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섬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길 따라 느릿느릿 걸어볼까

남해에 있는 바래길 이야기를 들은 건 지난해 11월이다. 10월에 작고한 남해해오름예술촌 촌장 불이 정금호 선생에 대해 취재를 하러 그와 친분이 두터웠던 문찬일 씨를 만났다. 문 씨는 힘든 젊은 시절에 불이 선생을 만나 새로 태어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이 선생과 여행을 참 많이 다녔는데 그때 남해섬 바다를 따라 걷는 길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남해가 제주나 지리산보다 못한 게 뭐 있노?" 그렇게 시작된 것이 남해 바래길이다.

남해 바래길은 삶의 길

어딜 다닐 때마다 그 지역 안내 지도를 찾는 버릇이 있다. 그렇게 남해군 지도도 숱하게 챙겨왔다. 하지만, 남해 바래길은 전혀 기억이 없으니 아마도 유심히 보지 않은 탓일 거다. 나중에 남해군 지도를 다시 살펴보니 과연 남해 바래길을 소상히 적어 놓았다.

"바래가 무슨 뜻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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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래길 1코스 다랭이지겟길을 걷는 사람들./문찬일 제공

바래길 이야기를 듣던 날 문찬일 씨에게 물었다.

"남해 아낙들이 물때만 바뀌면 바닷가에 나가서 미역 한 줄 뜯고 톳 한 줄기 뜯고 조개 하나 캐고 하는 그 행위 자체가 '바래'입니다. 남해 사람들은 그걸 통해서 자식들을 먹이고 공부시키고 꿈을 키워줬지요. 자식 잘되기를 바라고 기대하고 희망하는 마음이 거기 담겨 있지요."

듣는 순간 느낌이 좋았다. 문찬일 씨에게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바래로 생계를 유지했단 말인가요? 예컨대 해녀들의 물질처럼이요."

"그건 아니에요. 생계 수단이라기보다는 부족한 먹을거리를 보충하는 일이라고 해야겠죠. 어업과 농업이 본업이니까요."

"바래가 남해에서만 쓰는 말인가요?"

"그렇죠. 어촌 마을에서는 '바래 갔다 오는가?' '어, 바래 갔다 오네'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남해토속어라고 해야겠네요. 근처 통영에서는 '바리'라고들 하더군요."

남해 바래길 홈페이지(www.baraeroad.or.kr)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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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길을 처음 구상하고 제안한 문찬일 씨./이서후 기자

'남해 바래길은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며 살아온 남해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삶의 길이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가족들의 먹을거리를 얻으려고 갯벌이나 갯바위 등으로 바래하러 다녔던 길입니다. 바래를 통해 채취한 해산물을 이웃과도 나누어 먹었던 나눔의 길이기도 합니다'

바래길 초기 회의 자료집에는 이런 글귀도 있다.

'(바래는) 가족을 위하여 국을 끓이고, 삶아 무쳐서 반찬으로 만들고, 말려서 도시락 반찬으로도 넣어주고, 그래도 남으면 시집간 딸래미 집에 보내는…, 대량 채취가 아닌 일용에 필요한 양만큼만 채취하는 작업입니다'

남해 바래길을 일러 '삶의 길'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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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래길 안내표지판./이서후 기자

남해 바래길의 탄생

문찬일 씨가 바래길을 구상하고 읍면을 다니며 적당한 길을 물색해 남해군에 제안을 한 건 지난 2009년이다. 남해군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주민토론회 등을 거쳐 지난 2010년 2월 문화체육관광부에 문화생태탐방로 지정 신청을 했다. 걷기 열풍이 막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적극적으로 길을 발굴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때 남해 바래길 현장 실사를 온 이가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진흥과 홍성운 사무관이었다. 지금은 서기관으로 승진해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문화융성지원팀장을 맡고 있다. 홍 서기관은 남해 바래길을 포함해 하동 박경리 토지길, 통영 토영 이야길, 하동·산청 이순신 백의종군로, 산청 구형왕릉 가는 길 등 경남을 포함한 전국에 있는 걷는 길들의 산파 역할을 한 이다.

