기도, 오후기도, 석양기도, 그리고 밤기도가 그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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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5대 의무 중 하나인 매일 다섯 차례 기도(Salah). 일상의 시간에 깊숙히 개입함으로써 이슬람 공동체를 단단하게 결속시키는 역할을 한다./플리커

새벽기도는 검은 실과 흰 실 중에 흰 실이 눈에 띄는 미명에 시작하고, 낮기도는 태양이 천정에 이르러 그림자가 제일 짧은 시점에, 오후기도는 그림자 길이가 정오 때보다 자기 키만큼 더 길어졌을 때, 석양기도는 해가 지평선에 걸릴 때, 밤기도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다. 이슬람 국가를 여행하면 새벽부터 저녁까지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무슬림들은 하루 다섯 번 이 시간에 성지 메카를 향해 절을 하며 꾸란의 개경장을 암송한다. 신앙심 깊은 무슬림들은 여행 중이라도 기도 시간을 맞춰 자리를 깔고 메카 방향을 찾아 기도한다. 무슬림들의 스마트폰에는 그래서 기도 시간과 메카 방향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이 대부분 깔려 있다.

매일 반복하는 이 기도는 신과 인간 사이의 일대일 관계 속에서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슬림 공동체를 확인하고 결속하는 강력한 장치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기도하는 전통은 이슬람이 창설된 이래 1500년 가까이 이어져 내려오면서 단 한 차례도 수정, 보완되지 않고 인종과 지역, 언어를 뛰어넘어 지켜지고 있다.

무슬림의 네 번째 의무인 단식(사움, Sawm)도 마찬가지다. 흔히 라마단(금식성월)이라고 부르는 이 단식 기간이 되면 무슬림들은 해가 뜨는 순간부터 질 때까지 일체의 음식과 물을 섭취하지 않는다. 1년 중 한 달간 낮 시간 동안 금식을 규정함으로써 절대자의 존재를 생각하고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는 의식을 함께하는 것이다. 이 의식도 개인의 영성뿐만 아니라 무슬림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이슬람은 창시자 무함마드부터 '움마'라고 하는 신앙공동체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유일신의 존재와 그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이 믿음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기도와 단식이라는 특별한 시간 전략을 마련해 놓았다. 이 장치들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는 같은 유일신을 섬기는 기독교와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기독교에도 주일 예배라는 시간 전략을 가지고는 있지만 이슬람의 매일 다섯 번 기도 같은 강력한 구속력을 가지지는 못한다. 그 결과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떠나고 소수의 노인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늘날 유럽 교회와 성당들이라 할 수 있다.

시간 전략에 투영된 세계관

이처럼 시간 전략은 공동체의 세계관을 표현하고 정체성을 관리하는 효과적인 도구다. 독재정권의 국기하강식처럼 모든 시간 전략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슬람의 기도와 단식처럼 성공하는 시간 전략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매우 강력한 동력이 된다. 그래서 인류는 고대로부터 자기들만의 시간을 지배하고 싶어 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달력(양력)은 그레고리우스력이다. 기원전 46년에 카이사르가 제정한 율리우스력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1582년에 개정한 것이다. 카이사르의 율리우스력은 1년을 365.25일로 측정하고 평년을 365일에 4년마다 하루를 더하는 윤년을 두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실제 1년은 365.2422일이었고, 그 오차인 11분 14초가 누적돼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실제와 열흘 차이가 나 이른다. 예를 들어 천문학적인 춘분이 달력상의 춘분인 3월 21일이 아니라 3월 11일에 이뤄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윤년 규칙을 개선한다. 기존 4년마다 반복되는 윤년은 그대로 두되 100년으로 나뉘는 해에는 윤년을 없애고 400으로 나뉘는 해에는 다시 윤년을 두는 방식으로 오차를 줄인 것이다.

하지만 달력에는 과학적인 이유만 반영된 것은 아니다. 먼저 시간 단위 중에 가장 인위적인 1주일이 대표적이다. 하루는 해가 뜨고 지는 걸 기준으로 하고, 한 달은 달이 변화하는 주기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한 해는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을 기준으로 삼지만 1주일만큼은 그 어떤 자연현상 없이 인위적으로 나누어진 시간이다. <달력과 권력>을 쓴 이정모에 따르면 7일을 1주일의 단위로 삼은 것은 바빌로니아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칼데아인들이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기록한 것이 처음이었다.(이후 달력 관련 이야기는 이 책을 참고했다, 필자 주) 5일을 1주일로 삼은 바빌로니아 사람들과 10일을 한 주로 봤던 중국 등 동아시아 나라들도 있었지만, 로마 제국이 1주일 체제를 받아들이면서 오늘날 전 세계가 7일 단위의 1주일을 사용하고 있다.

