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없고 무식하고 비열한 행위에 분노한다"

고백하자면 취재 중 '아줌마의 힘'을 처음 느낀 곳이 바로 거창이었다. 2014년 9월 4일 거창군청 앞에서 수백 명의 학부모, 학생, 시민단체 회원들이 모여 '거창교도소 반대' 집회를 열었다. 집회 장소를 세팅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 중 단연 아줌마들이 눈에 띄었다. 마이크는 다른 사람들이 잡았지만 사실 당시 집회는 90% 이상 그들이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때부터 아줌마들을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거창을 다시 찾았다. 거창지역 아줌마 4명(김태경, 손승미, 송민선, 이희숙)을 모아 놓고 아줌마들을 건드린 '지점'을 찾아보고 싶었다.

"설마 무상급식 중단할까 싶었다"

아줌마들은 한결같이 무상급식 중단, 정확히 말하면 학교급식 지원 중단을 예상하지 못 했다고 한다.

이희숙: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설마설마했습니다.

송민선: 홍준표 지사가 재선 전에 무상급식을 중단시키겠다고 한 번 그랬습니다. 그런데 선거 때 그러면 표 떨어지니까 잠시 언급했다가 말았습니다. 그래서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재선되고 나니까 말이 달라지더라고요.

김태경: 저도 전혀 예상 못 했습니다. 좀 이상한 낌새가 있었던 게 학교에서 느닷없이 우유 먹을래? 이렇게 묻는 겁니다. 그냥 우유를 공짜로 줬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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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 급식연대 제공.

Q: 급식비 지원이 끊기면서 학부모 결집이 비교적 쉽지 않았나요? 예전 교도소 문제를 반대하면서 학부모들 결집이 잘 돼 있었으니까요.

일동: 아닙니다. 반대입니다. 교도소 문제 때문에 학부모들이 지쳐 있었습니다. 엄마들 피로도가 너무 쌓여 있어서 도저히 뭘 하자고 그러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렇다고 교도소 반대운동을 중단할 수 없으니 그건 그대로 계속해야 하고. 그래서 무상급식 건은 학부모 회장 중심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거창에는 30여 개 초·중·고등학교가 있는데 거의 다 들어왔습니다. 밴드와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서 학부모 회장 중심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게 무상급식 실현을 위한 거창 급식연대(이하 급식연대)입니다.

김태경: 그래도 저희는 2015년 3월 넘어가면 해결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조금만 힘을 모아 우리 의사를 전달하면 홍준표가 중단하지는 못 할 것이다, 4월까지 제스처만 취하고 결국 재개될 것이다. 이런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4월 1일 홍준표 지사는 학교급식 지원 중단을 결행했다. 시장·군수협의회에서도 학교급식 지원 중단이 결정됐는데, 당시 제일 먼저 찬성표를 던진 사람이 이홍기 전 거창군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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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 급식연대 제공.

온갖 치졸한 방해공작

이미 4월이 오기 전부터 거창 학부모들은 '힘겨운 싸움'을 치르고 있었다. 2015년 1월 22일, 홍준표 지사가 거창 순방에 나섰다. 이때 학부모들은 피켓을 들고 홍 지사 차량을 약 1~2분간 막으며 면담을 요청했다. 거창군에서는 즉시 학부모 19명을 '공무집행방해'로 고발했다. 손승미 씨는 이때문에 난생처음 경찰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손승미: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시위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정치에도 관심 없었습니다. 단지 홍 지사 차량 옆에서 어떻게든 창문을 내리고 창문 틈으로 제가 손으로 쓴 편지를 전해드리고 싶었을 뿐인데, 그걸 고발당하고 1심에서 벌금 200만 원이 나왔습니다. 벌금이야 주변에서 내주겠지만 정말 너무 억울하고 황당합니다. 25일에 2심 선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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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 급식연대 제공.

더 힘겨운 건 따로 있었다.

