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이냐 솔로냐, 그것이 문제로다?

커플 메이킹 호텔이 있다. 이 호텔엔 45일만 머무는 게 원칙이지만 사냥으로 숲 속 '외톨이'를 한 명 잡으면 하루 더 머무를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남녀가 커플이 되면 2주간 2인실에서 지낸 뒤 바다에 떠 있는 요트로 옮겨 2주를 더 지내게 된다. 그동안 둘 사이에 문제가 생기거나 다툼이 벌어지면 아이가 배정되기도 한다. 모든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면 커플은 도시로 당당하게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만약 호텔에 있는 동안 짝을 만나지 못하면 그 사람은 평생 동물로 살아가게 된다.

외톨이로만 살 수 있는 숲이 있다. 호텔처럼 유예기간은 없다. 외톨이들은 사귈 순 있지만 키스나 섹스를 해선 안 된다. 자신의 무덤도 스스로 파야 한다. 외톨이들은 가끔 필요한 물건들을 사거나 가족을 만나기 위해 커플만 허락된 도시로 나간다. 그곳에서 외톨이들은 커플인 척 연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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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랍스터> 포스터.

주인공 데이비드는 근시라는 이유로 아내에게 버림받고 호텔에 들어간다. 만약 커플이 되지 못한다면 랍스터가 되기로 결심하고. 랍스터가 100년 넘게 살고 귀족처럼 푸른 피를 가졌으며 평생 번식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래도 랍스터보다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더 좋으니 데이비드는 짝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감정이란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 감추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해서 거짓말을 해가며 솔로 탈출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과는 실패. 숲으로 탈출한 데이비드는 그곳에서 자신처럼 근시를 가진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곳은 커플이 금지된 숲이 아닌가!

그리스 출신 영화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Yorgos Lanthi-mos)의 작품인〈더 랍스터〉(The Lobster)는 사랑에 대한 엉뚱한 상상에서 시작한다. 커플 천국, 솔로 지옥인 '호텔'과 솔로 천국, 커플 지옥인 '숲'. 주인공들이 처한 각각의 '시스템'은 우리의 현실을 묘하게 비틀었다. '결혼하지 않으면 진정한 어른이 아니다' '여자 나이 서른 넘으면 똥값' 기타 등등의 말로 남녀 간의 연애만 부추기는 우리의 현실이 커플이 되는 것만이 지상 최대 과제인 호텔 속 삶과 뭐가 다른가. 그리고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노인, 장애인의 사랑이나 섹스를 분수에 안 맞다, 더럽다며 손가락질하고 외면하고 쉬쉬하는 게 숲 속의 삶과는 뭐가 다른가.

사람 사는 건 사람 숫자만큼 다양하지 않은가. 사랑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 커플이 되거나 평생 혼자 살거나, 겨우 두 가지 경우의 수만 허락하는 시스템에 개인은 충돌할 수밖에. 결국 데이비드는 호텔과 숲, 두 곳 모두에서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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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랍스터> 스틸 컷.

〈더 랍스터〉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면서 개인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호텔에 들어간 데이비드는 커플이 되지 못하면 랍스터가 되기로 선택하고, 신발 사이즈 44 반이 없어서 44와 45를 놓고 고민하다 45를 선택한다. 성적 취향을 묻자 대학 때 남자와 잔 적이 있기 때문에 양성애자라고 쓸까 하는데 동성애나 이성애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호텔 규정 때문에 이성애를 선택한다. 이 영화 안에서 시스템은 이데올로기고 그 속에서 개인의 선택은 제한된다. 호텔에선 커플이 될 것을, 숲에선 솔로가 될 것을 강요받는다. 현실을 돌이켜보면 사랑, 연애, 결혼뿐 아니라 거의 모든 개인의 선택에 진정한 자유가 있는가 싶다. 몇 안 되는 답안이 놓여 있고 그중 하나를 선택하는 건 아닌지. 강요된 이데올로기를 불편하다고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하면서, 다른 답은 엄두도 못 내고, 불안과 외로움 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속이고, 선택한 답안에 자신을 끼워 맞춰가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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