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라 불러주는 할머니 환자가 보람이다"

정형외과 전문의 장병유(57) 진주 세란병원장은 매일 오전은 진료, 오후는 수술로 일정이 빡빡하다.

외래 진료를 줄이고 대외적인 활동에 집중하는 병원장도 있지만, 장 병원장은 "병원장이라고 대우받으면서 정진하지 않으면 퇴보한다"며 "많은 경험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막 오전 진료가 끝난 장 병원장을 점심시간을 이용해 진료실에서 만났다.

'사'자 직업 원했던 아버지

장 병원장은 경남과 연고가 없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학창시절 장 병원장은 경영학도를 꿈꿨다.

"아버지가 이북 사람이었습니다. 깐깐한 성품이셨죠. 생각한 게 있으면 거기에 매진하셨습니다. 당시 사회적으로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이 최고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중에서 의사가 제일 낫다고 생각해 자식들이 의사가 되길 바랐습니다."

장 병원장의 형은 아버지가 바라던 '의사'가 아닌 '치과의사'가 됐다. 자식을 의사로 만들려는 부친의 꿈은 장 병원장에게로 옮겨졌다. 아마 형이 '의사'가 됐더라면 장 병원장은 다른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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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병유 진주 세란병원장./김구연 기자

"의학도 배워보니 매력적이었습니다. 특히 실습을 나갔다가 정형외과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보통 내과가 방대하다고 하는데 정형은 더 방대했죠. 우리 몸에서 눈이나 치아 등 몇 개를 빼고는 거의 정형외과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만큼 다양하고 다이나믹한 분야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정형외과 의사들을 보면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공부하는 과정이 힘들지만, 하고 나서도 자기계발을 하지 않으면 사장됩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많은 정형외과 의사가 '정형내과'나 마찬가지예요. 수술하는 사람은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론적으로 아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많은 경험이 중요합니다. 물론 이론적 기초 없이 수술을 하면 모양은 좋을지라도 결과가 안 좋습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장 병원장은 애초 경기도 일산 쪽 병원에서 근무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개원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즈음 지인의 소개로 '윤양병원'과 인연이 닿아 1994년 진주로 왔다. 그 후 통영 적십자병원 등을 거쳐 1998년 세란병원이 개원하며 병원장으로 취임했다.

세란병원은 진주시 주약동에 있는 보건복지부 지정 관절전문병원으로 148병상을 운영 중이다. 내과·정형외과·신경외과·마취통증의학과·영상의학과가 있으며, 12명의 전문의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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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병유 진주 세란병원장./김구연 기자

남자보다 여자에 더 많은 퇴행성 관절염

장 병원장은 퇴행성 또는 외상성 관절염 치료와 인공관절 치환술을 많이 한다.

그래서 그를 찾아오는 환자 대부분은 그보다 나이가 많다.

"퇴행성 관절염을 주로 다루다 보니 보통 65세 이상 환자가 많아요. 간혹 젊은 사람도 있지만, 이때는 외상성으로 인한 경우죠. 아주 젊었을 때부터 노동으로 관절이 빨리 망가진 사람입니다. 유전적인 요소도 조금 포함돼 있지만 대부분 노동으로 인한 겁니다."

퇴행성 관절염은 관절을 보호하고 있는 연골의 점진적인 손상이나 퇴행성 변화로 관절을 이루는 뼈와 인대 등에 손상이 일어나는 질환이다. 가장 흔한 증상은 통증.

초기에는 관절을 움직일 때 통증이 심해지지만, 병이 진행되면 움직이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통증이 나타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절에 변형이 오면 증상이 더 심해진다.

"남자보다 여자 환자가 더 많습니다. 폐경으로 호르몬 변화가 생기면서 골다공증이나 관절 질환이 오게 되죠.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노동을 해도 호르몬 변화로 여자들 관절이 더 많이 망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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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병유 진주 세란병원장./김구연 기자

양반다리 오래 하지 마세요

퇴행성 관절염은 상체보다는 체중이 실리면서 주로 무릎이나 고관절, 발목관절 등 하지 관절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도 무릎 관절에 변화가 많이 일어난다. 쪼그려 안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 때 무릎에 부담이 많이 간다.

"반복적인 무릎 관절의 굽힘과 쪼그려 앉는 자세는 퇴행성 관절염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는 보통 주부들이 흔히 하는 물걸레질이나 손빨래가 관절에 해롭죠. 또 오리걸음이나 토끼뜀도 무릎 관절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양반다리나 쪼그려 앉기, 무릎 꿇기를 가능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자세로 오래 있는 것은 더욱 좋지 않습니다."

또 너무 무리해서 오래 걷거나 장시간 서 있는 것도 관절에 좋지 않고 발끝으로 걷는 것 또한 피해야 한다고. 결국 바른 자세와 바른 걸음걸이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무릎 등에 이상이 느껴져도 대부분은 관리하기보다는 방치하다가 망가진 후 통증이 심해져서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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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병유 진주 세란병원장./김구연 기자

"요즘 약 광고가 얼마나 많습니까. 광고들을 보면 그 약을 쓰면 병이 깨끗이 나을 것만 같아요. 거기에 현혹돼서 제대로 치료나 관리를 하지 않고 파스만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파스 성분은 관절 깊숙이 침투하지 않아요. 통증은 줄일 수 있지만 소염작용은 많이 하지 않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이 든 어르신 대부분은 "아이고, 무릎이야"를 달고 산다. 환자가 많은 만큼 "관절에는 ○○가 좋다더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그중에는 근거가 없는 것도 많다.

