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경찰 심장부를 지킨다

지난 2012년 오원춘 살인사건 때 경찰은 112신고 대응 미숙으로 지탄을 받았다. 이후 신고전화가 끊기면 경찰이 다시 거는 '콜백'도입 등 112시스템이 대폭 개선되었다. 박소현(42) 경위는 경남경찰청 112종합상황실에서 2년 가까이 근무하고 있다. 고도의 판단력·집중력을 필요로 하면서도 신고자를 향한 친절함 또한 잃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 때문에 박 경위는 매서운 눈빛과 부드러운 목소리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순간의 판단에 생명 왔다 갔다

경남경찰청 112종합상황실은 청장실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365일간 1초도 쉬지 않고 돌아간다. 범죄·민원·교통 등 모든 분야가 망라해 있다. 신고자와 현장 경찰관을 연결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경찰 심장부'라 불리기도 한다.

112종합상황실은 4팀으로 구성해 있다. 팀장 1명, 부팀장 1명, 분석관 2명, 접수 요원 12명이 한팀을 이뤄 호흡을 맞춘다.

"상황에 따른 대응 4단계가 있습니다. 판단은 저희가 하는 거죠. 칼을 들고 있거나, 자살을 시도하거나, 가스밸브를 자른 급박한 상황에서는 코드제로를 발령해 총력대응에 들어갑니다. 교통·순찰·형사 업무 할 것 없이 현장 주변 경찰관들에게 모두 전파해 달려가게 하는 거죠. 신고내용을 실시간으로 들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면 저희 모니터 맵에서 이동 중인 경찰관 위치가 실시간으로 잡힙니다. 그 사이 1초가 10분처럼 느껴지는 신고자들을 저희는 계속 안심시킵니다. 동시에 숨소리조차 놓치지 않고 현장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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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112종합상황실 1팀 경위./박일호 기자

상황실이 얼마나 신속히 대응하고 판단하는지에 따라 현장의 명암이 바뀐다. 이 때문에 사안에 따라서는 상황실 여러 명이 달라붙어 호흡을 맞춘다.

112접수에서 가장 기본은 상황 발생 위치를 알아내는 것이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휴대전화로 신고했다고 해서 위치정보가 무조건 확인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휴대전화 GPS가 켜져 있어야 정확한 위치가 파악되지, 그렇지 않으면 반경 2km까지만 잡힌다고 한다. 박 경위는 그러한 정보조차 없는 상황에 직면한 적이 있었다.

"겨울 야간에 신고전화가 들어왔습니다. 지리산 꼭대기에 있다면서 '살려주세요'라고 하는 겁니다. 장난전화가 아니라는 촉이 오더군요. 그런데 신고자 휴대전화가 긴급전화만 가능한 해지된 것이었습니다. 위치추적이 전혀 안 되는 상황이었죠. 혼자 추위와 공포에 떨면서 살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안심시키면서 주변 지형과 올라갈 때 이정표 등을 끊임없이 세밀하게 물었습니다. 다행히 신고 2시간 만에 무사히 구조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구조대원들이 위치 설명을 잘해준 덕이라고 하더군요. 112총력대응 우수사례에 뽑혀 전국 경찰에 소개돼 뿌듯했습니다."

술 취한 이들 전화, 행정 민원 신고 등도 수두룩하다. 그렇다고 이들을 매정하게 응대할 수는 없다고 한다. 상대방이 알아들을 때까지 부드러움을 놓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하루에 많으면 160통씩 전화를 받습니다. 화장실 갈 시간 없이 내내 자리를 지켜야죠. 밥도 데스크에서 후딱 먹습니다. 감정노동자와 비슷합니다. 들어서는 안 될 말도 많이 듣게 되고…. 어떤 주취자는 100통씩 반복해서 전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화풀이 전화도 많고요. 그런데 예를 들어 택시가 없다는 전화가 저희한테 왔습니다. 혹시라도 차를 타지 못해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기에, 저희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계속 대화하며 판단합니다. 단순 불만 전화일지라도 감정 안 상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끝까지 대하고요."

근무형태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 그 다음 날 오후 7시부터 오전 8시, 그 다음 날 비번, 그리고 휴무, 이런 식으로 반복된다. 비번·휴무라고 해서 마음 편히 있는 건 아니다.

"지리를 익히기 위해 쉬는 날에는 현장 길 학습을 갑니다. 도내 전역이 대상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창원이야 머릿속에 영상이 떠오르지만 다른 지역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결국 현장에 나가 직접 익혀야 합니다. 구석구석 모두 갈 수는 없고, 비교적 신고 많은 각 지역 중심가를 돌아봅니다."

집에서는 초등학생 아이 둘까지 챙겨야 하는 주부다. 야간 근무 마치고 눈 좀 붙이려면 수업 마친 아이들이 집으로 온다. 하루에 많이 자면 고작 4시간이다. 하지만 잠 부족에 대해서는 이미 익숙해져 있다. 박 경위는 지금 업무를 맡기 전 광역수사대 등에서 밤낮없는 수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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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112종합상황실 1팀 경위./박일호 기자

광역수사대서 조폭 등 상대

부산이 고향인 박소현 경위는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전공을 살려 환경청에서 3년간 일했다. 그러다 2000년 27살 때 경찰 제복을 입었다.

