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슬픔을 달래는 마음의 노래

주객의 방문이 이른 한적한 시간에 50대 중년 부인이 카페 안을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레 턴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는다. 한동안 말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가벼운 칵테일을 들이키다, 포스터의 '스와니강'을 들려줄 수 있느냐며 겸연쩍게 주문한다. 가끔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손님이 있을 때가 아니면 쉽게 틀 수 없는 분위기인지라, 눈치를 보는 사장에게 중년 부인은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어렵사리 다시 한 번 부탁을 한다. 거절할 수 없는 간곡한 모습에 사장은 무드음악의 선구자라 일컫는 만토바니 오케스트라의 '스와니 강'을 들려준다. 한참 음악을 듣던 중년 부인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주변의 사람들은 의아해하면서도 그녀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음악의 끝자락에 이르러 그녀는 눈가의 물기를 훔치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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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까지 마산에서 지냈던 그녀는 부모님의 이민으로 독일에서 30년 가까이 지냈다. 그 후 잠시 귀국해 고향을 방문하면서 자신의 추억이 묻어있는 창동거리를 둘러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창동 모습이 예전과 너무나 달라졌고, 거리 자체에 생기가 없어 보였다고 했다. 먼 타국에서 수많은 세월을 보내고 다시 찾은 창동 골목은 한없는 쇠퇴기를 거친 후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엔 적막강산처럼 한적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변함없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이 음악카페가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으며, 마냥 반가워서 친정에 들린 기분이라 말할 정도였다. 감수성이 충만한 소녀시절부터 즐겨들었던 '스와니강'을 추억의 장소에서 듣는 그 순간 절제했던 감정이 봇물 터지듯 한순간에 폭발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독일에서 정착하기까지 험난한 여정이 있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살 만큼 안정되었다지만, 그동안의 고생과 역경을 감당하기 위해 억눌러왔던 응어리가 한맺힐 정도로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인내해왔던 감정이 '스와니강'으로 분출되니 그녀의 심정이 오죽하였을까 짐작이 될 정도였다. 한동안 자신에 대한 넋두리로 시간이 지나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살아생전 두 번 다시 추억의 이 카페에서 '스와니강'을 들을 수 있을까요?"라며 묘한 여운을 남긴 채 문을 나섰다고 한다. 이후 아직까지 그녀에 대한 후문은 들을 수 없었지만, 그녀의 사연과 함께 들었던 '스와니강'은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스와니강(Swanee River)'이라고 더 알려져 있는 이 곡은 포스터(Foster Stephen Collins)가 25세인 1851년에 작곡한 것인데, 원제목은 '고향 사람들(The Old Forks At Home)'이다. 이 노래는 미국 남부 출신의 흑인이 고향을 떠나 방랑생활을 하며 멀리 있는 스와니강가의 고향 사람들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망향가이다. 포스터의 노래에서 이 강은 'Swanee River'이지만, 실제로는 'Suwannee River'로 명기되어 있다. 미국 조지아 주 남동부 오키퍼노키 늪지대에서 발원하는 스와니강의 이름은 산후아니(San Juanee)에서 유래하였다. 초창기 원주민인 인디언의 말로 '갈대가 우거진 강'이라는 뜻의 '구아시카에스키(Guasaca Esqui)'라고 불렀었는데, 이후에 '작은 성 요한(Little St. John)'이라는 뜻의 '산후아니'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이것이 흑인들에 의해 와전되어 지금의 '스와니(Suwannee)'가 되었다고 한다. 스와니강은 조지아 주와 플로리다 주를 거쳐 멕시코 만으로 들어가는데, 습지를 뱀의 형상으로 구불구불하게 흐르니 수로의 가치도 없을뿐더러 연안의 큰 도시와 명승지도 없어 별 볼 일 없는 강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강의 이름이 미국인 뿐 만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향수와 그리움의 대명사로 알려진 것은 오로지 음악가 포스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포스터가 이 노래의 곡을 먼저 만들어 놓고 가사를 붙일 때 알려진 유명한 일화가 있다. 처음 가사에 남부의 강 이름을 넣으려고 야즈강을 택했다가 마음에 안 들어서 페디강을 생각하였으나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는 형 모리슨을 찾아가 지도를 펴놓고 의논하면서, 서정적이며 발음하기 부드러운 2음절의 강 이름을 살피기 시작했다. 마침내 형 모리슨이 스와니(Suwannee)를 찾았고, 두 사람은 박수를 치며 크게 기뻐하면서 2음절인 'Swanee'로 줄여 가사를 완성하였다. 음운이 백조의 애칭으로 느껴지고 있는 것이 가히 의도적이지만, 아름답고 서정적인 단어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각고의 노력으로 완성된 노래는 크게 흥행되어 13만 장의 악보가 팔렸으며, 특히 영국에서 크게 유행하여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당시 크림전쟁(1853~1856)에 참전한 영국군의 병사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스와니강'을 불렀고,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 때는 남군, 북군 할 것 없이 애창하던 노래였다.

이후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가정생활이 파탄나자 혼자 뉴욕으로 간 포스터는 고독한 생활을 하다, 1864년 1월 어느 한 호텔에서 사고로 숨을 거둔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38세였다. 그의 사후 2개월 만에 유작 '꿈꾸는 가인'이 출판되었다. 포스터의 작품은 모두 188곡으로 풍부한 서정과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선율 속에 깊은 애정과 인간성이 잘 나타나 있다. 또 유럽적인 감각과 함께 남부 흑인의 생활이나 민요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민요의 아버지로 불리는 포스터는 수많은 대중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으며 '스와니강'은 불후의 명곡으로 여전히 애창되고 있다.

다시 오리라는 기약도 없이 쓸쓸히 떠난 여인을 생각하며,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스와니강' 선율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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