일동: 좁은 지역사회다 보니까 지역 토호들, 예를 들면 조합장이나 군의원 같은 사람들을 계속 마주치게 됩니다. 피켓을 들고 있으면 이들이 다가와서 '아이고 여자들이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몰라도 가만히 있으면 홍 지사가 알아서 해줄 낀데 이렇게 나대니까 더 안 해준다'고 조롱을 합니다. 모르는 사람이면 무시하면 되는데 지역에선 이 사람들이 어른들이고 다 아는 사이니까…. 또 거짓말도 막 해댑니다. 그냥 덮어놓고 무조건 교육장이 몇천억 떼먹었다고 하는 겁니다. 바람잡이 노인네 몇 명이 어디서 대충 들은 얘기를 막 퍼뜨리는데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노인들은 홍 지사가 아니라 박종훈 교육감이 골프 치러 다니는 줄 압니다.

김태경: 이런 헛소문은 기본이고, 집안에 어르신이 읍내에 가면 읍내에 유지라는 사람들이 '너그 며느리가 나대는 바람에 집에 비료값도 못 받을 거다. 두고 봐라' 이런 식으로 압력을 행사합니다. 굉장히 치졸한 짓인데 그런 걸로 엄청나게 스트레스받습니다.

이희숙: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장이나 부녀회장이 조직적으로 대응합니다. 쓸데없이 나선다고. 만약 이장이 말을 안 듣는다면 공무원이 직접 나서기도 합니다. 이장이 공문 같은 걸 뿌리길 거부하니 도에서 나온 공무원이 공문을 뿌린 적이 있습니다. 또 홍 지사가 만든 서민자녀교육지원에 신청하라고 집에 몇 번이나 찾아옵니다. 공무원이 3번 찾아오고 이장이 2번 찾아왔습니다.

김태경: 서명받는 사람들은 관에서 꼬투리를 잡기도 합니다. 카페를 운영하는 학부모가 위생점검에서 걸렸는데, 바리스타가 위생모자를 안 썼다고 하는 겁니다. 사실 그거 쓰고 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런 식으로 괴롭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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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 급식연대 제공.

그럼에도 거창 아줌마들의 결속력은 대단했다. 4월부터 매주 화요일 학교, 면사무소, 농협 지점 앞에서 피켓시위를 했으며, 모든 학교에 급식 현수막을 걸었다. 거창군의회는 수십 번 드나들었다. 거창북상초등학교 같은 경우에는 아예 1학기 내내 도시락을 쌌다. 학부모들이 이렇게 강한 결속력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희숙: 집에 살림만 하는 사람이라고 만만히 본 거죠. 학부모들 사이에서 '우리가 알아야 안 당한다'는 정서가 쫙 퍼져 있습니다. 올바른 생각을 갖지 않은 사람에게 밀리면 안 된다는 걸 아는 겁니다.

송민선: 게다가 무상급식 지지도도 높습니다. 완전 새누리당 성향의 나이 많은 어르신들 중에서도 '애들 밥은 줘야지'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물 밑에 흐르는 분위기를 알기 때문에 힘을 낼 수 있는 거죠.

Q: 학부모 조직이나 예산은 어떻게 운영합니까?

일동: 기본적인 조직은 학부모 회장단이 근간입니다. 급식연대에 공동대표가 4명 있고, 운영위원 14명이 실질적으로 일을 합니다. 이은정 씨라고 농민회 간사가 상근을 하면서 일을 많이 해줍니다. 중요한 건 일이 정해지면 모두 1/n로 나눕니다. 누구에게 다 떠넘기고 바라보지 않습니다. 또 운영위원은 실제 실무를 하는 사람도 운영위원입니다. 예산은 시민단체가 가지고 있던 기금을 일차적으로 활용했고, 이게 부족해지자 작년 8월 19일에 후원의 밤을 열었습니다. 그때 순수입만 1000만 원 넘게 벌었습니다. 이 외에도 거창이 농업지역이기 때문에 직접 지은 농산물을 미숫가루로 판매해 돈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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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 급식연대 제공.