"계약직이었는데 정규직 특채가 쉽지 않았습니다. 공무원 쪽으로 눈 돌렸는데, 가장 먼저 있는 시험이 경남경찰청 여자 순경이었습니다. 어떻게 운 좋게 한 번에 합격한 거죠."

첫 발령지는 통영경찰서였다. 경제팀에 있으면서 수사 업무와 첫 연을 맺었고, 조금 지나서는 항남파출소에서 일했다.

"당시만 해도 여경이 흔치 않을 때였습니다. 제복 입고 거리에 있으면 운전하던 시민들이 구경한다고 차가 밀릴 정도였습니다. 일부러 스티커 끊어달라고 하는 분까지 있을 정도로 여경을 신기하게 생각했죠."

이후 창원서부경찰서 수사과 경제팀에 있다가 2005년부터 6년간 광역수사대에서 조폭·전화금융사기·성폭력 수사 등을 맡았다.

"광역수사대에도 여경이 반드시 필요하죠. 불법 오락실에 잠입할 때 낯선 남자가 가면 경계하지만 여자면 '도박하러 온 아줌마'로 생각하거든요. 조폭이 운영하는 주점에 들어가도 '집에 안 들어온 남편 잡으러 온 부인'으로 생각하더군요. 주점 아가씨, 피해 상인들, 성매매 청소년 상대 등 여경 역할이 상당합니다. 그래서 광역수사대 내 다른 팀 일도 많이 도왔죠."

물론 검거현장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중국인 전화금융사기 일당을 붙잡을 때는 심한 격투를 벌이는 등 아찔한 경험도 많았다. 하지만 박 경위는 이렇게 말했다.

"형사들은 상황이 닥치면 상대가 흉기를 든 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무조건 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모든 경찰관이 마찬가지일 겁니다."

박 경위는 이후 창원중부경찰서 경제팀에서 일하다 2년 전 112종합상황실 근무를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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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112종합상황실 1팀 경위./박일호 기자

"경찰은 다른 직업과 달리 다양한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수사만 13년 하다 보니 다른 분야를 경험하고 싶었죠. 112상황실 업무를 실제 해보니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자부심도 크고요. 노련함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이에요. 생각과 달리 여경이 많지는 않고, 팀당 2명씩 있습니다. 선배로서 더 많은 여경이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개척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도 최종적으로는 다시 수사 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직업따라 눈빛이 바뀌더군요"

박소현 경위는 첫 발령지인 통영에서 남편을 만나 경찰 입문 7개월 만에 결혼했다. 남편 역시 경찰관으로 현재 창원중부경찰서 경비교통과에 근무하는 도은상(47) 경사다.

"난생 처음 온 통영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는데, 이 남자가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며 챙기니까 넘어갔죠. 통영 1호 경찰관 커플이었습니다. 저는 와일드하고, 남편은 순한 편이에요. 같은 일을 하고 있어서 편한 점이 많죠. 밤에 '나가봐야 한다'고만 해도 남편은 바로 알아들으니까요. 그리고 남편 월급까지 세세히 다 알고 있으니까, 저한테 꼼짝 못 하죠."

박 경위는 초등학교 6학년 딸, 3학년 아들을 두고 있다.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은 당연하다.

"피의자가 잡히면 밤이고 새벽이고 나가야 하잖아요. 애들 재워놓고 안 깨길 바라는 마음으로 밤에 나가는 거죠. 큰딸이 6살 때 유치원에서 사라져 난리 난 적이 있어요. 혼자만 늦게 남아있는 게 너무 싫어서 1시간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왔다는 겁니다. 지금은 큰애가 작은 애를 엄마 대신 챙겨줘요. 그래도 엄마가 경찰이라서 너무 좋데요. 절대 그만두지 말라고 합니다."

스스로도 경찰 길을 걷게 된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오랜 수사 업무를 하는 동안 피의자와 몸싸움·입씨름하는 것이 피곤할 법도 할 텐데, 적성에 딱 맞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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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112종합상황실 1팀 경위./박일호 기자

박 경위는 친구들로부터 '네가 경찰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말을 요즘도 듣는다. 화장·옷에 늘 신경 쓰던 그가 경찰 제복을 입은 모습이 지금도 낯설다는 것이다. 이제 박 경위는 천상 경찰관이다.

"사람 말을 늘 의심하게 됩니다. 어디 지나다니면서도 주변에 뭐가 있나 항상 보게 됩니다. 그게 또 머릿속에 바로 박혀서 시간이 흘러도 계속 남아 있어요. 워낙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반 관상쟁이가 다 됐어요. 직업 따라 눈빛도 바뀌더군요. 제 눈매가 보통사람보다 매서운 편입니다. 피의자를 윽박지르려는 게 아니라 모두 털어놓게 하려면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니까요. 어떤 피의자는 '박소현이라는 이름만 듣고 만만하게 봤다가 혼쭐났다'면서 스스로 얘기하더군요. 우리 애들은 제 앞에서 절대 거짓말 못 하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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