그는 남해 바래길 답사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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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래길에서 풀을 베는 남해바래길 사람들./문찬일 제공

"그때 길 전문가, 생태 연구하시는 분들, 향토사학자 등과 함께 현장에 갔었지요. 당시 군수도 나오고 그랬고요. 주변 풍광들이 매우 아름다웠던 걸로 기억합니다. 가천 다랭이마을에 찾아가 주민들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그랬어요. 코스마다 특성이 있었는데 어촌 마을이라든가 섬이라든가 하고 잘 어울렸어요. 그리고 바다에 펼쳐진 죽방이라던지 바람을 막으려고 해놓은 방풍림이라든지 소소한 부분에서 이야깃거리들이 많았어요."

이 과정에서 남해 바래길 이름이 신선길이 될 뻔하기도 했다. 당시 남해군에서 문화체육관광부에 올린 이름이었다. 하지만, 현장 실사하러 다니던 홍 서기관은 바래에 담긴 의미를 알고 나서, 바래길이야 말로 남해 바닷가를 이은 이 길에 어울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해 5월 남해 바래길은 문화체육관광부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로 지정되면서 실질적인 지원을 받게 됐다. 당시 문체부 방침은 민간단체가 주도해 길을 만들게 하는 것이었다. 문찬일 씨는 불이 선생과 함께 사람들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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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래길에 이정표를 그리는 남해바래길 사람들./문찬일 제공

"남해에서 환경, 법률, 음악, 미술, 이벤트하는 사람들과 마을 이장, 농사짓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불이 정금호 선생을 대표로 추대했고요."

그리하여 그해 6월 8일 '남해 바래길 사람들'이 출범했다. 이들이 이후 적극적으로 길을 찾아 이었고, 있는 길을 넓혔고, 관광객들을 안내했다.

"읍면에다가 최대한 바닷가 쪽으로 붙은 길들을 좀 찾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리고 군청 직원들하고 길을 찾아다녔지요. 같은 길을 한 25번은 왕복한 거 같아요. 가능하면 사유지를 돌아가면서 농로는 그대로 살렸어요. 다행인 게 70, 80년대 바닷가에 해안초소가 있었거든요. 그 초소들로 가는 길들이 있었어요. 그걸 조금씩 이으니까 또 훌륭한 길이 되더란 말이에요. 그렇게 찾은 길은 돌도 좀 치우고, 풀도 베고, 괭이로 손도 좀 보고 그렇게 만들어 갔습니다."

그리하여 2010년 11월 27일 남해 바래길이 정식으로 열렸다.

남해 바래길 걷기

2016년 1월 현재 남해 바래길은 10개 코스가 열려있다. 구체적으로 1코스 다랭이지겟길, 2코스 앵강다숲길, 3코스 구운몽길, 4코스 섬노래길, 5코스 화전별곡길, 6코스 말발굽길, 7코스 고사리밭길, 8코스 동대만진지리길, 13코스 이순신호국길, 14코스 망운산노을길이다. 이 중 8코스 진지리길은 길은 연결되어 있지만 이정표 등 표지가 아직 없다고 한다. 애초 계획에는 이 외에도 창선바지락길, 남해갱번길, 강진만갯벌길, 대국산성길, 노량갯벌길이 더 있다. 지난 2013년 11월에는 바래길 안내를 도와줄 바래길탐방안내센터(055-863-8778)가 남해군 이동면 신전리에 들어섰다. 남해 바래길 사람들과 탐방안내센터에서는 매년 가을소풍 행사를 열고 사람들을 모아 바래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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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래길 코스 지도./남해바래길 홈페이지

문찬일 씨는 개인적으로 바래길 월요탐방을 매주 진행하고 있다. 문찬일 씨가 전하는 바래길 걷기 노하우를 들어보자.

"바래길이 왜 삶의 길인가 하면요, 풍경의 속살을 보는 길이라서 그래요. 길을 걷다 바래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노닥거리면서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느껴보고 남해 섬에 사는 남해인들의 고단한 삶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정해진 길만 따라갈 필요는 없어요. 이정표가 없는 길도 한번 들러보고, 그렇게 길도 잃어보고 이런 게 바래길을 걷는 재미일 수 있어요. 그런 식으로 걷다 보면 자신도 한 번 돌아보게 되는 거죠."

그는 남해 바래길을 걷는 일이 절대 실적 쌓기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내가 말이야 제주 올레길을 다 걸었어, 지리산 둘레길을 다 걸어봤어' 하는 것처럼 마치 길을 정복한 듯한 마음가짐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문찬일 씨 조언처럼 앞으로 남해 바래길 전 코스를 사부작사부작 걸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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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남해바래길을 만들 당시 남해바래길 사람들./문찬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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