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코엔 월드'

어느 날 헬스장 바닥에서 발견된 CD 한 장. 음악이나 있을까 하며 열어본 CD엔 예상외로 문서 파일이 들어 있다. 망설임은 잠깐, 호기심에 이끌린 채드는 그 문서를 열어본다. 문장을 읽어내려가던 채드는 놀란다. 문서에 'CIA(미국 중앙정보국)'이라는 단어가 빼곡하기 때문이다. 추측하건대 이것은 '1급 정보'! 마침 성형 수술 비용이 필요한 채드의 동료 린다는 이 CD를 '거래'하자고 부추긴다. CD를 주인인 오스본 콕스에게 돌려주며 돈을 요구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오스본 콕스는 선뜻 돈을 줄 기세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이 향한 곳은 러시아 대사관. CIA의 고급 정보, 즉 미국의 중요한 정보임을 강조해보지만 러시아 대사관의 반응도 어쩐지 미적지근하다. 그 사이 채드가 갑자기 사라진다.

영화〈번 애프터 리딩〉(Burn After Reading)은 조엘 코엔(Joel Coen), 에단 코엔(Ethan Coen) 형제가 만들었다. 뉴욕대 영화과를 나온 형 조엘과 프린스턴대 철학과를 나온 동생 에단. 둘은 공동 시나리오에 형이 연출을, 동생이 제작을 맡는 형식으로 함께 영화를 만들어 왔다. 〈분노의 저격자〉〈아리조나 유괴 사건〉〈밀러스 크로싱〉〈바톤 핑크〉〈파고〉〈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시리어스 맨〉〈인사이드 르윈〉그리고 지금 소개하는〈번 애프터 리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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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보라와 영화보라'를 시작하고 일찍이 이 형제의 영화를 소개하고 싶었다.〈바톤 핑크〉〈파고〉〈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유명하면서도 좋은 작품이니까. 고백하자면 몇 번 결심하고 글을 써본 적도 있다. 그러나 줄거리 적다가 '멘붕' '멘붕' '멘붕'! 아무리 매끄럽게 쓰려고 해도 코엔 형제 특유의 그 얽히고설킨 플롯을 설명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그 맛이, 그 재미가 안 산다. 영화가 영화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만 절감하고 포기하길 여러 번.

그러다 엉뚱한 곳에서 코엔 형제 영화에 대해 다시 써봐야겠다는 결심을 얻었다. 얼마 전 우연히 포털 사이트에서 〈번 애프터 리딩〉네티즌 평점을 보고서 난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보다 평점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바톤 핑크〉〈파고〉〈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비하면 훨씬 쉽고 재밌게 코엔 형제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영화인데 말이다. 요컨대 '코엔 월드' 입문작으로 제격이라는 소리다.

아무래도 드라마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인물들. 이들은 실타래처럼 얽혀 서로가 서로를 위기에 빠트린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지고 결국 누군가는 죽는다. 첩보물답게 내내 긴장감을 놓지 않으면서도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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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영화의 매력은 한바탕 소동이 휩쓸고 지나고 난 뒤에 오는 찝찝함이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건가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실소가 터진다. 그저 한 여인이 성형 수술을 받고 싶었을 뿐이니까!

린다와 린다가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에서 만난 해리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It's all small stuff."(모든 것은 다 사소하다) 어쩌면 우리는 이들처럼 사소한 것을 너무 많이 고민하고 추측하고 호들갑 떨고 결국 오해하고 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네 사는 모습을 꼭 닮아 터졌던 실소가 그래서 스스로를 향한 조소로 되돌아올지도.

이게 바로 코엔 형제의 블랙 유머다. 마음에 든다면 이 세계로 어서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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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조지 클루니, 프랜시스 맥도맨드, 존 말코비치, 브래드 피트, 틸다 스윈튼. 이 영화는 배우들의 호연을 보는 맛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브래드 피트는 덜떨어진 헬스 트레이너 채드 역을 맡아 인생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브래드 피트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는 무조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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