시간은 곧 권력을 상징하기도 했다. 현대 달력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율리우스력이 완성된 달에 로마 원로원은 7월을 가리키는 퀸틸리스라는 이름 대신 카이사르의 이름인 율리우스로 부르기로 해 오늘날의 줄라이(July)가 됐고, 곧이어 아우구스투스가 단행한 달력 개혁도 칭송해 8월을 아우구스투스라 이름 붙여 오늘날의 오거스트(August)가 됐다.

예수 탄생을 기원으로 삼는 관행도 초기 기독교도들이 유대인의 달력 대신 율리우스력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됐고,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쓰는 시간 단위에는 기독교와 로마 문명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일제에서 해방되면서 우리나라는 그레고리우스력의 뼈대는 가져오되 '서기' 대신 '단기(檀紀)'를 공용 연호로 한동안 사용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단군기원에서 찾겠다는 신념이 반영된 것이었다. 그러나 1961년 쿠데타 이후 수립된 군사정부는 단기를 폐지하고 서기를 채택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단군을 기원으로 삼는 세계관이 군사정부에게는 불편했기 때문일 것이다.

혁명 정부의 무모한 시간 전략들

이처럼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세력이 권력을 잡을 때 자기만의 시간 전략을 관철시키고 싶어 한다. 특히 혁명이 일어날 때 그랬다. 프랑스의 혁명가들은 미터법을 제정해 일상 생활을 혁신하는 데 성공했다. 극소수 국가를 제외한 세계 모든 국가가 사용하고 있는 미터법은 프랑스혁명에 빚을 지고 있다.

미터법의 성공에 고무된 혁명가들은 자신들만의 시간 전략을 담은 새로운 달력을 반포했다. 그들이 그레고리우스력의 문제점으로 꼽은 것은 한 달의 길이가 28일부터 31일까지 들쭉날쭉하고 한 주를 7일로 잡아서 매년 한 날의 요일이 바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구체제를 상징하는 교회의 세계관을 해체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래서 혁명가들은 7일 단위의 1주일을 없애고 10진법을 적용해 10일을 하나의 데카드(Decade)라고 불렀다. 요일 이름도 없애고 숫자를 붙여 1요일, 2요일과 같은 방식으로 불렀고 마지막 10요일을 휴일로 삼았다. 1년을 모두 30일씩 갖는 열두 달로 나누고 달마다 프랑스의 기후와 농사 주기를 상징하는 이름을 붙였다. 1월은 포도수확의 달(방데미에르), 2월은 안개의 달(브뤼메르), 3월은 서리의 달(프리메르)과 같은 방식이었다. 열두 달에 포함되지 않는 5일은 프랑스 혁명의 주축 세력 이름을 따서 '상퀼로티드'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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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정부는 새로운 공화국 달력을 반포함으로써 기존 기독교세계관을 해체하고 이성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의 질서를 꿈꿨다./위키피디아

하루를 나누는 시간도 10진법을 적용해 24시간이 아니라 자정부터 정오까지를 10시간으로 나누고, 한 시간도 60분이 아닌 100분, 1분은 100초로 나눴다. 당연히 그리스도 탄생을 기원으로 하는 연도도 폐지됐다. 연도는 혁명이 일어난 1792년 9월 22일부터 세어나가기로 하고 '공화력'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이 달력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권력을 잡으면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폴레옹은 공화국 13년 눈의 달 13일(1806년 1월 1일)에 혁명 달력을 폐지하고 그레고리우스 달력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7일이 아닌 10일 만에 돌아오는 휴일 때문에 민중들이 불만이 컸기 때문이기도 했다.