"상상외로 무식한 군의회… 끊임없이 감시해야"

8월 주민소환 얘기가 나오자 거창 학부모 350명이 수임인(서명받는 사람)으로 참여했다. 거의 모든 수임인이 학부모였다. 거창군청 로터리에서 서명대를 설치했다. 거창군에서 서명대 인근에는 천막을 못 치게 하고, 파라솔도 펴지 못하게 방해를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농번기였다. 거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소환서명이 이뤄지는 9~11월은 일 년 중 가장 일손이 부족한 기간이다. 게다가 아줌마들이 신경 써야 할 건 또 있었다.

일동: 교육감 주민소환을 한다고 온갖 관변단체와 기관, 이장들이 총동원됐습니다. 이걸 이대로 두고 보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다행히 좁은 지역이기 때문에 카카오톡이나 밴드에 제보가 실시간으로 들어옵니다. 소식이 들어오면 바로 선관위에 연락합니다. 그래도 선관위 직원은 나름 역할을 해줬습니다.

Q: 거창군의회는 어떻습니까? 야권 군의원이 있습니까?

일동: 더민주당 군의원 비례대표로 1명 있고, 무소속 2명이 우리를 도와줬습니다. 군의회 얘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너무 황당한 게 많습니다. 예를 들면 조례안을 통과시키려면 심사 소위원회와 싱임위원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런 것조차 제대로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몇몇 의원들끼리 식당에서 밥 먹은 걸로 심사 소위를 통과했다고 하는 겁니다. 심지어 같이 밥 먹은 의원들도 '언제 그런 얘기했지?'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군의회에서 발언 한 마디 하려면 공무원이 다 써준 대로 읽습니다. 공무원이 써준 '대본'을 잊어버리면 어버버 말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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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 급식연대 제공.

군의회에 대한 아줌마들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이번 싸움을 통해 아줌마들이 배운 게 뭐가 있을까?

김태경: 너무나 쉽게 손바닥 뒤집듯이 거짓말을 하고 합의를 파기하는 것을 많이 봐왔습니다. 정말 정치인의 처음과 끝을 적나라하게 봤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계속 속고 살겠구나 싶습니다. 항상 긴장하면서 살아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이희숙: 우리가 아이들한테 항상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습니까? 정말 이 사람들은 거짓말도 잘하고 약속도 바로 엎어버리고 너무 화가 나는 겁니다. 저는 사실 사회운동하는 사람들 안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당하고 보니 열심히 사회운동을 해야겠다 다짐했습니다.

손승미: 행정이나 잘못된 게 있으면 '이게 잘못되지 않았소' 말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거창 사람들은 그걸 할 줄 몰라요. 다 한 다리 건너 연결돼서 자기한테 해가 될 수 있다고 겁을 내는 겁니다. 이런 고정관념 같은 게 빨리 없어져야 그나마 괜찮아질 겁니다.

송민선: 홍준표라는 정치인에게 정말 너무나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걸 내버려 두는 새누리당에게도 엄청나게 실망했습니다. 덕분에 복지란 무엇인가?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는가 많이 공부하게 됐습니다. 또 엄마들이 저렇게 뭉치는 것에 대해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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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 급식연대 제공.

거창 아줌마들은 약 9500명(거창 유권자 약 17%)에 달하는 홍준표 주민소환 서명을 받았다. 사실 도시와 달리 시골은 여건상 주민소환 서명을 받기가 훨씬 어렵다.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줌마들의 집념도 있지만, 끊임없는 방해공작과 거짓말로 아줌마들을 폭발하게 한 것도 있는 듯하다. 이제 거창 아줌마들은 거의 '전사'라 불러도 될 정도로 개개인의 전투력이 높아진 상태다. 급식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그저 흩어지고 말 사람들이 아니다. 훗날 이 아줌마들이 거창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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