"고양이는 관절이 유연하므로 그 고기를 먹으면 관절에 좋다는 믿음을 가진 환자가 의외로 많지만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민간요법이 있지만 역시 효과가 검증된 것은 드물고, 설사 통증을 감소시킨다 해도 관절 파괴는 이에 상관없이 계속 진행될 수 있습니다. 주위 말을 믿기보다는 병원에서 제대로 검사하고 치료해야 합니다."

통증 심하면 인공관절 치환술

인공관절 치환술이란 파괴된 관절연골과 골 조직을 제거한 후 금속과 고강도 플라스틱으로 구성된 보형물을 관절에 삽입하는 수술이다.

어깨관절, 팔꿈치관절, 고관절, 무릎관절, 발목관절에 시행할 수 있다.

인공관절 치환술은 어떠한 경우 시행할까.

"미국 기준에 따르면 관절 손상 정도를 4단계로 나누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제 임상에서는 검사상 3단계로 보이는데 환자는 참기 힘든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검사로는 4단계인데 통증이 없는 환자도 있어요. 결국 환자가 느끼는 통증이 어느 정도냐가 수술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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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병유 진주 세란병원장./김구연 기자

그런데 일부 환자는 수술만 하면 통증이 바로 마법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잘못된 기대를 하기도 한다.

"망가진 연부조직이 제자리를 찾고 염증 반응이 사라지려면 3개월은 걸립니다. 그동안 관리와 운동을 잘해서 조금씩 좋아지는 거죠. 그런데 2주만 지나도 수술 전에 비해 몸 상태가 엄청 좋아지니까 대부분 그냥 일을 합니다. 사실 주부들이 집안일을 안 할 수가 없죠. 중노동이나 생활환경으로 관리를 잘하지 못하면 기계(인공관절)도 망가지게 되죠. 관리가 중요합니다."

할머니 환자들의 '오빠'로

그런데 환자들 중에는 기껏 수술을 하고도 다시 망가뜨려 오는 경우가 많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들죠. 어떤 환자는 통증이 너무 심해 일하기가 힘들어 고민 끝에 수술을 했어요. 그런데 무리하지 말아야 하는데 생활고로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했습니다. 보통 진료실에서는 한 환자에게 오래 시간을 할애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30분을 설득했지만, 전혀 소용없이 망가뜨려 오더군요. 이런 경우엔 안타까운 게 아니라 실망스러워서 화가 납니다. 수술을 한다는 게 환자 자신에게도 보통 일이 아닌데…."

장 병원장 기운을 빼놓는 게 환자라면 기운을 내게 하는 것도 환자다.

"어떨 땐 다인실 병실에 가면 한 병실에 내 환자만 쫙 누워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땐 내가 열심히 진료하고 있구나 싶어 보람됩니다. 결국 의사에게 중요한 건 환자입니다. 환자들 마음이 의사의 보람입니다. 제 환자는 거의 저보다 나이가 많은데 병실에 들어서면 어떤 할머니는 저한테 '오빠'라고 합니다. 오빠요. 하하하. 어떤 분은 퇴원했는데 일주일 후에 다시 병원에 오신 거예요. 어떻게 오셨느냐 물으니 '병원에서 원장님 얼굴을 매일 보다가 안 보니 적적해서 얼굴 보러 왔다'고 하세요. 이런 분들이 전부 제 보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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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병유 진주 세란병원장./김구연 기자

규칙적인 생활과 체중 조절로 건강관리

진료에, 수술에 정작 자신의 건강관리를 할 틈은 없어 보이는 장 병원장.

1년 전까지만 해도 주말 당직까지 서느라 개인적인 시간을 낼 짬이 없었다. 지금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엔 외래진료를 한다. 오후에는 수술 일정이 잡혀 있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 장 병원장이 신경 쓰는 것은 특별한 운동보다는 규칙적인 생활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정해진 진료와 수술만으로도 바빠서 개인적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할 시간이 많지는 않네요. 유산소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체중 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고.

"특별히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체중 관리를 위해 식이요법을 합니다. 술은 안 하고 담배는 좀 피우네요."

휴일이라고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 등산은 하지 않고 산보 정도로 몸을 움직여 준다고 한다.

환자 열심히 돌보는 것이 목표

경영학도를 꿈꾸던 소년이 병원 경영을 해야 하는 병원장이 됐으니 꿈을 어느 정도 이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장 병원장은 '경영'보다 '의료'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듯 보이는, 천생 '의사'였다.

병원의 향후 계획을 질문하자 그러한 점이 도드라졌다.

"세란병원은 148병상에 의사가 12명이나 됩니다. 그게 장점입니다. 그만큼 세분화해서 치료가 가능하니까요. 공간이 좁고 직원이 많으니까 환자를 더 자주 볼 수 있고 더 친절합니다. 수익성은 낮지만 지금의 장점을 잘 유지할 겁니다. 병원을 과도하게 늘리기보다는 지금 수준을 잘 유지하고, 지금처럼 환자를 잘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욕심 없이 직원들과 지금처럼 환자들을 열심히 돌보는 것이 꿈이라는 장 병원장은 "언젠가 먼 장래에 일을 모두 내려놓게 되면 어딘가 섬을 사서 쉬고 싶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먼 미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쉴 틈이 없어요. 주말에 이틀 쉬면 잘 쉬는 겁니다. 일복이 많은지 쉬다가도 병원에서 전화가 오면 바로 달려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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