1922년 10월 28일 로마 행진에 성공해 이탈리아의 권력을 잡는 데 성공한 무솔리니도 자기 달력을 갖고 싶어 했다. 그는 '파쇼'라는 새로운 연호를 만들고 로마 행진일을 새해 첫날로 정했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 사회는 파쇼 달력과 그레고리우스 달력을 병행하는 융통성을 부렸고, 2차 대전 중에 파쇼 정권이 무너지면서 이 달력도 함께 사라졌다.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킨 소비에트 공화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한 뒤 레닌은 기존의 율리우스력을 폐지하고 서방과 같은 그레고리우스력을 받아들였지만, 1929년에 서기장이었던 스탈린은 달력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스탈린이 추구한 달력 개혁은 오로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것, 즉 기계를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소비에트 달력은 토요일과 일요일을 폐지하고 1주일을 5일로 정했다. 덕분에 1년은 72주가 되고 한 달은 6주가 되었다. 남는 5일은 1년 중에 분산시켜 국경일로 삼았다. 노동자들은 요일별로 휴일을 지정받는 방식이어서 이론적으로 20%는 항상 쉬고 80%는 항상 일하게 되니 공장이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계적으로 배치된 휴일은 노동자들의 일상뿐만 아니라 협업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생산성마저도 엉망으로 만들었다. 스탈린은 문제점을 보완해 1931년에 6일제 달력을 발표했지만 10년을 못 채우고 1940년에 다시 그레고리우스력으로 돌아갔다.

도시의 시간, 시민의 시간

이처럼 특별한 시간 전략은 성공한 사례보다 훨씬 많은 실패 사례를 갖고 있다. 그러나 독자적인 공동체를 추구하는 집단에게 시간 전략은 여전히 매력적이고 도전해볼 만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특히 자기만의 이야기를 간직하려는 도시공동체라면 자기 도시만의 시간 전략을 수립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는 그레고리우스력에 따른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저마다의 시간을 나름대로 만들어가고 있다. 웬만한 도시마다 지키고 있는 '제OO회 시(군)민의날'이 대표적인 사례다. 마치 임금에 따라 연호를 붙이듯이 그 도시의 나이를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다. 도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축제가 있는 곳은 도시의 시간이 축제를 중심으로 조직된다. 'D-OO일'로 표현되는 알림판은 구성원들에게 도시의 시간이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도시들은 저마다 자기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한 '특별하고 성스러운 시간'들을 가지고 있다. 도시 운영에 따른 나름의 달력, 즉 시간표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을 시민들이 어떻게 공유하고 체험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과제로 남아 있다. 도시의 시간과 시민의 시간은 과연 화학적으로 섞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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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축제가 열리는 도시와 그곳 시민들의 시간은 축제를 중심으로 매년 새롭게 조직된다./위키피디아

현재 대부분의 관주도 행사나 지역 대표 축제에서 시민들은 들러리나 구경꾼 이상의 역할을 못 찾고 있다. 도시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시간과 시민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시간이 일치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새 물과 기름처럼 이질화된 도시와 시민의 시간을 다시 만나고 섞이게 하려면 도시의 시간을 전체적으로 다시 조직할 필요가 있다. 도시의 시간표에 시민을 동원할 게 아니라 시민의 시간표에 도시의 시간이 포함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 열쇠는 시민이 주체적으로 도시의 시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역할을 제공하는 데 있다. 기획단계부터 준비과정, 그리고 특별한 시간을 제대로 즐긴 뒤 정리하는 과정까지 시민의 시간표에 기록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도시의 시간이 나의 시간이 되고, 나의 시간이 모여 도시의 시간이 된다는 확신이 커질 때 시민은 도시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끼고 단단하게 결속될 것이다.

참고로 세계 최대의 축제로 평가받는 리우페스티발을 떠올려보자. 이 카니발은 사순절 직전인 2월에서 3월 초 사이에 개최된다.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고 결선에 오른 삼바스쿨들은 저마다의 주제를 의상과, 춤, 음악, 행진 차량 등으로 표현하며 한 시간에 가까운 퍼레이드를 펼친다. 리우데자이네루를 비롯해 삼바 축제가 열리는 도시들의 시간은 철저하게 이 페스티발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수천 개의 삼바스쿨들을 비롯해 도시와 시민의 시계는 바로 이듬해 페스티발에 맞춰져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도시와 시민이 같은 달력,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도시의 생기와 활력은 이처럼 도시와 시민의 시간이 일치할 때 발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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